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an see your herbivorous side RAW novel - Chapter 9
너의 초식이 보여 9화
새로운 목적지(1)
나는 무신수에게 다가가서 죽은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리고 그의 가슴에 꽂힌 검을 뽑았다.
스르륵.
너무나 쉽게 빠진다.
지금 살펴보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 검은 명검이다. 날이 곧고 깨끗했다. 하루가 지났는데도 피가 거의 묻지 않았다.
그리고 검날의 끝부분에 직인도 있었다.
‘미인검.’
호오. 미인검이라, 이름도 마음에 든다.
나는 무신수의 옷에 칼날을 닦고 검을 검집에 넣었다.
검집은 단순히 검은색 막대기였는데, 뭘로 만들었는지 무척 튼튼했다.
화려하지 않고, 투박하다. 눈에 띄지 않아서 이것도 마음에 들었다.
사실 그동안, 무기 욕심은 없었다. 하지만 어제 일을 겪은 후에 생각이 바뀌었다.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목숨을 잃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정학 점주가 죽은 것이 영향이 컸다.
점주님. 당신이 틀렸습니다.
무공은 꼭 필요합니다. 싸움은 하지 않더라도, 내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무공을 익혀야 합니다.
그래. 돈을 벌기 전에 무공부터 익히자.
그렇게 다짐하면서 미인검을 허리 뒤춤에 꽂았다. 그리고 선상으로 올라갔다.
일단 감 노인을 찾을 생각이다. 그리고 여기가 어딘지, 배는 어디까지 왔는지 알아볼 필요도 있었다.
배는 이름 모를 무인도에 정박해 있었다.
그리고 배에는 아무도 없었고, 무신수가 가지고 온 두 개의 보물 중 하나가 사라졌다.
아마도 감 노인이 하나만 가지고 도망친 것 같았다.
남은 보따리를 열어보니 반지, 목걸이, 보석, 금붙이 등 각종 귀중품들이 가득했다.
나는 그걸 보면서 한참을 고민했다.
처음에는 창천으로 가려고 했다.
도의적으로 대륙전장에게 보물을 돌려주고, 포목점으로 가서 이정학 점주의 장사(葬事)도 치러야 하니까. 그리고 그가 남긴 포목점에서 계속 일해야 하는데…….
솔직히 가기 싫었다.
거기 있어 봤자, 이정학 점주만 계속 생각날 것 같았고, 당분간 장사 쪽에는 관심 없었다.
또 관이나, 대륙 전장에서 꼬치꼬치 물어보면 굉장히 귀찮을 것이다.
역시……. 그냥 떠날까?
무신수를 죽였으니, 이점학 점주에 대한 의리는 지킨 셈이다.
그리고 새로운 목표도 생겼다.
무공을 위해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면 지금이 적기였다.
원하진 않았지만, 천소신단이라는 영약도 먹었고, 일양신공이라는 무공도 익혔으니까.
왠지 조금만 더 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이 보물인데…….
내가 착한 사람도 아니고, 내가 훔친 것도 아니고, 강도가 버린 걸 그냥 주운 거잖아.
만약에 내가 가져간다고 문제가 될까?
나는 피식 웃었다.
그럴 리가…….
대신 양심은 있으니, 보물의 일부분은 좋은 일에 쓰는 걸로 합리화했다.
좋아. 결정 났으니, 빨리 움직이자.
자세한 계획은 나중에 세워도 되지만, 무인도에 있을 필요는 없었다.
나는 배 안을 돌아다니면서 필요한 것들을 챙겼다.
화섭자, 기름, 멜 수 있는 포대와 먹을 것들을 찾았고, 보물들은 들기 좋게 포대에 옮겨 담았다.
만두와 육포 등은 바로 먹고, 마지막으로 기름과 화섭자를 이용해서 배를 불태웠다.
어차피 배를 몰지도 모르고, 이 배가 불에 타는 연기를 보고 누군가 찾아오길 바란 것이다.
그리고 예상은 적중했다.
뿌연 연기를 보고, 고기잡이하던 어부가 다가왔다.
나는 그에게 강도를 당했다고 둘러대고,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착한 사람이었고, 아무 말 없이, 뭍으로 데려다주었다. 그리고 나는 보답으로 금으로 된 팔찌를 내밀었다.
“헉. 이게 뭐냐? 이런 것은 받을 수 없다.”
“받으세요. 대신 어디서 났는지 묻지 마시고요. 조금씩 잘라서 사용하세요. 그리고 혹시 저를 찾는 사람이 있으면 모른 척해주시면 됩니다.”
그는 가족이 있었고 돈이 필요했다. 고민 끝에 팔찌를 받았고 비밀은 꼭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공범이 되었으니, 웬만하면 비밀을 지켜주겠지.
역시 이곳도 동정호를 끼고 있는 마을 중 하나였다.
나는 다른 사람 눈에 띄기 전에 마을에서 나오는 짐마차에 올라탔다.
몰래 탄 짐마차에는 보리가 산더미처럼 싸여 있었다. 나는 그 속에 파고들었고,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수 있었다.
흐음. 보리 냄새 좋은데. 오늘 잘랐나?
나는 그 속에 편안히 누웠고, 향긋한 보리 냄새를 맡으며 생각에 잠겼다.
급한 일도 없었고, 시간도 넉넉했다.
천천히 앞으로의 계획을 세웠다.
* * *
으으음.
깜박 잠이 들었나 보다.
눈을 떠보니 마차는 서 있고, 목적지에 도착한 것 같았다. 고개를 내밀어 둘러보니, 마구간이었다.
여기가 어딘지 모르지만, 이제부터 알아보면 되겠지.
나는 마차에서 내려서 기지개를 켰다.
계획대로 움직일 시간이다.
먼저 대륙 전장에서 쫓아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찌 되든 그들은 보물을 잃어버렸고, 그들이 집요하다는 건 무신수의 마음을 통해 들었으니까.
아마도 동정호를 수색할 테고, 불에 탄 배를 찾을 수도 있었다. 혹시 감 노인이 붙잡힐 수도 있었다.
그럼 내가 살아 있는 것도, 보물이 없어진 것도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잘했지만, 내 흔적을 완전히 지울 방법이 필요했다.
내가 만약 사람을 쫓는다면 어떻게 할까?
이 넓은 대륙에서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특징을 짐작하여 수소문하겠지.
그리고 내게는 가장 큰 특징이 있었다.
열한 살 정도의 작은 아이가 혼자 여행하는 것. 분명 흔한 일은 아니었다.
그것을 기초로 하여 몇 가지를 준비했다.
이곳은 제법 큰 고을이다.
거지는 당연히 있었고, 나와 비슷한 체구를 지닌 어린 거지를 찾았다. 그리고 그중에서 예전의 나처럼 떠나고 싶어 하는 거지를 선택했다.
‘휴우. 여기서 벗어나고 싶다. 나에게 돈만 있으면 바로 떠날 텐데. 멋진 옷을 입고, 커다란 마차를 타고, 황제가 있다는 북경으로 가 보고 싶어.’
아이는 계속 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북경은 여기서 천 리나 떨어진 곳이고, 내 목적지와는 반대 방향이었다.
나는 아이가 혼자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조용할 무렵, 다가가서 커다란 보석 한 개 던졌다.
땡그랑
허억.
어린 거지는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묵직한 소리에 깜짝 놀랐다.
어린 나이지만, 보석이 뭔지는 알았다.
누가 볼세라 번개같이 숨겼다. 그리고 두리번거리다가 어디론가 뛰어갔다.
나는 몰래 따라갔고, 거지가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이는 보석을 팔았고, 포목점에서 근사한 옷을 산 뒤, 마차와 마부을 샀다. 그리고 곧바로 고을을 떠났다.
모든 걸 반나절 만에 해치웠다.
행동력 하나는 끝내주는군.
생각처럼 안 움직이면 다른 방법을 쓰려 했는데, 쉽게 해결해서 다행이다.
만에 하나 대륙 전장에서 여기까지 왔다면, 저 새끼 거지를 쫓아가겠지?
그러길 바라며 나는 반대쪽으로 움직였다.
* * *
하운평은 배가 있는 나루터로 달려갔다.
그리고 혼자 배를 타는 짓은 하지 않는다.
근처를 돌면서 착해 보이는 사람을 찾았다. 그리고 한 아주머니에게 부탁했다.
“안녕하세요. 제가 사실은 어머니를 만나러 감리까지 가야 하는데요. 혼자서는 너무 무서워서요. 혹시 같이 가도 괜찮을까요?”
“오오. 그러니? 잘됐구나. 나도 마침 감리로 가는데, 같이 가자꾸나.”
“감사합니다.”
물론 하운평은 그 아주머니의 목적지가 감리라는 건 마음을 읽어서 벌써 알고 있었다. 이렇게 같이 있으면, 다른 사람 눈에는 일행으로 보일 거라 생각했다.
그는 이런 식으로 감리까지 갔고, 감리에서 홍호, 홍호에서 공인, 공인으로 계속 이동했다. 아주머니한테 부탁했다가 할머니에게 부탁했다가 어떤 때는 한 가족과 여행하기도 했다.
그렇게 최대한 조심히 ‘의창’으로 향했다.
하운평이 굳이 의창으로 가는 이유는, 오호 장산도 때문이다.
사실 장산도는 하운평이 아니더라도 무신수에게 죽을 운명이었다. 굳이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그의 부인과 딸이 신경이 쓰였다.
장산도의 도움을 받은 걸 생각하면, 그의 가족들에게 보물이라도 하나 줘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하운평은 장산도의 생각을 읽을 때, 호북성 의창에 집이 있는 것이 생각났고, 그래서 목적지가 의창이었다.
* * *
대륙전장의 본점에도 강도 소식이 들어갔다.
그들은 분노했고, 곧 최고 전문가를 파견했다.
구을태.
황궁의 금의위에서 십 년간 일했고, 대륙전장에서 어렵게 데려온 인재였다. 그리고 지난 몇 년간 자신의 값어치를 증명했고, 수많은 강도사건을 해결했었다.
그가 바로 어제 창천마을에 도착했다.
이미 전서구로 몇 가지 지시를 내려놓은 터라, 보고를 바로 받았다.
“명하신 대로, 동정호 일대의 마을을 수색했고, 강도 팔호였던 감 노인을 붙잡았습니다.”
“잘했습니다.”
그는 아랫사람에게도 말을 놓는 법이 없었다.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차분히 물었다.
“신문을 했을 텐데요.”
“네. 일단 다른 강도들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범행 직전에 두목인 천독귀검이 찾아왔고, 창천 지점의 구조와 인물들에 대해 자세히 물어봤다고 합니다. 그리고 배를 빌려준 게 전부랍니다.”
“그럼 아직 천독귀검 외에는 강도들이 누군지 모르겠군요.”
“네. 총 일곱 명 중, 대장인 천독귀검, 이호는 마라호조인 것까지만 알아냈습니다. 나머지 다섯 명도 조속히 알아내도록 하겠습니다.”
전장 강도가 신분증인 노인을 들고 다닐 리 없었다.
그래서 무기나 얼굴의 특징만 가지고 누군지 알아내야 하는데, 쉽지 않았다.
시간이 필요했고, 구을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다른 걸 지적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천소신단의 위치입니다. 창천지점에 있다는 건 일급비밀이었는데, 강도가 어떻게 알아냈을까요? 거기에 집중하시고, 천독귀검의 행적에 대해 좀 더 파고드세요.”
“알겠습니다.”
“잃어버린 보물은 다 회수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포대 여섯 개로 나누어 가져가려다 실제로는 단 두 개만 가져갔습니다. 그중 감 노인이 가지고 있던 하나는 찾았고, 포대 하나를 못 찾았습니다. 대략 금 백 냥 어치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적은 금액은 아니군요. 정확히 무슨 물건이 들었는지 알고 있습니까?”
보고자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보물을 맡긴 손님들이 기록을 누락해서요. 손님들을 찾아가서 물었지만, 숨기는 것 같습니다.”
“후우. 그냥 두세요. 아마도 온전치 못한 방법으로 얻은 물건이겠죠. 아는 것만 추적합시다.”
“네에.”
“또 감 노인이 말한 건 없나요?”
“범행을 끝내고, 배를 동정호의 군산도 중 한 곳에 정박했다고 합니다. 그곳은 무인도였고, 다음 날 아침에 선실로 내려가 보니, 둘 다 죽어 있었다고 하더군요.”
“두 명? 아아. 천독귀검과 인질로 잡아갔다던 아이 말이군요.”
구을태는 사건 보고서를 기억해 냈다.
아이의 이름이 하운평, 황강 포목점에서 근무하는 점원이라는 건 확인했다.
사실 이 부분이 조금 의아했다.
왜 아이를 데려갔을까?
안타깝게도 당시 인질들은 모두 겁에 질려 있었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본 사람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