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110)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110)화(110/195)
#101
이번 주말로 예정된 S급 옐로우 던전은 공략은 본래 석영에서 10명, 레인보우에서 50명, 그 외 다섯 길드에서 34명. 합산 94명의 헌터가 레이드에서 나설 예정이었는데, 석영에서 급히 헌터 2명을 추가하면서 총 96명이 공략에 나서게 되었다.
높은 등급 던전의 경우는 공략을 앞두고 멤버가 변경되거나 인원이 추가되는 경우는 흔하기에 그러려니 하던 이들은, 브리핑실에 나타난 S급 헌터 권지한(과 그 외 1인)을 보고 입을 쩍 벌렸다.
“궈, 권지한?”
“헉, 권지한 헌터!”
“권지한이라니…!”
누군가는 우당탕탕 의자를 넘어뜨렸고, 누군가는 마시던 음료를 푸웁 하고 뿜어 버렸다. 레인보우 부길드장 조만이도 놀란 듯 괜히 안경을 고쳐 쓰고 있었다. 추가 참가하는 이가 권지한과 동반 1인이라는 걸 미리 들었던 석영 헌터들만 조용했다. 이들은 권지한의 동행인이 서채윤이라는 건 알지 못하고 다만 임시 팀으로 있는 동안 훌륭한 활약을 선보여서 퍼펙트 2팀에 합류한 윤서라는 헌터라고만 알고 있었다.
윤서는 1팀 소속이지만, 안 그래도 서채윤이 누구인가로 떠들썩한 이 시기에 S급들만 소속된 1팀의 멤버라는 걸 알면 의심을 받을 수 있어서 대외적으로는 2팀에 이름이 올라와 있었다.
“형, 여기 앉아.”
권지한은 좌중의 반응은 신경 쓰지도 않고 팔을 뻗어 옆 사람을 안내했다. 낭패 가득한 표정으로 빈자리에 앉는 그는 상당한 미인이었는데 특이하게도 머리 위에 파란 새를 앉혀 놓고 있었다.
대체 권지한과 같이 온 저 미인은 누구인가? 왜 권지한이 저렇게 에스코트하듯이… 형이라고 부르며 정중하게 대하는가? 왜 그 미인 머리 위에 새가 앉아 있는가?
그들은 당연히 미인의 시스템 프로필을 읽으려 했다.
‘여임대’가 스킬 <간파>를 사용합니다.
‘여임대’가 당신의 <거짓 기억> 프로필을 보고 있습니다.
‘권타리아’가 스킬 <이름의 기원>을 사용합니다.
‘권타리아’가 당신의 <거짓 기억> 프로필을 보고 있습니다.
윤서는 쏟아지는 간파 스킬 알림을 무시했다. 윤서의 거짓 프로필을 확인한 사람들은 부산물 수집을 위해 추가된 인원인가 했는지 더는 관심 갖지 않았다. 이젠 이런 것도 익숙했다.
윤서는 S급 옐로우 던전 공략에 서채윤으로 참석할지, 윤서로 참석할지 고민하다가 후자를 선택했다. 서채윤으로 참석했으면 지금보다 더 시선이 뜨거웠을 테니 현명한 선택이었다.
“뭐 해. 브리핑 안 해?”
권지한이 윤서의 옆에 앉으며 팀 매니저에게 물었다. 팀 매니저가 아, 하면서 급히 일어났다.
“이, 이번 쥬말예 열릴 S끕 례이드 뎐젼 브리핑을 쉬쟉하겠습니다.”
권지한 앞이라 긴장했는지 말을 심하게 더듬거렸다.
삐윳!
브리핑이 시작되고 테이블 위에 반투명한 입체 화면이 뜨자 햅쌀이가 신기했는지 푸드덕거리며 날아내렸다. 홀로그램을 가리려는 자그마한 새를 윤서가 얼른 감싸 쥐었다. 햅쌀이가 놓아 달라는 의미로 부리로 손가락을 콕콕 찍었지만 윤서는 놔주는 척하면서 옆자리의 권지한에게 넘겼다. 권지한은 의아해하지도 않고 당연한 듯 새를 받아들었다. 햅쌀이는 권지한의 커다란 손바닥 위에서 삐윳삐윳 불만을 표출했다.
“거참 시끄럽군. 여기가 동물원이라도 되는가.”
레인보우 부길드장이 마침내 한 소리 했다.
‘조만이’가 아이템 ‘청진기’를 사용합니다.
‘조만이’가 당신의 <거짓 기억> 프로필을 보고 있습니다.
‘조만이’가 아이템 ‘얼음의 화환’을 사용합니다.
‘조만이’가 당신의 <거짓 기억> 프로필을 보고 있습니다.
브리핑이 진행되는 동안 레인보우의 부길드장은 끈질기게 간파 아이템들을 사용했다. 윤서의 시스템 프로필이 가짜라는 걸 직감한 모양이었다.
‘레인보우 길드라.’
윤서는 개인적으로 레인보우의 이미지가 좋지 않았다. 실드 트랩 설치, 보수를 하면서 접하는 길드 중 민간인들에게 가장 갑질하는 길드가 바로 레인보우였기 때문이었다.
조만이는 바로 그 썩은 물의 우두머리 격인 부길드장이었다.
스킬 <인류 도감>을 사용합니다.
상대의 시스템 프로필을 열람합니다.
인류 도감: 조만이, 45세, 남성
등급: S급
(아이템 ‘설화’ 사용으로 능력치가 증가합니다)
(아이템 ‘회색늑대 가죽’ 사용으로 방어력이 증가합니다)
(아이템 ‘적의 고드름’ 사용으로 스킬 쿨타임이 줄어듭니다)
특성: 빙하의 왕
(겨울의 신의 가호를 받고 있습니다)
(빙하의 신의 가호를 받고 있습니다)
스킬: <검은 빙하> A, <빙하기> S
고유 스킬: <대설원의 눈보라> A, <온난화> S, <절대영도> S
∗ 그 외 스테이터스는 던전에서만 열람 가능합니다.
레인보우 부길드장은 상당히 괜찮은 스킬을 가진 S급 헌터인데, 능력보다는 오만하고, 예민하며, 신경질적인 성격으로 더 유명했다. 큰 죄는 저지르지 않지만 자잘하게 저지르는 범법 행위가 많았다.
“애초부터 S급 옐로우 던전 브리핑에 동물을 데리고 오다니 석영은 본래 이렇게 제멋대로인가?”
“죄송합니다.”
조만이가 짜증이 많은 것과는 별개로 브리핑에 동물을 데려와 방해하는 건 잘못이었기에 윤서가 얼른 사과했다. 그런데 조만이의 눈이 점점 커졌다.
“아니…. 잠깐. 왜 새한테 시스템 프로필이…. 설마 이게 아이템이라고?”
‘왕 귀여운 새’
등급: C급
짱 귀여운 새. 삐유삐유 하고 운다. 딱히 능력치는 없지만 귀엽고 귀여움.
당신의 가족이 되어 줄 거예요.
지금 조만이를 비롯한 헌터들이 보고 있을 햅쌀이의 시스템 프로필이었다.
“이런 아이템은 처음 보는군. 꼭 살아 있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소환수와도 다르고, 환상 아이템도 아니고. 대체 어디서 났지?”
“나 혼자 S급 오렌지 던전 공략했을 때 보물 상자에서 알을 얻었는데 거기서 태어났어.”
대답한 이는 권지한이었다. 윤서와 권지한은 오는 길에 누구도 진실을 확인할 수 없는 변명을 미리 준비해 두었다.
레인보우 길드장은 미간을 잔뜩 구긴 채 권지한을 노려봤다.
“보물 상자에서 알이 나왔다고? 그럼 이 작고 귀여운 파랑새가 자네 것이라는 소리인가?”
“응, 내 거야.”
“하지만 이쪽 윤서라는 각성자를 더 따르는 것 같던데.”
“윤서 형이랑 내 사이가 워낙 각별해서 말이야. 본래 반려동물이 제 주인보다 주인과 각별한 사이인, 주인이 사랑해 마지않는 사람을 더 따르기도 하잖아. 그런 이치지.”
윤서는 권지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본래 반려동물이 주인보다 주인의 가족을 더 따르는 경우도 많으니까.
그리고 우리는 각별한 사이인 것도 맞지.
나는 권지한의 어렸을 적 일도 들었다고. 나도 유언에 대해서 털어놨고. 정말 각별하다.
“…그, 그런….”
조만이를 비롯한 사람들이 격하게 놀랐다. 이들이 ‘각별한 사이’를 다른 의미로 이해했다는 사실을 윤서는 몰랐다.
“햅쌀이는 브리핑을 방해하지 않도록 우리가 잘 관리하고 있을 테니까 브리핑이나 계속해.”
삐유.
제 이름이 불리자 햅쌀이가 고개를 갸웃하면서 권지한을 올려다봤다. 권지한은 싱긋 웃으며 엄지와 검지로 햅쌀이의 날갯죽지와 등을 살살 쓰다듬었다. 햅쌀이는 그 손길에 만족했는지 손바닥 위에 철퍼덕 앉아 본격적으로 쓰다듬을 즐겼다. 분명 둘은 오늘 처음 만났는데 아주 익숙해 보여서 외부인들에게는 정말 주인과 반려동물처럼 보였다.
“그, 그럼 브리핑을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권지한과 ‘각별한’ 사이인 미인, 새처럼 생긴 아이템의 정체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당장 목숨이 걸린 던전 레이드였다. 그들은 다시 브리핑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브리핑이 끝나고 레인보우 부길드장이 다시 시비를 걸려 시동을 걸었으나 권지한과 윤서는 쏙 빠져나와 구내식당으로 올라갔다.
잘 구워진 소고기를 듬뿍 담고 자리에 앉자 햅쌀이가 관심을 보였다. 햅쌀이는 딱히 음식물 섭취를 하지 않아도 되지만 윤서가 뭔갈 먹으면 항상 흥미를 보이며 기웃거렸다.
삐윳, 삐유.
“먹고 싶은가 본데 새가 소고기 먹어도 되나?”
“몬스터 고기도 먹고는 했으니 괜찮을 겁니다. 대던전에 있을 때도 이렇게 사람이 먹는 걸 같이 먹고 싶어 했거든요.”
“…….”
지금은 몬스터 고기만 취급하는 식당도 있지만 10년 전에는 어떻게 몬스터를 먹냐고 미친 사람 취급하는 경우가 주류였다. 아니, 주류인 정도가 아니라 몬스터를 먹는 건 거의 미친 행위처럼 취급받았다. 그러나 리벤저는 생존을 위해서 몬스터 고기를 먹어야만 했다. 그나마도 정화 스킬을 쏟아부어야만 먹을 수 있었기에 마력 소모를 줄여야 하는 후반에는 몬스터 고기조차 먹지 못했다.
이미 대던전 공략법을 설명하면서 얘기했던 터라 윤서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으나 권지한은 타격을 받아 조용해졌다.
윤서는 소고기를 몇 점 그릇에 덜어 햅쌀이에게 줬다. 햅쌀이가 부리로 콕콕 쪼아 대며 맛을 보더니 마음에 들었는지 열심히 먹기 시작했다.
식사가 끝날 무렵 권지한이 말했다.
“이왕 온 김에 훈련 좀 하고 가. 감 찾아야 한다면서.”
“저는 실전 훈련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그럼 뭐 가볍게 낮은 등급 던전 갔다가 바로 집으로 퇴근할까?”
“당장 갈 수 있습니까?”
“그럼.”
권지한이 U패드를 꺼내 화면을 허공에 띄웠다.
각성자 전용 앱인 ‘헌터넷’을 연 권지한은 바로 전체 지도로 들어갔다. 한반도 지도에는 현재 대한민국에 발생한 던전 포탈들의 위치와 발생 시간, 마감 시간이 떠 있었다. 아직 공략팀 마감이 끝나지 않은 던전들이 83곳이나 되었다. S급, A급, B급은 대부분 채워진 상태이나 C급 이하이면서 옐로우 이상 던전들은 아직 비어 있는 곳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