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142)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142)화(142/195)
#129
특성 : 선탠된 자
이게 뭐야? 순간 헷갈렸잖아. 뭐 이딴 특성이 다 있어?
(태닝의 신의 가호를 받고 있습니다.)
별 신이 다 있다.
권지한이 윤서의 표정을 보고서 쿡쿡 웃었다. 그가 고개를 젓자 직원이 그녀를 내보냈다. 각성자는 정말로 자신이 선택된 자라고 생각했는지 억울하고 원통한 얼굴로 나갔다.
“다음 사람 들어오세요.”
이번엔 미국계 남성이 들어왔다.
특성 : 간택된 자
다음은 동양인 여성이었다.
특성 : 컨택된 자
아프리카계 남성….
특성 : 선택의 기로에 선 자
아랍계 여성….
특성 : 채택된 자
…….
특성 : 선출된 자
특성 : 선도된 자
특성 : 혜택받은 자
특성 : 무주택자
그렇게 죄다 엉망진창이었다. 윤서는 ‘무주택자’는 그냥 석영 본사 구경 한번 해 보겠다고 지원한 게 아닌가 싶었다.
석영 직원은 헷갈리는 특성을 지닌 이들 따로, 스킬과 아이템으로 특성을 속인 이들을 따로 분류했다.
116명을 검수하는 데 한 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다.
결국 선택된 자는 찾지 못했고 세상에는 생각보다 다양한 가호 신과 특성이 있다는 사실만 깨달았다.
“생각보다 일찍 끝났네. 던전 진입까지 시간 좀 남았는데 39화 볼까?”
머리 위에 햅쌀이를 얹은 권지한이 웃으며 일어났다. 두 사람은 오늘도 등급이 낮은 던전을 세 군데 돌기로 했다. 단둘이서만….
“지금 드라마 볼 때가 아닙니다. 가이아 스킬 보유자들을 한 명도 못 찾다니 심란하네요. 만약 그들이 본인 의지로 잠적하는 거라면 찾을 생각도 없지만, 그게 아니라 아예 존재하지 않는 거라면….”
“너무 걱정하지 마. 어차피 그 세 개는 전투에 딱히 도움되는 것들도 아니잖아.”
“<가이아의 꿈>은 어떤 스킬인지 모르지만, <가이아의 그림자>로 강력한 스킬을 복사할 수 있는데요?”
“<퀘이사>를 복사해도 스킬 보유자 마력이 8,000 못 넘으면 쓰지도 못해.”
“<가이아의 마음>은 멀리 있는 동료와 텔레파시로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편리한 스킬입니다.”
“형…. 형이 10년간 낚시하고 산 타면서 바쁘게 사는 사이 세상에는 ‘길드 대화’라는 것도 생겼어. 마력 소모와 쿨 타임도 없는 엄청난 길드 스킬이지.”
“…….”
“내 생각에 전투에 가장 도움이 되는 스킬은 <가이아의 대지>인데 여기 눈앞에 보유자가 있어서 다행이야. ‘감지’와 ‘이동’ 말고 또 어떤 능력이 있어?”
저번에 물어봤을 때 대답해 주지 않았더니 권지한은 가끔 이렇게 은근슬쩍 물어오고는 했다.
“비밀입니다.”
“그래, 계속 숨긴다 이거지. 역시 내 반은거 먼치킨 형. 언젠간 꼭 직관하게 해 줘.”
“<가이아의 눈>은 다른 능력 없습니까?”
“없더라고. 업데이트나 기다려야지. 그래서 드라마 볼 거야, 말 거야?”
“봐야죠.”
대던전의 주전력인 두 사람은 하드한 트레이닝을 하고 있었지만 이런 여가 생활도 결코 빼놓지 않았다.
***
‘선택된 자’ 검수를 마치고 일주일 후, 윤서와 권지한이 한 손으로 물구나무를 선 채 오늘 저녁에 갈 던전을 고르고 있을 때 유준철로부터 연락이 왔다.
심문 스킬로 한 명, 한 명 검증해서 리스트를 작성하고, 그 결과를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돌린 후 가장 최선의 결과를 도출할 신 리벤저 확정 리스트와 후보 리스트가 드디어 나온 것이다. 그리고 세계 헌터 연맹은 권지한과 서채윤이 직접 최종 명단을 작성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윤서는 처음에는 ‘왜 최종 명단을 나랑 권지한이 짜야 하지?’ 하고 의문이 들었지만, ‘연맹이나 협회 간부들이 짜는 것보다는 현장에서 뛸 사람들이 짜는 게 맞지.’라고 스스로 답을 내렸다.
저번에 수재희와 박수빈이 말한 것처럼 신 리벤저가 되느냐 마느냐에는 세계 헌터 연맹장보다 서채윤의 말 한마디가 더 큰 위력을 지니게 된 것이다.
유준철에게 지금 바로 가겠다고 답장 보낸 윤서가 자세를 풀자 권지한도 풀었다. 민소매 트레이닝복을 입은 두 사람은 누구랄 것 없이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트레이닝하기도 바쁜데 왜 이런 걸 시키는 거야. 지들이 알아서 좀 짜 주지.”
“저도 한 번은 먼저 확인해 두고 싶습니다. 있어서는 안 되는 이름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있어서는 안 되는 이름?”
“네, 들어가면 무조건 죽을 사람들.”
“그걸 이름 보면 알아? 형 철학 공부라도 했어?”
“안 해도 알아요. 그 정도는.”
“내 이름은 어떨 것 같아? 권지한…. 어때?”
“지겹도록 오래 살 것 같네요.”
“형 이름도 그래. 윤서랑 서채윤 둘 다 무지막지 오래 살 것 같아. 우리 지구가 우주선 타고 우주 바깥까지 여행 다니는 날까지 오순도순 이쁘게 잘 살자.”
권지한이 미소 지었다. 한 팔로 물구나무서서 팔굽혀 펴기를 100회 마친 사람치고는 퍽 여유로웠다.
“좋습니다. 당일치기 우주선 투어로 우주 바깥의 어긋난 존재들 동물원을 구경하는 것도 괜찮겠죠.”
윤서의 말에 권지한이 크게 웃었다.
둘은 전혀 무게감 없는 대화를 하면서도 빠르게 상대방의 팔뚝과 쇄골에 맺힌 땀방울을 훑고 있었다. 더 지친 쪽은 윤서였는데 더 상기된 쪽은 권지한이었다.
샤워 후 자고 있던 햅쌀이를 데리고 유준철의 집무실로 향했다. 이번에는 도등수는 없고 유준철 혼자만 있었다. 유준철은 긴장된 얼굴로 인사한 후 테이블 위에 홀로그램 창을 열었다.
삐융, 삐융.
햅쌀이는 홀로그램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리고는 했다. 윤서는 다람쥐가 편하게 홀로그램 속에서 나뒹굴게 뒀다.
“대던전 총 진입 인원은 450명으로 생각 중입니다. 우선 저희가 확정한 인원은 188명이고, S급 10명, A급은 102명, B급 60명, C급 16명입니다.”
윤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450명은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여기 500명 후보 중에서 262명을 골라야 합니다. 이제 내일이면 2주 남은지라 이왕이면 오늘 중으로 결정하고 싶습니다. 각자에게도 대던전 공략에 준비할 시간이 필요한데 사상 검증 작업 때문에 리스트 짜는 데에 생각보다 오래 걸려서 말이죠…. 여기 후보들은 갤럭사이아가 아니란 걸 확인했으니 걱정 마시고요.”
윤서는 설명을 들으며 리스트를 훑었다.
권지한, 윤서, 수재희, 알렉 스위치, 로렌스 밀레, 리오 델리, 옐레나 이바노프, 조만이, 크리스 카일, 푸르카 후투루….
S급 명단은 예상대로였다.
연맹이 명단을 공식 발표하진 않았으나 이들이 대던전에 진입한다는 건 이미 전 세계가 알고 있었다.
이 S급들 절반 이상이 석영 길드원이니 석영의 힘이 새삼 대단했다. 게다가 마지막 둘만 빼면 한국 길드 소속이라 한국인들이 굉장히 억울해하고 원통해했다.
‘조만이가 날 알게 되는 건 싫은데.’
그곳에서는 정체를 감춘 채 지내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들에게는 결국 얼굴을 드러내게 될 텐데 레인보우 부길드장의 띠꺼운 얼굴이 걸렸다….
‘어쩔 수 없지….’
윤서는 그 점에 대해선 깊게 고민하지 않았다. 함께 등을 맞대고 싸울 동료들에게 얼굴 공개하는 것 정도야 뭐….
S급들의 사진과 이름, 가진 주요 스킬 이름과 설명이 지나가고 A급 이하로 넘어갔다.
퍼펙트 팀원들이 가장 위에 있었다. 그리고 도등수와 여러 유명한 공격대 각성자들 이름이 있었고.
어느 지점에서 윤서가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임시 팀 멤버들이 다 있네요?”
“네…. 전원이 신청을 해서… 그렇게 됐습니다.”
유준철이 침울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덧붙였다.
“참고로 저는 반대가 심해 못 가게 되었습니다.”
퍽 민망한 투였다.
“네, 이해합니다. 석영 길드장은 안 가는 게 맞아요.”
본래는 유준철도 대던전에 들어가려고 했으나, S급 전투계 헌터들이 단 3명만 지구에 남는 가운데 석영 길드장과 석영 부길드장, 레인보우 부길드장에 미르 길드장까지 들어간다고 하자 사람들의 반대가 너무 극심했다.
한국인들이 특히 많이 불만을 표했다. 길드장들만은 지구에 남으라는 청원도 올라와 몇 시간 만에 10만을 달성했고, 별로 사랑받지 못하는 레인보우 길드의 부길드장도 대던전에 들어가지 않게 하라는 청원이 올라올 정도였다. 왜 외국 길드장은 한 명도 대던전에 들어가지 않는데 우리나라만 들어가냐고, 호구냐고 아우성이 거세서 결국 유준철과 조미르는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다.
윤서도 너무나 납득하는 바였고, 그가 의문을 가진 것은 그 점이 아니었다.
“저는 임시 팀 멤버들 이름이 왜 여기 전원 다 들어와 있는지 묻고 싶네요. 홍의윤은 그렇다 쳐도 다른 이들은?”
“다들 같은 등급 내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였기에 서채윤 후보가 된 겁니다. 신 리벤저가 될 자격과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어요.”
“자격과 능력만 되면 전부 대던전에 들여보낼 생각이신가요?”
“자격과 능력이 되고 본인이 원한다면… 예.”
유준철은 또다시 윤서와 가치관 마찰이 있을까 해서 조심스러운 눈빛으로 대답했다.
“유준철 길드장. 여기 이 둘은 형제입니다.”
윤서가 남궁심해와 김진해를 가리켰다.
“이 둘의 큰형은 김서해라는 이름으로 용맹한 리벤저였죠. 끈질기게 살아남아 세 번째 지형까지 도달했으나 몬스터의 독에 당해 죽었습니다. 평소에 늘 동생들 얘기를 하곤 했어요. 한 명은 과묵하고, 한 명은 아직 철이 없다고. 어머니가 삼 형제를 홀로 키우느라 고생한다는 얘기도 했었죠. 그 어머니는 첫째를 대던전에서 잃었는데, 나머지 두 아들까지 대던전에 들여보내야 한다면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그때 권지한이 손을 들었다.
“그 어머니가 아들들보다 먼저 등록했던데.”
“네?”
“여기 봐.”
권지한이 홀로그램을 건드려 아래로 내렸다.
단호한 눈빛의 중년 여성 사진과 이름 석 자가 뜨고 그 옆에는 ‘멸하는 자’ 길드장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신청 일자도 적혀 있었는데 정말로 아들들보다 더 앞서 신청했다. 이 사람은 아들 둘과 달리 확정이 아니라 후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