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dicate the world to my Russia RAW novel - Chapter (204)
081. 내 러시아에 세계를 바친다(2)
3.
수도 밖에 나가 있는 총독들을 전부 불러오겠다니!
내 말에 자바도프스키와 게오르기가 우려를 표했다.
“제국의 영토가 단기간에 넓어진 만큼 아직 불안한 요소가 많습니다. 만약 공백이 발생한다면 무슨 문제가 벌어질지 모릅니다. 알렉산드르 전하를 검증하는 일은 나중으로 미뤄도 되잖습니까.”
“장관의 말이 옳습니다. 지금은 변화보다 내실을 다져야 할 때라고 생각되옵니다. 부디 명령을 거두어주십시오.”
하지만 내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강해졌다.
“그들도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다. 내색하진 않았지만 다들 지쳤을 것이야. 더구나 미리미리 후임자를 키워내라고 얘기해두지 않았느냐?”
“그건 그렇지만……”
내가 장남, 알렉산드르를 육성한 것처럼 그들 역시도 뒤를 이을 자들을 마련해두었다.
‘이미 후보군까지 조사를 마치고 인가를 내줬으니. 내 말을 허투루 들은 게 아니라면 진즉에 짐을 싸서 달려오는 중이겠지.’
동아시아 3국을 돌다 온 막심이 가장 먼저 도착했으니 나머지도 슬슬 올 때가 됐다.
이렇게 소집령을 내린 데에는 결정적인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한 곳에 너무 오래 있다 보면 필연적으로 부패가 발생할 수밖에 없지. 과거 오스만 제국의 사례를 보아라. 기껏 믿고 맡겨놓았더니만 상황이 좋지 않자 죄다 반기를 들었잖느냐? 이건 개인의 자질보다도 제도와 교육의 문제가 더 크다.”
자바도프스키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교육부 장관으로서 제도와 교육의 힘을 잘 아는 그였다.
“청렴함과 전문성을 모두 잡겠다는 뜻이로군요. 기존에도 화가, 작가 등 공익을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있었습니다만. 여기에 법적인 효력을 발휘하는 제도까지 더해진다면 함부로 폭주하는 일은 드물어질 겁니다.”
“그래. 제2의 막심, 세르게이가 꾸준히 배출되기 위해서는 그런 환경이 중요하다. 나는 내 수하들이 잘못된 길로 빠지는 걸 절대 지켜보지 않겠다.”
‘아. 폐하께서는 한참 전부터 미래를 준비해오셨구나.’
‘처음이라 시행착오는 있겠지만 그것 역시 극복할 대상일 터. 지레 겁을 먹고 포기할 순 없지.’
즉흥적으로 내린 결정이 아니란 걸 알아챘는지 두 사람의 표정이 진지하게 변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절로 미소가 흘러나왔다.
“역시 너희들은 내 마음을 잘 헤아려주는구나.”
“함께한 세월이 얼마인데 이 정도는 기본이지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저희도 같이 은퇴시켜주십시오. 얼마 남지 않은 생은 마음 편히 보내고 싶습니다.”
“하하. 그래. 조금만 더 고생해다오. 후임자에게 확실하게 인계할 때까지 기다려줄 테니.”
이미 보장된 노후 덕분인지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더구나 나를 중심으로 철저한 중앙집권화가 완성되었기에 권력을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추태도 없었다.
‘정말 다행이지. 함께 했던 전우이자 공신들을 내치고 가두는 일만큼 괴로운 것도 없을 테니.’
속으로 안도감을 느낄 무렵.
게오르기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폐하. 혹시 나폴레옹도 불러들이셨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적잖은 동요가 예상되옵니다만.”
막심을 통해 전달된 나폴레옹의 요청은 정보국 국장인 게오르기의 귀에도 들어갔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공식적으로는 어렵겠지. 하지만 이미 죽은 사람으로 처리하면 괜찮을 터. 요원들을 보내 정보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철저히 단속했으니 문제 되진 않을 것이다.”
한때 적이었다지만 제국을 위해 공헌한 세월만 이십 년이 훌쩍 넘었다.
덕분에 한족의 반발을 억누르며 차근차근 청나라를 흡수해나갈 수 있었다.
‘이제 살아갈 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마지막은 뜻대로 살게 해줘야지. 그 정도 자격은 충분하다.’
간만에 나폴레옹의 얼굴을 떠올리던 그때.
게오르기의 입에서 뜻밖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다행히 개과천선한 뮈라가 후임자를 선발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게다가 한족들에게 인망도 두터워 대인으로 추대받는다더군요.”
“호오. 나폴레옹이 다시 등용해준 것까진 알고 있었는데. 그 정도 위치까지 올라갔단 말이냐?”
“얼마 전에는 청 황제의 딸과도 혼약을 맺었다 들었습니다. 다만 권력을 탐한다는 얘기가 돌까 두려웠는지 모든 직책에서 물러나 고문 역할만 맡는 중이라더군요. 나폴레옹과 폐하께서 고르신 후임자가 실권을 쥐었다는 걸 철저히 확인해두었습니다.”
“허. 거참 별일이 다 있군.”
자신을 다시 거두어준 게 그토록 감격스러웠던 건가.
원 역사에서도 본인의 잘못을 뉘우치고 나폴레옹에게 돌아갔던 일화가 있는 만큼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어쨌거나 총독들이 모두 도착하면 지하감옥으로 안내하거라. 황태자에게도 미리 얘기해두고.”
그에 게오르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지하감옥이라 하시면 설마 황태자 전하께 마르크스의 처분을 맡기려는 겁니까?”
“후후. 내게는 장차 제국을 이어받을 자의 모든 면을 살필 의무가 있다.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릴지 궁금하구나.”
선대 알렉산드르 1세의 이름을 이은 장남, 알렉산드르 니콜라예비치 로마노프.
그가 제국의 후계자가 되기에 걸맞은지 확인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순간이 없었다.
여기엔 개인적인 욕심도 한 숟갈 담겼다.
‘마르크스여. 네게 특별히 제국의 미래를 보여주겠다. 그러니 네 잘못을 뼈저리게 깨달아라. 죽기 전에라도 깨우쳐야 하지 않겠느냐?’
4.
막심이 돌아온 이후.
수도에서는 연일 무도회가 열렸다.
그간 숨죽여 살다 제대로 건수를 잡은 상류층들은 화려한 옷으로 치장하고 이곳저곳을 쏘다녔다.
“어머. 이건 뭔가요? 처음 보는 비단인데.”
“청나라, 일본, 조선 세 나라의 장인들이 합심해서 만든 옷이라 들었어요. 남편이 가져와서 입어봤는데 괜찮나 보네요.”
“어머, 부럽다. 때깔도 좋고 참 예쁘네요. 매일매일 새로운 옷을 입는 것도 일이던데. 어디 괜찮은 물건 없나.”
“이번에 각 지역의 총독들을 따라서 상단들도 대규모로 이동했다고 해요. 그때를 노려보는 건 어때요? 원하신다면 제가 줄 좀 놔드릴까요?”
“어유, 그럼 감사하죠. 이걸 어떻게 보답해야 하나?”
유럽, 아시아, 북아메리카 등.
광활한 영토에서 들어온 사람과 문물이 뒤섞이자 그간 보지 못했던 문화가 꽃피기 시작했다.
그 정점에 있는 건 역시 궁전에서 열리는 무도회였다.
‘모두가 들어가길 원해도 초대장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몇 안 된다지? 저기만 뚫을 수 있으면 눈도장 하나는 제대로 찍는 건데.’
‘수도에 유행하는 모든 것들이 궁전에서 나온다니. 유명인들로 북적거리겠어,’
온갖 지역에서 몰려드는 만큼 매일 새로운 사람에게 초대장이 주어졌다.
하지만 어지간한 명성과 업적을 세운 가문이 아니라면 발 한번 들이밀기 어려울 정도로 경쟁이 치열했다.
한데 개중에서도 니콜라이의 장남, 알렉산드르는 단연 돋보이는 청년이었다.
젊은 영애들은 조금이라도 눈길을 끌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전하. 오늘 저녁에 시간 되시는 지요? 마침 제게 북아메리카에서 들여온 귀한 물건이 있어서요. 무려 푸시킨 님이 직접 쓰신 육필 원고랍니다?”
“뭘 그걸 가지고 유난을 떠는지. 전하. 저는 특별히 극단의 연주자들을 불러놓았습니다. 글린카 님께서는 우리 슬라브 민족과 흑인의 음악을 한데 섞는 시도를 해오셨는데 마침 성과가 있었다고 악보를 보내주셨거든요.”
단순히 황태자의 신분이었다면 이렇게 소란스럽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외모는 물론이요, 능력과 성품 역시 부족한 데가 없으니 사람이 꼬일 수밖에 없었다.
‘끙. 하지만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라는 게 문제지.’
“미안하오. 푸시킨의 소설과 글린카의 음악 모두 관심이 있지만 나중으로 미뤄야할 것 같소. 내게 중요한 일이 있어서.”
“아……”
“다, 다음에라도 꼭 들러주세요!”
여인들의 아쉬운 눈빛과 손길을 뿌리친 알렉산드르는 궁전 깊숙한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곳엔 어렸을 적 사용하던 방이 하나 있었다.
‘여긴 여전하구나.’
장성한 몸으로 눕기엔 작은 침대.
그 위에 걸터앉은 알렉산드르는 맞은편의 거울을 보고 심호흡했다.
“훕. 후우.”
숨을 들이쉬며 내쉬기를 몇 번쯤 반복했을까.
이마에 땀이 송송 맺힌 집사 하나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헉헉. 전하. 여기 계셨군요. 폐하께서 찾으십니다.”
“벌써 시간이 됐나.”
유년 시절부터 함께 해온 집사답게 자신이 어디 있을지 알았나 보다.
잘게 떨리는 손끝을 본 집사는 안타까운 목소리로 조언을 올렸다.
“전하. 너무 긴장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동안 해온 대로만 하시면 폐하의 인정을 받으실 겁니다. 총독들의 질문에 대비해 공부도 철저히 해두셨잖습니까?”
“그분들은 전부 아버님과 함께 대제국을 건설한 주역들이다. 어찌 긴장되지 않겠느냐?”
당장 나폴레옹만 하더라도 한때 유럽 전역을 손아귀에 넣을 뻔한 괴물이었다.
그런 이들에게 평가받는 게 부담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리라.
‘그런 대단한 사람들이 보기에 나는 선대의 후광으로 여기까지 온 낙하산에 불과하겠지. 실전 경험 하나 없는 애송이니까.’
알렉산드르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의기소침한 모습을 보였다.
잘난 아비를 둔 자식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집사의 눈빛이 한층 강렬해졌다.
“전하께서는 이미 모든 걸 갖추셨습니다. 폐하께서 내리신 가르침을 곱씹어 보십시오. 그 안에 답이 다 있을 겁니다.”
‘이미 답이 나와 있다고?’
그 말을 곱씹던 알렉산드르는 머리를 흔들며 마음을 다잡았다.
‘아버님께선 매번 강조하셨다. 다음 세대는 영토를 새로이 개척하는 것보다 내부를 다스리는 데 힘써야 한다고. 그러니 평범하고 낮은 곳에 더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니콜라이가 유년 시절부터 들려주었던 이야기 중에는 평범한 서민들이 많이 나왔다.
심지어 매달 허름한 옷을 입고 수도 곳곳을 함께 돌아다니기까지 했으니.
여느 후계자들과 달리 서민들의 삶을 많이 겪어보았다.
‘어쩌면 아버님께선 특별하고 비범한 군주가 아니라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평범함을 이해하는 군주가 되라고 하신 게 아닐까.’
그것이 정답인지 오답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마음에 중심이 잡히자 떨림은 가라앉고 자신감이 피어났다.
‘그래. 많은 것이 부족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하진 않겠다. 설령 꾸짖음을 당하더라도 그 또한 소중한 가르침일지니!’
알렉산드르의 두 눈에 정기가 흘러나오자 집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곧바로 길을 안내했다.
“전하.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서둘러 가시지요.”
“음. 그래.”
빠른 걸음으로 도착한 그곳은 궁전 밑에 자리한 지하감옥이었다.
그런데 그곳엔 낯익은 사람 하나가 있었다.
온몸이 구속되고 입까지 틀어막힌 채, 오직 보고 들을 수밖에 없는 처참한 몰골이었다.
‘저 사람은 설마 마르크스? 현상수배 종이에서 많이 봤었는데 결국 여기까지 왔구나.’
자본론 등 여러 업적을 세웠던 원 역사와는 달리 어떠한 것도 이루지 못한 채 이런 곳에 박혀있다니.
알렉산드르는 한동안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건 그로부터 삼십 분 가량이 지난 뒤였다.
‘그런데 왜 아무도 오지 않는 거지? 아. 설마 이것도 시험이란 말인가!’
그간 니콜라이는 온갖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시험하길 즐겼다.
악취미에 가까운 그것을 숱하게 겪어본 알렉산드르는 주저하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웁읍읍!”
무릎을 꿇어 마르크스와 눈높이를 맞춘 알렉산드르는 덤덤한 목소리로 물음을 던졌다.
“내가 알기로 너는 혁명을 이루고 나서 여왕이 머물던 궁전을 거처로 삼았다고 들었다. 단 한 번이라도 백성들과 함께 생활해본 적은 있느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