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an see your herbivorous side RAW novel - Chapter 80
너의 초식이 보여 80화
강시대전(5)
우익편도 환영술로 사람들을 마음대로 조종했었고, 그가 익혔던 혈라명법이라면 혈령강시를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만약 침입자가 우익편의 환영술과 ‘혈라명법’을 익혔다면, 지금 상황이 모두 설명되었다.
그는 크게 소리쳤다.
“침입자를 찾아. 그리고 꼭 붙잡아야 한다. 손발을 끊어내더라도 무조건 살아 있는 채로 내 앞으로 데려와야 해.”
“하지만 당주님. 혈령강시가 너무 강해서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끄응. 다른 통로는?”
“없습니다.”
아무리 강시를 보내도, 어떤 혈안대 무인들이 가더라도 한 발자국도 들어갈 수 없었다. 입구를 틀어막은 혈령강시는 가히 만인지적(萬人之敵)이었다.
‘그래. 만약 혈령강시에게 시간이 있고, 장소만 충분하다면 만 명이 아니라 그 이상도 싸울 수 있겠지. 혈령강시의 체력은 무한했고, 지치지 않으니까.’
그리고 혈천강시와 비교해도 차이가 있었다. 피부의 강도와 체력은 비슷해도, 반응이 달랐다.
혈령강시는 혼령이 들어가서 직접 움직였고, 혈천강시는 혈법사가 의식을 공유하면서 대신 움직였다. 주먹을 뻗더라도 건너서 전달하는 혈천강시가 조금 늦었다.
아주 작은 차이지만, 그것 때문에 혈천강시는 계속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계속 얻어맞다 보면 언젠가는 혈천강시도 부서지기 마련이다.
혈법사들은 그렇게 분석했었고, 지금 눈앞에 같은 결과가 나타나고 있었다.
이장의는 혈천강시 하나를 혈령강시로 보냈지만, 제대로 된 공격 한 번을 못했다. 무참히 얻어터지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는 그는 다양한 방법을 강구했다.
일반 강시들을 이용해서 출입문을 넓혀 보기도 하고, 일반 강시들을 숫자로 밀어 넣거나, 해왕일까지 보내어 혈령강시를 상대하려 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무산되었다. 정말 그 옛날 장판교에서 홀로 맞서던 장비를 보는 것처럼 도저히 들어갈 수 없었다.
결국 이장의는 아예 작전을 바꾸었다.
“땅을 뚫어라. 지하 삼 층으로 내려가는 길을 새로 파는 게 빠르겠어.”
그때부터 일반 강시들이 힘을 합해 땅을 파기 시작했다.
푸욱. 푹. 푹.
단단한 땅이 두부처럼 으스러졌다. 생각보다 쉽게 파내어 반 각도 안 되어 구멍 하나를 뚫었다. 그리고 그곳으로 강시들과 혈정단 조장들이 들여보냈다.
잠시 후, 그들은 매종려를 데리고 나왔다. 이장의가 놀라며 그녀에게 달려갔다.
“매종려 대주. 괜찮은가?”
“괘, 괜찮습니다.”
“정말인가? 괜찮아?”
“네에.”
그녀는 생각보다 멀쩡해 보였다. 이장의가 다시 물었다.
“침입자는? 그놈은 어디 있지? 그놈을 봤나?”
“네. 봤습니다. 침입자는 열다섯 정도로 보이는 소년이었습니다. 그리고 우익편의 혈라명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역시 그랬구나.”
이장의는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는 걸 알고, 그 소년을 꼭 붙잡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그놈은 어디 있지?”
“그게……. 혈법사들을 인형으로 만들고, 혈령강시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저까지 인형으로 만들려고 하다가 당주님께서 오신 거고요. 그는 강시들로 다른 곳에 구멍을 뚫고, 그쪽으로 도망쳤습니다.”
“끄응. 내가 한발 늦었구나.”
이장의는 할 말을 잃었다.
침입자 소년은 자신보다 빨리 그 방법을 생각했었고, 이미 도망친 것이다. 이장의는 입술을 깨물었다.
겨우 어린 소년일 뿐인데, 계속 한 발자국 늦는다. 머리싸움에서 밀린다는 것이 짜증 났다.
‘그래도 성과는 있어.’
혈천강시 둘을 부리는 혈법사들을 붙잡았다. 이제 혈천강시 다섯은 온전히 이장의의 수중으로 돌아온 셈이다.
“좋아. 그들 다섯이면 혈령강시 하나를 잡을 수 있겠지. 그럼 그 소년은 금방 잡을 수 있을 거야. 매종려. 침입자에 대해 자세히 말해봐. 어떻게 생겼지? 혹시 이름이나 별호에 대해 들은 것은 있나?”
“이름을 알고 있습니다. 그가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걸 들었거든요.”
“잘됐군. 이름이 뭐야?”
“그의 이름은 하운평…….”
“하운평? 아아. 그렇지. 하운평. 권왕의 제자 놈. 구치웅 순검사를 도와서 우익편을 죽였다고 했지.”
그리고 혈교의 중요사건마다 같이 있었다고 들었다.
‘그래. 그래서 혈라심법을 알고 있었던 거구나.’
모든 아귀가 들어맞았고, 이장의는 그제야 만족했다. 이제 누군지 알았고, 상황도 유리하게 돌아왔다. 그놈을 잡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했다.
거기에 너무 빠져버렸고, 그는 매종려가 이상해졌다는 걸 보지 못했다.
매종려는 ‘하운평’이란 이름을 말한 후부터 표정이 변했다. 갑자기 눈빛이 흐려지고, 멍한 얼굴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장의를 바라보더니, 품속에서 단검을 꺼내어 이장의를 찔렀다.
푸욱.
옆구리에 단검이 꽂혔다.
“당주님.”
해왕일이 뒤늦게 소리치며 달려왔다.
퍼억.
이장의는 매종려를 치면서 뒤로 물러났다. 다행히 치명상은 피했다.
이장의는 그제야 매종려를 눈여겨봤다. 흐릿한 눈빛에 멍한 표정,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끄응. 우익편의 수법이구나.’
매종려 본인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이미 환술에 걸린 상태였다.
그녀가 하운평의 이름을 말하는 순간, 환술이 발동되었고, 단검을 찌른 것이다.
“크윽.”
그때 이장의는 허리 쪽에 극심한 고통을 느꼈다.
갑자기 주저앉았고, 매종려는 다시 단검을 찌르려 했다. 해왕일은 놀라서 자신의 검을 휘둘렀다.
서걱.
그녀의 목이 단숨에 잘렸다.
“아, 안 돼…….”
이장의가 말리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는 생각 없는 해왕일을 꾸짖으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단검에 베인 곳이 뜨거워지면서 엄청난 고통을 느꼈다. 입을 열 수도 없었는데, 매종려의 단검을 보고 깨달았다.
신변보호를 위해 본인이 직접 선물해 준 물건이었다. 그 단검에는 혈교의 사독이 발라져 있었다.
털썩.
결국 이장의는 바닥에 쓰러졌다. 그는 해왕일에게 겨우 말했다.
“사, 사독……. 어서 해, 해독약을…….”
“아, 알겠습니다. 당주님.”
그는 당주 이장의를 업고 서둘러 약방으로 달려갔다.
이제 이곳에는 수하들만 멀뚱히 서 있었다. 이제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윗사람들이 없었다. 남은 그들은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았고, 그사이 혈령강시도 도망갔다.
누군가 말했다.
“일단, 혈령강시를 쫓아가자.”
“아니야. 당주님을 보호해야지. 당주님을 따라가자.”
“멍청아. 침입자부터 잡아야지. 당주님도 그걸 바라고 계실 거야.”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당주님한테 무슨 생기면 네가 책임질 거야?”
그들은 애초에 범법자들이었고, 의리보다는 시기와 질투가 강한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혈안대와 혈주대는 서로를 싫어하는 사이였다.
서로 각자의 말이 맞다고 우겼고, 결국 조장들은 각자의 수하들을 이끌고 찢어졌다. 뭉쳐도 모자랄 판에 뿔뿔이 흩어진 것이다.
하운평은 멀리서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계획대로 되는 것 같아 미소를 지었다.
애초에 그는 도망치지 않았다. 도망친 것처럼 꾸미고,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이장의가 계획대로 쓰러졌고, 예상대로 해왕일은 수하들을 이끌어 갈 재주가 없었다.
이제 혈교는 자중지란(自中之亂)으로 갈라질 것이고, 각개격파가 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자, 이제 마지막 단계다.’
하운평은 특유의 신법으로 빠르게 돌아다녔다.
약한 곳부터 습격하여 혈안대 무사들은 죽이고, 혈법사들은 세뇌시켰다. 그리고 그 혈법사를 이용해서 강시들을 하나둘 모았고, 세력을 점점 키웠다.
그렇게 혈교를 잡아먹기 시작했다.
* * *
“크헉. 허억. 헉.”
혈교의 사독은 보통의 사독과는 달랐다. 몇 배 농축되었기 때문에 강력하고, 고통스러웠다.
살짝 찔렸는데, 벌써 그 부위가 썩어갔다. 해독약을 먹어도 쉬이 낫지 않았고, 반 시진이 넘도록 엄청난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이장의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
“당주님. 괜찮으십니까?”
해왕일이 물었다. 그는 바로 옆을 지키고 있었고, 이장의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물었다.
“침입자는? 그 하운평이란 놈은 어떻게 됐지?”
“네? 저, 전 모르는데요.”
해왕일은 계속 이곳에 있었고, 바깥의 상황은 모르고 있었다.
이장의는 불길함을 느꼈고, 억지로 일어났다.
“크헉.”
“다, 당주님. 지금 일어나시면 안 되는데요.”
“이 멍청한 놈아. 아직도 상황파악이 안 돼? 잘못하다간 우리 모두 끝장이야.”
그는 소리 지르며 약방을 나왔다. 설마 하는 마음에 지하통로를 걸었다.
아무도 없었다.
바닥에는 죽은 혈교의 무리들과 부서진 강시 조각들뿐이었다. 살아 있는 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설마……. 벌써?”
무려 강시만 일만이천 구가 있었다. 그걸 벌써 없앨 리 없었다.
그는 강시가 있던 광장으로 달려갔다.
“허억. 헉.”
불과 반나절만 해도, 강시들이 빼곡히 서 있던 곳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를 만큼 자랑스러웠다. 천하 제패가 눈앞에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장의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강시들이 반의반이라도 남아 있길 바랐건만, 지금 광장에 보이는 건 산산조각이 난 강시들뿐이었다. 멀쩡히 서 있는 강시는 한 구도 없었고, 모두 바닥에 쓰러졌다. 이곳은 강시들의 무덤으로 변해 버렸다.
풀썩.
이장의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이십 년이……. 내가 그렇게 노력했던 이십 년이 사라져 버렸어.”
이제 매종려가 죽었으니 더 이상 강시를 만들 수도 없었다. 합종인과 혈안대도 다 죽었고, 혈법사들도 사라졌다. 남은 건 멍청하게 두리번거리고 있는 해왕일뿐이었다.
이장의는 극심한 절망과 허탈감을 느꼈다.
“말도 안 돼.”
“당주님. 아직 남아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해왕일의 말에 그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저 멀리 보이는 단상 위였다. 그 위에서는 아직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래 봤자 강시 수가 오십이 넘어가지 않았다.
일만 구에 비해 정말 보잘것없는 숫자였다.
그래도 이장의는 희망을 가졌다. 그곳에 혈령강시가 보였고, 혈천강시도 세 구나 있었다.
‘그래. 저것들만 있어도 다시 재기할 수 있어.’
그는 해왕일에게 명령했다.
“가라. 가서 우리 편을 도와줘.”
“저어, 어느 쪽이 우리 편인지…….”
“멍청한 놈아. 지금 혈령강시가 저쪽 편이잖아. 반대쪽이 우리 편이겠지.”
“네넵. 알겠습니다.”
“그리고 명심해. 싸우는 것보다 중요한 건 그 소년이다. 싸우는 척하면서 그 소년을 찾아서 잡아. 그럼 우리가 이길 수 있다.”
해왕일은 고개를 끄덕였고, 단상 쪽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그가 떠난 직후였다. 이장의는 등 뒤에서 목소리를 들었다.
“쯧쯧. 나를 찾는 거면 방향이 잘못되었는데.”
이장의는 소름이 돋았다. 그 소년이었다.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끝까지 한 수 뒤처졌다는 생각에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도 남은 한 수가 아직 있었다.
이장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소년이 서 있었고, 그를 보면서 억지로 일어섰다. 그리고 물었다.
“네가 하운평이냐?”
“맞아. 이장의.”
둘은 서로를 바라보았고, 이장의는 다시 물었다.
“이유가 뭐냐?”
“무슨 이유?”
“갑자기 나타나서 우리를 공격하는 이유 말이다.”
“꼴 보기 싫어서.”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이장의는 다시 물어야 했다.
“무슨 뜻이지?”
“지하에 있는 수많은 시체들과 시신들, 당신이 죽이고 괴롭힌 거잖아. 그들의 절망 어린 모습도 보기 싫고, 당신은 웃고 잘되는 것도 보기 싫었어.”
“고작 그 이유 때문이냐?”
“이번에는 내가 묻고 싶군. 당신은 왜 강시를 만들었지?”
이장의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천하를 제패하기 위해서다.”
“고작 그것 때문에?”
하운평은 한심한 듯, 똑같이 대답했고, 이장의는 화를 내며 소리쳤다.
“고작 그것 때문이라니? 남자로 태어났으면 한 번은 천하를 꿈꿔봐야 한다. 그게 사나이야.”
“그래. 당신은 당신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가. 나도 나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갈 테니까. 하지만 다른 사람의 인생도 망쳐 놓았는데, 본인 인생이 망했다고 우는소릴 하면 안 되지. 안 그래?”
“…….”
이장의는 대답 대신 하운평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그는 혈정단을 꺼내어 손을 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