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119)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119)화(119/195)
#109
“윤서 씨는… 안 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트라우마가… 치유 내성이…. 그런 유리 몸으로 어떻게….”
유리 몸?
윤서가 어이없어서 한마디 하려는데 곧바로 수재희가 말했다.
“그래요, 형. 순두부 같은 몸으로 대던전이라니….”
순두부?
“야, 너는 그런 유리세공품 같은 몸으로 대던전에 또 들어가려고 하냐. 그냥 밖에서 우리 기다려.”
유리세공품?
“연두부 같은 윤서 헌터는 안 들어가는 게 좋을 듯싶네….”
연두부? 맛있겠다.
까지 생각하던 윤서가 말한 이들을 노려봤다.
“전 대던전의 공략법을 알고 있고, 길 안내가 가능한 유일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런 몸으로도 당신들 세 명을 5초면 제압할 수 있으니 그런 쓸모없는 걱정은 말아 주시죠.”
갈색 눈에서 푸른 빛이 번뜩였다. 감히 누가 누구 걱정을 하냐는 듯이….
박수빈, 수재희, 홍의윤, 알렉이 깨갱 해서는 윤서로부터 멀어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권지한이 낮게 웃고는 속삭였다.
“다들 형을 걱정하네. 정작 형은 저 사람들 걱정에 잠을 못 이루는데.”
“…….”
세 S급 헌터들은 이 낮은 속삭임도 들었을 것이므로 윤서는 굳이 덧붙이지는 않았다.
몇 분 후, TV 화면에 세계 헌터 연맹의 의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던전의 재림을 발표하는 연맹 의장의 얼굴은 침통하기보다는 비장했고, 걱정하기보다는 단단히 각오한 눈빛이었다.
의장의 발표가 끝나자 곧바로 정규 편성이 취소되고 긴급 속보가 이어졌다. 30분 후 석영 길드장의 공식 발표가 있을 거라는 속보도 나왔다.
소식을 들은 퍼펙트의 가족과 지인들도 연락을 해 왔다. 홍의윤이 “어, 삼촌.” 하면서 핸드폰을 귀에 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박수빈와 수재희도 각자 가족과 친구의 연락을 받고 브리핑실을 나갔다. 브리핑실은 대번에 한산해졌다. 남은 이라고는 윤서와 권지한, 멀찍이서 누군가와 연락 중인 몇몇뿐이었다.
윤서의 핸드폰 또한 연락이 쏟아지고 있었다.
박영범
이게무슨 일이야;; 대던전이라니
고희원
아니이런걸 이제야 공개한단 말이에요?
자기들 가족은 다 대피시키고
한달 남으니까 이제야 우리한테 알려주는거봐요
존나어이없어!!
박영범
응?
연맹장 자녀 둘 다 각성자인데 이번 대던전 레이드멤버로 참여한다는데?
고희원
…..
박영범
그래도 이제야 알려 주는 건 심하지… 이래서 요즘은 정보가 힘이라고들 하나 봐
고희원
와 저 방금 아는 사람한테 들었는데
석영에서는 퍼펙트가 들어갈 확률이 높대요ㅠ 윤서 오빠 임시팀에서 탈락 안 했으면 어쩔뻔했어요;;;
이들뿐만이 아니었다.
헌터님 이게 무슨 일인지ㅠㅠ 정말 대던전이 나타나나요?
헌터님 뉴스 보셨어요?
헌터님 저 여의도 00 빌라입니다. 통화 바랍니다.
실드 트랩 설치를 해 준 고객들로부터도 메시지가 한가득 도착했다.
박지긋지긋
윤서야. 뉴스 봤어? 10년 전의 대던전이 나타날 거래.
도민이가 죽은 그 던전 말이야.
‘박지긋지긋’에게서도 연락이 와 있었다. 그는 이도민의 친구로, 이도민이 그 리벤저 이도민인 건 알았으나 윤서가 서채윤이라는 걸 모르고 있었다.
셋이서 어울린 적도 있지만 이도민의 친구에 가까웠는데 많이 외로운지 자꾸 윤서에게 연락을 했다. 대격변 이전의 평화로웠던 삶을 공유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죽었고, 이 녀석도 어린 시절을 함께했던 이는 윤서밖에 남지 않아 더 연을 끊지 못하는 것이다.
방금 봤어.
박지긋지긋
충격이다.. 거기에 도민이 흔적도 있을까?
없을 거야. 던전은 닫힐 때 그 안에 있는 것들도 소멸하니까.
박지긋지긋
그런가. 그나저나 오랜만에 도민이도 보러 갈겸 만날래?
도민이를 보러 가자는 건 현충원에 가자는 걸 의미했다. 윤서는 이 녀석과 만나면 분명히 이도민의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므로… 만나자는 말을 계속 거절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윤서는 잠시 생각하다가 긍정의 답변을 보냈다.
그래. 만나자.
박지긋지긋
어!?
웬일이야 만나 주다니
과연 지구 대재앙 뉴스 정도는 떠야 윤서님을 볼 수 있는 거였네
박지긋지긋
다음 주 괜찮아?
올해까지는 바빠
박지긋지긋
.. 만나자며
내년에 보자. 1월 아무 때나.
단 지금은 한가하게 사람 만날 때가 아니니 날짜는 대던전 공략 이후로 말했다.
박지긋지긋
1월….
이도민의 친구는 몇 분 동안 말이 없다가 메시지를 보냈다.
박지긋지긋
그래, 1월에 보자. 첫째 주 주말 어때?
대던전은 10월 14일 열리고 시간 제한은 12월 31일이다. 78일 내로 클리어하지 못하면 내년 1월 1일에 지구는 멸망할 테고 그러면 이 약속은 자연스레 취소였다. 친구도 그것을 알기에 망설인 것이다.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를 정하는데 권지한이 쓰윽 얼굴을 들이밀었다.
“뭐야, 형. 누구랑 연락해?”
“으악.”
너무 가까이서 들린 목소리에 윤서가 놀라서 핸드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물론 S급의 순발력으로 바닥에 닿기 전 잡아챘다.
“왜 이렇게 놀라? 내 뒷담 깠어?”
“그렇게 갑자기 잘생긴 얼굴을 들이대면 누구나 놀랍니다. 앞으로는 이러지 마세요.”
윤서가 엄중하게 경고했다. 본인이 어떤 형용사를 넣었는지는 자각하지 못했다.
권지한은 피식 웃었다.
“미안. 누구랑 이렇게 심각한 얼굴로 연락하나 싶어서. 낙엽 사람들?”
“친구랑 약속 좀 잡았습니다.”
“…….”
그러자 잠깐 생각에 잠겼던 권지한이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현충원?”
어떻게 알았지? 내용이 보였나?
유서가 눈을 깜빡이자 권지한은 다 알겠다는 듯한 눈을 했다.
“나도 갈래. 언제야?”
“제가 친구 만나는데 권지한 헌터가 왜 따라갑니까?”
“현충원이잖아. 당연히 가야지.”
장소가 현충원이란 것과 친구 만나는데 따라가는 게 무슨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권지한이 너무 당연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어서, 박력에 져 버린 윤서는 저도 모르게 알겠다고 대답했다.
“이건 단톡방에는 말하지 마. 수재희랑 박수빈한테도 절대 언급 금지야. 나만 따라갈 거야. 알았지?”
“…왜요?”
“후우. 이렇게 말해 두지 않으면 또 덕지덕지 들러붙을 거고 사람 좋아하는 형은 또 좋아서 허락할 거잖아. 형은 연하한테 너무 인기가 많아. 한 명으로는 부족한 건지…. 내가 정신 안 차리면 너무 쉽게 쌩판 남한테 연락처 주려고 하고, 아주 그냥 열린 마인드야. 대체 누가 형보고 무심하대? 아가페가 따로 없는데. 겉모습만 덤덤하면 뭐 하냐고. 저기 좀 봐. 햅쌀이도 지금 다른 남자한테 가서 존나게 애교부리고 있잖아.”
권지한이 가리키는 쪽을 보니 햅쌀이가 화심에게 궁둥이를 들이대며 관심을 표현하고 있었다. 화심은 무뚝뚝하게 쳐다보고 있었는데 눈동자는 요동쳤다.
“그러고 보니 화심도 형보다 연하지? 어이가 없어, 진짜.”
권지한이 투덜거리더니 “햅쌀아.” 부드러운 목소리로 페럿을 불렀다. 햅쌀이가 삐유, 하면서 후다닥 달려왔다.
윤서는 권지한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고 그냥 귀엽다고만 생각했다.
결국 그가 보는 앞에서 친구에게 ‘한 명 더 가도 괜찮아?’라는 메시지를 보냈고, 권지한은 그제야 만족했다.
“형, 이제 우리는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대던전을 클리어해야만 해.”
“이 약속이 아니더라도 대던전은 클리어해야죠.”
“아니, 내 말은 그냥 클리어가 아니라 우리 둘 모두 살아남아야 한다고.”
“…….”
“난 꼭 살아서 형 친구 형한테 직접 소개받을 거야. 아, 의욕 솟구친다. 형의 어린 시절 이야기도 들어야지. 벌써 존나 재밌어.”
권지한이 시원하게 웃었다. 무척 근사한 미소였다.
윤서는 그제야 권지한도 검은 포탈에 들어가는 단 한 명을 내내 의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자가 살아 나오는지 죽는지는 예지에 나오지 않았다.
검은 던전에서의 ‘그 계획’이 완벽하게 성공하려면 반드시 권지한과 윤서가 둘 다 들어가야 하지만, 단순히 던전 클리어만 놓고 보자면 권지한 한 명만 들어가도 된다.
그러나 윤서는 권지한 혼자 들여보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권지한의 표정엔 어떤 두려움과 불안도 없었다. 윤서를 응시하는 잿빛 눈은 자신감 넘쳤고, 입매는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윤서는 그 미소를 지키고 싶었다. 절대로 일그러지지 않게. 절망으로 물드는 일 없도록….
***
연맹장의 발표가 끝나자 세계 각국의 헌터 협회에서도 정식으로 대던전 지원자를 받기 시작했다. 신청 기간은 다음 주 주말까지로 길게 잡았다.
길드에 소속된 이들은 길드를 통해 지원자 등록을 하고, 용병은 따로 협회에 등록해야 했다. 유준철이 가족과 상의 후 결정하라며 퇴근을 지시했지만 퍼펙트 팀원들은 다 같이 모여 앉아서 U패드로 지원자 등록을 했다.
특히 홍의윤은 그걸 스크린 샷까지 찍어서 SNS에 올렸다.
HELLHONNG
두려움?
죽음?
그런 건 상관없어-
나는
헌터니까.
그렇게 글을 올린 후 뿌듯함에 잠긴 홍의윤에게 수재희가 말했다.
“형, 그런데 연맹장 말로는 400명에서 500명만 들어갈 거래. 지원자 많으면 형 떨어질 수도 있어.”
“뭐야, 씨발? 그딴 엿 같은 규칙이 어디 있어!”
“나한테 화내지 말고 연맹장이나 우리 길드장 형한테나 말해 봐.”
“길드장님보다는 윤서 씨의 입김이 더 세지 않을까요?”
박수빈이 윤서에게로 화살을 돌렸다. 홍의윤이 윤서에게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나도 들어갈래. 나 정도면 A급 중에서도 탑이고 엄청난 전력이야. 잘할 수 있어. 나도 대던전에 들어가서 복수하고 싶어. 그리고 지구를 안전하게 지켜 낼 거야.”
“…제가 정하는 게 아닙니다.”
“어떻게 테스트할 거야? 필기시험도 있어?”
“필기는 모르겠고 실전 테스트 정도는 하겠죠.”
“실전 테스트? 다행이다. 난 떨어질 일 없겠네.”
홍의윤이 안도했다. 자신의 능력에 대해 한치의 의심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