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131)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131)화(131/195)
#119
“아니, 어떻게 움직이는지 좀 보려고 했지.”
“닥치고 얼른 무기 아이템 있는 곳으로 안내하세요.”
“이것들도 엄연한 무기인데. 아, 알았어. 진정해, 형. 무기 판매점들은 저쪽으로 더 들어가야 할 거야.”
윤서가 눈을 부릅뜨자 권지한이 쿡쿡 웃으며 항복을 선언했다. 윤서는 권지한이 가리킨 방향으로 성큼성큼 걸으며 생각했다.
이게 별로 안 커 보인다고? 설마 아니겠지. S급 특유의 허세겠지. 권지한이 허세 부리는 성격과는 거리가 멀긴 하지만…. 설마. 사람인데….
생명의 신이 ‘권지한’의 발언에 동의합니다.
죽음의 신이 ‘권지한’에게 존경심을 표합니다.
가호 신들이 이상한 상상을 부추겼다. 머릿속에 가득한 그림들을 떨쳐 내려 애쓰던 중 무기 판매점들이 있는 장소에 도착했다.
과연 아까의 그 변태 같은 노점상들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후드를 뒤집어쓴 사람도 적었고, 목숨을 건 전투에서 자신의 힘이 되어줄 무기 아이템들을 살펴보는 손길은 진지했으며 눈빛은 매서웠다.
현수막의 글씨체만 아니면 더욱 진지했을 것이다.
윤서는 일단 햅쌀이 상태부터 확인했다. 워낙 호기심이 넘치는 아이템이라 권지한의 품에 안긴 채 고개를 빼꼼 내밀고서 구경 중이었는데 갑자기 눈꼬리가 올라가고 표정이 사나워졌다.
삐유!
“아야.”
권지한이 한쪽 눈을 찡그리며 손을 흔들었다.
“왜 그래요?”
“햅쌀이가 갑자기 가시 세웠어.”
“우리가 무기 거리로 들어섰으니까요. 아프지도 않을 테니 참으세요.”
“햅쌀아, 내 무기 사러 온 거야. 윤서 형이 아니라 내 무기야. 착하지. 우리 햅쌀이.”
권지한이 달래 봤지만 햅쌀이는 여전히 삐져서 가시를 세웠다. 권지한에겐 따끔거리지도 않았기에 계속 쓰다듬으며 진정시켰다.
‘권지한의 무기는 장검이어야겠지.’
활, 칼, 검, 창, 도끼 등 여러 무기 중에서 윤서는 바로 검을 점찍었다.
이왕이면 은은한 먹색 검이면 좋을 것 같다. <타락한 영웅의 날개>를 활짝 펼친 권지한이 먹색 검을 휘두르며 몬스터를 처치하는 모습을 상상하자 몹시 뿌듯해졌다.
“어서 오세요, 헌터님. 헉…!”
“천천히 구경하시고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보헉!”
“찾으시는 물건이 있다면 말씀해 주… 헉!”
윤서와 권지한이 물건을 보러 갈 때마다 판매상들이 인사를 제대로 마치지도 못하고 기겁했다. 권지한 때문이었다. 그러면 손님들도 덩달아 ‘응? 왜 놀라지?’ 하며 원인을 찾다가 권지한을 발견하고 또 기겁했다. 윤서와 권지한은 그렇게 파도처럼 경악을 일으키면서 판매상 여러 군데를 돌아다녔다.
S급 장검, 먹색 검신, 권지한의 마력을 견딜 만한 내구도 등 조건을 한정시키니 딱 네 개의 검이 도출되었다.
‘흑의 저주’, ‘방황하는 어둠’, ‘삭풍의 검’, ‘별의 영역’.
윤서는 네 개 중에서 무엇을 골라야 하나, 같은 멍청한 고민은 하지 않았다.
“전부 사죠.”
“우리 형 화끈하네.”
“어차피 그쪽 돈이니까요.”
암시장에서는 모든 거래가 현금으로 이루어진다. 윤서는 품에서 지갑을 꺼냈다. 던전에 들어오자마자 받아 둔 권지한의 지갑이었다.
‘흑의 저주’ 59억, ‘방황하는 어둠’ 43억, ‘별의 영역’ 40억.
여기서 20% 할인하니 확실히 괜찮은 가격이 나왔다. 어떤 추가 에누리도 요구하지 않고 수표를 내밀며 척척 계산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판매상들이며 헌터들이며 전부 경외의 시선을 던졌다.
그러나 물 흐르듯 수월하게 흘러가던 쇼핑은 ‘삭풍의 검’을 구입하려 할 때 막히고 말았다.
“그, 삭풍은 미리 예약하고 가신 분이 계셔 가지고….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판매상이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식은땀을 흘리며 머리를 조아렸다.
“예약했다고요? 예약한 물건을 왜 진열해 놨습니까?”
“죄쇵흡니다….”
“형, 이 세 개로 충분해. 슬슬 식사나 하러 가자. 암시장 식당 음식들 존나 맛있는 거 알아?”
“아, 잠깐 놔 봐요.”
‘삭풍의 검’
등급: S급
장인 세인 스테이시가 대던전 대비로 특별히 내놓은 신상. 전투를 많이 하는 S급 헌터라면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할 검. 마력 허용치 MAX, 자체 공격력 S급, 추가 공격력 S급. 이 검의 내구도는 당신의 마력을 충분히 감당할 것입니다.
내구도 100/100
아이템 제작자 : 세인 스테이시
윤서는 S급 아이템 제작 장인 세인 스테이시가 만들었다는 이 검만은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
“예약한 사람이 누굽니까?”
“그….”
판매상이 우물쭈물했다. 미인은 물러갈 생각이 없어 보이고, 권지한도 웃기만 할 뿐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았다. 판매상이 눈 딱 감고 예약자의 이름을 말하려는 그때였다.
“제, 제, 제가….”
구경꾼들 사이에서 한 사람이 소심하게 손을 들었다.
윤서와 권지한이 뒤를 돌아봤다. 두 사람은 놀라지도 않았다. 이미 뒤에서 익숙한 기척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나타난 이는 윤서도 익히 아는 사람.
하회탈 괴도, 박강이었다.
***
윤서와 권지한, 박강은 도로에서 멀리 떨어진 조용한 곳으로 향했다. 구경꾼들은 그들을 따라오지 않았다.
사람들 말소리가 충분히 멀어졌을 때 윤서가 걸음을 멈췄다. 그를 따라 두 남자도 멈춰 섰다.
윤서가 박강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박강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소심한 얼굴이었는데, 윤서와 눈이 마주치자 얼른 양팔로 상체를 감싸 복장을 가렸다. 단정한 한복을 감추듯이….
윤서가 발끈해서 먼저 말했다.
“저 얼마 전에 생활한복 잠옷을 열 벌이나 샀습니다. 모시, 삼베 소재의 한복 잠옷은 촉감이 좋으면서 시원해서 에어컨이 따로 필요 없을 정도이죠. 세탁이 쉽고 간편해서 앞으로 개량 한복 잠옷만 입을 예정입니다.”
“…….”
박강이 빤히 윤서를 바라봤다. 권지한마저 황당하다는 듯 윤서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 이 얘기를 하려던 게 아닌데.
윤서는 심호흡했다.
“‘삭풍’은 S급 무기입니다. 어차피 그쪽은 사용할 수 없을 텐데요.”
“그, 그건….”
“혹시 등급을 속이기라도 했던 겁니까?”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러니까….”
박강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러나 입술만 달싹거리고 눈동자만 요동칠 뿐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럼 20% 할인 가격으로 구한 후 나가서 비싸게 팔 생각이었습니까? 대던전 시즌이니까 한몫 단단히 챙기려고요?”
“아니, 안, 아니, 안 했, 그런 생각은 아니, 아니었….”
“그럼 저 검을 그쪽이 왜 사려는 건데요?”
“그건, 그. 흐, 흐윽….”
박강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삐유?
작은 고슴도치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이템이 봐도 이상한 상황인 것이다. 윤서는 일단 박강의 눈물을 닦아 줘야 할 것 같았다. 그에게 다가가 옷소매로 눈물을 닦아 주자 박강이 아롱아롱 눈물 가득한 눈으로 윤서를 내려다봤다.
“흐윽. 흐윽, 흑.”
“울지 말고 천천히 말해 보세요.”
“흐윽.”
서러운 눈물이 퐁퐁 흘러내렸다. 윤서가 막 손가락으로 닦아 주려 할 때였다.
“하.”
뒤에서 차가운 탄식이 들린다 싶더니 곧 손목이 단단히 붙잡혔다. 권지한이 윤서의 손목을 잡고서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탄탄한 가슴팍과 부딪친 윤서가 갑자기 일어난 일에 눈만 깜빡일 때 권지한이 거친 욕설을 입에 담았다.
“이 새끼는 뭐 하자는 거야? 왜 말을 하다 말고 갑자기 울어? 누가 보면 우리 형이 괴롭힌 줄 알겠어. 자기가 우리 무기 선점해 놓고 짜증 나게 하네.”
무기를 선점한 쪽은 박강이고, 굳이 굳이 소유권을 빼앗겠다고 설치는 건 이쪽인데 권지한은 한없이 윤서 편파적이었다.
윤서는 권지한이 왜 갑자기 발끈하는지 알 수 없어서 눈만 동그랗게 떴다.
“저번부터 자꾸 우리 앞에 나타나서 존나 거슬리게 하고 있어. 별 이상한 가면 쓰고 서채윤 무기 훔치겠다고 나타났을 때부터 짜증 났는데 잘 만났네. 나도 더는 참을 수 없어. 당장 검 뽑아.”
“권지한 헌터, 갑자기 왜 그래요?”
하회탈 괴도가 검을 들고서 공격할 때는 여유 있는 모습으로 ‘착한 약자와는 안 싸워.’ 하던 사람이 갑자기 못된 악당 같은 말을 하자 윤서는 당황했다.
“저 새끼가 가증스럽게 눈물 흘리잖아.”
“가증이 아니라 그냥 본래 저런 성격 같은데요.”
“형은 그걸 또 왜 손수 눈물까지 닦아 줘? 언제는 약자를 돌볼 책임 없다면서 아주 그냥 소매까지 젖어 가면서 그렇게 닦아 주냐고. 게다가 내가 안 막았으면 맨손으로 닦아 주려고 했지?”
“왜 갑자기 어린애처럼 굽니까? 권지한 헌터답지 않아요.”
“나다운 게 뭔데!”
권지한이 버럭 소리 질렀다.
나다운 게 뭔데… 나다운 게 뭔데….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생명의 신이 부끄러워합니다.
죽음의 신이 크게 웃습니다.
윤서는 입을 조금 벌린 채 권지한을 쳐다봤다. 잔뜩 인상 쓴 얼굴에 서러움과 억울, 분노가 담겨 있었다.
삐유!
햅쌀이는 권지한과 윤서가 싸우는 듯하자 푸른 눈을 번뜩이면서 단검으로 변할까? 하고 있었다.
“나는, 형이. 씨, 형은 내가 형이 내 눈앞에서 다른 사람 눈물을 닦아 주는데도 성질 안 내고 있을 것처럼 보여? 난 그런 머저리가 아니야. 존나 짜증 나고 열받고 질투나.”
권지한의 앞에서 다른 사람 눈물을 닦아 주면 왜… 안 되지?
“형은 내가 그런 것까지 포용할 정도로 어른스럽게 생각하나 본데 나는 어린애야. 그리고 형이 생각하는 것보다 욕심도 많단 말이야. 나는 절대로 다른 사람이 울어도 거들떠보지도 않을 건데 형은 왜 그래? 속상해 진짜!”
권지한은 늘 자기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더니 이런 유치한 감정까지 솔직하게 고백했다. 그런데 고백하면서도 유치하고 말이 안 되는 걸 아는지 얼굴이 점점 빨개지고 있었다.
윤서는 그제야 권지한의 나이를 자각했다. 스물세 살. 어린애다, 어린애.
아마 자신과 친한 형이 다른 사람한테 친근한 태도를 보이자 유치한 질투심이 솟구친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