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116)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116)화(116/195)
#106
“와, 우리 햅쌀이 오늘은 페럿이네. 진짜 귀엽다.”
삐융삐융.
권지한을 알아본 햅쌀이가 후다닥 권지한에게 향했다. 커다란 손에 몸을 비비면서 잔뜩 귀여움받다가 유준철을 힐끔 쳐다봤다.
“새라고 들었는데…. 아, 그래…. 모양 변형…….”
유준철은 허탈하게 중얼거리고는 햅쌀이에게 반갑다며 인사했다. 햅쌀이는 도도하게 흘겨보기만 했다. 이 하얀 페럿은 권지한의 손바닥에서 내려올 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
윤서는 총총 걸어와 권지한의 옆에 앉았다. 권지한이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엉덩이를 조금 옮겼다.
“형, 오늘 하얀 티 입었네.”
“햅쌀이 털이 하얘서요.”
“귀엽다. 그런데 페럿이 보통 삐융삐융 우나?”
“햅쌀이는 어떤 형태든간에 이렇게 울어요. 이게 상태 이상 해소 포션들입니까?”
윤서가 햅쌀이 옆의 포션 하나를 집어 들며 물었다.
“예, 전부 S급인데 한번 드셔 보십시오.”
총 세 병이었다. 윤서는 하나씩 마시고 상태 이상이 굳건함을 확인시켜줬다.
“단 1분도 감소하지 않았습니까?”
“네.”
“으음, 다들 밤새워 가며 만들었는데…. 다시 제작하라고 연락 돌리겠습니다.”
유준철이 한숨을 내쉬었다. 윤서는 예상한 결과이기도 하고 상태 이상이 사라지길 원하지도 않아서 담담했다. 권지한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삐유삐유.
햅쌀이가 권지한의 손바닥 위에서 집무실 이곳저곳을 구경하는 동안 인간들은 실드 트랩과 공략 아이템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윤서는 실드 트랩 설계도를 보면서 보완할 부분을 지적하며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윤서가 제시한 공략법에 따라 아예 새로운 아이템 하나도 제작 중이었는데 윤서는 실험 영상을 확인하고는 새삼 인류의 기술력에 놀랐다.
“가이아 스킬 쪽은 어때요? S 길드와 엔드리스 팀도 모른다던가요?”
“예, 그쪽에서도 찾고 있는데 실마리도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가이아 스킬은 기존 소유자가 사망하면 다른 이에게 넘어가는데, 아직 세 개나 소유자를 찾지 못했다.
현재 보유자
마지막 보유자
가이아의 눈
권지한
이강진
가이아의 대지
윤서
윤서
가이아의 마음
휴스 사이로
가이아의 그림자
이강진
가이아의 꿈
이도민
윤서는 표를 보면서 툭, 툭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현재 보유자가 존재하지 않거나… ‘서채윤’처럼 일부러 잠적하고 있다가 대던전을 발표하고 나면 스스로 찾아올 수도 있다. 윤서는 이들이 잠적한 거라면 굳이 찾고 싶지 않았다. 작정하고 숨어 있다면 찾아낼 방법도 없었고.
“대던전 발표 후 상황을 지켜본 뒤 이 스킬과 특성의 존재를 공개하려고 합니다. 그때되면 자기가 ‘선택된 자’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쏟아질 터라 두 분의 검수 과정이 꼭 필요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최종 명단 확인하면서 같이 확인하면 되겠죠.”
“이번에 유럽 가실 때 유럽 협회장과는 만나지 않으실 거지요?”
“라 비지나 헌터와 만난 후 예언 장면만 보고 돌아오고 싶군요.”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유준철이 U패드에 뭔가를 타닥타닥 입력했다.
윤서는 머릿속으로 일정을 정리했다. 일단 이번 주 토요일인 9월 4일은 S급 옐로우 던전 공략. 그리고 12일에는 암시장에서 권지한의 무기를 사야 하고, 19일에는 그레이스의 예언 참관이 예정되어 있다.
이번 계시에는 많은 이가 기대를 걸고 있었다.
예언 스킬 사용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이는 잠이 들어야 하고, 어떤 이는 기도를 해야 하고, 어떤 이는 피를 제물로 바쳐야 하고…. 그레이스의 경우에는 반드시 자작나무 숲 안쪽의 호수에 몸을 담가야 사용 가능했다.
이렇게 방법은 다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으니 예언 발동 시간은 주위 각성자들의 가호 신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인간은 알지 못하는 세계에서 가호 신들도 상호 작용을 하고 사회적인 교류를 하는 건지….
예를 들어 ‘공간’의 가호를 받는 도등수의 경우에는 전 세계 예언자들이 모두 탐내는 방청인이었다. 도등수가 있으면 예언 스킬 발동 시간이 길어져서 더 많은 정보를 얻어 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19일에는 가이아의 가호를 받는 자들이 두 명이나 참관할 예정이다.
그만큼 많은 이가 기대하고 있었다.
그때 권지한이 윤서를 불렀다.
“형, 궁금한 게 있는데.”
“네.”
“이건 대던전 때 얘기인데.”
권지한이 윤서의 표정을 살폈다. 대던전 때 얘기를 해도 되냐는 것이다. 유준철은 저 무신경한 녀석이 이 경지까지 왔구나 하고 속으로 감격했다.
윤서는 얘기하라고 눈썹만 까딱했다.
“왜 가이아 스킬을 초반부터 오픈하지 않았어? 그… 중반에야 서로에게 알려 줬잖아. <가이아의 마음>의 텔레파시 같은 건 초반부터 오픈했으면 조금 더 수월하지 않았을까.”
“다들 다른 사람들의 경계를 사지 않기 위해서 비밀로 했다더군요. <가이아의 눈>, <가이아의 마음>, <가이아의 그림자> 모두 타인의 사적인 부분을 침해하는 스킬이니까요.”
“그럼 형의 <가이아의 대지>는?”
“…….”
윤서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아, 이유가 뭐더라?
윤서가 미간을 좁혔다.
“<가이아의 대지>뿐만이 아니라 제 다른 스킬들도 자세하게 공개하지는 않았습니다. 마력 효율이 높고, 전투 활용에 좋은 것들만 주로 사용했기 때문에…. <가이아의 대지>는 어차피 공간 이동은 저 혼자만 가능하고… 탐지도 전투 시에는 딱히 필요가 없어서 자주 사용하지 않았던 것 같네요.”
“<가이아의 대지> 특성은 공간 이동과 탐지, 두 개야?”
“하나가 더 있긴 한데 이 역시 잘 쓰지는 않습니다. 쓸데없이 마력 소모가 심해서요.”
“뭔지 궁금한데.”
“…….”
권지한이 호기심을 내비쳤지만 윤서는 얘기해 주지 않았다. 이번 대던전에서 자주 사용할 것 같으면 당연히 털어놨겠지만 그것도 아니라서.
그들은 논의를 이어가다가 이른 점심을 들기로 했다. 구내식당 메뉴는 유준철의 집무실로 주문했다. 석영 길드장 특권이었다. 오늘 메뉴는 떡갈비 정식과 잡채, 보쌈 정식과 동치미, 양지쌀국수와 춘권이었는데, 윤서는 당연히 셋 다 먹었다. 햅쌀이에게도 나눠줬지만 좋아하지는 않았다.
식사 후 다시 여러 논의를 하다 보니 브리핑 시간이 30분 앞으로 다가왔다.
시간을 확인한 유준철이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사실 윤서 씨가 꼭 아셔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오늘 대던전 발표하면서 검은 포탈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으려고 합니다.”
윤서의 담담했던 얼굴이 대번에 얼어붙었다.
“절대로 동의할 수 없습니다. 무엇과 싸우는지도 속인 채 전쟁터로 병사를 끌어들이려는 겁니까?”
윤서가 화를 내자 햅쌀이도 삐윳! 하면서 유준철을 향해 몸을 꼿꼿이 세우고 위협 자세를 취했다.
유준철이 얼른 고개를 저었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어차피 검은 포탈의 진입 조건이 ‘선택된 자’일 가능성이 높고….”
“그건 추측일 뿐입니다.”
“예, 그리고 사실은 우리가… 인류가 오랫동안 계획한 일이 있습니다. 행성 지도나 우주선, 워프 홀 말고도 10년간 계획해 둔 것 말입니다.”
“무슨 계획이죠?”
“문제는 이걸 지금은 발설할 수 없다는 겁니다. 몇몇 정부 조직 수장과 헌터 조직 수장들만 아는 기밀인데, 이게 윤서 씨의 ‘계약서’ 스킬 비슷한 함구령으로 묶여 있어서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 확실한 건 검은 던전에 대해 대던전 공략자들에게 알려 주지 않더라도 그들의 신변에는 어떤 해도 없을 거란 사실입니다.”
스킬 <확신의 저울>을 사용합니다.
상대의 발언을 판단합니다.
확신 80 : 중도 10 : 의문 10입니다.
“100% 확신하고 있진 않군요.”
“아직은 계획이라고 해야 하나. 제작 단계라서요…. 이 작전의 성공을 확신하기 위해서는 윤서 씨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런데 계약 때문에 설명을 못하는군요. 계약을 건 헌터가 지금 딱 던전에 들어가 있는 바람에 해제를 못했습니다.”
“권지한 헌터도 계약에 묶여 있습니까?”
윤서가 권지한을 쳐다봤다. 권지한의 눈매가 휘어졌다.
“서채윤 정도가 아니면 누가 감히 나한테 계약 스킬을 쓰겠어. 무슨 작전인지 너무 궁금하지?”
“네.”
“좋아. 미래를 궁금해하는 자세, 아주 훌륭해.”
“…….”
“인간은 지금 뭔가를 만들고 있어. 그게 뭐냐면 폭탄 아이템 같은 건데….”
권지한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
설명을 듣던 윤서의 눈이 점점 커다래졌다.
함구령이 걸린 유준철은 그 계획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도 덧붙이지 못했는데, 사실 그가 부연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인류는 ‘이것’을 아주 오래 준비해 왔다.
처음엔 ‘이것’의 활용성은 거의 희미하다고 생각했다. 서채윤을 찾은 후에도 성공 가능성에 대해서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다.
‘브레스 한 번에 제 실드에 금이 갔으니 최소 7000만 톤의 파괴력을 가졌다고 보면 됩니다.’
서채윤이 이 말을 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유준철은 지금까지는 염두에 두지 않았던 ‘이것’을 떠올렸다.
제대로만 성공한다면 대던전 속의 검은 던전은 길고 끔찍한 공략 과정 없이 단번에 클리어할 수 있다.
가이아 시스템을 향한 인간의 첫 반격이 될 것이었다.
***
대화가 끝나고 집무실을 나온 윤서는 복도에서 잠깐 생각에 빠졌다.
“…….”
싱숭생숭한 기분에 가슴을 손으로 꾸욱 눌렀다.
이 일이 아니더라도 오늘은 마음이 어수선한 날이었는데, 더 어수선해졌다.
권지한과 유준철은 성공을 확신하는 모양이었지만, 윤서는 더 설명을 들어봐야 할 것 같았다. 양전자가 뭐가 어떻고, 반수소가 뭐가 어떻고…. 아직 이해 안 되는 부분이 많다.
나중에 시간을 들여 설명해주겠다고 했는데 마음 같아서는 그냥 설명은 됐고 내가 뭘 어떻게 하면 되는 건지만 알려 달라고 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