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an see your herbivorous side RAW novel - Chapter 79
너의 초식이 보여 79화
강시대전(4)
앞으로의 한 걸음, 한 걸음은 목숨이 오갈 정도로 중요했다.
변수가 생기면 곤란하기에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면서 물었다.
“누구냐? 누가 내게 말을 거는 거지?”
‘어머, 뭐야? 내 목소리 들리는 거야?’
“그래. 들린다.”
‘까르르르. 이십칠 일 만에 드디어 들리는구나. 너무너무 반갑다.’
“…….”
‘그런데 운평. 나 되게 섭섭하다. 벌써 내 목소리 잊어버렸어?’
“설마, 청아??
‘까르르르. 맞아. 내가 바로 청아야. 기억하고 있었구나.’
청아.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
환상기국에서 만난 푸른색 고양이.
그때 큰 도움을 받았었고, 환상기국에서 돌아온 날에도 비슷한 고양이를 봤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사라졌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 세상으로 나오게 된 거야?”
‘나도 몰라. 너를 따라가다가 늙은 스님이 술법을 사용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인간 세상이더라. 그런데……. 나 안 반가워?’
풀이 죽은 목소리였다. 실망하는 기색이 느껴졌고, 그제야 내가 잘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과정이 어찌 되던 내가 어려울 때 나를 도와준 고양이다. 지금은 입장이 바뀌어 청아가 혈혈단신 인간 세상으로 왔는데, 이런 식으로 대하면 안 되었다.
나는 말투를 바꾸었다.
“하하. 무슨 소리야? 당연히 반갑지. 단지 너무 놀라서 그랬어. 우리 정식으로 인사하자. 청아. 오랜만이야. 다시 만나서 정말 반가워.”
‘그렇지? 나 반가운 거지?’
“그렇다니까. 사실 보고 싶었어.”
‘까르르. 다행이야. 혹시 싫어하면 어떡하나 걱정했거든. 나도 사실 보고 싶었어. 그런데 네 옆에서 계속 말을 걸어도 네가 못 알아듣는 거야. 그래서 반쯤 포기하고 있었는데.’
“혹시, 며칠 전 내 방에 나타났던 푸른색 고양이도 너였어?”
‘맞아. 이 세상에 내 실체가 없으니까, 죽은 고양이 몸속에 잠시 들어갔었거든. 그런데 사체가 썩으니까 냄새가 나고 별로더라.’
청아는 그동안 답답했는지, 말을 폭포수같이 쏟아냈다. 하운평은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다시 움직였다.
대부분 흘려듣다가 중요한 부분에서 귀를 기울였다. 마침 그에게 꼭 정보가 있었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지하 이 층의 사 구역 끝에 도착했다.
* * *
사 구역은 아무나 들어갈 수 없었다.
오직 당주 이장의와 대주 합종인와 매종려 그리고 혈주대 중에서도 조장급만 출입이 가능했다. 그 외에는 출입을 강하게 통제했다.
지금도 다른 곳에서는 난리가 났지만 이곳만은 평온했다. 이장의의 명령으로 혈천강시 세 구만 밖으로 보낸 뒤, 문을 걸어 잠갔기 때문이다.
삼 장이 넘는 철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이것이 유일한 출입구였다. 그리고 그 앞을 혈안대의 조장급 여섯 명이 지키고 있었다.
아무리 하운평이 경공이 뛰어나지만, 이런 상황에서 몰래 들어가는 건 힘들었다.
‘역시 강공으로 가야 하나?’
‘내가 도와줄까?’
그때 청아가 나섰다.
‘좋은 방법이 있어?’
‘기다려 봐.’
청아의 목소리가 들린 지 반 각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갑자기 철문 안에서 ‘우당탕’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철문이 열리면서 노란 법복을 입은 혈법사들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뛰쳐나왔다.
문밖에 있던 혈안대 무사 중 한 명이 물었다.
“뭐야. 왜 그래?”
“시, 시체가 살아났어.”
“무슨 헛소리야?”
다른 혈안대원들은 혈법사들을 비웃었다.
“야. 신경 꺼. 저 새끼들 또 단체로 아편을 마셨을 거야.”
“멍청한 새끼들아. 시체 끼고 산 지가 몇 년째인데 아직도 놀라고 그러냐? 보나 마나 죽은 놈들 근육이 이완되어서 움직였겠지.”
그러자 혈법사들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
“병신들아. 우리가 그걸 모를 것 같아? 네놈들 말대로 온종일 시체만 만지고 사는데? 그런데 이번엔 다르다니까. 오늘 아침에 죽였던 시체가 벌떡 일어나서는 눈 뜨고, 말까지 했어.”
“그, 그것도 아직 주술 처리도 하지 않은 시체였어.”
그들이 길길이 날뛰니까, 혈안대 조장들도 이상함을 느꼈다. 게다가 이곳에 있는 혈천강시는 이장의가 가장 아끼는 물건이었다. 만에 하나 문제라도 생긴다면, 목숨을 내놔야 한다.
혈안대 조장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검을 뽑았다. 그리고 잔뜩 긴장한 채 문 안으로 들어갔다.
저벅. 저벅.
여섯 명 모두 들어갔고, 천천히 안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물건은 제자리에 있었고, 시체들은 얌전히 누워 있었다. 심지어 지하 삼 층의 감옥까지 갔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평소와 같았다.
지하 사 층도 있지만, 지금 연구 중이라 함부로 들어갈 수도, 나올 수도 없었다.
“그럼 그렇지.”
“겁쟁이 법사 놈들.”
“단체로 아편을 한 게 틀림없다니까.”
혈안대 무인들은 실컷 욕하면서 돌아섰다.
다시 철문이 닫혔고, 혈법사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안쪽을 둘러보았다. 조금 전 움직였던 시체가 그대로 누워 있었다.
“이상하네.”
“야. 미의단을 확인해 봐. 혹시 그것이 새어 나와서 우리가 단체를 흡수했을 수도…….”
퍼억. 퍼퍽.
그때 뒤쪽에서 누군가 나타나서 그들을 쓰러뜨렸다. 조금 전 소란이 벌어졌을 때 들어온 하운평이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고, 표정이 어두워졌다.
청아는 이상한 듯 물었다.
‘이놈들은 먹지도 않을 거면서 왜 인간들을 조각조각 해체해 놨지?’
그녀의 말대로 여기저기 사람들의 시신들이 걸려 있었다.
이들은 혈천강시를 제조하면서, 강시에 대해서도 연구했다. 사람과 비슷한 강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람의 구조를 알아야 한다는 핑계로 인간을 분해했다.
강시의 관절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 사람의 어깨와 발목, 팔목, 손가락 등을 잘라내고, 피부를 강화하기 위해서, 살아 있는 사람의 피부를 불에 태우고, 일부러 칼로 상처를 냈다.
또 주기적으로 피를 뽑아내기 위해 살아 있는 사람을 묶어놓고, 동물처럼 사육했다.
하운평은 이곳에 있는 혈법사들을 통해 혈천강시의 제조법도 알아보았다. 이건 더 지독했다.
혈천강시는 심장이 펄떡펄떡 뛰는 사람을 강시로 만들었다. 멀쩡히 숨을 쉬고 있는데 피를 뽑아내고, 피 대신 강화 용액을 혈관 속에 주입헸다.
그 과정에 끔찍한 고통이 동반되었고, 하루에도 수십 번 비명을 지르다 기절했다. 결국에는 버티지 못하고 죽는 사람만 부지기수였다.
성공 확률은 만 명당 한 명꼴이라 하니 벌써 수만 명이 죽은 셈이었다. 그리고 이십 년간 꾸준히 혈천강시를 만들었지만, 성공한 경우는 다섯 구밖에 없었다.
지금도 제조와 실험은 진행되고 있었다. 지하 삼 층 감옥에는 언제든 실험할 수 있게 수십 명을 가두어 놓았고, 제일 최악인 점은 여러 분야의 자료를 모은다고 어린아이를 포함하여 여자, 노인을 가리지 않고 납치하고 고문했다는 점이다.
열 살도 되지 않는 아이의 시체를 보면서 청아도 투덜거렸다.
‘악령도 이런 짓은 하지 않을 거야.’
하운평은 다시 한번 이곳을 없애 버리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먼저 혈법사들을 한 명씩 깨워서 인형으로 만들었다. 아쉽게도 두 구밖에 없지만, 혈천강시를 깨워서 기다리라고 명령하고, 지하 삼 층으로 내려갔다.
역시 감옥에 갇힌 사람들은 그대로 두었다. 지금 풀어주면 오히려 강시들의 싸움에 말려들 것이다.
그리고 지하 사 층으로 내려갔다. 그곳에서는 혈법사들이 마지막 혈천강시를 완성하기 위해 노력 중이었다.
‘어머 예쁘다.’
청아의 목소리가 뜬금없이 들렸다.
자세히 보니,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었다. 강시로 짐작되는 여자가 재단 위에 누워 있었는데, 그 미모가 대단했다.
그린 듯한 짙은 눈썹에 갸름한 턱, 눈처럼 하얀 얼굴과 거의 전라나 다름없는 몸매는 군살 하나 없었다.
하지만 하운평은 그녀보다 다른 여자를 눈여겨봤다. 이장의 오른팔인 혈주대주 매종려였다. 그녀도 이곳에 있었다.
그녀는 무작정 인형으로 만들면 안 된다. 그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난 저 여자가 마음에 들어. 저 여자로 하자.’
청아의 목소리가 들렸고, 하운평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단계를 위해서 저들을 덮쳤다.
* * *
이장의는 이상함을 느꼈다.
분명 침입자가 있었다. 합종인을 죽이고, 혈주대 법사들을 이용해서 강시를 움직였다.
그런데 갑자기 사라져 버린 것이다.
아무리 경공이 뛰어난 놈이더라도 이곳은 지하동굴이었고, 지리적 한계가 있었다.
이렇게까지 사라질 순 없었다. 혹시 밖으로 도망쳐 버린 걸까?
‘그건 아닐 거야. 출입구를 철저히 막았고, 충분히 도망칠 수 있었는데, 합종인까지 죽였다. 그놈은 분명 노리는 게 있어.’
이장의는 그게 뭔지 고민하다가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만약 자신이 그의 입장이면 어떻게 할까?
이 많은 강시들을 혼자서 상대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강시들을 이용할 수 있는 혈법사를 조종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그럼…….
이장의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혈천강시!’
진즉에 생각했어야 했는데. 합종인의 죽음에 대한 분노가 그의 이성을 흐려놓았다.
이장의는 서둘러 혈안대와 강시들을 데리고 사 구역으로 달려갔다.
문밖의 무사들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아무 일도 없다고 하지만, 이장의는 그 말을 무시했다. 철문을 열라고 지시했고, 무사들을 들여보냈다.
이장의는 긴장된 얼굴로 반응을 기다렸다.
합종인도 그렇지만, 매종려도 중요한 인물이었다.
혈천강시는 만들기 어렵지만, 만들 수는 있었다. 하지만 매종려가 없으면, 어떤 강시도 만들 수 없었다. 그에게도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제발, 무사해야 할 텐데…….’
“여기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지하 삼 층, 아니, 사 층까지 내려가 봐!”
“네.”
그런데 그 직후였다.
콰아앙.
지하 삼 층으로 내려가는 커다란 철문이 종잇장처럼 찢겨졌다. 동시에 혈천강시 둘이 튀어나왔다.
“으아악.”
“피해!”
하지만 혈천강시의 움직임은 대단했다.
어떤 절정고수보다 빨랐고, 혈안대 무사를 살짝 치기만 해도 머리가 부서졌다. 마치 가만히 서 있는 나무토막을 쓰러뜨리는 것처럼 쉬워 보였다.
보통 강시들도 상대가 되지 않는다. 한 번 칠 때마다 움푹 파이거나 뜯겨져 나갔다. 게다가 혈천강시들은 관절이 부드러웠다. 팔이 비상식적으로 꺾이면서 뒤로 때렸고, 허리도 거의 한 바퀴나 돌아갔다.
순식간에 사 구역 안에 들어갔던 무인들이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다.
그러자 이장의가 소리쳤다.
“이것들아. 우리도 혈천강시가 있잖아. 빨리 투입시켜!”
쿠웅. 쿵.
콰앙.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혈천강시 세 구가 안으로 들어갔다. 이젠 혈천강시와 혈천강시들이 싸우기 시작했다.
콰콰콰쾅. 콰쾅 쾅.
쿠우웅. 쿵.
우직.
밖에서 보기만 하는데도 무척 살벌했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른 데다, 서로 방어는 하지 않고 때리기만 했다. 한 번 때릴 때마다 귀가 아플 정도로 큰소리가 울렸고, 부딪칠 때마다 벽에 금이 생기고, 무너져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몸에는 어떤 상처도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동굴이 먼저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혈안대는 감히 끼어들 엄두도 못 내고, 밖에서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장의가 답답해서 소리쳤다.
“멍청한 놈들아. 혈천강시는 그냥 두고, 그걸 조정하는 혈법사 놈들을 잡아야지. 어서 내려가서 찾아!”
“조, 존명.”
끄응. 합종인이 있었다면 알아서 했을 텐데.
이장의는 그의 빈자리를 다시 한번 느꼈다.
수하들은 벽을 타고 조심스럽게 지하 삼 층으로 내려가는 문으로 다가갔다.
으아아악.
퍼억.
크악.
하지만 금방 비명 소리가 들리면서 그들은 즉사했다.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에 또 한 명의 혈천강시가 서 있었다.
이번에는 이장의도 놀라서 중얼거렸다.
“혈천강시가 어떻게 하나 더 있는 거지?”
그가 알기로 완성된 혈천 강시는 총 다섯이었다. 그때 혈법사 한 명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저건 혈천강시가 아닙니다.”
이장의는 그에게 물었다.
“무슨 뜻이냐? 아니라니.”
“외모는 비슷해 보이지만, 눈의 색깔이 다릅니다. 혈천강시는 붉은색이거든요. 그런데 저건 검은색이고, 움직임도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
“혈령강시구나.”
“맞습니다. 그런 것으로 짐작됩니다.”
이장의는 더욱 의문에 빠졌다. 혈천강시가 하나 더 있는 것도 이상한데, 그렇게 갖고 싶었던 혈령강시가 갑자기 나타났다.
‘왜 하필이면, 이 순간에?’
혈법사가 계속 설명했다.
“예쁜 외모로 보면, 최근에 혈천강시로 만들고 있던 강시가 분명합니다. 사실 육체는 완성되었는데, 심령의 연결이 안 되어 있었거든요. 오늘 대법을 시행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혈령강시가 된 거냐?”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빌어먹을. 이상한 침입자 새끼가 나타난 이후로 계속 이상한 현상들이……. 잠깐만.”
그때 이장의는 한 가지 가설을 떠올렸다.
아까부터 침입자가 혈법사들을 조종하는 것이 이상했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자신도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을 알고 있었다. 바로 우익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