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125)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125)화(125/195)
#114
남자주인공 이남주가 최근 김치찌개에 필요 없는 시금치나 감자 같은 걸 사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여자주인공 박여주가 알아채고 이남주를 몰아세우는 장면이었다.
“이남주 사장님, 솔직히 말해 보세요. 대체 무슨 생각인 거예요? 무슨 일 있었습니까?”
“…아무 일도 없었어.”
“아무 일도 없긴요! 아무 일도 없으면 대체 왜… 왜 시금치와 감자를 이렇게 사들인단 말입니까? 그것도 강원도 햇감자를…!”
여주는 울컥하는 얼굴로 외쳤다.
“설마 당신, 된장찌개를 끓이려는 겁니까? 안 돼. 그것만은…. 차라리 고추장찌개를 끓여. 된장만은 안 돼. 나는 당신이 된장찌개 끓이는 모습은 절대 볼 수 없어!”
“뭐?”
“사람들 다 된장찌개, 미역국으로 떠나도 당신만은 김치찌개계에 남을 줄 알았는데, 그렇게 믿었는데 어째서….”
여주가 눈물까지 터뜨리자 남주는 한숨을 쉬더니 결국 실토했다.
“오해하지 마. 감자김치찌개를 끓이려고 한 거야. 새로 구상 중인 메뉴라고.”
“감자…김치찌개?”
“그래. 내가 된장찌개를 왜 끓여. 나는 항상 김치찌개의 길에 서 있을 거야. 된장이든 고추장이든 다른 찌개에는 눈 돌리지 않고 말이야. 이게 나의 숙명이니까….”
삐유.
윤서가 감동적인 장면에 몰입하는 그때 햅쌀이가 삐유삐유 울면서 관심을 요구했다. 권지한이 그런 햅살이의 등을 손가락으로 간지럽혔다.
“우리 햅쌀이. 아빠들은 드라마 볼 거니까 혼자 놀고 있어. 형 잠깐 핸드폰 좀 써도 돼?”
“네 쓰세요.”
권지한은 윤서의 핸드폰으로 앱 하나를 다운받았다. 알록달록한 물고기들이 화면을 헤엄치는 단순한 앱이었는데, 햅쌀이는 무척 열광했다. 나름 도마뱀이라고 긴 혓바닥을 낼름낼름하면서 물고기를 낚으려고 들였다. 너무 귀여워서 사진이라도 찍어 놓고 싶었지만 핸드폰이 하나라서 찍을 수 없었다.
“사진 찍고 싶어? 내 거 있잖아.”
눈치 빠른 권지한이 선뜻 핸드폰을 건넸고 윤서는 바로 카메라를 켜서 햅쌀이를 촬영했다.
TV에서는 ‘러브 인 한강’이 흘러나오고, 햅쌀이는 귀엽고, 옆에는 권지한이 있으니 윤서는 마음이 편안해졌다.
드라마를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잘 시간이 되었다.
침대가 하나였기에 권지한은 거실 소파에서 자야 했는데, 권지한은 아무런 이견 없이 베개 하나만 있으면 된다고 말했다. 침대를 내놓으라거나 침대에서 자고 싶다 떼쓰지 않고, 당연한 듯 베개를 베고서 소파 위에 길게 눕는 권지한을 보면서 윤서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권지한 헌터.”
“응?”
“그냥 같이 잘래요? 침대 넓습니다.”
“…….”
권지한은 엎드려 누운 채로 고개도 들지 않고 잠깐 침묵하더니 대답했다.
“아니야. 나는 여기가 편해. 잘자, 형. 내일 아침에 봐.”
윤서는 권지한의 까만 뒤통수를 응시하다가 침실로 들어왔다.
권지한의 심장 소리가 얼마나 요란한지 오히려 윤서가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
심장 소리가 시끄러워서 잠을 못들 줄 알았는데 의외로 악몽도 꾸지 않고 개운하게 일어났다.
윤서가 침실을 나왔을 때 본 첫 광경은 상의를 탈의한 채로 소파 위에 길게 누워서, 탄탄한 가슴 위에 햅쌀이를 올려 놓고 손가락으로 놀아 주는 권지한의 모습이었다.
이딴 모습은 남자의 입장에서 분명 보기 더러워야 하는데, 윤서는 시선을 떼지 못했다.
“잘 잤어? 숨소리 고르던데.”
“남 숨소리를 왜 듣고 있습니까?”
“들리는 걸 어떡해.”
“옷은 어디 뒀어요?”
“몸에 열 올라서 벗었어. 나는 잠이 안 오는데 형은 존나 잘 자더라. 서운하기도 하고 다행이기도 하고 깨울 수도 없고 참….”
권지한이 읏쌰, 하고 몸을 일으키더니 씩 웃었다.
“내 몸 너무 노골적으로 보는 거 아니야?”
“보이는 걸 어떡해요.”
“하긴 그렇지. 실컷 봐.”
권지한이 윤서의 앞에서 여러 포즈를 취하며 실컷 눈요깃감이 되어 준 후 씻으러 들어갔다.
함께 러닝을 하고, 다시 개운하게 씻은 뒤 식사와 양치질까지 모두 마치자 딱 출발 시간이 되었다. 윤서는 권지한이 ‘형네 집을 내 핸드폰에 담고 싶어.’라면서 사진을 찍는 동안 미리 준비를 끝내고 복도로 나왔다.
수재희
형들! 오늘 S급 레이드죠? 잘 다녀와요>_/
던전 공략 시간은 오후였는데 수재희에게서 아침 일찍부터 메시지가 와 있었다.
박수빈
레이드 멤버 중에 레인보우 부길드장도 있다면서요? 성격 안 좋은 사람이라 걱정이에요. 우리 윤서 씨 고생시키면 안 되는데.
수재희
헉;형;; 왜 윤서형이 형네 윤서씨예요;;;큰일날소리하지말라고요 ㅠ
박수빈
응?
수재희
겨우 화해햇는ㄷ
아 아무것도아니에요 잘못보냄요
박수빈
뭐야^^??
수재희
아무것도 아니에용;;;;
윤서형 지한이형 파이팅!!
뭐 파이팅 안하고 설렁설렁해도 클리어하겠지만,, 윤서형은 꼭 조심하시구요
박수빈
맞아요 ^^ 걱정할 수준이 아닌 건 알지만 그래도 걱정되네요. 항상 조심하세요.
권지한
우리 형의 진짜 실력 맛있게 감상하다 올게.
대체 어느 틈에 보낸 건지 권지한의 메시지도 있었다.
수재희
아 네 부럽구만요
박수빈
재희야 왜 권지한 헌터한테는 윤서 씨한테 우리라는 말 붙이지 말라고 안 해?^^
박수빈
재희야?
왜 갑자기 말이 없어졌어?
홍의윤
뭐야 오늘이었어? 하씨 나도 S급 옐로우 돌 줄 아는데
그 뒤로는 홍의윤의 왁왁거림과 수재희의 달램이 이어졌다. 피식 웃음 지으며 대화를 보고 있는데 뒤에서 권지한이 툭 어깨를 건드렸다.
“메신저 이제 봤어? 형 바라기 연하남들이 전부 형과의 데이트를 부러워하더라.”
“데이트라니요?”
“아, 레이드. 모음이 똑같아서 잘못 말했어.”
권지한이 뻔뻔하기 그지없는 말을 하면서 빙긋 웃었다.
‘귀여워서 넘어간다.’
윤서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입을 다물었다. 사실 안 넘어가고 물고 늘어지면 곤란한 건 그였다.
***
이번 S급 옐로우 던전은 동해 해상 위 허공에 발생했기 때문에 항구에서 배로 갈아타 한 시간을 더 가야 했다. 윤서는 권지한과 함께 갈매기한테 과자 먹이도 주고, 물보라 이는 수면과 배를 쫓아오는 돌고래들을 구경했다. 그러다 보니 한 시간이 훌쩍 가서 포탈 위치에 도착했다는 선내 방송이 흘러나왔을 때는 깜짝 놀랐다.
레인보우 부길드장을 비롯한 몇몇은 갑판 위에서 방송사와 인터뷰를 하고, 다른 헌터들은 각자 몸을 풀거나 장비를 점검했다. 미리 공중의 포탈 앞에 가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윤서에 이어 권지한이 갑판 위로 모습을 드러내자 금세 소란스러워졌다.
“권지한이다!”
“권지한이 왔어. 카메라 돌려!”
레인보우 부길드장에게 쏠려 있던 기자들과 카메라들이 싹 다 권지한에게 쏟아졌다. 이번 던전의 베이스 캠프인 군함의 갑판 위에 있던 기자들이 다들 양팔을 뻗으며 권지한 헌터, 한 번만요! 한 번만 이쪽을 봐 주세요! 소리쳤다.
“형, 나 인터뷰 좀 하고 올게.”
권지한이 윤서에게 속삭이고는 그쪽으로 향했다. 관심 없는 윤서는 바로 포탈 위치로 날아올랐다.
스킬 <염력>을 사용합니다.
이번 포탈이 공중에 있기 때문에 다들 비행 아이템을 준비해 왔으므로 윤서가 날아오르는 것도 아이템을 사용했겠거니 하고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았다.
노랗게 일렁거리는 포탈은 마치 기름통에 노란 물감을 끼얹은 것 같았다. 그 앞에서 윤서는 다른 헌터들과 마찬가지로 스트레칭을 하면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예상했던 대로 대던전과 서채윤 관련 질문이 많았고, 권지한은 심드렁한 표정이었지만 성실하게 답변해 주고 있었다.
그 뒤쪽으로는 레인보우 부길드장 조만이가 있었다. 그야말로 똥 씹은 얼굴이었다. 권지한이 오자마자 주목도에서 밀려났으니 자존심 상할 만도 했다. 그는 쳇, 하면서 훌쩍 날아올랐다. 포탈로 다가오면서 윤서를 발견한 조만이가 더더욱 눈썹을 일그러뜨렸다.
“윤서.”
조만이가 윤서의 앞에 멈춰 섰다.
그는 윤서의 위아래를 노골적으로 훑으며 조소했다. 포켓이 많이 달린 복장을 보고 비웃는 것이다.
“너, 낙엽의 윤서 맞지?”
“낙엽을 압니까?”
“그 가식적인 호구 길드라면 모르는 쪽이 드물 거다. 실드 트랩 유지 보수 쪽으로 특이할 만큼 대단한 성과를 보이는 B급 헌터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윤서는 대꾸하지 않고 가만히 남자를 바라봤다.
레인보우 길드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창립된 길드였다. 거대 길드의 독점을 막겠다는 그럴듯한 취지로 자칭 석영 대항마라는 타이틀을 내보이며 나타났다. 그래서 이름도 석영을 따라 한 두 글자 이름이 아닌 레인보우라고 지었다. 실제로 한때는 석영과 근소한 차이의 지지율도 보였다. 그러나 지금은 석영 대항마는커녕 국내 5위권을 겨우 간수하고 있는 판국이다. 실드 트랩 설치 건으로 비각성자에게 갑질을 그렇게 해 대니 추락하는 것도 당연했다.
“우리가 만든 실드 트랩을 멋대로 업그레이드한 적도 많더군. 우리가 등급을 높일 줄 몰라서 안 높인 것 같나? 네놈들이 호구 행세를 하든 말든 상관은 없는데 남의 자산에 멋대로 손대면 안 되지.”
“멋대로가 아닙니다. 정식으로 의뢰받고 유지, 보수한 것뿐입니다.”
“등급을 높이는 건 유지, 보수라고 안 해. 업그레이드라고 하지. 이런 기본적인 상식을 알려 줘야 하나?”
“제가 그런 기본적인 상식을 몰랐군요. 알려 줘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조만이 헌터는 계약보다 낮은 출력으로 트랩을 설치하는 건 사기라고 표현한다는 건 아십니까? 그쪽 길드에서 만든 실드 트랩들이 하나같이 계약서보다 한 단계에서 두 단계는 낮게 설치되어 있더군요. 아, 만약 사기 치려는 의도가 아니라 그저 실력이 부족해서 그렇게 된 거였다면 유감이지만, B급 실드 트랩 설치 하나 제대로 못 할 거면 트랩 사업은 접는 게 어떠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