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132)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132)화(132/195)
#120
“알았어요. 이제 다른 사람 눈물 안 닦아 주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울든 말든 상관하지 마.”
권지한은 나를 냉혈한으로 만들고 싶은 걸까?
윤서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일단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끄덕였다.
“네, 이제 상관하지 않을 테니 진정하세요.”
“진정했어.”
“…….”
권지한은 아직도 윤서의 손목을 단단히 붙잡은 채로 뻔뻔하게 진정했다고 말했다.
윤서는 어쩔 수 없이 손목이 잡힌 채 반대편으로 돌아서 박강을 바라봤다.
박강이 입술을 뻐끔거리며 구경 중이었다. 눈물은 그쳤으나 눈가는 여전히 붉었다. 시선이 마주치자 화들짝 놀란 남자가 얼른 고개를 푹 숙였다.
“박강 헌터. 이제 눈물 그쳤으면 ‘삭풍’을 왜 사려는 건지 말해 주시죠. 저 협박하는 거 아닙니다. S급이 아니면서 S급 무기를 가지려는 이유가 궁금해서 그래요.”
박강은 어깨를 파르르 떨었다.
윤서는 권지한에게 붙잡힌 손목과 함께 머리도 지끈지끈해지려고 했다. 그러나 다행히 박강이 입을 열었다.
“서, 서채윤 헌터님께… 드, 드리려고 했, 했습니다. 대, 대던전에… 오랜만의 복귀인데… 대, 대던전에 들어가신다 들어서… 거, 거, 걱정되어서….”
“…네?”
“저, 저번에 서, 서채윤 님의 무기를 후, 후, 훔치려고 한 것도….”
“…….”
“제, 제가 간직하고 있다가 어, 언젠간 서채윤 님에게 도, 돌려드, 드리려고….”
“…….”
윤서는 말문이 막혔다.
아무 말 못 하는 윤서를 대신해 권지한이 분노가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너 서채윤 팬클럽이야?”
“포, 포 더 서 저, 정회원…. 제, 제 아내도 거기서 만났….”
“흠.”
“제 아, 아이들도 포 더 서 준회원….”
“진즉 말을 하지.”
권지한이 윤서의 손목을 놓아 줬다.
윤서가 얼른 손목을 들여다보니 아니나 다를까 손자국이 남아 있었다. 자신이 S급이라 망정이지 A급만 됐어도 시퍼렇게 멍이 들었을 터였다. 윤서는 권지한은 나중에 혼내기로 하고 일단 박강에게 집중했다.
“서채윤 헌터는 ‘존재하는 넋’이라는 전용 무기가 있으니 당신이 거금을 들여 무기를 사 줄 필요가 없습니다.”
“무, 무기는 많을수록 좋….”
“‘삭풍’은 권지한 헌터에게 주는 게 좋을 것 같군요. 더 잘 활용할 수 있을 겁니다.”
박강이 권지한을 흘깃 올려다봤다. 권지한은 제 일이 아니라는 듯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있었다. 한 번도 울컥하거나 발끈한 적 없다는 시니컬한 얼굴이었다.
박강이 내키지 않는지 대답하지 않자 윤서가 쐐기를 날렸다.
“‘삭풍’ 선점권을 포기하면 서채윤 헌터에게 이 말을 전해 주겠습니다. 박강이란 헌터가 당신에게 무기를 선물해 주려 했다고.”
“서, 서, 서채윤 헌터를, 아, 아세요?”
“압니다. 친한 사이입니다.”
“헉…. 허억….”
박강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어떻게 할래요? ‘삭풍’을 포기하겠습니까?”
“저, 저, 정말 전해 주실….”
“예. 날 못 믿겠나요?”
“유, 윤서 헌터는… 저, 절 싫어하니까….”
윤서는 불길한 예감에 미간을 좁혔다.
“하… 한복 싫어하시잖아요…. 저, 저는 유니폼도 하, 한복이고…. 스, 스킬도 전통 관련된… 거라서… 저, 절 싫어하실 거라….”
아직도 이딴 오해를 하고 있었단 말인가? 모시 잠옷 칭찬까지 했는데도? 윤서가 화를 눌러 참으며 꾹, 꾹 억눌린 목소리로 말했다.
“안 싫어합니다. 한복도, 우리나라 전통도 좋아합니다. 박강 헌터가 수많은 가면 중에서도 하회탈을 쓰고 다녀서 평소에도 좋게 생각해 왔습니다.”
“저, 정말… 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헌터로 권지한이 아니라 하회탈 괴도를 선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그건 아니… 아니에요. 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헌터는, 서, 서, 서채윤 헌터니까…!”
이 자식 까다롭네.
이마에 힘줄이 돋은 윤서 옆에서 권지한은 남 일이라는 듯 쿡쿡 웃었다.
***
윤서는 그 뒤로도 30분이나 더 걸려서 박강을 설득했고, 결국 ‘삭풍’ 선점권을 양도받았다. 윤서는 박강의 마음이 바뀔세라 얼른 달려가서 계산하고 권지한에게 넘겼다.
무기 구입을 마친 둘은 암시장 식당가로 들어갔다. 푸드 코트 형식의 식당이었다. 메뉴판을 확인하니 한식이 80%를 차지하고 있었다. 언뜻 보이는 주방의 조리사들은 죄다 외국인이었는데도….
“뭐 먹을래?”
“저는 꽁치김치찌개와 돈가스, 해물전, 치킨텐더샐러드를 먹겠습니다.”
“그것만 먹고 되겠어?”
“야채곱창도 시킬게요. 공깃밥 추가하고.”
“주문하고 올게. 앉아 있어.”
윤서가 적당히 넓은 테이블을 발견하고 앉았다. 계산은 권지한이 했다.
권지한은 닭볶음탕과 차돌박이 된장찌개, 해물팟타이, 치킨 커리, 비빔국수와 군만두 세트를 시켰다. 둘이 합쳐서 양이 상당했는데도 20분 만에 모든 메뉴가 나왔다. 다른 헌터들이 한번씩 가득 찬 테이블로 눈길을 던지며 지나갔다.
“여기 식당가는 요리 스킬 가진 헌터들이 직접 조리해서 속도도 빠르고 맛있어.”
“권지한 헌터의 음식보다요?”
“오… 그런 과감한 질문을 던지다니. 한번 먹어 보고 판단해 봐.”
윤서는 꽁치김치찌개 국물부터 한 숟가락 가득 떴다. 진한 빨간 국물에 꽁치 향이 배어 있었다. 칼칼한 고춧가루를 사용했는지 꿀꺽 삼키자 캬, 하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김치는 숟가락으로 쉽게 찢어질 만큼 묵은지였고, 꽁치에서는 비린내가 전혀 나지 않았다.
“요리 스킬 보유자는 진짜 다르긴 하네요.”
“그거 내가 한 것보다 맛있다는 뜻인가.”
“그런데 밥이 흰쌀밥인 게 아쉬워요. 저는 잡곡이나 흑미가 좋습니다. 양파도 너무 흐물거리고요. 묵은지는 흐물거릴수록 좋지만 양파는 아닌데 말이에요.”
“역시 내가 한 게 제일이지?”
윤서는 사실 둘 다 엄청 맛있었다. 이렇게 흠을 잡아낼 정도의 요리가 아니었는데 권지한에게 점수를 더 주고자 일부러 흠을 찾아낸 것이다.
“당신이 요리를 잘하긴 합니다. 이제 얼른 먹어요.”
“응. 뭐부터 먹을까.”
권지한의 포크가 테이블 위의 수많은 음식 중 돈가스를 쿡 찔렀다. 윤서가 풋 웃었다.
“뭐야. 왜 웃어?”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맛있게 드세요.”
“응.”
매운 걸 잘 먹으려고 노력은 하지만 역시 아직 어렵나 보다.
‘돈가스 시키길 잘했네.’
윤서는 그 후 식사가 끝날 때까지 돈가스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점심을 푸짐하게 해결한 후 두 사람은 사람이 없는 필드로 나왔다. 정확히는 윤서가 끌고 나왔다.
“형, 이런 으슥한 곳에는 왜 데리고 왔어? 나 아직 마음의 준비가….”
“무기 테스트 해 봐야죠.”
“으응, 형이 그렇지 뭐.”
권지한이 인벤토리에서 오늘 구입한 장검 네 개를 꺼냈다.
“어렵게 구한 ‘삭풍의 검’부터 휘둘러 볼까.”
권지한이 어두운 기운을 내뿜고 있는 먹색의 검을 쥐었다. 그도 얼른 사용해 보고 싶었는지 입가가 미소를 띠고 있었다.
‘권지한’이 스킬 <갈증>을 사용합니다.
권지한이 검을 똑바로 쥔 채 스킬을 사용했다. 검고 붉은 기운이 권지한의 신체로부터 흘러나와 검에 깃들었다. 윤서는 붕괴된 건물 잔해 중 평탄한 콘크리트 블럭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1분도 지나지 않아 몬스터들이 권지한의 주위에 몰려들었다. 그것들은 눈이 붉게 물들어 있었고, 저 무시무시한 권지한의 모습을 보고서도 침을 뚝뚝 떨어뜨렸다. <갈증>은 붉은 구체를 날려 보내기도 하고, 몬스터에게 정신 착란을 일으키는 능력도 있는 스킬인가. 윤서는 흥미롭게 구경했다. 햅쌀이도 윤서의 품 안에서 제 주인과 똑같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권지한이 땅을 박찬다 싶더니 바로 근처의 몬스터의 목이 날아갔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빨랐는지 삭풍의 검신에는 핏방울조차 튀지 않았다. 권지한은 몬스터들의 사지를 자르고 복부를 꿰뚫고 단단한 뿔을 베는 등 여러 테스트를 했다. 윤서는 사람들이 왜 권지한이 염력을 가졌다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다. 움직임이 너무 빠르니 어지간한 사람들 눈에는 움직이지 않고 죽이는 것처럼 보일 법했다.
죽음의 신이 ‘권지한’에게 흥미를 갖습니다.
저번부터 죽음의 신은 권지한에게 흥미를 보이고 있다. 아예 가호 신이 되어도 좋을 텐데 왜 흥미만 보이는지 알 수 없었다.
삐유, 삐유. 삐유.
햅쌀이가 윤서의 옷자락을 입에 물고서 재촉했다. 신나게 싸우는, 아니, 신나게 도륙하는 모습을 보자 저도 전투욕이 끓어오른 것이다.
윤서는 진정하라는 듯 햅쌀이의 등을 톡톡 쓰다듬어 주고 일어났다.
“형, 어디 가?”
권지한이 몬스터의 목뒤에 검을 꽂아 넣으며 물었다. 그렇게 움직였는데도 숨 한 번 몰아쉬는 일이 없었다.
“햅쌀이가 전투를 보고 흥분했습니다. 저는 아까 우리가 밥 먹은 식당 옆 카페에 가 있을 테니까 테스트 마치면 오세요.”
“나도 갈래.”
“권지한 헌터는 테스트 마쳐야죠.”
“금방 끝낼 거니까 같이 가자.”
윤서가 삐유삐유 울어 대는 고슴도치를 손에 들어 보였다. 윤서의 손에서도 가시를 바짝 세운 햅쌀이는 누가 봐도 극도로 흥분한 상태였다.
“몬스터 피 냄새 다 빼면 오세요.”
“알았어….”
권지한이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윤서는 햅쌀이를 달래며 빠르게 멀어졌다.
윤서는 권지한에게 말한 것처럼 암시장으로 향했으나 카페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그는 희귀 아이템을 파는 거리로 들어섰다.
암시장에 온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
하나는 권지한이 쓸 만한 좋은 무기를 구하는 것.
두 번째는… 귀속을 해제하는 아이템을 구하는 것.
사실 윤서는 방황 중이었다.
모든 유언을 들어주고 나면 죽겠다는 결심은 10년간 한 번도 흔들림이 없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자꾸 미래가 기대되고, 하고 싶은 것들도 많아지면서 확고했던 결심이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목적을 수정한 것은 아니다. 엄연히 죽을 예정이므로 주인이 사망했을 때의 귀속 아이템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