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129)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129)화(129/195)
16. 암시장
#117
보스 몬스터까지 공략한 후에도 보물 상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애초에 보물 상자라는 게 정말 존재하긴 하는 거냐는 말도 나올 정도로, 극악의 확률로 등장하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조만이를 비롯한 레인보우 길드원들은 다르게 생각했다.
‘석영이 우리 몰래 보물 상자를 획득한 것이다.’
엄청난 피해 의식이었다. 조만이는 헤어지면서 이 일을 잊지 않겠다고 이를 빠득 갈았다. 석영이 어떤 이득을 가져간 것을 알리고 싶지 않은 건지 기자 회견 중에는 보물 상자를 언급하지는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석영 길드원들은 ‘아, 권지한 헌터가 챙겼나 보다.’ 하고서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처럼 함박웃음을 짓고서, 헬기를 타는 레인보우 길드원들을 배웅했다. 레인보우 길드원들은 죄다 조만이와 비슷한 낯짝으로 사라졌다.
헬기를 타고 육지로 돌아오면서 윤서는 권지한에게 물었다.
“혹시 권지한 헌터도 레이드하면서 보물 상자란 걸 만난 적 있습니까?”
“응, 대여섯 번 정도.”
“그거 꽤 많이 나온 거 아니에요? 정말로 좋은 아이템이 들어 있었습니까?”
“모든 스킬의 공격치를 향상시키는 아이템 ‘어스름’이 보물 상자에서 나왔어. <명왕의 밤>도 상자에 들어 있었고. 이 두 개 말고는 딱히 엄청 좋은 것들은 아니던데.”
“나머지는 어떻게 했어요?”
“준철이 형한테 주고 알아서 처리하라 했지.”
“권지한 헌터는 정말 욕심이 없네요.”
권지한이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그는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에게 경고하듯이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나 욕심 많다니까. 형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탐욕스러운 인간이야.”
“그래요. 정말 그런지 어떤지 내일 암시장에서 지켜볼게요. 내 기준보다 탐욕스러운 모습을 보여 주면 칭찬해 주겠습니다.”
권지한이 오늘 암시장 입장 시간은 이미 끝났다고 해서 내일 갈 예정이었다. 권지한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암시장에 좋은 아이템이 없으면 어떡하냐고. 욕심낼 만한 게 있어야 욕심을 내지.”
권지한은 툴툴거리더니 윤서에게 은근히 어깨를 붙여 왔다.
“만약 형이 진열되어 있으면 형이 만족할 만한 탐욕스러운 모습을 보여 줄 자신 있는데. 레인보우 부길드장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집착과 탐욕 가득한 모습을 보게 될 거야. 미친놈 같다고 피하려 들지도 몰라.”
“그쪽이 탐욕 부려 봤자 귀엽기만 할 것 같은데요.”
“형이 아직 날 몰라. 나 마냥 귀여운 사람은 아니야.”
“마냥 귀엽지는 않죠. 가끔 귀엽지.”
“호랑이 무서운 줄 모르는 우리 형 어떡하나. 그렇다고 정말 무섭게 대해서 도망가게 만들 수도 없고. 내가 참는다, 진짜.”
권지한이 과장된 한숨을 내쉬었다. 윤서는 진심으로 귀여워서 웃었다. 권지한은 커다란 짐승이 조련사에게 안겨 대듯이 윤서에게 탄탄한 몸을 치대며 제 무서움을 어필했다. 윤서는 그새 익숙해졌다고 일방적인 스킨십을 피하지 않았다.
“내일은 몇 시에 만날까요?”
“여섯 시에 집으로 데리러 갈게.”
“아침이죠?”
“응, 아침 여섯 시.”
“위치 알려 주면 제가 가겠습니다.”
“데리러 갈 테니까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저기 육지 보인다. 길드 사람들 기다리고 있네. 분명 보물 상자가 대체 뭐냐고 물어볼 텐데 조만이 때문에 성가시게 됐어.”
권지한이 말을 돌렸다. 윤서는 권지한이 가리키는 창밖을 내려다보며 미소 지었다.
기분이 좋았다.
내일도 하루 종일 같이 있을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