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138)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138)화(138/195)
#126
“아.”
윤서는 순간 소름이 돋아서 몸을 으스스 떨었다. 형, 왜 그래- 하고 권지한이 더 강하게 윤서를 붙잡았다.
그때였다.
눈 한 번 깜빡하지 않았는데 풍경이 바뀌었다.
하얀 달빛과 물비린내 냄새,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 팔을 붙잡았던 권지한의 손까지 모든 것이 사라지고 눈앞에 나타난 것은 적막과 어둠이었다.
가이아 시스템 알림!
당신은 가장 깊은 어둠에 도달했습니다.
허가받지 않은 자의 진입으로 가이아 시스템이 개입합니다.
일정 시간 후 지구로 돌아갑니다.
공간 유지 시간 00:01:59
가이아 시스템 메시지는 평소와는 달리 눈앞에 보이는 게 아니라 머릿속에 직접 울렸다. 그 목소리는 바로 윤서 자신의 목소리였다. 시간은 1분 59초에서부터 1초씩 줄어들고 있었다.
윤서는 제 팔다리조차 보이지 않는 공간의 이쪽저쪽을 살폈다. 이 공간은 텅 비어 있었으며 동시에 무언가로 가득 차 있었다.
그렇게 느낀 이유는 피부에 닿는 공기가 따뜻했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낯선 장소로 이동했는데도 두려운 마음이 안 들 정도로 온화한 무언가가 공간을 메우고 있었다.
관측자가 당신을 보고 있습니다.
윤서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관측자가 보고 있다니? 그럼 이 따뜻한 느낌이 관측자의 시선이었던 걸까?
윤서는 자신이 존재하는지조차 헷갈릴 정도의 어둠 속에서 가까스로 입술을 열었다.
“여기는-.”
이곳은
윤서와 똑같은 목소리가 대답했다.
어둠으로 가는 길목
영원히 볼 수 없는 곳
무엇도 닿지 않는 곳
어긋남의 영역으로 가는
마지막 길목
“잠시만요. 잠깐…. 마지막 길목이라니…. 어긋남의 영역이란 건 무슨….”
공간 유지 시간 00:01:05
윤서는 머릿속에 울리는 메시지를 듣고 하려던 질문을 취소했다. 그리고 다른 질문을 했다.
“당신은… 당신들의 정체는 외계인입니까?”
· · ·
잠깐 황당한 듯한 숨소리가 들린 듯한데 착각이겠지?
우리는
우주의 수호자
우주의 경계를 지키고
만물을 보호하며
자격을 가진 별을 선별한다.
윤서는 그 목소리가 내뱉는 모든 단어를 이해하지도 못하고 일단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똑똑한 권지한에게 이대로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좀 2배속으로 빠르게 말해 주면 안 됩니까?”
· · ·
“그러니까 외계인이라는 겁니까. 아니면 신이라는 겁니까?”
우리는
신
짧은 대답에 윤서는 소름이 돋았다.
“…지금 이 말을 하는 당신은 대체 누구죠?”
나는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하는 것
관망하고 기다리는 것
우주를 유지 가능하게 하는 존재 · · ·
‘관측이 있고 나서야 비로소 물질로써 존재한다는 양자 역학의 그 관측을 이뤄 내는 관측자. ’
여기 오기 직전 짧게나마 설명을 들은 윤서는 소름이 돋았다.
인류가 만든 수많은 물리학 이론 중 하나가 아니라 정말로…. 바로 이 목소리의 주인의 관측이라는 행위가 우주를 존재하게 한다는 것인가?
지금 겪고 있으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고요한 적막이 흘렀다. 윤서는 문득 시간을 확인했다.
공간 유지 시간 00:00:25
신기해할 때가 아니다. 윤서는 재빨리 어둠을 향해 외쳤다.
“이 모든 것. 던전, 몬스터 각성. 이것들은 대체 뭡니까? 왜 갑자기 지구에 나타났고, 왜, 왜…. 당신들이 우리에게 원하는 건 대체 뭐죠?”
관측자는 잠시 침묵한 후에 대답했다.
빛이 닿지 않는 우주에는
어긋난 존재들이 태어나고
어긋남의 영역이 넓어지면
별의 영역이 사라진다.
이를 저지할 능력이 없다면
별의 자격은 박탈될 것이나 · · ·
두려워 말라.
우리가 그대와 함께할 테니 · · ·
가이아 시스템 알림!
공간 유지 시간이 끝났습니다. 지구로 돌아갑니다.
“잠깐…!”
윤서가 급히 외쳤으나 그의 목소리는 허무하게 흩어질 뿐이었다. 마치 정신이 통째로 들어 올려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어둠과 적막이 사라졌다.
이번에 나타난 풍경은 윤서가 아는 곳이었다.
하얀 달이 뜬 밤하늘, 자작나무 숲과 호숫가.
“형, 형! 씨발, 괜찮아?”
익숙한 목소리가 윤서의 정신을 깨웠다. 몸이 작게 흔들리고 있었다. 윤서는 눈을 깜빡였다. 자신은 권지한의 품에 안겨 있었고, 권지한의 얼굴은 걱정으로 가득했다. 도등수와 에우로페 길드원들 그리고 분명 호수에 잠겼던 그레이스도 어느샌가 호수를 나와 가운을 걸친 채였다. 구불구불한 금발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윤서는 권지한의 품에서 벗어나려 하다가 휘청거렸다. 권지한이 단단한 힘으로 윤서를 부축했다. 양어깨와 팔을 붙잡는 손길은 윤서를 놔줄 것 같지가 않았다.
윤서는 얼떨떨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어떻게 된 거냐는 질문은 내가 하고 싶은데. 형이 갑자기 쓰러져서 깜짝 놀랐어.”
“쓰러졌다고요?”
“응, 어우 씨. 존나 놀라서 지금도 심장 벌렁거린다. 의식이 사라진 것처럼 갑자기 휙 쓰러지는 걸 내가 아슬아슬하게 받아 냈어. 10분 정도 지난 것 같아. 앞으로는 예고 좀 하고 쓰러져 줘.”
“…….”
“거절이 안 됐던 거야? 거절하지 못해서 의식이 어디론가 갔다 온 거고?”
윤서가 대답 없이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단단히 지탱해 오는 권지한의 힘이 아니었다면 윤서는 진즉 쓰러졌을 터였다. 권지한의 표정이 더욱 심각해졌다.
“형.”
“…….”
윤서가 고개를 들었다.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권지한은 평소의 여유는 사라진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몸 괜찮은 거 맞아?”
“…몸은 괜찮습니다. 하지만… 뭔가를 봤습니다.”
“뭘?”
“…….”
윤서는 자신이 무엇을 봤는지를 생각했다. 본 게 아니라 들었고, 그 내용은…. 여기서는 말할 수 없다. 아니, 사실은 무슨 대화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모여야 할 것 같습니다.”
윤서의 떨리는 목소리에 권지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도등수에게 이런저런 걸 지시하면서도 여전히 윤서를 놓지 않았다. 윤서는 그제야 권지한을 제대로 살폈다.
이제 보니 그는 식은땀까지 흘리고 있었다. 극심히 두려운 상황을 마주하기라도 한 사람처럼. 관자놀이에는 핏대도 서 있었다. 기이한 체험을 하고 돌아온 이는 윤서였는데도 말이다.
***
윤서는 자신이 겪은 일을 모두에게 말했다.
모두라는 건, 권지한과 석영 길드장, 부길드장, 그리고 에우로페 길드장이었다.
그리고 그 세 명이 다시 헌터 연맹 회장과 부회장, S 길드 길드장, 한국 헌터 협회장, 한국과 미국 대통령 그리고 대격변 이후 생겨난 여러 국제 연합의 수장들에게 서채윤이 겪은 일을 전달했으며, 그들이 다시 저명한 학자들을 불러 모았다.
모든 모임은 극비리에 열렸고 언론에는 아무것도 발표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중의 관심은 ‘선택된 자’ 특성 보유자와 신 리벤저 리스트에 집중되어 있었다.
세상의 대다수가 평범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발표하지 않았으면서, 정작 서채윤이 겪은 일을 아는 극소수의 인원은 패닉에 빠져 있었다.
과학과 철학, 수학과 인문학. 모든 이론을 총집합하다 보니 해석이 분분했는데, 대부분이 동의하는 해석이 하나 있었으니 그건 바로 ‘관측자라는 신은 인류를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있다’였다. 계시 스킬이란 건 기본적으로 인류를 돕기 위한 스킬이고, 그 스킬을 사용하다 일어난 현상이니 인류를 함정에 빠뜨리려는 의도는 없을 거란 게 공통된 생각이었다.
이제 남은 건 관측자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분석해서 인류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될 정보를 끌어내는 일이었다.
그동안 윤서는 석영의 트레이닝 룸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 또한 나름대로 머리를 굴리면서 관측자가 한 말을 고민하고, 또 고민했지만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였다.
관측자에게선 어떤 두려운 느낌도 받지 못했으니 분명 인류에게 해로운 정보는 아닐 것이다.
‘두려워 말라. 우리가 그대와 함께할 테니….’
그렇게 말할 거면 아예 두려운 상황을 안 겪게 해주면 안 되나?
신이라고 해도 그 정도의 능력을 펼칠 수는 없는 걸까?
미적분 들어갈 때 학업을 포기한 전적이 있는 윤서로서는 궁리하고 추리하는 것보다 그냥 몸을 단련하면서 땀을 흘리는 게 나았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트레이닝만 했다….
그 결과 스킬 컨트롤은 현역 때의 실력을 되찾았기에 이제는 신체 단련 중이었는데, 그의 옆에는 항상 권지한이 꼭 붙어 있었다.
대던전 진입이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는 퍼펙트 팀원들은 S급 그린 던전 공략에 들어가 실전 경험치를 더 쌓는 중이라 퍼펙트 전용 트레이닝 룸은 오직 둘만의 차지였다.
삐유!
물론 햅쌀이도 있었다.
운동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권지한과 경쟁 구도로 흘러갈 때가 있는데 작은 새는 그럴 때마다 이쪽에 붙었다 저쪽에 붙었다 하면서 신나 했다.
햅쌀이의 귀속을 해제하고 권지한에게 물려줄 생각인 윤서는 햅쌀이가 권지한의 편을 들기도 한다는 게 기특하고 뿌듯했다.
그리고 권지한과의 경쟁은… 대체로 권지한이 이기고 있었다. 윤서는 이제 발끈하지도 않았다. 체격 차이도 있는 데다가 예부터 나이가 깡패라는 말도 있으니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 그러나 민첩성이나 전투 센스 쪽에서는 확실히 윤서가 우세했다.
그렇게 나흘이 지났을 때 유준철로부터 연락이 왔다. 구내식당에서 권지한과 점심 식사를 하고 트레이닝 룸으로 내려왔을 때 윤서의 U패드가 울린 것이다.
“네, 여보세요.”
– 윤서 씨, 어디 계십니까? 건물 안이십니까?
“트레이닝 룸입니다.”
– 내일 한 시에 일정 비어 있으신가요?
“무슨 일인지 말씀하세요.”
– ‘선택된 자’ 검수가 있어서 말입니다. 116명이 오기로 했습니다. 지한이도 옆에 있죠?
“네, 옆에서 듣고 있습니다. 함께 갈 테니 장소 알려 주세요.”
– 아, 그리고 한 가지 용건이 또 있습니다. 혹시 괜찮으시면 지금 대회의실로 오실 수 있습니까?
“지금요?”
– 관측자와의 대화에 대해 꽤 그럴듯한 추론이 있어서 공유드리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