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128)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128)화(128/195)
#117
“그쪽이요? 물욕 같은 건 없어 보이는데.”
“나 욕심 많아, 형. 원하는 건 전부 가져야 직성이 풀린단 말이야.”
“그런 욕심이 왜 무기 아이템에는 발휘되지 않는지 궁금하군요.”
“아직 성에 차는 걸 못 봐서 그래. 좋은 무기를 보면 나도 욕심이 생기겠지.”
“우리 햅쌀이 정도면 어떻습니까?”
윤서가 허리춤에서 단검을 뽑아 권지한에게 던졌다. 단검은 도마뱀 모습으로 권지한의 손안에 안착했다.
삐유.
권지한은 부드럽게 웃었다.
“햅쌀이라면 너무 좋지. 귀속 아이템이 아니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손에 넣었을 거야.”
삐유!
햅쌀이가 알아들은 것처럼 의기양양하게 두 발로 섰다. 권지한이 피식 웃으며 햅쌀이의 배를 긁자 햅쌀이는 만족스러운지 계속 제 배를 대 줬다. 윤서는 둘의 모습을 보며 가만히 미소 지었다.
“형 혹시 SNS 해?”
“네? 갑자기 무슨 SNS입니까.”
“지금 생각났는데 얼마 전에 내 SNS에 yoonyoon이라는 아이디가 팔로우했거든. 형 게임 아이디도 그거잖아.”
윤서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윤서는 권지한이 모닥불 탓이라고 생각하기를 바랐다.
“제 거 맞긴 한데 활동은 안 합니다.”
“아, 그래? 나도 형 팔로우할래.”
“활동 안 한다니까요.”
“계정 만들었으면 언젠간 할 거 아냐. 나가면 미리 팔로우해 놔야지.”
“저 인터넷 잘 안 해요.”
“인터넷 많이 하라는 유언은 없었나 보네.”
“만물유언설 좀 그만두라니까요.”
“그만두기에는 이미 난 끝났어. 이미 난 노이로제에 걸렸어.”
“그러니까 내가 걸려야지 왜 당신이 노이로제에 걸리냐고요.”
윤서가 혀를 차자 권지한은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튼 형이 날 팔로우했다니 뭔가 앞으로 열심히 활동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무슨 글을 올릴까. 서채윤에 관한 글을 올리면 사람들이 열광하겠지?”
권지한이 SNS에 서채윤을 언급하면 그게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엄청난 이슈가 되긴 할 것이다.
“서채윤한테 도전장이라도 올리는 건 어때요. 요즘 인터넷에 권지한과 서채윤 중 누가 더 강한지를 추측하는 글들이 많던데.”
윤서가 인터넷을 염탐했다는 걸 실토했다.
“솔직히 말하면 난 내가 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권지한 헌터는요? 당신과 나 중 누가 더 강할 것 같습니까?”
“…나도 내가 질 것 같지는 않은데.”
“그래요?”
“이길 것 같지도 않고.”
“…….”
“…….”
윤서는 권지한의 다음 말을 예상했다.
‘궁금하니까 당장 싸워 보자.’
그 말을 기다리고 있는데 의외로 권지한은 난감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와, 무서워.”
“무섭다니요?”
“예전 같았으면 궁금하니까 싸우자고 할 텐데 지금은 모르겠어. 굳이 승부를 가릴 필요가 있을까? 사람들은 왜 이렇게 경쟁 구도를 좋아하는지 몰라. 평화와 화합. 얼마나 아름다워.”
윤서는 어이가 없었다.
싸움광 권지한이 할 말이 아니지 않나. 싸우자고 쫓아다닐 땐 언제고….
“이제는 저와 대련하고 싶지 않습니까?”
“음….”
권지한은 고개를 기울이며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형이랑은 안 싸우고 싶어.”
윤서는 꽤 놀랐다. 그런데 권지한이 자기 발언에 더 놀란 것처럼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나 진짜로 형이랑 안 싸우고 싶은가 봐. 형이랑 전투한다고 생각하니까 무서워서 여기 소름도 돋았어. 진짜 존나게 싫어. 형이랑 싸울 바에야 차라리 S급 레드 던전 솔플을 할래.”
권지한은 질색 팔색을 하면서 팔뚝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정말로 소름이 돋아 있었다. 낯빛이 새파래지고 회색 눈동자가 파르르 떨리는 게 무서운 상상이라도 한 듯했다.
윤서는 인상을 썼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싸우자고 계약서까지 썼던 권지한이 이제 와서 이렇게까지 저와의 대련을 피하는 이유는 뻔했다.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나보다 약한 것들하고는 싸우고 싶지 않아.’
“치유 내성이 있다고 내가 약한 존재로 보이는 겁니까?”
윤서의 목소리가 음산해졌다. 분위기가 대번에 가라앉자 햅쌀이가 삐윳, 작게 울었다. 싸우려는 거야? 단검으로 변할까? 단검으로 변해? 초롱초롱해지는 눈빛에 관심을 주는 인간은 아무도 없었다.
권지한은 기분 안 좋은 듯한 윤서를 보면서 덩달아 정색했다.
“절대 아니야. 형 존나 강한 거 알아. 다른 것도 아니고 내 이상형 그 자체라고 했잖아. 누구보다 내가 제일 잘 안다고. 형한테 도저히 이길 것 같지 않다니까?”
“그러면 왜 싸우기 싫다는 거죠?”
“형이 짱 센 먼치킨인 건 알지만 싸우는 건 안 돼.”
“다중 인격은 당신이었던 모양인데요.”
“몰라. 나도 지금 내가 이상해. 왜 싸우고 싶지 않은 거지? 전력을 다할 수 있는 강자와의 대련을 늘 꿈꿔 왔는데 왜? 우리가 싸운다고 생각하면 힘이 풀리고 끔찍해서 상상하기도 싫어.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형, 나 왜 이래?”
권지한은 정말로 자신의 마음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혼란스러운 얼굴을 했다. 동요하는 눈동자를 바라보며 윤서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걸 나한테 물어보면 어떡해요.”
“형은 나랑 싸운다는 생각을 해도 괜찮단 말이야?”
억울하고 서러운 말투였다. 윤서는 눈을 내리깔고서 가만히 생각해 봤다.
사실 윤서는 권지한과 전력을 다해 붙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아주 조금은 있었다.
<관측자의 검>과 ‘존재하는 넋’을 양손에 들고 권지한의 무기와 붙어 보고 싶다. 전력을 다한 <오르트의 구름>으로 공격하고, <딥 필드>로 <퀘이사>를 방어해 보고 싶다. 여러 스킬을 마음껏 사용하면서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미친 듯이 싸우고 싶은 욕구. S급이라면 누구나 이런 욕구는 갖고 있을 터였다.
“와, 너무하네…. 지금 나랑 싸우는 상상하면서 미소 짓는 거야?”
윤서가 헛기침하면서 표정을 수습했다.
“딱히 미소 짓지는 않았습니다만.”
“서럽다, 서러워. 나는 이렇게 변했는데 형은 안 달라졌다고 생각하니 억울하고 원통하다. 햅쌀아, 네 주인은 존나 가혹하고 잔인하구나. 그런데 넌 왜 이렇게 살기를 내뿜고 있냐.”
삐유.
“안 싸워. 지금 전투 안 하니까 귀여운 도마뱀으로 돌아와. 아주 그냥 주인이랑 반려 아이템이 쌍으로 사람 서럽게 하네.”
권지한이 툴툴거렸다. 과장되게 우는 흉내를 내기도 했다.
진심이 반 섞여 있는 듯해서 윤서는 조금 미안했다. 하지만 동시에 억울하기도 했다.
내가 달라지지 않았다고?
권지한보다 훨씬 더 많이 달라진 사람한테 그게 무슨 망발인가.
싸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달라졌기 때문인데. 권지한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윤서는 굳이 알려 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