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148)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148)화(148/195)
#134
‘화심’이 스킬 <광합성>을 사용합니다.
윤서의 옆에서 빛이 번쩍였다. 화심은 오직 <광합성>밖에 갖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한 스킬만 사용하면서 전투하고 있었다. 일시적으로 눈을 멀게 한 다음 그 틈을 노려 공격하는 스킬인데 쿨 타임이 없다시피 한 모양이었다.
‘확실히 C급치고는 강하긴 하네.’
근처에서는 수재희의 <해치>와 <장산범>이 몬스터를 찢어발겼고, 조만이가 <절대 영도>가 수십 마리의 몬스터들을 얼렸으며, 옐레나가 <라이트닝 볼트>로 수십 마리를 한꺼번에 태워 죽였다. ‘아프리카의 영웅’이라고 불리는 푸르카 후투루는 <그레이존>으로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어 다수의 몬스터들을 구속했으며, ‘미국의 대도둑’ 크리스 카일은 <돌풍>으로 적들을 쓸어 버렸다. 홍의윤은 <불의 고리>로 몬스터들이 내뿜는 불길을 소멸시키고, 도등수는 <암흑의 벽>으로 후방에서 서포터 헌터들을 지켰으며, 임시 팀 인원들… 남궁심해와 김진해, 이정인, 박강도 제 몫을 해내고 있었다.
“으아악!”
<보호하는 베일> 내구도 20/100
몬스터의 거대한 앞발에 직격당한 B급 헌터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화염 웜의 독 가시에 박힌 헌터는 얼른 후방으로 빠졌고, 몬스터에게 발목이 붙잡혀 매달려 있던 헌터를 다른 헌터가 구하려다가 같이 붙잡혔다. 둘은 마력이 없었는지 별다른 스킬을 사용하지 못하다가 박수빈의 적절한 마력 치유 스킬로 간신히 반격했다.
아무리 고르고 고른 300명이라고 해도, 다른 S급 던전들과 달리 잡몹 중에도 S급들이 섞여 있다 보니 다들 S급 헌터들과 퍼펙트 팀원들만큼 잘 싸우는 건 아니었다.
쉬이이익!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잡몹들이 윤서에게 달려들었다.
스킬 <해치의 야성>을 사용합니다.
40km 반경 내의 모든 몬스터가 크게 겁을 먹습니다!
40km 반경 내 몬스터들의 공격력과 방어력이 대폭 하락합니다!
보스 몬스터와 싸울 때는 사용할 스킬들과 타이밍, 순서들을 정해 놨지만 이런 자잘한 전투에는 딱히 정하지 않았다. 첫 번째 전투는 팀원들의 사기에 영향을 미칠 것이므로 대승해야만 했으니 버프 스킬을 아끼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권지한’이 스킬 <갈증>을 사용합니다.
윤서는 공중에서 몬스터들을 학살하는 권지한을 바라봤다. 암시장에서 산 ‘흑의 저주’를 휘두를 때마다 몬스터들의 몸뚱이가 반으로 갈라져 떨어졌다.
아마 권지한도 같은 생각일 것이다.
그래서 저렇게 모두에게 보이게끔 검은 날개를 펄럭이면서 이펙트 화려한 스킬로 싸우는 중이겠지.
잠시 생각하던 윤서가 <염력>을 사용했다. 그의 눈이 파랗게 빛났다.
굳이 전투를 길게 할 필요는 없다. 사기 진작을 위해서라면 단숨에 끝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윤서의 몸에서 뻗어 나간 푸른 마력이 몬스터들만 골라서 내부로 침투했다. 화심과 싸우는 몬스터들, 조만이가 얼려 버린 몬스터들, 푸르카 후투루가 구속한 몬스터들…. 이 영역의 모든 몬스터들의 내부에 침투한 마력이 한순간 몬스터들의 장기를 쥐어짜 터뜨렸다.
크아아악!
쉬이익!
끄르륵!
몬스터들이 듣기에도 괴로운 괴성을 내지르며 죽었다.
A급과 S급을 가리지 않고, 멀리 있는 몬스터와 가까운 몬스터들을 가리지 않고, 땅속에 있는 것들까지 모조리 다 몸이 터졌다.
윤서는 실드로 몬스터들의 장기와 피가 튀는 걸 막아 내고는 어느 정도 고요해졌을 때 실드를 해제했다.
“하아, 하아….”
귀신 빙의 상태에서 사람 모습으로 돌아온 로렌스가 숨을 헐떡였다. 그녀의 연인이 박쥐에서 사람으로 돌아와 자신에게 기대게 했다.
공중전을 하던 홍의윤이 땅에 내려와 얼빠진 얼굴로 좌우를 둘러봤다.
‘무슨 이런 일이….’라는 표정. 대부분 홍의윤과 같은 표정이었다.
그들의 시선은 흰 가면을 쓴 서채윤에게로 쏠렸다.
권지한은 검은 날개를 해제하고 윤서의 앞에 탁, 착지했다. 권지한은 엄청난 얼굴이었다. 황홀함에 젖은 약쟁이처럼 보이기도 해서 윤서가 으, 하며 한발 물러났다.
“형, 존나 멋있었어. 사실 서채윤 한 명만 들어와도 됐던 거 아니야?”
“저 마력 50% 남았습니다.”
“아이고.”
<염력>을 풀로 쓰면 마력을 30%나 잡아먹는다. 하지만 윤서는 첫 전투는 압도적으로 몰살하는 게 좋다고 판단했다.
그의 판단이 맞았는지 신 리벤저들의 넋 나갔던 얼굴이 점차 안도와 환희로 물들어 갔다.
첫 전투의 압도적인 승리.
다 함께 힘을 합쳐 승리했어도 좋았겠지만, 서채윤이라는 이름에 무언가를 기대하고 기다리던 이들을 충족시키는 것. 압도적인 공격력으로 안심시키는 것도 중요했다.
신 리벤저들이 서로 얼싸안고 환호했다.
생명의 신이 뿌듯해합니다.
죽음의 신이 몬스터들의 잔혹한 죽음에 환호합니다.
윤서는 10년 전을 떠올렸다.
첫 전투에서 이겼을 때 어땠더라?
그때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다들 머리끝까지 차오른 새빨간 분노로 무아지경으로 싸웠고, 그 전투는 몰살에 가까웠다.
그러나 끝난 후에는 아무도 환호하지 않았다.
진입하자마자 너무 많은 전력을 허망하게 잃었기 때문이었다. 이겼는데도 모두 패배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현재 인원 : 301명
숫자가 줄지 않았다.
10년이 지나서 윤서는 이제야 겨우…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
첫 전투 후 세 번 더 전투를 치르고 다섯 시간이 더 지나 하룻밤 묵을 준비를 하던 중 <보스 알람>이 두 곳에서 울렸다. 여기서 신 리벤저는 계획대로 팀을 나눴다.
총 3팀.
1팀과 2팀은 <보스 알람>이 울린 동쪽과 서쪽으로, 3팀은 중앙에서 대기. 세 번째 보스 몬스터는 <보스 알람>이 발견하면 바로 알려 주기로 했다.
2팀, 3팀은 전력을 골고루 분배했으나 1팀은 권지한과 서채윤 단둘뿐이었다. 처음엔 권지한과 서채윤을 갈라놓을까 했지만 둘을 붙여서 보스를 빠르게 처치하고 다른 팀을 돕는 게 빠를 것 같아 이렇게 하기로 했다.
윤서는 헤어지기 전 298명에게 일일이 <보호하는 베일>을 걸었다. 그러고 나니 남은 마력이 20%가 되었다.
<보스 알람>이 울린 곳으로 날아가면서 윤서가 권지한에게 말했다.
“저 지금 0.2인분입니다. 알고 있으라고요.”
“마력 부족 상태야?”
“네.”
“우선 약 먹어.”
권지한이 공중에 멈춰 섰다. 윤서는 안 먹어도 된다고 하려고 했으나 들어오기 전 청심환을 받았던 게 생각나 그걸 우물우물 씹었다. 특수제작한 가면은 입 부분만 열고 닫을 수 있었지만, 여기엔 권지한밖에 없으므로 가면은 벗은 상태였다.
“출발하죠.”
둘은 다시 동쪽으로 출발했다. 이 속도로 가면 한 시간 후쯤 보스 몬스터와 부딪치게 될 것이다. 중간중간 몬스터들이 방해할 것까지 생각하면 두 시간. <테라포밍>은 두 시간 후에 끝난다. 그 후에는 2팀의 조만이가 <빙하기>를 사용해서 용암을 얼릴 텐데 그 범위가 <테라포밍> 범위보다는 좁으므로 권지한과 윤서는 <빙하기> 영역에 들어갈 때까지 용암 지대를 겪어야 했다. 되도록 빨리 해치우는 게 나았다.
크아아악!
크악!
부리가 넓적하고 독 있는 발톱을 가진 거대한 새들이 등장했다. 대략 봐도 수백 마리였다. 윤서는 ‘존재하는 넋’과 <관측자의 검>을 양손에 쥐었다. 이 정도 몬스터들은 스킬을 사용하지 않아도 체술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이번엔 삭풍을 빼어 든 권지한이 먼저 달려들었다. 몬스터가 내뿜는 독 안개를 날갯짓으로 날려 보내고 덤벼드는 몬스터들의 목을 단번에 잘랐다. 그의 등 뒤를 노리는 몬스터는 윤서가 도륙 냈다. 두 사람은 등을 맞댔다.
생명의 신이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 합니다.
사진? 가호 신들의 세계는 대체 어떤 식이길래 사진도 찍을 수 있는 걸까.
크아악!
크악!
괴성을 내지르는 몬스터들을 처치하면서 윤서가 내내 찜찜했던 걸 말했다.
“권지한 헌터, 정말로 세포가 카운트된 걸까요?”
“그렇다고 봐야지. 우리가 모르는 사이 가이아 시스템이 업데이트되었다고. 아니라면 말이 안 되니까.”
권지한이 <먹이사슬>로 몬스터들을 꽁꽁 얼어붙게 하고는 일격으로 몸통을 그어 내리며 대답했다.
“갤럭사이아가 투명 스킬 따위로 잠입했다고 해도 <가이아의 눈>에 안 걸릴 리가 없잖아. 그런데 <가이아의 눈>으로도 안 보이니까 태아라고밖에는.”
“아까 권지한 헌터가 말하려던 건 그게 아니었잖아요.”
“…….”
‘하나 짐작가는 건 있어. 만약 던전에….’
권지한이 뭔가 말하려 할 때 커플이 임신 사실을 밝혀서 중단되었다.
윤서가 그것을 지적하자 권지한은 잠깐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이건 그냥 내 생각이니까 형만 알고 있어.”
“네.”
“혹시 던전에 우리 말고도 사람이….”
“…….”
“사람이…. 우리 몰래 잠입한 건 아닐까….”
윤서가 달려드는 몬스터를 학살하는 와중에도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권지한을 쳐다봤다.
“방금 투명 스킬 따위로 잠입했다고 해도 <가이아의 눈>에 안 걸릴 리가 없다고 말한 사람 누구입니까?”
“으음. ‘선탠된 자’ 같은 특성도 있는 마당에 S급 헌터들의 기감을 속일 수 있는 스킬이 존재할 가능성도 있겠지. 만약 그게 맞다면 갤럭사이아일 확률이 커. 우리가 던전을 클리어하지 못하도록 방해할 거야. 다른 사람들도 이런 추측을 하고 있을 테니 보스를 처치한 후 얘기해 봐야겠어.”
권지한이 진지하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
윤서는 권지한의 표정을 힐끔 보고는 <관측자의 검>을 던져 몬스터 세 마리를 한꺼번에 관통시켰다. 권지한도 옆에서 학살을 해나갔다.
그 후로 교전이 마무리될 때까지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 말이 없었다.
크아아!
마지막 몬스터가 절명하자 윤서가 <관측자의 검>을 해제하고는 먼저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해요. 당신이 정말로 했던 추측은 이게 아니잖아요. 왜 당신답지 않게 말을 망설이는 겁니까?”
권지한이 뜨끔하는 표정을 지으며 윤서를 돌아봤다.
“어떻게 알았어?”
윤서의 말대로 사실 권지한이 했던 추측은 이게 아니었다.
그가 정말로 했던 생각은, 우리 몰래 먼저 들어온 게 아니라… 10년 전에 나가지 않은 사람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이런 불가능한 추정을 하게 된 건 어느 한 사람의 이름이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이강진.
10년 전 해야 할 일이 있다면서 동료들을 먼저 내보낸 후 끝내 나오지 않은 헌터, <가이아의 그림자>와 <가이아의 눈>을 보유했던 사람. 그리고 누구도 마지막을 확인한 적 없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