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an see your herbivorous side RAW novel - Chapter 62
너의 초식이 보여 62화
화산파에서(3)
하운평은 자신 있게 설명했다.
“그녀 앞에 서면 입이 안 떨어진다면서요. 입이라도 떼려면 그 정도 각오는 필요합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저는 아직 검으로 누구와 싸워본 적이 없는데요.”
“그럼, 며칠 전에 약초꾼 아이를 생각해 보죠. 지금 그 아이가 절벽에 매달려 있어요. 구해야겠죠?”
“그렇죠.”
“아이가 떨어지기 직전에 달려갈 때처럼, 저 소저만 바라보는 겁니다. 다른 사람은 신경 쓰지 마시고요. 무조건 한마디만 하세요.”
“뭐라고요?”
“잠깐 시간 좀 내어 달라고요.”
“제, 제가요? 그런 말을 해도 될까요?”
오수는 크게 당황했고, 하운평은 웃으며 반문했다.
“왜 안 되는데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 보고 있으니까요. 부끄럽기도 하고, 소저의 입장에서는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니…….”
“며칠 전에 절벽에 매달린 약초꾼 아이를 볼 때도 그랬나요? 아이가 죽으면 어떡하지? 내가 늦으면 어떡하지? 그런 생각을 하셨어요?”
“아니요. 그럴 시간이 없었죠.”
“지금도 같아요. 지금 저분에게 한 마디의 말을 걸기 위해서는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습니다. 바로 오늘, 그 말을 못 한다면 다시는 못 본다는 각오로, 무조건 말을 하는 겁니다.”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다음에는 요……?”
하운평은 말없이 그를 노려봤고, 오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았습니다. 그것도 생각하지 않을게요. 오직 한마디만, 시간을 내어달라는 한마디만요.”
오수는 계속 중얼거리면서 다짐했다.
하지만 그녀가 다가올수록 가슴이 두근거리고, 역시 머릿속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때 하운평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리에 힘주고, 심호흡을 하세요. 내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죠?]오수는 번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하운평의 말대로 내공까지 동원하여 온몸에 힘을 줬다.
반면 마차를 타고 오던 사람들은 이상한 눈으로 오수 도사를 쳐다봤다. 언제나 다정했고 웃으면서 반겨주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굉장히 무서운 표정으로 서 있었다.
뭔가 심각한 일이 있는 것 같았고, 일행의 책임자인 노화수도 마찬가지였다.
마차가 멈추자, 그녀는 먼저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오수 도사님.”
그러자 오수 도사는 인사도 없이 버럭 소리쳤다.
“시, 시간 좀 내어주십시오.”
“네에? 아. 네.”
노화수는 당황했고, 오수 도사는 몸을 휙 돌려서 경직된 걸음으로 걸어갔다. 그는 창고 뒤쪽의 숲으로 향했다.
노화수는 일행들에게 잠깐 기다려 달라고 말한 뒤, 그를 쫓아갔다.
하운평은 숨어서 그 모습을 지켜봤고 오수 도사에게 전음을 보냈다.
[좋아요. 도사님. 이제 입이 조금 풀렸을 겁니다. 이제부터는 제가 시키는 대로만 말하는 겁니다. 알겠죠?]오수 도사는 전음을 사용 못 했기에 고개만 끄덕였다.
마침 매화가 피어 있는 곳이 있었다. 그곳에서 노화수와 마주 섰다.
그녀의 눈을 바라볼 용기는 없어 고개를 푹 숙였다. 오직 하운평의 목소리만 기다렸다.
“저어, 오수 도사님, 괜찮으세요? 오늘 조금 이상한 것 같은데요.”
그때 하운평의 목소리가 들렸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안 괜찮습니다.]“솔직히 말씀드리면, 안 괜찮습니다.”
오수는 하운평의 말을 그대로 따라 했다. 노화수는 걱정되어 물었다.
“왜요? 무슨 일이신데요?”
“사실, 며칠 전 큰일이 있었습니다. 취화봉 근처를 순찰하던 중에, 약초꾼이 절벽에 매달린 걸 봤거든요. 잘못 떨어져서 절벽 나뭇가지에 걸렸고, 떨어지기 직전이었습니다.”
“어머나, 그래서요?”
오수 도수는 하운평이 왜 이 이야기를 하는지 몰랐다. 그저 시키는 대로 말할 뿐이었다.
“저는 약초꾼을 도와드리려 절벽을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너무 가파르고 높은 곳이라 잘 안 되더군요. 하마터면 정말 큰일 날 뻔했습니다.”
“저런…….”
“다행히 다른 분의 도움을 받아서 저도 살았고, 그분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크게 깨달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오수가 이렇게 말을 많이 한 적은 처음이었다. 노화수는 의아해하면서도 계속 그의 말을 들었다.
“흔히 죽기 직전에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이 떠오른다고 하잖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노화수 소저가 제일 먼저 떠올랐습니다……. 허억.”
오수는 본인이 말해놓고도 깜짝 놀랐다. 무작정 따라 하다가 의미를 나중에 파악한 것이다.
노화수 역시 그 말을 들은 깜짝 놀랐다. 순간 얼굴이 붉어졌다.
“갑자기 무슨 말씀을……?”
“아니, 저어…….”
오수가 우물쭈물하는 순간, 하운평이 크게 소리쳤다.
[정신 차리세요. 다른 생각 말고 내가 시키는 대로 말하시라니까요.]오수 역시 얼굴이 시뻘게져서는 어렵게 말을 꺼냈다.
“그러니까……. 제가 죽기 직전에 생각나는 사람이 제 부모님도, 제 동생도 아니었습니다. 노 소저의 웃는 모습이 제일 먼저 떠올랐고, 그제야 제가 노 소저를 좋아한다는 걸……. 깨, 깨달았습니다.”
오수 도사는 에라 모르겠다. 싶어서 하운평이 시키는 대로 계속 말했다.
“저, 저는 가진 것은 없지만, 따뜻한 마음과 착한 인성을 가졌습니다. 무공은 세지 않지만, 화산파 도사로서 오랫동안 일할 수 있고요. 돈은 별로 없지만, 돈 많은 친구는 있습니다.”
말을 하다 보니, 본인도 어이가 없었다. 그런데 가만히 듣던 노화수도 가만히 듣다가 살짝 웃었다.
“푸웃.”
오수 도사는 힘을 내어 계속 말했다.
“제가 도사지만, 감히 앞날을 점칠 순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게 약속드리겠습니다. 저는 노 소조를 몇 년 전부터 좋아했었고, 앞으로 계속 좋아할 것입니다. 저와 혼인해 주십시오!”
‘아아악. 방금 내가 무슨 말을!!’
말을 뱉고 나서야 오수 도사는 너무 놀라서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노화수 역시 생각지도 못한 말에 놀라서 멍하니 바라봤다. 그리고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하.”
그녀가 너무 크게 웃는 바람에 오수 도사는 물론 지켜보던 하운평도 살짝 당황했다.
노화수는 계속 웃더니, 오수 도사에게 말했다.
“이런 식으로 혼인하자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정식으로 매파를 보내야죠?”
“아아, 그러니까……?”
“아, 물론 혼인을 허락하는 건 아니에요. 오해 마세요.”
“아, 네넵.”
오수는 조금 실망한 얼굴이었고, 노화수는 여전히 미소를 띠며 말했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것이 생각나네요. 사 년 전인가? 처음 오수 소협을 봤을 때 말씀하셨어요. 저런 사람과 거래를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마음이 똑바르고, 솔직하고 따뜻한 사람이라고 칭찬하셨어요.”
“가, 감사합니다.”
“비록 화산파 무인으로서는 자격 미달이지만요.”
오수 도사는 조금 부끄러웠다.
“그런데 저는 솔직히 무인을 싫어하거든요. 도사님 쪽이 훨씬 좋아요.”
오수 도사의 얼굴이 화악 빨개졌다. 너무 붉어서 마치 피를 흘리는 것 같았다.
노화수도 부끄러운지 자리를 먼저 피했다. 하지만 오수 도사는 한동안 멍하니 서서 움직이지 못했다. 하운평은 그 모습을 보다가 웃으면서 떠났다.
* * *
그리고 백 일이 지났다.
“하앗. 봉황비상.”
하운평은 단검 다섯 자루를 동시에 던졌다. 그것들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날아갔지만, 목표점에는 동시에 박혔다.
파파팟.
또 하나의 단검을 던졌다.
“비봉일식.”
쉬이익.
일직선으로 빛살 같은 속도로 날아갔다. 중간에 손가락을 살짝 비틀었고, 놀랍게도 날아가는 도중에 방향을 틀었다.
파팟.
위에서 아래로 꺾어지면서 꽂혔다. 마치 전설의 이기어검과 비슷했다.
“파천붕비.”
이번에 던지는 단검은 속도는 평범했지만, 무게가 남달랐다.
묵직하게 날아가더니, 커다란 느티나무 하나를 완전히 부러뜨렸다. 그리고 그 뒤에 있는 목표점에 정확히 박혔다.
조그만 단검이 만들어낸 파괴력치고는 굉장했고, 무엇보다 이 비도술은 내력의 손실이 거의 없어 마음껏 날릴 수 있었다.
“놀랍구나.”
검성은 방금 전의 모습을 보더니, 크게 감탄했다.
‘초식은 정말 완벽하구나. 딱 내가 원하는 대로야.’
“아직 내공의 운용이 부족하지만, 초식은 완벽하다. 계속 이대로만 수련하자.”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검성 님. 오늘 잠깐만 산을 내려가도 될까요?”
“왜?”
“아는 사람이 오늘 혼인한다고 초청을 했거든요.”
“허허. 네가 한 번씩 만나는 그 친구 말이냐?”
“네. 오늘 국수 먹으러 가야 해서……. 혹시 같이 가시겠습니까?”
“허허. 나도 가고 싶지만, 오늘은 선약이 있구나.”
하운평은 허락을 받은 후, 곧바로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취하봉을 내려갔다.
오수 도사와 노화수는 그날 이후로 자주 만났다고 했다. 그러더니 백 일 만에 정말 혼인까지 결정했다.
오수 도사는 꼭 와달라고 신신당부했고, 나 역시 그냥 지나칠 생각은 없었다. 돈 많은 친구로서 시원하게 돈을 쓸 생각이었다.
사실 화산파에 식자재를 납품할 정도면 굉장히 큰 상단에 속했다. 혼인식에 온 손님들도 격이 높았고, 선물들도 비싼 것들이 많았다. 상대적으로 오수 도사의 하객들이 그 수나 규모 면에서 부족했다.
물론 노화수나 그쪽 집안에서는 신경 쓰지 않았지만, 오수 가족들이 신경이 쓰였다. 이러다가 데릴사위로 들어가는 건 아닌지, 그런 걱정까지 했다.
그때 하운평이 도착했다.
“기분이 어떠세요?”
“떨립니다. 이게 정말 꿈인가 생시인가 싶어요.”
“하하하.”
“정말 고맙습니다. 모두 하 공자님 덕분입니다.”
하운평은 고개를 저었다.
“전부 도사님이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그날 제가 아무리 미사여구를 써서 좋게 포장해도, 평소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더라면 차였을 테니까요.”
“하지만……. 반대로 제가 어떤 좋은 모습을 보였어도, 그때 공자님이 도와주지 않다면 이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뭐, 그럼 우리 둘이 합심해서 성공했다. 그렇게 하시죠.”
“좋습니다. 하하.”
두 사람은 담소를 나누었고, 그런 중에 하운평이 중얼거렸다.
“흐음. 이제 올 때가 되었는데.”
오수 도사는 의문을 표했고, 때마침 밖이 시끄러워졌다.
수십 마리의 소와 말들이 집 앞에 도착한 것이다. 소 한 마리는 작은 집 한 채 값이었고, 소와 말은 상단에서도 제일 아끼는 것들이었다.
“허어. 누군지 모르지만 큰돈을 썼네. 누가 보낸 거야?”
“여기 새신랑의 친구가 보냈다는데.”
“부자 친구가 있나 보네. 든든하겠어.”
“그나저나 이제야 두 사람의 격이 맞는 것 같네. 솔직히 신부 쪽이 아까웠으니까.”
“그건 그렇지.”
오수 도사의 가족들도 모두 만족했다. 오수 도사는 너무 고마워서 하운평을 찾았다. 하지만 하운평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착한 사람을 도와주고, 그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까 무척 기분이 좋았다.
하운평은 남을 도와주면서 얻는 행복을, 조금씩 알아갔다.
* * *
나는 다시 취화봉으로 올라갔다.
멀리서 두 사람이 혼인하는 모습까지 봤기 때문에 시간이 꽤 흘렀다.
해가 지고 있었고, 나는 기분이 좋아 흥얼거렸다. 어느덧 산의 중턱까지 올라갔을 때였다.
양쪽으로 높은 절벽이 있어 길이 하나밖에 없는 곳이었다. 맞은편에서 한 사람이 내려왔다.
코와 입을 가린 반쪽짜리 복면을 쓰고, 검은색 무복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등 뒤에는 단창 두 개를 매고 있는데, 한 발자국 뗄 때마다 삼 장씩 쭉쭉 늘어진다.
놀라운 경공이었고, 누구지 궁금해졌다. 나는 자연스레 그의 마음속을 들여다보았다.
어, 이게 뭐지?
나는 너무 놀라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안 보였다.
그의 생각이나 마음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마치 안개 속에 있는 것처럼 흐릿했고, 아무것도 보이지 들리지 않았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내가 가만히 쳐다보자, 그도 이상함을 느꼈는지 나를 바라보았다.
눈과 눈이 마주쳤다.
날카로운 눈빛 안에 거만함이 느껴진다. 평생 다른 사람을 다스리고 아래로 내려 본 여유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만인지상의 위엄과 기세도 있었다.
갑자기 그런 것이 커지면서 내 몸을 짓눌렀다.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위축되었다.
또 그의 생각을 읽지 못한다는 점도 불안했다. 항상 상대의 생각을 읽을 수 있어서 우위에 있었는데…….
동시에 오기도 생겼다.
치잇. 내가 어느새 그런 것에 길들여져 있었던가?
뿌드득.
나는 이를 악물고 다리에 힘을 주었다. 동시에 일양신공을 일으켰다. 온몸에 따뜻한 기운이 번지면서 한결 나아졌다. 나는 가슴을 펴고 고개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