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111)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111)화(111/195)
#102
“이왕이면 혼자 들어가고 싶은데 가능한가요?”
“오늘 당장은 솔플 가능한 곳 없어. 다 선예약 잡혀 있어서.”
“F급 던전도요? 인기 없지 않습니까?”
“인기가 없어서 더더욱 당일에는 잡기 힘들지. 지원 등록이 다 안 될 때가 많다 보니 아예 마감일이 되기 전 정부 소관으로 넘어가거든. 비각성자 군대를 보내서 공략하는 걸로 알아.”
“권지한 헌터는 S급 오렌지 던전 혼자 공략한 적 있잖아요.”
“A급, S급. 이런 곳들은 이 앱에 뜨기 전에 정부, 협회, 길드가 먼저 협의해서 공략 팀을 선정하는 경우가 대다수니까.”
권지한이 화면 구석의 어딘가를 터치하자 게시판 하나가 떴다.
모집
│
함양C넵/0830(30)/힐러만
모집
│
함양D레/0830(28)/방힐
모집
│
서천F레/0830(33)/1공1방
모집
│
고흥E주/0830(29)/섶공
레이드 멤버 모집 게시판인 것 같았다. 윤서도 온라인 게임을 해 봤기에 제목에서 말하는 것들이 뭔지 대충 짐작 갔다. 예를 들어 [고흥E주/0830(29)/섶공]은 8월 30일 오늘 함께 고흥의 E급 오렌지 던전을 공략할 서포터 계열과 공격 계열 헌터를 구한다는 뜻이리라.
“괄호 안 숫자는 뭡니까? 29?”
“폭발이나 범람 등 마감까지 29일 남았다는 거야. 어디 끌리는 곳 있어?”
“글쎄요.”
게시판은 새 글이 계속 업데이트되고 있었다. 아무 데나 가까운 곳으로 선택하려던 윤서가 어떤 글을 발견했다.
모집
│
여주DEF/3연넵+/0830(20+)/방1힐1
“이 파티는 D급, E급, F급 던전을 한 번에 공략하려나 보네요? 여기로 가죠.”
“3연던 안 피곤하겠어?”
“괜찮습니다. 어차피 이 정도 등급이면 얼마 안 걸리니까요.”
“알았어. 지원 등록할게.”
“지원 등록은 어떻게 하는 겁니까? 알려 주면 제가 제 U패드로 하겠습니다.”
“내가 형 것까지 신청할 거야.”
“…….”
정말 같이 가려는 셈인가? 윤서가 권지한을 물끄러미 올려다봤다. 어느새 고기를 다 먹은 햅쌀이가 이번엔 U패드를 기웃거리며 관심을 보였다. 권지한은 손가락을 움직여 햅쌀이의 관심을 돌리려 했다.
“거리가 머니까 혼자 갈게요.”
“절대 안 돼.”
권지한이 한손으로 햅쌀이와 놀아 주면서 다른 손으로는 잽싸게 U패드를 가져갔다.
“별로 먼 거리도 아니고, 오고 가면서 색칠 공부 하면 시간 금방 갈걸. 이거 지원 등록 절차 밟으려면 처음엔 인증도 받아야 하고 복잡해서 어차피 형은 못 해.”
“늙은이 취급하지 마세요. 뭣하면 유준철 길드장한테 부탁하면 되니까.”
“아, 그러지 마. 형 혼자 가면 나는 밖에 남아서 뭐 하라고? 너무 심심하단 말이야.”
“거기 가면 더 심심할 텐데요. 권지한 헌터는 어떤 활약도 안 하고, 뒷짐 진 채 구경만 해야 합니다. 제가 던전 시스템에 좀 익숙해지고 전투 감도 찾기 위해서 가는 거니까요.”
“존나 자신 있어. 힘을 숨기고 있던 주인공이 드디어 제 무기까지 손에 넣었어. 이 활약을 뒤에서 구경할 수 있다니 완전 내가 꿈꾸던 상황이야. 절대 놓칠 수 없지.”
본심을 고백하는 권지한의 회색 눈이 정말로 초롱초롱 반짝반짝했다. 소년 같은 표정에 윤서가 피식 웃었다.
“알겠어요. 그럼 지원 부탁합니다.”
“응!”
씩씩하게 대답한 권지한이 곧장 U패드를 조작했다.
윤서는 알지 못하는 뭔가 복잡한 등록을 마치고 식당을 나서는데 구인 글을 올린 이로부터 연락이 왔다. 권지한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아, 안녕하세요. 여주 3연던 파티 리더인데요. 두 명 지원해 주신 거 맞죠?
어린 남자 목소리였다.
“맞아.”
– …D, E는 네이비인데 F는 오렌지라는 것도 알고 있고요?
“응.”
– 정보가 비공개로 되어 있던데 각성 등급이 몇이야?
권지한의 말이 짧아지자 파티 리더도 바로 말을 짧게 했다.
“우리 둘 다 C등급.”
– 한 명은 공격, 한 명은 방어라고 했지?
“어.”
– 부산물 분배 조건은 확인했지? 우리 파티 힐러 없으니까 포션은 알아서 준비해 와야 해.
“알아. 주의 사항에 써 있었잖아.”
– 늦지 않게 와. 3연이라 처음부터 늦어지면 골치 아프니까.
권지한이 심드렁하게 응, 어, 어. 대답하는 동안 윤서도 진동이 오는 핸드폰을 확인했다.
태재식
계약 때문에 전화한 거겠지.
윤서는 통화 중인 권지한과 거리를 벌리고 떨어져서 전화를 받았다.
“네, 아저씨.”
– 야! 야, 인마. 회사에 왔으면 나한테 바로 말을 해야지. 다들 네 얘기를 하는데 나는 어? 서… 채…. 씨, 네 이름도 제대로 꺼내지도 못하고 환장할 지경이다. 얼른 계약 좀 해지하자.
“…….”
윤서는 순간 어떤 예감을 느꼈다. 지금 계약을 해지하면 서채윤이 윤서라는 소문이 전 세계에 퍼지기까지 1시간이면 끝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었다.
“제가 오늘 던전 공략 예정이라서 나중에 할게요.”
– 응? 오늘? 무슨 던전? 퍼펙트는 수요일에 브리핑 있잖아.
“당분간 던전에 자주 들어가면서 시스템에도 익숙해지고 몸도 풀고 하려고요. 끊겠습니다.”
– 야, 잠깐. 끊지 마. 잠깐-!
윤서는 가차 없이 전화를 끊었다.
태재식은 한 번 더 전화해 오지는 않았다. 안도의 숨을 내뱉는데 어느새 전화를 끊은 권지한이 등 뒤에서 물어왔다.
“태재식이야?”
“네.”
“그래, 그 사람은 평생 언금해 놓는 게 좋겠더라. 서채윤이 형이란 거 들통나자마자 바로 가이아 스킬 갖고 있다고 말해 버리던데. 스킬의 허점까지 계산해서 처음부터 ‘서채윤과 윤서에 대해서 발설하지 않는다’ 이렇게 계약 맺었어야 했어.”
윤서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식당을 나와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햅쌀이는 이번엔 권지한의 정수리 위에 올라가 있었는데 희한하게도 차에 타기 전까지 아무와도 마주치지 않았다. 아침에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르락내리락하더니….
윤서는 이렇게 귀여운 권지한의 모습을 보지 못한 이들이 안타까웠다.
“권지한 헌터, 잠시 멈추세요.”
“응.”
차에 오르기 전 윤서가 권지한을 멈춰 세웠다. 윤서는 권지한에게서 조금 떨어진 뒤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찰칵, 찰칵. 정수리에 작은 새를 올려 둔 권지한이 근사하면서도 귀여운 미소를 지으며 렌즈를 바라봤다. 그렇게 사진 몇 장을 찍고 나서야 차에 올랐다. 권지한은 사진을 왜 찍었냐든가 어디에 쓸 거냐는 질문 따위는 하지 않았고, 윤서의 마음은 영문 모를 만족감으로 충만하게 차올랐다.
***
수재희
형들 이번 주말에 던전 들어간다면서요? 스급 노랑
물론 형들한테는 껌이겠지만 그럼 수욜에 브리핑하는 던전은 어케되는 거예요?
형들은 그던전 안가요?ㅠ
여기도 가고 거기도 갈 겁니다. 전투 감을 찾아야 해서 앞으로 던전을 자주 드나들려고요.
수재희
ㄷㄷ 빡세겠네요
박수빈
괜찮겠어요? 윤서 씨는 치유 내성도 있는데.
마력 고갈 오기 전 끝내면 되니까 문제없습니다.
수재희
개멋있다
박수빈
이제 복귀하시는 게 실감 나네요…
홍의윤
뭐? 어디 가는데? 왜 나한텐 말 안 했어? 나도 갈래!
수재희
나도가고싶은데 참잖아…..ㅠㅠ
홍의윤
ㅅㅂ 나도 갈래
이미 소문 다 돌았어 넋 깨어났다고
ㅅㅂ나도 볼래 서채윤 넋 쓰는 거
홍의윤
급기야 홍의윤에게서 전화가 왔다. 번호를 왜 알려 줬을까? 후회하면서 보기만 하는데 권지한이 윤서의 어깨를 툭 쳤다.
“형, 저 사람들인가 봐.”
약속 장소에 일찍 도착한 둘은 차를 세워 놓고, 색칠 공부를 하면서 파티원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권지한이 가리키는 쪽으로 막 한 무리의 사람들이 왁자지껄 떠들면서 걸어오고 있는 게 보였다. 각종 아이템들을 걸치고 있는 게 누가 봐도 각성자들이었다.
“내리자.”
“네.”
윤서는 핸드폰을 집어넣고 대신 무테안경을 꺼내 착용했다. 권지한은 색칠 공부책을 잘 덮어 정리하고 모자를 썼다. 안경과 모자 둘 다 변장 아이템이었다.
삐윳.
햅쌀이는 나간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얼른 윤서의 정수리 위로 올라왔다.
“찹쌀아, 우리 다녀올게. 절전 모드로 해 놔.”
“네, 조심히 다녀오세요. 햅쌀아, 주인님 잘 부탁해. 주인님 동료님, 주인님 잘 부탁해요.”
삐유!
“걱정하지 마. 우리 형 생채기 하나 안 나게 할게.”
권지한이 먼저 내리고 윤서를 위해 차 문을 잡아 줬다. 파티원들도 권지한과 윤서를 발견했는지 걸음을 멈추고 이쪽을 보고 있었다.
‘김창석’이 아이템 ‘미래 안경’을 사용합니다.
‘김창석’이 당신의 <거짓 기억> 프로필을 보고 있습니다.
‘오예지’가 스킬 <염화의 눈>을 사용합니다.
‘오예지’가 당신의 <거짓 기억> 프로필을 보고 있습니다.
윤서의 프로필을 확인한 이들이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일찍 오셨네요. 제가 리더 김창석이에요.”
“안녕하세요.”
윤서는 손을 맞잡지 않고 고개만 꾸벅했다.
남자 둘, 여자 둘로 셋은 권지한과 비슷한 나이로 보였고 하나는 윤서와 비슷한 나이인 듯했다.
<인류 도감>을 사용해 보니 네 명이 전부 근접계 헌터였기에 힐러를 구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윤서의 입장에서 보자면 다 고만고만했지만 그래도 김창석과 오예지가 가장 쓸 만했다. 오예지가 방긋 웃었다.
“넷이서 3연던 하기 애매했는데 두 분이 지원해 줘서 다행이에요. 윤서 씨는 저랑 동갑이네요. 오늘 하루지만 잘 지내 봐요.”
“네.”
“<세이프존> 스킬을 가진 분은 처음 봐요. 이거 보호계 일반 스킬 중에서 가장 좋은 거라던데. 힐러가 없어도 벌써 든든하네요.”
오예지는 윤서의 스킬을 확인하고 꽤 호의적으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