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107)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107)화(107/195)
#99
윤서가 살아온 삶이 안타깝고 억울하다. 의외의 모습을 발견할 때면 가슴이 간지러워지고. 담담하게 과거 얘기를 할 때는 도저히 정의 내릴 수 없는 복잡한 감정으로 가득 찬다.
그의 과거를 보고 싶고, 그에 대해 더 알고 싶었다.
베이킹을 가장 처음 시도했을 때 손과 얼굴에 하얀 밀가루를 묻히고 얼마나 허둥지둥 헤맸을지.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소나타 2번 4악장을 처음 들었을 때의 기분은 어땠을지. 유언을 남긴 사람을 이를 갈며 욕하며 힘들게 백두산 정상에 올라 푸른 천지를 내려다봤을 때는 어떤 마음이었을지.
차마 건네지 못한 질문이 있었다.
‘리벤저는 왜 형에게 그런 유언들을 남겼어?’
권지한은 이미 그 답을 알았기에 내뱉지 않았다.
윤서는 같은 산에 두 번 올라가지 않고, 101장째의 니트를 뜨지 않으며, 플래티넘 레벨로는 넘어가지 않는다.
모든 게 하나를 가리켰다.
‘왜 형에게 침대에서 자라고 했어?’
분명히 멀쩡한 침대를 내버려 두고 차갑고 딱딱한 바닥에서 웅크리고 잘 테니까.
‘왜 형에게 하루 세 끼를 챙겨 먹으라는 유언을 남겼어?’
그러지 않으면 아무것도 먹지 않고 굶을 테니까.
‘왜 형에게 특이한 구름들을 찾으라고 했어?’
가끔은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머릿속에 가득한 괴로운 기억을 비우라고.
모든 대답은 하나를 의미했다.
리벤저는 서채윤이 살아가길 바랐던 것이다.
숨넘어가는 순간에 그런 어이없는 유언들을 남기면서까지, 정말 어지간히도.
그리고 그건 한 가지 사실을 알려 줬다.
리벤저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서채윤이 던전을 나간 뒤 죽을 거라 확신했던 것이다.
‘던전에서 형은 죽으려고 했던 게 맞았어.’
그때 제 품 안에서 눈을 감는 윤서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평온했다. ‘길드석으로 이동’은 한 명밖에 되지 않으므로 이제 죽을 거라 생각했을 텐데도 도저히 두려워하는 얼굴로는 보이지 않았다. 보통 그런 평온한 얼굴을 보면 ‘아, 이 사람 자기가 안 죽을 걸 알고 있네’라고 생각해야 하는데 그때 든 권지한의 생각은 이것이었다.
‘이 사람은 죽음을 기다리고 있구나.’
처음엔 마력 고갈 상태여서 그랬다고 생각했다. 마력 고갈 부작용을 겪은 적 없지만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이 극대화된다고들 하니까.
그러나 윤서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윤서는 죽고 싶어 한다. 지금도. 리벤저의 유언들 때문에 잠깐 미루고 있는 것뿐이다. 자신의 추측이 맞는다는 걸 저 집요할 정도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유언들이 입증해 주고 있다.
오직 동료들이 남긴 유언을 들어주기 위해 살고 있는 사람이라서 아무것도 모르는 놈이 툭툭 내뱉는 무신경한 말에도 화 한번 내지 않았던 것이다.
‘…….’
권지한은 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욕설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윤서가 죽고 싶어 한다는 게 싫었다. 저 사람이 무덤덤한 예쁜 얼굴 안쪽으로 그런 슬픈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게 짜증 나고 화가 났다. 그 분노는 그걸 지금까지 눈치채지 못했던 자신에게로 향했다.
죽고 싶어 하는 영웅과 그를 죽지 못하게 하려고 이상한 유언을 남긴 동료들. 그리고 잠적한 영웅을 세상 속으로 끌어낸 사람들.
혼란스러운 밤이 깊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