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an see your herbivorous side RAW novel - Chapter 75
너의 초식이 보여 75화
비무대회(4)
하운평은 준비를 하고, 가까이 다가갔다.
* * *
나는 관장 안으로 들어가서 지나가는 사람들이나 경비무사들의 마음을 읽었다. 그들은 ‘혈교’라는 걸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저 이장의가 고용했고, 지키라니까 지킬 뿐이다.
이들은 죄가 없었다.
그들은 무시하고 이장의를 찾았다. 다행히 그는 지금 집 안에 있었고, 서재에서 책을 읽고 있다고 했다.
경비무사의 수가 많았지만, 동창에 비해서는 수준이 낮았다. 비잔신투의 경공으로 손쉽게 안으로 들어갔다.
이장의의 서재를 찾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사람이 없었다. 등불만 켜져 있고, 책상 위에는 책까지 펼쳐져 있지만, 정작 이장의가 없었다.
나는 이곳에서 기다릴지, 아니면 이장의의 방으로 가 볼지 잠깐 고민했다.
슬렁.
그때 책상 위에 있는 촛불이 아주 살짝 흔들거렸다.
나는 움직이지 않았고, 창문과 방문은 닫힌 상태였다. 그런데 왜 움직일까? 촛불 가까이 다가가서 유심히 다가갔다.
지금은 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까 촛불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였더라?
그걸 생각하자, 책장에서 바람이 분 것 같았다. 서재로 다가가서 자세히 살폈고, 잔념이 있는지도 살폈다.
잔념은 없었지만, 책장 속의 책 두 권이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먼지가 너무 적었다.
책을 만지다가 앞으로 잡아당겼다.
끼이익.
책장이 앞으로 기울어지더니, 살짝 벌어졌다. 그 뒤쪽으로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다.
삼 장마다 횃불이 달려 있어서 밝은 편이었지만, 음습하고 기분이 나빴다. 아마 평소라면 내려가기 찜찜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번에는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혈교 놈들을 상대하면서 몇 번이나 봤던 그 토끼굴과 비슷했다. 심지어 입구의 모습과 형태, 횃불의 모양이나 벽에 달린 모습은 완전히 같았다. 같은 놈이 입구를 만든 걸까?
아무튼 이곳이 혈교와 관련된 곳이라는 단서였다. 하지만 아직 결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강시가 나오든, 혈교 특유의 잔인하게 살해된 시신이 나와야 한다.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한 후, 진천소뢰와 허리춤에 있는 단검들을 확인했다. 그리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책장 뒤의 통로로 들어갔다.
끼릭.
들어간 후에 옆의 밧줄을 당기자 책장은 다시 닫혔다.
바닥을 유심히 살폈다. 발자국이 많이 있는데, 대부분 동일한 형태의 발자국이었다. 한 사람이 오랫동안 왕복한 것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도 이장의겠지?
그걸 생각하면서 계단을 내려갔다.
통로는 상당히 길었다. 밑으로 가다가 앞으로 이어졌는데, 거의 백오십 장은 걸은 것 같았다. 처음엔 잔뜩 긴장했다가 이제 지겹다고 느낄 때쯤 갈림길이 나왔다.
발자국은 양쪽으로 비슷하게 있었고, 잔념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잠깐 생각한 후에 왼쪽으로 향했다.
이유는 없었다. 어딜 가나 비슷하다고 생각했고, 여기는 운의 영역이었다.
다행히 내가 운이 나쁜 편은 아닌 모양이다.
잠시 후, 통로의 끝에 도착했는데 작은 철문이 보였다. 살짝 열었는데, 철문 밖은 조용했고, 아무도 없었다.
좋아.
나는 안으로 들어갔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불빛 하나 없이 어두컴컴했는데,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자 가까운 곳은 구별되었다.
내가 나온 곳이 돌로 만든 거대한 태사의(太师椅) 뒤쪽이었다. 태사의가 어찌나 큰지 높이는 오 장이 넘었고, 남자 열 명이 앉아도 될 만큼 크고 넓은 의자였다.
그리고 이곳은 뛰어도 될 만큼 넓은 단상이었고, 단상 아래쪽으로는 광장이 펼쳐진 것 같았다. 너무 어두운 데다 희미한 안개 비슷한 연기가 깔려 있어 광장 쪽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상당히 넓은 곳 같은데, 통풍이 잘 안 되는지 쾨쾨한 냄새가 났다.
이상할 정도로 기분 나쁜 곳이야.
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단상을 둘러봤다. 우익편 동굴에서 봤던 제단이 보이고, 그때와 비슷한 시체와 부적들도 있었다.
다른 특별한 건 발견할 수 없었고, 이제는 단상 아래로 내려갔다. 연기 때문에 멀리는 볼 수 없었지만, 바로 앞에 있는 돌 같은 건 볼 수 있었다.
마치 사람과 비슷하게 생긴 크기의 돌들이 꽤 많이…….
허억.
깜짝 놀랐다. 이건 돌이 아니었다. 강시였다.
보이지 않았고, 숨소리조차 느낄 수 없어 바위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그 강시의 수가……. 할 말을 잃었다. 이 넓은 곳에 강시들이 꽉 차 있었다.
강시의 수를 파악하기 위해 옆으로 끝까지 가 보고, 뒤쪽으로도 끝까지 걸어갔다.
지난번에 발견한 이백 구는 애들 장난이었다. 여기 공동에 가득 메운 강시의 수는 어림잡아 일만여 구가 넘었다.
이 정도면 정말 무림 정복도 가능한 숫자였다.
나는 두려웠다. 그리고 살짝 흥분했다.
그래. 혈교의 단주. 이 정도는 되어야 이십 년 동안 노력했다 할 수 있겠지.
아직 그를 보지 못했지만, 호승심이 타올랐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의구심이 생겼다.
아니야. 아직은 부족해.
사부님 같은 화경의 고수들을 상대하려면 단순히 숫자가 많다고 이길 수는 없다. 분명 뭔가 더 있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까지 찾아볼까? 아니야. 그전에 이 강시들을 없앨 수 있는 방법부터 찾아야지.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진다.
휴우.
나는 심호흡을 크게 했다.
진정해라 하운평. 아직 끝난 게 아니야. 이제부터 시작이야.
흥분을 가라앉혔다.
사실 그동안 모두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혈교는 이제 사라졌다고 생각했고, 나에게 집착이라 말했다. 하지만 그들이 틀렸다.
혈교의 당주는 아직 남아 있었고, 이렇게 거대한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내가 맞았다는 사실에 나도 모르게 흥분한 것이다.
나는 심호흡을 하면서 진정했고, 곰곰이 생각했다.
어차피 지금 내가 가진 진천소뢰로는 이 강시들을 없앨 수 없었다. 아직 내가 들킨 것이 아니니, 이대로 물러나서 사람들을 데려오는 것이 맞았다.
마침 비무대회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사부님을 중심으로 습격한다면 승산이 있다.
혼자 영웅이 될 것이 아니라면, 그것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었다. 그리고 나는 영웅 같은 것에는 관심 없었다.
휘이익.
나는 이곳으로 나왔던 곳으로 돌아갔다. 태사의 뒤쪽의 철문까지 단숨에 갔고 문의 손잡이를 잡으려는 순간이었다.
내가 잡기도 전에 문이 슬쩍 열리는 걸 봤다.
그 순간, 내 머리는 빠르게 돌아갔고, 누군가 안에서 밖으로 나온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깜짝 놀라 위로 솟구쳤다.
오 장 높이의 태사의 위로 올라갔고, 몸을 숨겼다.
덜컥.
과연 문이 열리면서 누군가 밖으로 나왔다.
나는 너무 놀라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몸을 바싹 숙이고, 누가 나왔는지 살폈다.
두 사람이 밖으로 나왔는데, 먼저 문으로 들어온 사람은 남자였다. 머리를 짧게 깎았고, 체구는 작고 단단한 느낌을 주었다. 그는 굉장히 자신감 있는 발걸음으로 천천히 걸었다.
저 남자가 이장의다.
경비 무사의 마음을 읽고 얻은 인상착의와 동일했다. 그리고 그의 마음을 읽었고, 또 한 가지를 알 수 있었다.
저 남자가 바로 혈교의 당주였다.
이 모든 일의 원흉이자, 내가 그토록 찾고 싶었던 인물이었다.
드디어 찾았다.
나는 그를 한참이나 보았고, 나중에 뒤에 따라오는 이도 보았다.
여자였다. 키가 크고 머리카락을 풀어헤쳤는데, 노란 법복을 입고 있었다.
이장의가 앞장서면서 그녀에게 물었다.
“혈천강시의 진행 상태는?”
“총 여섯 구의 혈천강시 중 다섯 구는 삼 단계까지 완성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한 구도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삼 일 후에는 모두 완성될 것 같습니다.”
“좋아. 그럼 삼 일 뒤에는 무적문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줄 수 있겠군.”
“네.”
“흥. 권왕 놈. 그때까지 충분히 즐겨라. 삼 일 후에는 무적문을 주춧돌도 남기지 않고 모두 없애줄 테니까. 사 개월 전의 빚을 갚겠다.”
그는 이를 갈면서 중얼거렸다. 그런데 법복을 입은 여자, 매종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이장의가 물었다.
“표정이 왜 그러지? 문제라도 있나?”
“아닙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익편의 혈라명법이 아까워서요. 그만 살아 있었다면, 혈천강시의 완성형인 혈령강시를 만들 수 있었고, 이렇게 육 개월이나 걸릴 필요도 없었는데요. 그리고 권왕 따위도 예전에 벌써 치워 버렸을 겁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끝난 이야기를 또 하면 뭐하나? 그것보다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야지.”
“넵.”
그는 앞으로 걷다가 힐끔 매종려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자네가 있어 다행이야. 덕분에 혈천강시를 이렇게라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과찬의 말씀입니다.”
매종려는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
나는 한눈에 저 둘이 이번 일의 핵심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무공의 수준이 높지 않았다.
이장의는 일류고수였고, 매종려는 이류를 벗어나지 못했다. 매종려는 모산파의 도사 출신이었고, 이장의는 일부러 혈교의 무공을 익히지 않은 것 같았다.
하긴 관장을 운영하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데, 혈기를 보이면 안 되니까. 게다가 혈교는 종교단체라서 꼭 무공이 중요한 건 아닌 것 같았다.
어쨌든 저 둘을 여기서 죽여야겠다.
이런 적은 별로 없지만, 사람을 만나자마자 살심이 생겼다. 이 둘을 죽임으로 수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수많은 목숨을 살릴 수도 있었다.
게다가 저 둘은 온갖 악행을 저지른 혈교의 수뇌부였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나는 조용히 단검을 뽑아 저들의 목 뒤를 노렸다.
“당주님!!”
그때 한 사람의 목소리가 내 뒤에서 들렸다.
게다가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고, 경공의 솜씨로 보아, 최소 절정고수였다.
이장의와 매종려는 뒤로 몸을 돌려 내 쪽을 보고 있었고, 이미 몰래 죽일 기회를 놓친 셈이다.
젠장. 운이 좋은 놈이야.
나는 급히 태사의에서 내려와 옆으로 숨었다.
키가 칠 척은 넘는 남자가 달려와서 이장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당주님께 보고드릴 일이 있습니다.”
“말해.”
“장원의 주변을 염탐하던 무림인이 두 명이 있었습니다. 십오 세 가량의 소년들인데, 조금 이상해서 일단 붙잡아뒀습니다.”
십오 세 가량의 소년들?
나는 깜짝 놀랐다.
그 남자 마음속을 읽으니, 막사평과 노성진이었다. 그들이 이들에게 잡힌 것 같았다.
끄응. 그들이 여기에 왜 왔지? 어떻게 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