I can see your herbivorous side RAW novel - Chapter 54
너의 초식이 보여 54화
녹안석
신기수사 봉진태는 그것을 유심히 보더니 입을 열었다.
“이것저것 실험을 하면 좀 더 자세히 알려줄 수 있지만, 솔직히 지금은 내가 여유가 없다. 그러니 내가 알고 있는 것만 알려주마. 먼저 향로에 대해서는……. 내 짐작이 맞다면 ‘천산혈로’가 분명하다. 그건 본래 혈교의 것이 아니야. 마교의 보물인데, 혈교가 분파되면서 가지고 도망친 거야.”
파해천이 끼어들었다.
“마교나 혈교나 그놈이 그놈이지. 같은 놈이잖아.”
“무식한 놈아. 같기는 뭐가 같아? 결이 완전히 달라. 마교는 본래 종교집단이고, 혈교는 미친놈들만 모여서 떨어져 나온 거야.”
그러면서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듯 설명했다.
“비단길 끝에 있는 페르시아라는 나라에서 조로아스터교가 중원으로 넘어왔다. 그리고 처음에는 단순히 불을 숭배하는 ‘배화교’라는 이름으로 포교 활동을 시작했어. 순수한 종교집단이었지. 그런데 당시 황제가 그들을 탄압했고, 중원인들이 배척하다 보니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무를 익힌 거야. 그리고 그때부터 마교라 불리지만, 걔네들은 자신들을 마교라 부르지 않아. 일월신교라 부르지.”
파해천이 투덜거렸다.
“내가 마교의 역사까지 알 필요는 없고. 결론이나 말해. 그래서 이 녹색 구슬이 좋다는 거야, 나쁘다는 거야?”
“끄응. 네 수준에 맞게 설명해 줘야 한다는 걸 깜박했구나. 들어봐라. 이것도 전부 연관 있으니까. 아무튼 전해진 바로는 배화교 시절 ‘오색지석’이라는 다섯 가지 보석을 가지고 중원으로 왔다고 한다. 그리고 그 보석으로 여러 물건을 만들었는데, 천산혈로도 그중 하나지.”
하운평이 물었다.
“그러니까, 이 녹색 구슬이 오색지석 중 하나라는 뜻이네요.”
“너는 이해가 빠르구나. 그래. 이 구슬은 오색지석 중 ‘녹안석’이라고 추측된다.”
“흐음. 그러니까 혈교에서 나온 쓰레기 같은 물건이 아니라는 거지?”
“본래는 그러하지. 하지만 무작정 그렇게 결론지어도 안 돼. 근본은 착하지만 환경이 나쁘면 사람도 변하는 법이니까. 즉 혈교 놈들이 이것을 가지고 온갖 악행을 저질렀을 테고, 이 구슬에는 이미 악기와 사기, 혈기 등이 끼였어. 녹색 빛이 혼탁해진 걸 보면 알 수 있지.”
“그럼 못쓴다는 거냐?”
“근본이 괜찮은 아이는 어떻게 하냐? 교육을 시켜서 못된 버릇을 고쳐야지? 이것 역시 혼탁한 기운을 정화시키면 괜찮아질 거야. 방법을 찾아봐.”
한마디로 정화시키면 쓸 수 있다는 뜻이었다. 방법은 모르지만, 하운평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리고 궁금한 것이 있어 봉진태에게 물었다.
“그런데 천산혈로가 마교의 보물이라면, 그들은 왜 가만히 있는 걸까요? 저라면 찾으려 할 것 같은데요.”
“이백 년 전, 혈교가 나올 때의 상황은 나도 모른다. 하지만 마교도 자신들의 보물에 신경 쓰고 있어. 예를 들어 이십 년 전 혈교가 나타났을 때는 마교에서도 찾으려 나타났었다. 심지어 네 사부도 만난 적이 있지.”
“내가?”
“쯧쯧. 그럴 줄 알았다. 네가 그랬잖아. 한 번 싸워보고, 두 번 다시 싸우기 싫은 놈이라고. 기억 안 나?”
“설마 암존? 그놈이냐?”
열두존자 중 일인이며, 천하에서 가장 은밀한 사람으로 알려진 암존.
그는 공식적으로 무림에 모습을 보인 적이 열 번도 되지 않았다. 항상 얼굴에 가면을 쓰고 있으며, 무공도 암기 종류라는 것만 추정할 뿐이다. 하지만 그는 나올 때마다 굉장한 무공 수준을 보여주었고, 당당히 열두존자에 이름을 올렸다.
이십 년 전, 혈교와 싸울 때도 권왕과 언쟁이 붙은 적이 있었다.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권왕은 몸서리쳤다.
“으으. 다시 생각해도 싸우기 싫은 놈이야.”
“아무튼 마교도 혈교를 신경 쓰고 있고, 보물을 되찾으려 할 것이다. 참, 그리고 혈교 말인데, 조심해라. 피와 시체로 강해지는 놈들이다.”
“명심하겠습니다. 참, 하나만 더 묻고 싶은데요. 이십 년 전에 신기수사님이 그놈들을 추적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들을 어떻게 찾으셨나요?”
“쯧. 그걸 전부 얘기하라고? 입 아프게.”
귀찮아하는 기색이 엿보였다.
하운평은 웃으면서 등에 메고 있는 상자를 내려놓았다. 상자 안에는 열 병이 넘는 술병이 들어 있었다. 신기수사가 소홍주를 좋아한다는 얘길 듣고, 미리 준비한 물건이었다.
“아, 제가 이걸 깜박했네요. 이것 드시면서 천천히 얘기해 주세요.”
그러면서 술병을 하나 열었다. 달콤한 향이 퍼지면서 신기수사의 코가 벌렁거렸다.
“킁킁. 흐흠흠. 사부와는 다르게 예의를 아는 놈이구나.”
“감사합니다.”
“한 병만 줘봐. 맛이라도 보게.”
“여기 있습니다.”
봉진태는 이곳에 있으면서 벌써 몇 년째 술을 마시지 못했다. 오랜만에 마시려고 하니 손이 떨릴 지경이었다. 술 한 방울이 입술에 닿자, 온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꿀꺽, 꿀꺽.
그는 한 병을 단숨에 다 비웠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목으로 넘긴 후에 소리쳤다.
“크아아. 그래. 바로 이 맛이지. 내가 이 맛을 어찌 잊고 살았을꼬.”
“제자야. 내 건?”
“여기 있습니다.”
파해천의 몫인 죽엽청도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 자신의 술이 맛있다며 열심히 술을 마셨다. 그러면서 봉진태는 이십 년 전 혈교를 추적할 당시의 일을 이야기했다.
얘기를 다 들은 후에 하운평이 물었다.
“그러니까, 시체를 따라가란 말씀이네요.”
“그렇지. 그놈들은 강해지기 위해서 사람들을 납치하고, 죽인다. 그러니 전국적으로 실종사건이나 살인사건이 급증한 지역을 조사하고 찾아봐. 쉽지 않겠지만, 범위를 줄일 수 있을 거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파해천은 마지막 술병을 다 비우고 봉진태에게 물었다.
“술이 조금 부족한데, 넌 어떠냐?”
“모자라긴 하지.”
“그럼 같이 가자. 우리 무적문으로 가서 한잔 더해.”
“흐흐흐. 정말 권왕이 변했네. 사람을 초대할 줄도 알고.”
하지만 봉진태는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아직은 안 된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안 끝났어.”
“무슨 일을 하는데?”
“비밀이다. 대신, 몇 년 안에 마무리될 것 같으니, 그때 생각해 보마.”
“흥. 잘난 척은…….”
파해천은 그러면서 하운평에게 물었다.
[저 늙은이 생각을 읽었지? 무슨 일을 하고 있냐?] [조금 이상한데, 지진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지진?] [네. 땅이 흔들리는 걸 기록하고, 그것이 고대의 문헌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요.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볼까요?] [아니야. 됐어. 알면 머리만 아프지.]잠시 후, 하운평과 파해천은 그와 헤어지고, 무적문으로 돌아갔다.
* * *
나는 무적문으로 오는 길에 살짝 고민했다.
신기수사에게 들은 내용을 구치웅에게 알려 줘야 할까? 그에게 도움은 되겠지만, 내가 귀찮아질 수도 있었다.
그런데 무적문에 도착하니, 그런 고민이 필요 없어졌다. 구치웅은 혼자서도 잘하고 있었다.
그가 내 앞으로 보낸 서신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이십 년간 실종사건이나 살인사건이 많이 발생한 지역을 조사했고, 몇몇 유력한 장소들을 찾았어. 그곳을 조사하던 중에 혈교의 무리들과 조우했고 혈투가 벌어졌지.
그들은 내 생각보다 훨씬 강하더구나. 아무래도 관에서 감당하기 힘들 것 같아서 무림방파에 도움을 요청했다.
이번에는 소림뿐 아니라 하남성의 여러 문파들에게도 알렸고, 너와 무적문의 사람들에게도 정식으로 요청서가 갔을 것이다.
너에게는 개인적으로 부탁하마. 만약 도와줄 수 있다면 잔성 고을로 답장 바란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아직도 혈교의 무리가 남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규모도 더 커진 것 같았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무적문의 사람들과 의논해 봐야 할 것 같았고, 다음 날 회의 때 안건으로 꺼냈다.
내 설명을 들은 후, 총당주 호병안은 찬성했다.
“혈교의 무리라면 굉장히 위험한 집단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좋은 기회이기도 합니다. 저희 무림원의 결속을 다지고, 실전 경험을 얻을 수 있는 기회이니까요.”
“문파에 대한 인지도도 좋아질 겁니다.”
대체적으로 찬성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파해천은 무거운 표정으로 사람들에게 경고했다.
“내가 혈교와 싸워봤다고 말했었지? 당시에 참여했던 문파 중 반 이상이 죽었다. 절대 그놈들을 우습게 생각해서는 안 돼.”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호병안이 먼저 제안했다.
“그럼 오늘부터 수련을 두 배로 늘리고, 기강을 단속하겠습니다.”
“그래. 좋은 생각이야.”
그리고 조만간 사부님과 내가 잔성 고을에 먼저 가서 구치웅 순검사를 만나는 것으로 정리했다.
그리고 다음 안건은 수련원 쪽의 일이었다.
“수련원의 일손이 많이 부족합니다. 고아들은 둘째 치고, 이제는 갓 태어난 아기를 버리거나, 한밤중에 아기를 문 앞에 두고 가는 경우도 있는데요. 벌써 영아(嬰兒)들만 마흔이 넘었습니다. 이를 받쳐줄 체계가 필요합니다.”
“대책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현재 공동 구역에 사는 어머니들이 유아들의 일을 도와주고 있는데요. 그래서 말인데, 아예 그분들에게 돈을 주고 유아들을 맡기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을에 요청하면 더 많은 어머니들을 확보할 수 있을 겁니다.”
교육에 관한 것도 있었다.
“아무래도 글 선생이 더 필요합니다. 무공 쪽이야 체계별로 정리가 잘 되어 있지만, 글은 나이별로 가르치기 힘들 정도입니다.”
“모집해 보셨나요?”
“네. 그런데, 대충 가르치려는 선생들이 대부분이라서요. 아무래도 학당 쪽에 연락을 해서…….”
회의는 한 시진 정도 진행되었고, 수련원 쪽은 돈을 사용해서 보완하는 방향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회의가 끝난 후에 방대일 총관이 찾아왔다.
“소문주님. 잠깐만 시간을 내어주시겠습니까?”
“그러시죠.”
둘밖에 없는 자리에서 방대일 총관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한 가지 건의 사항이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먼저 이것부터 말씀드려야 할 것 같은데요. 저희가 굴길 통행료나 표국, 그리고 상단 일로 많은 이익을 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중 삼 할 이상이 수련원 쪽으로 들어가고 있는데요.”
“네. 알고 있습니다.”
“물론 좋은 일이고, 처음부터 각오한 일입니다.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상관없으나, 이런 일은 장기적으로 길어지면 사람들의 불만이 쌓일 겁니다. 한쪽은 계속 벌지만, 다른 한쪽은 계속 쓰기만 하니까요. 더구나 우리같이 돈을 버는 곳과 쓰는 곳이 붙어 있으면 더더욱 눈치가 보이는 법입니다.”
“흐음. 일리가 있네요. 혹시 문제가 발생했나요?”
“수련원 측 사범들과 표사들 간의 다툼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제야 총관이 말을 꺼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혹시 생각해 둔 방법이 있으신가요?”
“수련원은 근처에 크게 짓고 있으니 다른 곳으로 옮기기 힘듭니다. 그래서 말인데, 표국과 상단을 다른 곳으로 옮기면 어떨까요?”
“흐음. 그러고 보니 그쪽 규모도 커졌죠?”
“네. 특히 표국은 과거보다 열 배 이상 성장했습니다. 창고와 표사, 쟁자수, 마차까지 합하면 장소가 많이 협소하죠. 그리고 이번에 신은상단을 인수함으로써 오히려 그쪽에 일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니까 표국은 다른 곳에 새롭게 신설하고, 상단은 아예 신은상단 쪽에서 통합 관리를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검토해 보지요.”
하지만 방 총관은 할 말이 더 남은 것 같았다.
“또 있나요?”
“네. 사실…….”
어떤 말인지 방 총관답지 않게 뜸을 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