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143)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143)화(143/195)
#130
“하….”
윤서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유준철이 눈치 보듯이 말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구 리벤저… 그러니까 이전 리벤저의 유가족 각성자는 거의 다 지원했습니다….”
윤서의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윤서가 아까 권지한에게 말한 ‘있어서는 안 되는 이름들’은 사실 구 리벤저의 유가족이었다. 그들은 냉정한 전투가 어려우리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혹시 복수를 위해서인가 하고 심문 스킬로 확인했는데 그게 아니라 지구를 지키고 싶다는 일념이었습니다. 영웅의 가족답게 그들도 각성자로서, 그저 정의를 위해서 나선 겁니다.”
윤서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서해 형의 두 동생을 대던전에 들여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들 자신이 원한다고 해도.
한참 후 윤서가 중얼거렸다.
“정의라는 건 정말 전염병 같군요….”
“…….”
권지한도 유준철도 아무 말 못 했다.
정의를 전염병 취급하는 서채윤이라니.
유준철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고, 권지한은 너무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
윤서는 결국 두 형제를 제외하지 않았고, 임시 팀 멤버들에 대해서도 더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확정 리스트를 빠르게 내리고 후보 리스트를 꼼꼼히 읽었다.
“B급과 C급이 많네요.”
“네, 지구에 A급을 최대한 많이 남겨 둘 생각이라서요.”
전 세계 S급 헌터 17명 중 전투 가능한 S급은 13명이고, 그중 10명이 대던전에 진입한다. 국내외 합쳐 A급 헌터는 천 명이 안 되는데 그중에서 300여 명만 신 리벤저로 들어간다고 해도 지구에는 700명밖에 남지 않는다.
“여러분이 들어간 후에도 지구에는 S급 던전들이 발생할 텐데 지구의 고위 헌터들을 전부 대던전에 들여보낼 수는 없죠. 최소한의 A급 헌터들은 지구에 두고 빈 화력은 B급, C급 헌터들도 채워야 합니다….”
윤서가 B급과 C급 인원까지 줄이겠다고 할까 봐 유준철이 선방을 날렸다. 윤서는 담담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제 말이 오만하게 들릴지 모르나 대던전에 어중간한 헌터들은 솔직히… 필요 없습니다. 사실 A급 헌터들도 제 입장에서는….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A급 이하 헌터들은 모두 후반에는 S급 헌터들이 지켜야 할 존재가 된다고 말이죠.”
“…….”
“그리고 A급이 300명이든 200명이든 그 또한 큰 차이가 아닙니다.”
“A급 헌터 100명이 큰 차이가 아니란 말씀입니까?”
“네, S급 레드-블랙 던전에서는 S급 헌터 1명은 아주 큰 차이지만 A급 헌터 100명 차이 정도는 미세해서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합니다.”
“…….”
유준철이 심각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권지한은 턱을 쓸며 눈을 가늘게 뜨고 윤서를 바라봤다.
윤서는 그 시선을 똑바로 마주치지 못했다.
왜냐하면 방금 자신의 말은 거짓말이었기 때문에.
A급 헌터 100명이 들어온다면 공략은 한층 더 수월할 것이다. 어떤 전쟁이든 사람 수는 많은 것이 좋은 법이니까. 그러나 윤서는 어떻게든 죽을 사람을 줄이고 싶은 마음에 이런 말을 내뱉었다.
권지한이 윤서에게 물었다.
“그럼 형은 총 몇 명이 들어갔으면 하는데?”
“이 확정 인원만 들어가도 충분합니다.”
“188명?”
“네, 188명.”
10년 전 리벤저는 1,203명이었는데 윤서는 188명을 말하고 있었다.
아무리 윤서 편파적인 권지한이라도 이 정도의 축소는 너무하다 싶었는지 아무 말이 없었다. 둘은 가만히 시선을 마주하고 있었는데 꼭 눈싸움 같기도 했다.
삐융.
햅쌀이는 혼자 잘 놀다가도 윤서와 권지한의 분위기가 미묘해지면 바로 반응했다.
삐융, 삐유.
다람쥐가 데스크 위를 구르듯이 달려와 울어 댔다.
지금 싸우는 거야? 단검으로 변할까?
그렇게 묻는 듯한 작은 다람쥐의 등을 권지한이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시선은 여전히 윤서를 향하고 있었다.
“형, 나는 그래도 300명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188명은 정말 최소한의 숫자인데, 아무리 우리가 자신감이 있다고는 해도 심적으로 여유가 있어야 우리의 능력도 발휘할 수 있는 거야.”
“여유를 가지기 위해 총알받이를 챙겨 가자는 뜻이군요.”
“어우, 씨.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까칠하고 무심한 윤서 형이 인정할 정도로 정의롭고 내면이 탄탄한 내가 사람을 총알받이 취급할 것 같아?”
권지한이 섭섭하다는 듯 과장되게 말했다.
“우리가 지켜야 할 사람들도 아니고, 총알받이도 아니고, 함께 싸울 동료와 우리 등을 맡길 사람들을 데려가자는 거잖아. 가이아 시스템에 복수하자고 존나 자신 있게 말해 놓고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런데 188명만으로 복수하기에는 그곳은 너무 넓고, 적도 너무 많아. 이런 가정은 하기 싫지만 누군가, A급 헌터들이 죽었을 때를 생각해 봐. 그들의 목숨은 하나뿐이야. 다시 살아나서 전력이 되어 주지 않을 거란 말이야.”
윤서는 눈을 내리깔았다.
‘그들의 목숨은 하나뿐이야.’
윤서는 그 말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목숨이 하나뿐이라서 낮은 등급의 각성자들은 데리고 가고 싶지 않은데.
목숨이 하나뿐이라서 낮은 등급의 각성자들이라도 데리고 가야 한다.
가장 아이러니한 건 이게 옳은 말이라는 것이다. 권지한은 늘 옳은 말만 한다.
“250명은 어때요.”
“어차피 타협할 생각이면 그냥 300명으로 해, 형. 내 말이 맞는다는 걸 알잖아.”
“…….”
윤서의 표정만 보고서도 인원수에 대한 결정이 끝났다는 걸 안 것처럼 권지한이 당당하게 유준철에게 말했다.
“112명 더 고를게. 연맹에 총 300명이라고 미리 연락해 놔.”
“…그래, 알겠다.”
유준철은 더 인원을 늘리려는 시도는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이제 우리는 이 지원자 중에서 우리 등을 맡길 수 있는 사람들을 골라 보자.”
권지한이 후보 리스트의 첫 번째 사람부터 진지한 눈으로 읽어 나갔다.
윤서도 이미 인원을 정했으니 더는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윤서와 권지한은 공격력보다는 방어력이 높은 사람을, 서포트 계열과 힐러 계열을 중점적으로 살폈다.
전투 경험이 많은 이들, 가호 신이 많은 이들, 각성하기 전 직업이 군인이나 경찰인 이들…. 특히 마력 회복 스킬과 쿨 타임 회복 스킬을 가진 이들은 대부분 집어넣었다. 포션이 있다지만 생산 수량에도 한계가 있으므로. 진입 날까지 최대한 생산해서 마력 포션은 대략 500여 개, 쿨 타임 포션은 100여 개 챙겨 갈 예정이었다.
“형, 이 사람은 어때? 가호 신이 다섯이나 되고 12년 전 각성했네. C급이지만 전투 경험도 많을 거야.”
“우리한테 C급 실드 스킬 사용자가 더 이상 필요하지는 않을 것 같군요.”
“이 사람은? 지금은 힐러고 전 직업이 의사인데 무려 경력 20년이야.”
“의사 경력이라…. 좋아요. 넣죠.”
두 사람은 이렇게 열심히 리스트를 짰다.
대던전이 2주 남았으니 오늘 내로 확정해서 최종 명단을 발표하고 최소한의 준비할 시간을 줘야 한다.
그렇게 열심히….
누구는 넣고, 누구는 빼고.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열심히 리스트를 짜다 보니 윤서는 문득… 죽을 사람을 고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윤서는 순간 글자를 못 읽게 된 사람처럼 멍하니 홀로그램을 바라봤다.
그래.
이건 그저 기분도 아니고 엄연한 사실이다.
나는 지금 제 발로 죽으러 들어갈 사람을 고르고 있다.
쿵, 쿵.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윤서가 손을 멈추자 권지한이 그를 바라봤다. 표정을 살피던 권지한이 홀로그램 장치를 끄더니 벌떡 일어나 어디론가 걸어갔다. 윤서는 권지한의 부재도 인식하지 못하고 주머니를 더듬으며 약병을 꺼냈다. 당장 먹지 않으면 공황 증세가 올 것 같았다. 간신히 뚜껑을 열고 알약을 손바닥에 탈탈 털었다. 다섯 개가 나와서 그대로 삼키려고 했으나 손목이 멈췄다.
권지한이 윤서의 손목을 붙잡고 주먹 쥔 손가락을 하나하나 펼치고는 딱 두 개만 남긴 뒤 세 개는 버렸다.
“물이랑 같이 먹어.”
권지한이 물병을 내밀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뭘, 우리 사이에.”
윤서는 약을 삼키고 물을 마셨다. 물병은 권지한이 다시 가져가서 뚜껑을 잘 잠가 놓았다.
윤서는 약효가 돌기를 기다리면서 부질없는 생각을 했다.
가족이 있거나, 연인이 있는 사람들, 나이 어린 사람들은 제외하고 싶다…. 그렇다고 가족과 연인이 없고, 나이 많은 이들은 죽어도 되느냐면 그것도 아니다. 그냥 죽고 싶어 하는 사람들만 데리고 가면 안 될까.
그런 생각이었으니 부질없는 생각이 맞았다.
“권지한 헌터.”
“응, 형.”
권지한이 다정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둘은 서로를 응시했다.
윤서는 다정한 회색 눈을 보며 천천히 말했다.
“가이아 시스템에 복수하자고 했잖아요.”
“…응, 내가 그렇게 말했지.”
“그래서 나도 말해 두겠는데….”
“…….”
“나는 단 한 명이라도 죽으면 그건 복수 실패라고 생각합니다.”
“…….”
“단 한 명도 죽어서는 안 돼요. 그러면 영원히 복수를 못하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는 영원히 패배한 거예요. 공략에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그건 실패입니다.”
“그래, 알았어.”
권지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마찬가지야, 형. 나도 그렇게 생각해. 빡세겠지만 잘해 보자.”
“…….”
권지한이 악수하자는 듯이 손을 내밀었다. 윤서는 마디마디가 굵은 손을 물끄러미 보다가 맞잡았다.
권지한은 이제 그만하자거나 힘들면 나 혼자 하겠다는 말 같은 건 하지 않았고 윤서가 안정되길 기다리면서 햅쌀이와 놀아 주다가 윤서가 이제 괜찮아졌으니 다시 시작하고 말한 뒤에야 홀로그램 장치를 켰다.
둘은 몇 시간이 지나서 최종 명단을 완성해 유준철에게 전달했다.
10분도 지나지 않아 명단에 오른 이들에게 개별 연락이 돌아갔다. 윤서는 그들이 어떤 반응일지 상상해 봤다가 머리만 아파져서 그만뒀다.
최종 명단도 나오고, 이제 2주.
대던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