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12)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12)화(12/195)
#10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내용에 윤서는 기척을 숨기고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다가갔다. 남자 두 명이 대치하고 서 있었다. 한 명은 덩치가 컸고, 다른 하나는 윤서보다도 작은 듯했다. 커다란 남자는 무뚝뚝한 얼굴로 가만히 서 있었으나 미간은 살짝 구겨져 있었고, 작은 남자는 새침한 표정이었다.
윤서는 그중 커다란 남자의 얼굴을 바로 알아봤다. 1인 길드석에 앉아 있던 떡대남, 딥블루였다.
“어머니는 형이 포기한 거라고 말했지만 난 믿지 않았어. 자유롭게 움직이기 위해 성까지 바꾸고 용병이 된 사람이 3년 만에 포기할 리가 없지.”
“…….”
“그런데 이해가 안 돼. 왜 석영에 들어온 거야? 움직이는 데에 제약이 생길 텐데. 그러면 서채윤 찾기도 더 힘들어지잖아.”
떡대남은 묵묵부답이었다. 동생이 답답한 듯 어깨를 크게 들썩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왜 나한테도 말 안 해 줘? 우리가 적도 아니고 같은 목적으로 서채윤을 찾아다니는데.”
윤서는 머릿속으로 대화를 정리했다.
둘은 같은 핏줄로만 길드를 결성하는, 이른바 길드 가문의 일원이었던 모양이다. 이 가문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서채윤을 찾고 있었는데, 떡대남이 좀 더 자유롭게 찾기 위해 성을 바꾸고서 길드를 나갔다. 그러다 석영에 합병되면서 오늘 만난 것이다.
‘아직도 서채윤을 찾는 사람들이 있었구나.’
서채윤 잠적 초기에는 아예 직업이 ‘서채윤 추적자’인 각성자가 생기기도 했다. 잠적한 사람 조용히 살게 해 주자는 쪽도 있지만, 서채윤의 삶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어떤 부호는 어마어마한 현상금을 걸었으며, 어떤 단체에서는 높은 지위를 주겠다고 선언했다. 나중엔 서채윤 찾기는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일을 이뤄 내고자 하는 인류 집념의 상징…. 그러다 최근 몇 년 들어서는 잠잠해졌는데, 여기서 추적자를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세상은 언제쯤 서채윤을 잊을까.’
윤서는 이럴 때마다 허탈해졌다. 본인이 못 잊는 마당에 남들보고 잊으라 하기는 좀 그렇지만…. 세상이 아직도 서채윤에 혈안이 되어 있으니 윤서도 과거를 잊기가 더 힘들었다.
‘그런데 이 형제는… 흥미 때문에 찾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윤서는 좀 더 대화를 들어 보기로 했다.
“형.”
“김진해.”
동생의 답답해하는 음성에 떡대남이 굵은 저음으로 이름을 불렀다.
“나는 서채윤을 찾기 위해 석영에 왔다.”
“뭐…? 그럼 서채윤이 석영에 있다는 말이야?”
“아마도.”
“…어머니한테 이 얘기를 해도 될 만큼 확실해?”
떡대남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윤서는 할 말이 없어졌다. 떡대남의 추리는 틀렸는데 이제는 틀리지 않은 게 되어 버렸다…. 이제 서채윤은 석영 소속이니까.
“알았어…. 알려 줘서 고마워. 아직 집으로 돌아올 마음은 없는 거지?”
“…….”
“심해 형, 큰형이 그곳에서 어떻게 싸웠고 어떻게 죽었는지 알게 되면 우리 마음도 좀 편안해질까?”
동생의 목소리는 서글펐고, 그에 돌아오는 답변이 없어서 더욱 안타깝게 흐려졌다.
윤서는 뒤돌아 자리를 떠났다.
무작정 걸어 이름 모를 나무 아래에 도착한 그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오래전 인류가 쏘아 올린 대규모 인공위성은 아이러니하게도 하늘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었다. 다만 반짝반짝 빛나는 하얀 점들을 올려다봐도 윤서의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김심해, 김진해.
이름을 듣자 생각이 났다.
둘의 큰형 김서해.
‘큰형이 그곳에서 어떻게 싸웠고 어떻게 죽었는지 알게 되면 우리 마음도 좀 편안해질까?’
리벤저는 1,203명이다.
윤서를 포함해 살아나온 리벤저들을 제외하고 1,199명이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으며, 1,199명의 가족은 어디에나 있었다.
비참한 사실이었다.
***
김서해는 동굴에서 죽었다.
동굴은 갈림길이 매우 많고 복잡한 미로 지형이었으므로 리벤저는 탐색 팀을 꾸려 뿔뿔이 흩어져야 했고, 윤서는 수속성 전투 스킬을 가진 헌터 다섯 명과 같은 팀이 되었다. 다른 팀은 인원이 수십 명이었고, 힐러가 반드시 한 명은 포함되었으나 윤서의 팀은 힐러도 없이 단출하게 꾸려진 것이다.
사실 윤서 홀로 들어갔어도 됐을 터였다.
팀원들은 모두 몬스터들과 혼신의 전투를 했다. 그들은 도망치지 않고 앞장서서 공격했다. 그들이 그럴 수 있는 건 뒤에서 실드를 만들고 있는 서채윤 덕분이었다. 서채윤의 실드는 절대로 깨어지지 않으니까. 신뢰로 가득한 이들은 두려워하지 않고 공격에 나섰다.
당시 윤서는 어떤 이유로 동굴의 보스 몬스터를 찾는 데에 집착하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쉬었을 시간에도 보스 몬스터를 찾아다녔고, 마침내 끌어내는 데에 성공했다.
윤서의 팀은 단 여섯이서 보스 몬스터를 처치했다. 윤서는 마력 고갈로 허덕이다가 보스를 처치하자마자 실드를 해제했는데, 평소라면 절대로 그러지 않았을 신중한 팀원들이 찰나의 방심이었던지 보스의 사체를 건드렸다. 두 명이 사체에서 뿜어져 나온 독 연기에 당했고, 그중 한 명이 김서해였다.
김서해는 빙결 스킬을 사용하는 B급 헌터였다. 대던전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데면데면한 사이였으나, 함께 팀이 되고 수많은 위기를 헤쳐 오며 둘도 없는 전우가 되었다.
다른 한 명은 박준수라는 이름의 A급 헌터였다. 그는 말수가 적지만 다정하고 상냥해서 누구나 그를 좋아했다.
챙겨 온 붕대와 약품은 하등 쓸모가 없었고, 힐러를 불러와 치유하기에는 이미 두 사람 모두 숨이 넘어가고 있었다.
‘서…채윤. 채윤아….’
‘서채윤 헌터….’
두 사람은 윤서의 가명을 애타게 불렀다.
윤서는 죽음을 앞둔 리벤저 두 명의 유언을 듣기 위해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 전엔 안 그러다가 이 시기부터 리벤저들이 죽을 때는 항상 서채윤을 찾았다. 이 대던전에서 살아 나갈 확률이 높다고 생각해서일까.
‘서해 형.’
윤서가 김서해의 손을 붙잡았다. 죽어 가는 이를 내려다보는 앳된 얼굴에는 체념이 깃들어 있었다. 죽어 가는 이보다 더한 체념과 허무였다.
‘채윤아…. 이렇게 어린 애가…. 내 동생들이랑 비슷한 나이인데… 이런 데서 피 흘릴 나이가 아닌데.’
김서해는 그때 스물다섯 살이었다. 리벤저들은 20대 중반에서 30대 후반까지가 가장 많았고, 가장 어른은 70대 노인이었다. 반면 윤서는 열아홉 살로, 친구와 더불어 1,203명의 리벤저 중 가장 어린 나이였다. 스킬 능력치로만 따지면 생존자들을 이끄는 가장이었으나 나이 차이 때문에 막냇동생이나 막내아들 취급을 받았다. 다들 윤서와 친구를 보고 혀를 끌끌 차면서 이렇게 말하고는 했다.
우리 아들보다 어린 놈들이.
막냇동생이랑 비슷한 것들이.
윤서는 온몸이 보라색이 된 서해의 손을 쥐었다.
‘서해 형, 조금만 참아요. 힐러들이 올 때까지….’
‘나 마지막 소원이 있어….’
슬픔 가득했던 윤서의 얼굴이 설핏 굳었다. 눈치챘을 텐데도 서해는 계속 말을 이어 갔다.
‘내가… 새벽 낚시가 취미였거든.’
‘…….’
‘그러니까… 큿, 채윤아, 여기서 나가면….’
새벽 낚시로 참돔 9짜 10마리 낚아 줘.
정말 어이없는 유언이었다. 윤서는 그때 이미 그와 비슷한 어이없고 황당한 유언을 몇 번 들은 상태였지만, 이번은 정말로 황당했다. 후추 뿌린 국밥 같은 건 쉬운데 9짜라는 단어는 무슨 뜻인지도 모르겠고 어안이 벙벙했다.
그런데 옆에서 서해와 함께 독에 당했던 박준수가 질세라 힘겹게 윤서를 부르더니 말하는 것이다.
‘채, 채윤아…. 크흑. 나는 등산이 취미였어…. 그러니까 여길 나가면….’
윤서는 불길한 예감에 뒷말을 듣고 싶지 않았으나 이미 주위는 눈물바다였고, 도망칠 곳이 없었다.
백두산,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금강산, 덕유산, 계방산, 태백산, 오대산, 가리왕산 정상에 올라가 줘.
그렇게 윤서는 낚시와 등산을 하게 되었다.
알고 보니 참돔 9짜는 90cm 이상을 말하는 것으로 윤서는 아직 다섯 마리밖에 성공하지 못했다. 등산은 이제 한라산과 가리왕산만 올라가면 끝난다.
윤서가 죽지 못하는 이유였다.
***
‘동생들에게 큰형이 그딴 말을 마지막으로 남겼다는 걸 말해 줘야 하나.’
대화를 들으면 어머니도 아직 큰아들의 마지막을 궁금해하는 것 같은데 적당히 순화해서 얘기하는 게 나을까.
기억 속에서 신성화되고 있을 텐데 괜히 실망만 하는 건 아닐까.
토요일은 합병식, 일요일은 유언 처리하느라 바쁘게 보낸 윤서는 2,822번째의 러닝을 마치고 땀이 흐르는 몸을 욕조에 담근 채 생각에 잠겼다.
만약 ‘가족에게 전해 줘’라고 확실하게 단서를 붙였다면 주저 없이 밝히고 편해졌겠지만, 마지막 말을 가족이 아닌 서채윤에게 남겼다는 사실을 전하기도 난감했다.
‘이래서야 나는 언제 숙제를 끝내고 편해지나.’
윤서의 어깨에는 유언들이 매달려 있었다…. 어이없고 터무니없고 황당하고 때론 망측한 유언들이….
이 아침 러닝도 유언 때문에 하고 있는데, 나갈 준비할 때는 짜증 나지만 마치고 들어오면 개운한 기분은 있었다. 오늘은 머리가 더 아픈 느낌이었으나 대개는 그랬다.
해결되지 않는 고민 속에서도 몸은 착실히 출근을 준비했다. 어느새 윤서는 차 문을 열고 있었다.
“찹쌀아, 안녕.”
“어서 오세요. 회사까지 자동 주행을 시작합니다.”
“나 좀 잘게.”
“조명을 끌게요. 안녕히 주무세요, 주인님.”
어제 집에 늦게 들어온 데다가 드라마 보느라 늦게까지 못 자서 부족한 잠을 좀 잘 생각이었다. 물론 며칠쯤 잠을 안 자도 멀쩡한 신체지만, 정신은 아니었다.
회사까지 차로 약 10분 남짓, 조금이라도 자려고 눈을 붙이는 순간 핸드폰이 진동했다. 화면에 뜬 이름은 ‘기저씨’였다. 윤서는 통화를 누르고 다시 눈을 감았다.
“왜요.”
– 좀 공손하게 좀 받아라. 좀.
“용건이나 말하시죠.”
– 너 오늘 바로 강남으로 출근하라고 전화했다, 인마.
강남? 윤서가 눈을 번쩍 떴다.
– 당분간 재배치는 없고 하던 일 계속하면 되는데, 각 길드 당 한두 명씩은 석영 본사에 다니기로 했거든. 우리 길드에서는 너랑 수빈 씨가 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