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113)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113)화(113/195)
#104
‘권지한’이 스킬 <갈증>을 사용합니다.
갑작스러운 스킬 알림에 잠시 과거를 떠올렸던 윤서가 눈을 깜빡였다.
“형, 내가 저 바위 정중앙 맞혀 볼게.”
권지한이 손에 맺힌 붉은 구체의 크기를 조절해 조약돌 만큼 작게 만들더니 먼 바위를 겨냥해서 던졌다.
콰앙!
붉은 구체는 바위의 모서리를 스쳤는데 그럼에도 바위는 산산조각으로 파괴되었다.
“이것 봐. 내 컨트롤 실력이 이따위야. 그래서 난 던전에 팀으로 들어가기가 꺼려져. 자꾸 내 공격에 사람들이 휘말린단 말이지.”
“좀 더 연습하세요.”
“그게 쉬운 게 아니라고요, 형아. 연습한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권지한이 헛웃음을 지었다. 윤서는 잔해만 남은 바위가 있던 곳을 쳐다봤다.
사실을 말하자면, 권지한의 컨트롤 실력은 절대 형편없지 않았다. 오히려 평균을 내봤을 때 상위권에 속했다. 스킬의 위력이 너무 강력하여 범위와 출력치를 아무리 세세하게 조절해도 꼭 여파에 휘말려 다치는 사람들이 나오는 것뿐.
“다음 던전부터는 당신도 연습해 보세요.”
“형이 옆에서 봐줄 거야?”
“지금은 저도 엉망진창이라.”
“내가 모르는 사이 엉망진창의 뜻이 바뀌었나….”
윤서는 단검을 허리춤의 검집에 꽂았다. 푸른 보석은 여전히 파랗게 발광하고 있었다. 햅쌀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게 바로 몬스터의 피다. 이제 막 한 입만 봤을 뿐이니 애가 탈 것이다.
“이제 가죠.”
윤서가 출구 포탈을 향해 걸었다. 권지한도 옆에서 발맞춰 걸었다. 그런데 뒤따르는 발걸음 소리가 없었다. 출구 앞에서 윤서가 뒤를 돌아봤다.
“…….”
“…….”
파티원들은 아직도 입을 쩍 벌린 채 뭉쳐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안 나가세요?”
“아, 안 나가냐니…. 대, 대체 당신들은 뭐 하는 사람들… 입니까?”
“평범한 C급들입니다.”
“그, 그런 말은 개도 안 속을 겁니다. 어떻게 C급 각성자가 D급 보스 몬스터를 그렇게 단번에…!”
“게다가 이 정글을 날려 버릴 수준이라니. 이, 이런 위력은 B급 던전에 갔을 때도 접한 적 없다고요!”
“무슨 <스파크>가 이렇게 강해. 이게 방어형 헌터의 공격력이라고? 당신들 대체 정체가 뭐야?”
파티원들이 꽥꽥 소리쳤다. 윤서는 으음, 하며 고개를 기울였다. 귀찮게 될 거라고 예상하기는 했다. 지금 <거짓 기억>을 사용할까? 3연던 다 마치면 사용하려고 했는데.
윤서가 마력을 끌어 올리는 그때였다. 권지한이 윤서의 앞을 거대한 등빨로 가렸다.
“우리 정체가 뭐가 중요해? 경험치 쩔 받으면 개이득인 건 그쪽들 아냐?”
“뭐?”
“생각해 봐. 가만히만 있으면 힘을 숨긴 헌터가 알아서 버스 태워 줄 거고, 시간도 단축되고, 목숨도 안전하고. 너희는 부산물이나 알아서 챙기면 돼. 존나 개이득이지.”
“…….”
“어때? 딜?”
“자, 잠깐 고민할 시간을 주세요.”
“1분 줄게.”
권지한은 늘 맞는 말만 한다. 윤서는 권지한의 뒤에서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네 명은 모여서 ‘야, 진짜 개이득은 맞긴 하지 않냐.’, ‘그런데 정체를 숨기는 게 너무 수상하잖아.’, ‘새를 키우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은 없댔어.’, ‘너무 강한데 수틀리면 우리 죽일지도.’ 같은 대화를 속삭였다. 그러다 파티 리더가 이쪽을 보며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말해.”
“나머지 두 던전도 여기처럼 폐허로 만들어 버리시면 저희가 던전 부산물 수입을 못 하옵니다만….”
“아, 그렇지. 참. 그럼 이렇게 하자.”
권지한이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손가락을 튕기고는 윤서를 돌아봤다.
“나머지 두 던전도 여기처럼 황폐화되면 형이 대신 배상하고, 이 사람들한테 정체도 알려 주기. 어때?”
윤서가 미쳤냐는 눈길을 던졌다. 모자챙이 만들어 낸 그늘 아래에서 권지한의 잿빛 눈은 흥밋거리를 찾은 듯 빛나고 있었다.
“형 어차피 스킬 컨트롤 향상을 위해 이곳에 들어왔잖아. 이 정도 제약이 있으면 도움 될 것 같은데?”
“그래도 혹시 실패하면….”
“실패할 것 같아? 그렇게 자신이 없어?”
권지한이 윤서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윤서는 이게 권지한의 도발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말대로 이 정도 조건은 걸어야 조금 더 절박해질 것 같았다. 그리고 만약 실패한다 해도, 딱히 스킬로 계약을 맺는 것도 아니니 그냥 그때 가서 말 바꾸면 될 일이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권지한이 씩 웃었다.
어려운 산수 문제를 푼 어린애 보듯이 기특한 눈길에 윤서는 부담스러워졌다.
“우리 형은 동의했는데 너네는 어쩔래?”
“저, 저희도 동의하겠습니다. 두 분의 정체가 어떻든 확실히 이런 빠르고 안전한 공략은 저희에겐 이득이니까요….”
진입 전과는 딴판으로 달라진 파티 리더가 공손하게 대답했다.
그렇게 경험치 버스가 시작되었다.
***
던전이 클리어되었습니다 : 현재 인원 6명 : 소요 시간 26분
개인 경험치 2,000 획득
현재 누적 개인 경험치 13,283,206,000
세 번째 던전의 출구 포탈이 생겼다. 윤서는 단검을 공중에 휘리릭 돌리고 손잡이를 붙잡았다가 다시 휘리릭 돌렸다. 기분이 좋다는 뜻이었다.
“진짜 너무한다. 세 번 만에 이렇게 능숙해진단 말이야? 사람이 인간미가 없어, 인간미가.”
“과장하지 마세요.”
“어떻게 이렇게 칼같이 정확할 수가 있지? 목 위만 거대한 숟가락으로 도려낸 것 같아. 대체 어떻게 하는 거야?”
“그쪽도 할 수 있잖아요.”
“난 못 해. 절대 못 해.”
권지한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방금 윤서는 세 번째 던전의 보스 몬스터의 목뒤에 단검을 꽂으면서 <스파크>의 위력을 이 보스 몬스터의 머리로 한정시켰다. 그 결과 머리만 싹 불타 사라졌다.
“내 컨트롤이 형의 반의반만 됐어도 다른 사람들이랑 던전 돌 때 좀 더 편하게 돌 수 있을 텐데.”
“그걸 다른 사람 탓 안 하는 것도 능력입니다.”
“응? 무슨 소리야. 내 실력 부족인데 어떻게 다른 사람 탓을 하겠어.”
권지한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윤서는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제 말은 그 뜻이 아니라….”
생명의 신이 ‘권지한’의 가치관으로는 질문을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말합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뭐야. 무슨 뜻인데.”
“아니에요.”
권지한은 툴툴거렸지만 더 묻지는 않았다.
권지한의 머릿속에는 내 스킬을 알아서 피하지 못한 약자를 탓한다는 개념 자체가 아예 없을 것이다.
윤서는 권지한이 이런 사람이라서 좋았다.
두 사람은 출구 포탈 옆의 바위에 기대서서 파티원들이 부산물을 모두 챙기길 기다렸다.
첫 던전 때와는 달리 몬스터를 제외한 모든 환경을 온전하게 놔뒀기에 채집할 거리도 많았다. 약초로 쓸 수 있는 풀, 야광석 재료가 되는 석재, 해독제로 만들 수 있는 열매…. 심지어 몬스터도 목 위 빼고는 온전하다. 파티원들은 신이 나서 몬스터 가죽을 벗겨 냈다.
윤서는 단검의 검날을 손으로 쓸었다. ‘존재하는 넋’은 아직 덜 만족스러운 듯했으나 피를 달라고 더 재촉해 오지는 않았다. 권지한이 윤서의 멀쩡한 손가락 살갗을 보고 말했다.
“그거 제 주인은 다치게 하지 않나 보네.”
“보통 모든 무기는 이런 속성이 있습니다. 그쪽 무기도 이렇지 않나요?”
“난 안 그래. 귀속이 아니라서 그런가 봐.”
“…대던전에 들어가기 전에 무기부터 찾는 게 좋겠군요.”
윤서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렇게 말했다가 합, 입을 다물었다. 혹시 들었을까 해서 파티원들 쪽을 봤지만 그들은 수집물 마무리 작업에 한창이었다.
“말해도 돼. 어차피 내일모레면 온 세상이 알게 될 텐데.”
“그래도 소문으로 알음알음 퍼져서 아는 것보다는 연맹의 공식 발표로 알게 되는 게 나으니까요. 아무튼 양평에 다녀오든지, 경매를 하든지, 대장장이들을 재촉하든지 무기부터 마련하세요.”
“안 그래도 암시장에 가서 몇 개 사 두려고 했어. 같이 가자, 형.”
“암시장이라면 ‘그림자 암시장’ 말하는 겁니까?”
“응, 마침 다음 주 주말에 암시장 열리거든. 나 초대장 하나 더 있는데 형한테 줄게.”
그림자 암시장은 양평 아이템 시장의 음지 버전이었다. 상반기에 이틀, 하반기에 이틀, 1년간 딱 나흘만 열리는데 정확한 날짜와 장소가 극비이기에 아무나 들어갈 수 없고 초대장을 받아야만 출입이 가능하다. 양평 템 시장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거래되는 금액으로 보면 템 시장 뺨을 칠 정도. 양지에서는 거래 가능한 아이템 규정이 빡세기 때문에 정말 거액을 내놓지 않고서는 구할 수 없는 반면 암시장에서는 위험하고, 위법한 물건들이 쏟아지기 때문에 암시 초대장을 받으려는 고객들이 줄을 서 있다고 했다.
“형도 같이 가서 나 무기 고르는 것 좀 도와주라.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잖아.”
“…….”
다음 주면 대던전이 발표된 후이므로 손님도 많을 테고 아이템도 더 많이 풀릴 것이다.
윤서 또한 마침 필요한 아이템이 하나 있었다.
“좋습니다. 같이 가죠.”
“고마워.”
권지한이 빙긋 미소지었다.
“…….”
생명의 신이 ‘권지한’은 귀엽다고 말합니다.
윤서도 생명의 신에게 지극히 공감했다.
출구 포탈 시간이 20분 남았을 때 부산물 수집을 끝낸 파티원들이 힘찬 발걸음으로 걸어왔다. 그들은 인벤토리를 가득 채웠는지 등에도 커다란 짐을 짊어지고 있었고, 양손에도 뭔갈 잔뜩 들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정체 모를 헌터님들. 덕분에 안전 레이드 잘하고 갑니다!”
“아닙니다. 말씀드린 대로 다른 헌터들에게는 발설하지 말아 주시길 부탁합니다.”
붉게 상기된 얼굴로 우렁차게 인사하는 하급 각성자들을 보면서 윤서가 부탁했다.
“그럼요! 저희 입 무겁습니다.”
각성자 하나가 결의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
스킬 <확신의 저울>을 사용합니다.
상대의 발언을 판단합니다.
확신 80 : 중도 20 : 의문 0입니다.
이 정도면 굳이 <거짓 기억>을 사용하지는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의외라고 생각하던 윤서에게 파티 리더가 다가왔다.
“저, 혹시 앞으로 다른 던전들도 가실 거면…. 괜찮으시면…. 저희와 함께… 가시지 않으시겠사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