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112)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112)화(112/195)
#103
“그 새는 뭐예요? 던전에 데려가도 돼요?”
“이름은 햅쌀이입니다. 데리고 들어가지는 않을 겁니다.”
데리고 들어갈 것이다. 검 형태로.
삐유!
햅쌀이가 푸드덕 날아 오예지의 어깨 위에 안착했다. 오예지는 으어, 어, 어으, 어으어 하면서 매우 놀랐다. 건드렸다가는 새가 다치기라도 할 것 같은지 어깨 위를 곁눈질하면서도 차마 손가락도 못 가져다 대고 있었다. 날렵하면서도 탄탄한 근육질의 무투가가 작은 새한테 꼼짝을 못 하는 모습에 윤서가 살며시 웃었다. 다른 두 명도 작은 새에게 관심을 보였다.
“어머, 이 새는 뭐야? 애완 조인가?”
“이렇게 내놔도 도망치지 않는다니 놀랍군.”
삐융!
햅쌀이가 가슴을 뻐기면서 쏟아지는 관심들에 만족스러워했다. 윤서는 아무도 묻지 않았으나 먼저 말했다.
“만져 봐도 됩니다.”
“오, 안 도망가요?”
“네, 좋아해요.”
햅쌀이는 오예지의 넓은 어깨가 마음에 들었는지 아예 자리 잡고 앉아 삐윳삐윳 울었다. 여자 하나가 먼저 용기 내서 작은 머리를 쓰다듬었다. 햅쌀이가 눈을 감은 채 손길을 즐겼다. 남자가 나도 만져 볼래 하면서 손가락을 내밀었다. 햅쌀이가 남자의 손가락을 부리로 콕콕, 찌르며 장난쳤다. 그래도 남자는 좋다고 표정이 흐물흐물 녹아 버렸다.
윤서는 한 걸음 떨어져 그 모습을 구경했다. 떠오르는 풍경이 있었다.
‘햅쌀아, 오빠 손바닥 위로 올라와. 너를 위해 따뜻하게 뎁혀 놨어.’
‘오빠, 손 치워요. 그거 새한테는 너무 뜨겁거든요? 그리고 우리 햅쌀이 남자애라고요.’
‘야, 비켜. 햅쌀이가 나한테 오려고 파닥거리잖아.’
‘새 말고 페럿으로 변해 주라. 내가 품에 안고 다닐래. 응? 우리 귀여운 햅쌀이.’
햅쌀이도 그날들을 기억하고 있을까? 윤서는 가슴이 아릿해져서 주먹으로 심장 부근을 꾹 눌렀다. 약을 꺼낼까 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
“이봐요. 그쪽은 뭐 어떻게 불러 드릴까? 이름도 안 밝히고 프로필도 안 보이네.”
작은 새에게 관심이 쏠린 파티원들과 달리 파티 리더는 프로필 창을 읽을 수 없는 모자 쓴 남자를 경계하고 있었다. 윤서라는 이름의 일행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는 이 남자는 키도 크고, 어깨도 넓었으며 가만히 서 있는데도 위압감이 흘러나왔다.
“이봐요. 야, 무시해?”
파티 리더가 몇 번을 더 부른 후에야 권지한은 윤서에게서 시선을 뗐다.
“나 불렀어?”
“그래, 불렀다. 앞으로 3연던 하려면 서로 이름은 불러야 할 거 아니냐고. 그냥 모자라고 불러 버린다?”
“모자든 뭐든 사람 귀찮게 굴지 말고 네 맘대로 불러.”
“뭐야, 이 새끼가?”
파티 리더가 버럭 소리를 질렀으나 권지한은 신경 쓰지 않고 다시 윤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전화로도 말이 짧더니 대면하고도 이렇게 나오자 빡친 리더는 한바탕할까 싶었으나 이제 다른 헌터를 구할 수도 없는 시간이라 화를 눌러 참았다. 리더는 싹퉁 바가지 없는 모자 청년의 위아래를 삐딱하게 훑었다.
나이는 어리지만, 낮은 등급의 던전 공략 파티를 꾸리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났는데 이 남자처럼 묘한 압박감을 주는 사람은 처음 봤다. 저 안경 쓴 사람에게서는 뭔가 특별한 게 느껴지지는 않지만….
“창석아, 이 새 좀 봐. 너무 귀여워. 이름이 햅쌀이래.”
파티원들이 파란 새에게 정신이 팔려서 헤실헤실거렸다. 파란 새가 삐윳, 고개를 갸웃하면서 리더를 쳐다봤다. 그 모습은 귀엽긴 했지만, 리더는 던전 공략에 애완 조나 데리고 오는 뇌가 해맑은 사람과는 어울리고 싶지 않았다.
“각자 포션과 아이템 확인하고 준비됐으면 바로 출발하죠.”
“네에.”
리더의 쌀쌀맞은 목소리에 파티원들은 일제히 아이템을 확인했다.
윤서는 아직도 무투가의 팔뚝 위에 올라가 있는 햅쌀이에게 눈짓해서 제게 오게 했다. 햅쌀이가 파닥파닥 날갯짓해서 포르르 날아간 곳은 권지한의 어깨 위였다. 딱딱하게 굳어 있던 권지한의 입가가 느슨하게 풀렸다.
권지한은 손가락으로 햅쌀이의 깃털을 간지럽히면서 윤서에게 다가왔다.
“햅쌀이는 진짜 사람을 좋아하네. 제 주인이랑 똑같아.”
“…햅쌀이 주인은 사람 안 좋아합니다만.”
“그랬어? 전혀 몰랐네.”
권지한이 어깨를 으쓱했다. 윤서가 눈을 가늘게 떴다.
어째서인지 권지한이 지금 기분이 안 좋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리더가 둘을 향해 윽박질렀다.
“거기 두 사람은 준비 다 끝났어요? 그쪽 애완 조인지 뭔지도 새장에 들여놓고 오든가 해야 하잖아요. 던전 안에서는 그거 지키면서 못 싸우거든요?”
윤서는 리더에게 알겠다 대답하고는 햅쌀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햅쌀이의 조약돌 같은 까만 눈이 윤서를 응시했다. 이제 작고 파란 새는 사라지고, 푸른 보석이 장식된 단검이 나타날 시간이었다.
***
크아아아!
보스 몬스터가 등장하자 윤서가 누가 말릴 새도 없이 땅을 박차고 도약했다. 그의 손에는 푸른 보석이 달린 단검이 쥐어져 있었다.
스킬 <스파크>를 사용합니다.
파지직. 파직. 단검에 <스파크>가 깃들었다. 윤서는 자신을 향해 뻗어 오는 보스 몬스터의 앞발을 가볍게 피한 뒤 발목을 밟고 한 번 더 뛰어올라 뒷덜미에 착지하고는 바로 단검을 쑤셔 박았다.
크아악!
보스 몬스터가 괴성을 내질렀다.
뒤쪽에서 지켜보던 권지한이 검은 날개를 펼쳤다.
“구경꾼들은 내 뒤로.”
“아, 넵!”
넋을 빼놓고 구경하던 하급 헌터들이 부랴부랴 권지한의 커다란 검은 날개 뒤로 숨었다. 물론 머리는 빼꼼 든 채였다.
보스 몬스터의 뒷덜미에 단검을 힘주어 박은 상태로 윤서가 주우욱 미끄러졌다. 붉은 피가 솟구치며 <스파크>의 전류가 몬스터의 몸 내부에 가득 찼다. 일직선으로 이등분한 윤서가 얼른 멀리 떨어졌다.
콰아아앙!
거대한 폭발이 일었다. 충격파로 인해 달려들던 일반 몬스터들은 물론이고, 주변에 울창하던 커다란 나무들까지 폭발에 휘말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던전이 클리어되었습니다 : 현재 인원 6명 : 소요 시간 41분
개인 경험치 10,000 획득
현재 누적 개인 경험치 13,283,200,000
생명의 신이 ‘존재하는 넋’의 귀환을 반가워합니다.
죽음의 신이 ‘존재하는 넋’의 귀환을 반가워합니다.
윤서는 로그를 치워 버리고 손에 쥔 단검을 내려다봤다.
단검의 은빛 검신에 묻었던 붉은 피는 스스스 스며들듯이 사라졌고, 푸른 보석은 아직도 부족하다는 듯 번들거렸다.
“흐음.”
윤서는 미간을 좁히며 단검을 노려봤다.
D급 네이비 던전. 분명 울창한 정글이었는데 지금은 대형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듯이 황폐해졌다. 황무지가 된 땅 위에는 황홀한 표정을 지은 권지한과 입을 쩍 벌린 채 경악 중인 헌터 네 명도 있었으나 윤서는 지금 그들에게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방금 그는 ‘존재하는 넋’에 D급 수준의 <스파크>를 담았는데, 그 위력은 그가 의도한 바를 훨씬 웃돌았다. 거의 A급 수준으로 출력된 것이다.
충격파로 인한 먼지구름이 사라지고, 검은 날개를 해제한 권지한이 윤서에게 다가왔다.
“개존멋이다. 어떡하냐. 자기 무기를 손에 쥐니까 그냥 날아다니네. 그래, 내가 이런 광경 보려고 지금까지 살았지.”
“…….”
“왜 그래, 형? 착잡한 표정인데.”
“생각보다 너무 많이 파괴되어서요.”
“당연하지. 여기 D급이잖아.”
“저도 위력을 조절했단 말입니다.”
윤서는 공격 스킬이라고 할 만한 게 <스파크>, <오르트의 구름> 말고는 없었다. <염력>과 <관측자의 검>의 경우 공격 쪽으로 활용하고는 있으나, 다양한 활용 방면의 하나인 것이지 공격 스킬로 분류하지는 않았다.
단 두 개의 공격 스킬 중에서도 <오르트의 구름>은 넓은 규모의 범위 스킬이기 때문에 전투 시 자주 사용할 수 있는 건 <스파크>뿐이었다.
과거, 윤서는 ‘존재하는 넋’에 <스파크>를 담아 몬스터의 내부 세포에 붕괴를 일으키는 형태로 몬스터를 도륙했다. 이 S급 무기는 검날이 닿는 일정 범위 안의 전자기력을 일시적으로 약화시키는 동시에 검신에 담긴 공격 스킬의 효과를 3배 이상 증대시킨다. 윤서는 스킬을 세심하게 조정해서 항상 원하는 수준의 효과를 끌어냈다.
그런데 지금…. 보스 몬스터와 잡몹들만 폭발했어야 했는데 정글까지 폭발에 휩쓸려 버린 것이다.
윤서는 보호 스킬은 F~S 각 단계를 열 단계로 쪼개고, 그 쪼갠 단계를 또다시 열 단계로 나누더라도 세밀하게 조절해 낼 수 있다. 그러나 공격 스킬은 이렇게 의도한 바와 다른 출력이 나올 때가 많으니 이건 심각한 문제였다.
“햅쌀이가 오랜만이라 신나서 그런 게 아닐까?”
“햅쌀이 스스로는 효과 증감 못 합니다. 그냥 제 실력이 예전보다 아주 서툴러진 거예요.”
죽음의 신이 10년 전에도 이랬다고 말합니다.
진짜 이 메시지는 끌 방법이 없는 걸까?
“괜찮아, 형. 형은 천재 먼치킨이니까 금방 원하는 출력을 낼 수 있을 거야.”
먼치킨.
윤서는 이 단어를 오랜만에 들었다. 웹소설 좋아하던 리벤저가 자주 찾았던 단어였다.
‘먼치킨이 필요해…. 내가 기절한 사이 보스 몬스터를 해치워 줄 먼치킨….’
‘누나, 먼치킨이 대체 무슨 뜻이에요?’
‘데우스 엑스 마키나 같은 존재라고 해야 하나. 모든 걸 해결해 줄 존나 강한 능력자를 말하는 거야. 우리 채윤이보다 아주 조오오오금 더 센 능력자.’
그 얘기를 들은 후 윤서도 먼치킨의 존재를 간절히 원하게 되었다. 모든 고난을 해결해 줄 엄청나게 강한 사람이 정말 존재한다면 좋겠다. 그래서 내가 기절해 있는 사이 그 사람이 모든 상황을 끝내줬으면 좋겠다고.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기절했다가 눈을 뜬 서채윤은 기절하기 전보다 더 악화된 현실을 힘겹게 헤쳐나가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