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149)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149)화(149/195)
#135
권지한은 ‘301’이라는 숫자를 보는 순간 그 이름을 떠올렸다. 바로 말하려다가 타이밍을 놓치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과거의 일을 극복하지 못한 윤서에게 이런 추측을 섣불리 말하는 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권지한은 윤서의 우울한 얼굴, 충격받은 얼굴, 그늘진 표정, 두려운 표정… 하여튼 이런 표정들은 보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알긴요. 나도 같은 추측을 했으니까 알죠.”
윤서는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는 평소와 같이 무덤덤해 보였다.
“하지만 이건 불가능합니다. 출구 포탈이 사라지면 던전 내 모든 것이 소멸하니까요. 이건 가이아 시스템의 절대로 변하지 않는 법칙입니다. 그러니 301명의 1명은 로렌스와 리오의 아이이거나 우리는 모르는 스킬로 잠입한 갤럭사이아거나. 둘 중 하나로 보는 게 타당하겠죠.”
“…….”
윤서가 대답이 없는 권지한을 쳐다봤다. 권지한은 윤서의 상태를 살피느라 오히려 자신이 더 불안하고 초조한 얼굴이 되어 있었다. 윤서는 짧게 소리내어 웃었다.
“권지한 헌터. 뭐가 그렇게 걱정이에요?”
“내가? 내가 뭘 그렇게 걱정했다고. 나는 그냥…. 그냥 듣고 있었는데? 나는… 태아일 것 같아. 태아가 포함된 게 맞는 것 같아.”
그렇게 말은 하지만 흔들리는 눈빛에는 아무런 확신도 없었다.
“일단 여러 가지로 가능성은 열어 두죠.”
“그래….”
301명에 대한 건 둘이서 머리를 굴린다고 확실하게 매듭지을 수도 없는 부분이다.
두 사람은 지금 확실하게 매듭지을 수 있는 일을 위해 목적지를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다만 윤서는 머릿속에 이강진이 떠오르는 것만은 막을 수 없었다. 301명의 1명이 이강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계속 의문이 들었다.
대체 그는 그 끔찍한 곳을 나올 수 있는 마지막 순간 무엇 때문에 던전에 남았던 걸까? 검은 포탈도 이미 사라진 후였는데 무엇을 위해서?
이강진은 리벤저의 리더로서 책임감과 사명감이 특별했던 사람이다. 윤서는 그를 보면서 ‘리더’란 이래야 하는구나 라는 걸 느끼고는 했었다. 그건 도민이도 마찬가지였다.
‘채윤아, 강진이 형은 얼음 넣은 김치찌개 같은 사람 같아.’
‘그건 또 무슨 개소리야.’
‘그 형은 다정하고 냉정하다고.’
‘아.’
‘누구보다 정이 많으면서도 냉철한 면이 있어. 아까 그 상황에서 내 주장대로 시신을 수습하려고 했다가는 사상자가 더 발생했겠지.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냉정하게 판단하는 게 진짜 멋있고 대단한 리더 같아.’
‘맞아. 대단한 사람이지. 그래서 다들 의지하는 거고.’
‘나라도 그 형한테 그만 폐 끼치고 싶은데 쉽지 않네.’
‘야. 그 형은 절대로 폐라고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 땅 파지 마라, 이도민.’
‘땅 안 파. 그냥… 내 마음이 그렇다는 거지.’
당시 이도민이 마력 고갈로 인해 불안정해지면 다들 알아서 이강진을 데리고 오거나, 이강진 앞에 데리고 가거나 했다. 윤서로서도 이도민을 케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이강진은 당시 이십대 후반에 불과했는데… 너무 많은 부담을 어깨에 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 사실을 그때도 알았다고 하더라도 결국 의지하고 말았을 것이다. 리벤저의 리더는 그럴 만한 사람이었으니까.
***
권지한
보스 처리. 어디로 합류해?
정신없이 싸우던 도등수의 앞에 [길드 대화]가 떴다. 도등수는 전투 중인 헌터들과 보스 몬스터의 상태를 보고서 메시지를 보냈다.
도등수
이상 무
박수빈
이상 무
S급 레드-블랙이라고 한 번 사용할 때마다 길드 경험치가 어마어마하게 깎였다. 석영 길드 경험치가 일전의 길드석 사용으로 여유롭지 않기 때문에 권지한은 따로 대답하지 않았지만, 두 쪽에서 다 이상 없다고 대답했으니 중앙으로 가고 있을 것이다. 바로 도등수는 바로 전투 중인 2팀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1팀이 보스 몬스터를 처치해서 중앙으로 가는 중입니다!”
“벌써요?”
“미친 씨발 괴물들이 따로 없네.”
홍의윤이 보스 몬스터의 거대한 꼬리를 피하면서 욕설을 내뱉었다. 대부분 감탄했으나 조만이는 자존심이 상했는지 표정이 완전히 구겨졌다. 도등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서채윤 헌터가 설명을 빼먹은 게 있었어.’
윤서는 모든 걸 기억하고 상세히 설명했지만… 보스 몬스터가 이 정도의 위압감을 준다는 건 설명하지 않았다.
거대 화염 웜.
다른 S급 던전에도 나오는 보스인데… 너무 달랐다. 공포심을 자아내는 압도적인 분위기.
아마도 서채윤은 압도적으로 느끼지도 않았고 공포스럽지도 않았기에 생략한 것이겠지.
“단둘이서 한 마리를 죽였는데, 젠장. 우리도 죽여야지!”
헌터들이 공포심을 뿌리치며 달려들었다.
원거리 서포터들을 지키고 있던 도등수가 김진해에게 물었다.
“보스 몬스터 체력이 얼마나 남았습니까?”
“75% 남았습니다.”
도등수는 이쪽도 괴물들이라고 생각했다. 단지 권지한과 서채윤이 너무 괴물인 것뿐이다.
콰아앙!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보스 몬스터 거대 화염 웜의 몸뚱이의 상당 부분이 불타 없어졌다. 옐레나의 <플레임 볼>이었다. 화염 내성이 있는 거대 화염 웜의 몸뚱이를 태울 정도면 얼마나 강한 위력인지 감도 안 왔다.
실드 스킬 보유자들은 대부분 3팀으로 보낸 터라 도등수와 함께 서포터들을 지키던 이인선이 소리쳤다.
“조만이 헌터, <테라포밍> 5분 남았습니다!”
“알고 있다.”
모두가 그 외침을 듣고 비행 아이템과 비행 스킬을 사용해 공중으로 비상했다.
5분 후 <테라포밍>이 끝났다.
두 발로 설 대지는 사라지고 뜨거운 용암이 차올랐으며 황산으로 가득한 대기가 숨을 턱턱 막히게 했다. 보스 몬스터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포효하면서 달려들었다. 화염 내성이 있는 홍의윤이 보스 몬스터의 공격을 막고, 옐레나가 <아이스 스피어>를 퍼부었다.
조만이가 마력을 끌어 올렸다. 그의 주위에 하얀 냉기가 휘몰아쳤다. 레인보우 길드장은 오만하고 속물적이지만 그 또한 S급,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능력자였다.
조만이의 <빙하기>가 완성되었다.
쩌저적- 하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렸다. 용암이 얼어붙는 소리였다. 도등수는 비행 아이템 내구도를 아끼기 위해 발 디딜 수 있다고 판단하자마자 얼음 위로 착지했다. 그가 안전하게 내려서자 모두 내려와 전투를 이어 갔다.
‘딱 지구의 겨울만 한 추위로군.’
예상대로였다. 조만이의 <빙하기>는 모든 것을 얼려 버리지만, 용암 지대라는 특성 때문에 중화된 것이다.
<빙하기> 적용 시간 02:59:50
<테라포밍> 적용 시간보다는 짧지만 이 정도면 신 리벤저 2팀의 강자들이 보스 몬스터를 해치우기엔 충분했다.
지금까지 분석과 계획이 그대로 들어맞고 있는데, 도등수는 희열보다는 비탄과 회한을 느꼈다.
‘대체 10년 전 리벤저는 이런 정보도, 작전도, 물자도 없이 어떻게 클리어했단 말인가.’
그걸 생각하면 기뻐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
세 번째 <보스 알람>은 보스 몬스터 두 마리를 해치우고도 울리지 않았다. 알렉은 <보스 알람> 다섯 개를 더 만들어서 날려 보냈다. 본래 용암 지대에서는 3일만 머무를 계획이었는데 세 번째가 나타나지 않으니 당초 계획했던 시간에서 초과하게 되었다. 물론 이 또한 예상 범위이긴 했다.
시간이 지나자 <테라포밍> 쿨타임과 <빙하기> 쿨 타임이 겹치는 상황도 생겼는데, 쿨타임 포션을 먹기보다는 두세 시간만 날아올라서 버티는 것으로 해결했다.
그렇게 사흘하고도 이틀을 더 보내자 마치 중앙에 먹이가 쌓여 있다는 소문이라도 돈 듯 몬스터들이 몰려들었다.
다른 S급 던전들은 교전과 교전 사이에 휴식 시간이 수 시간은 되었는데, 이곳은 수십 분도 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중앙 막사에는 개량한 실드 스톤을 설치하고, 외곽은 조를 나눠 돌아가면서 불침번을 섰다.
“젠장, 몬스터들이다. 다들 일어나!”
퍼펙트가 불침번을 서던 중 몬스터들이 몰려왔다. 홍의윤이 외치자 모두 일사불란하게 캠핑카를 해제하면서 전투태세를 갖췄다.
쿠악, 쿠아악. 징그럽게 우짖는 괴이한 몬스터들이 나타났다. 헌터들은 포션을 들이켜며 피로감을 지우고 무기를 빼 들었다.
“갈고리 있는 것들은 자폭형 몬스터니까 주의해!”
“실드를 펼쳐라!”
등장하는 몬스터들의 종류가 다양했으나 서채윤이 하나하나를 전부 기억하고 있었고, 신 리벤저도 숙지하고 들어왔다.
10년 전 아무런 정보 없이 갈고리 몬스터를 해치웠다가 함께 폭사한 이가 있고 그 참상을 선명하게 기억하는 이가 있기에, 현재의 신 리벤저는 미리 몬스터 주위에 실드를 만들어서 폭발에 휘말리지 않았다.
새벽에 이뤄진 교전은 두 시간여가 지나서 끝났다.
대부분은 서채윤이 도륙 냈다. 서채윤의 전투 방식은 생각보다 잔인해서 헌터들의 존경심에는 점점 두려움도 추가되었다. 그런데 권지한의 전투 방식은 서채윤보다도 더 잔인하고 끔찍해서 두 사람이 같이 있을 때는 퍼펙트 팀원들 말고는 말 거는 이가 없었다.
교전이 끝나고 <관측자의 검>으로 몬스터들을 푹, 푹 찌르며 확인사살 중이던 윤서에게 권지한이 말했다.
“형, ‘흑의 저주’ 검날이 벌써 상했는데.”
“벌써요? 봐 봐요.”
권지한이 검을 보여 주자 정말로 날이 상해 있었다.
“버려요. 이럴 줄 알고 검을 네 개나 산 거니까.”
암시장에서 네 자루, 석영에서 지원한 세 자루까지. 권지한은 검을 일곱 자루나 가지고 있었다.
“이거 품질 속인 건가?”
“S급 몬스터를 몇 마리나 죽였는데요. 이 정도면 괜찮은 퀄리티입니다. 가격도 저렴했고.”
“형네 ‘존재하는 넋’은 거의 내구도가 무한한 수준이지?”
“우리 햅쌀이는 내구도란 게 아예 없습니다.”
윤서가 피식 웃으며 허리춤을 툭툭 쳤다. 지금은 피비린내가 너무 심해서 불러내면 흥분할 터라 변형하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