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150)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150)화(150/195)
#136
“그건 어디서 난 거라고 했더라.”
“거의 각성하자마자 얻은 것 같네요. 생명의 신이 줬고요.”
생명의 신이 우쭐댑니다.
죽음의 신이 <거짓 기억>을 잊지 말라고 얘기합니다.
“생명의 신은 나한테도 좋은 스킬들을 많이 줬어. 뭐 또 줄 거 없나? 이런 무기 아이템.”
권지한은 생명의 신에게서 어떤 메시지라도 왔는지 쿡쿡 웃었다.
“아무튼 내구도가 존재하지 않는 무기 아이템은 햅쌀이밖에 없을 것 같아. 그걸 나쁜 사람이 아니라 서채윤이 가져서 다행이야.”
“그쪽이 가졌다면 더 좋았겠죠.”
윤서는 대화하면서도 <관측자의 검>으로 꿈틀대는 몬스터들을 푸욱, 푸욱 찌르며 걷고 있었다. 거의 습관적인 확인 사살이었다. 10년이 지났는데도… 마치 10년 내내 이런 일을 했던 것처럼. 윤서를 눈여겨보던 권지한이 그를 따라 시체를 푹푹 찌르며 말했다.
“형, 생각해 보면 오히려 대격변 초기라서 이런 좋은 아이템을 얻었던 게 아닐까?”
“초기라서 좋은 아이템을 얻었다고요?”
“어긋난 존재들이 무방비 상태의 지구에 갑작스레 나타나고, 이에 가호 신들은 급하게 인류를 지원해야 했으니까 일단 멸망의 위기를 타개하라고 엄청나게 좋은 무기를 뿌린 거지.”
윤서는 그럴듯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석영 초대 길드장 이석영도 엄청난 무기를 갖고 있었다지. 스킬도 강력했고.”
“듣고 보니 이석영 헌터의 무기도 내구도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군요. 기본형이 사슬 채찍이었는데 길이도 거의 한계 없이 늘어났어요.”
“이석영이랑 같이 싸워 본 적 있어?”
“몇 번 있습니다. 동시대에 활동했으니까.”
“형이 전설의 서채윤인 게 새삼 실감 나네.”
두 사람이 몬스터 사체들을 푹푹 찌르면서 대화 중일 때 누군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두 사람이 옆을 보니 조만이였다.
“이봐, 권지한. 너는 수백 마리를 몰살해 놓고 확인 사살까지 도맡을 생각이냐?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은 그래서는 안 된다.”
레인보우 길드원들을 데리고 온 조만이가 고갯짓으로 지시하자 길드원들이 각자 무기를 들고 확인 사살 하며 몬스터 사체들을 처리하게 시작했다.
“수백 마리 몰살하고 확인 사살 하는 사람은 채윤이 형인데 왜 나한테 그래?”
“닥쳐라. 서채윤 헌터가 수백 마리를 몰살하고 확인 사살 좀 할 수도 있지 뭐가 문제라는 거냐.”
“…….”
그 권지한마저 말문이 막힌 상황에서 조만이가 둘에게 말했다.
“막사로 들어와라. 의논할 게 있다.”
조만이는 오만한 표정으로 말하고는 돌아섰다.
윤서와 권지한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며 어깨를 으쓱하고는 그를 따라갔다.
***
의논할 것은 바로 용암 지대의 마지막 보스 몬스터를 찾는 일이었다. 아이템에 의지하는 게 아니라 손수 찾아다니자는 것. 이 일에는 <빙하기>의 적용 범위, 비행 아이템 소모, 체력 소진 등 여러 단점이 있었다. 도등수와 조만이는 찾아다니자는 쪽이고, 박수빈과 알렉은 기다리자는 쪽이었다.
“이렇게 대기하면서 잡몹을 상대하는 것도 체력이 소진되기는 똑같긴 합니다.”
“화력 분산으로 인한 전력 손실은 어떻게 감당할 건가.”
“전력 손실? 보스 몬스터는 한 팀만으로도 충분히 해치울 수 있다는 걸 증명했을 텐데.”
“뿔뿔이 흩어졌다가 다시 모여서 늪지대로 넘어가는 데도 시간이 걸려요.”
“그건 포탈 스톤으로 해결하면 됩니다.”
“포탈 스톤은 미로 지대에서 사용하기로 했잖은가.”
“그래서 이대로 시간만 흐르게 놔두자고?”
“그러니까 이렇게 흘러갈 시간이나, 다시 모이는 시간이나 비슷할 거란 말이에요.”
다른 리더들은 그저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윤서는 이쪽저쪽 의견이 다 합리적이어서 덧붙일 말이 없었다.
“서채윤 헌터의 의견은 어떠한가?”
조만이가 가면 속에서 멍 때리던 윤서에게 물었다. 어차피 음성 변조되는 가면이기에 윤서가 대답했다.
“이거나 저거나 걸리는 시간과 소모되는 체력은 비슷할 것 같으니 제비뽑기로 정할까요.”
“뭐야?”
“허.”
“하하하….”
도등수가 웃다가 조만이가 노려봐서 머쓱하게 고개를 돌렸다.
윤서 또한 자신이 내뱉어 놓고서 그것에 놀라는 중이었다. 제비뽑기라니…. 확실히 마음의 부담감이 적어지긴 했나 보다.
“우리 중 대던전을 겪은 이는 당신이 유일한데 작전에 너무 개입을 안 하는군. 사인도 안 해 주고 말이야. 몬스터만 도륙 내는 게 아니라 참모로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 주길 바란다. 음성 변조된 목소리라도 계속 듣고 싶다.”
중간중간 뭔가 이상한 말이 껴 있지 않나?
이번엔 권지한이 조만이를 노려봤다. 잿빛 눈을 부리부리하게 부릅뜨자 조만이는 얼결에 덩달아 권지한을 노려봤다.
윤서는 왠지 이 회의가 끝나면 권지한이 이런 말을 할 것 같았다.
‘형은 왜 이렇게 인기 많아? 존나 짜증 나게.’
윤서는 왠지 회의를 빨리 끝내고 싶어서 입을 열었다.
“추가로 날려 보낸 <보스 알람>이 용암 지대의 경계에 도달할 때까지 아직 열 시간이 남았으니 기다려 본 후에 팀을 나누도록 하죠.”
“열 시간이라….”
“아직 아무도 죽지 않았고, 체류 기간이 초과되었으나 그래도 플랜 A 예상 범위입니다. 바깥에서 괜히 머리 굴려서 계획을 세우고 들어온 게 아니니 일단은 계획대로 하는 게 좋겠습니다.”
윤서가 단호하게 말했다.
양쪽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회의는 그렇게 일단락되었고, 윤서와 권지한이 둘만의 캠핑카로 돌아가려고 할 때 알렉이 둘을 붙잡았다.
“서채윤 군, 궁금한 게 하나 있네.”
알렉은 이제 윤서의 이름 뒤에 헌터를 떼고 대신 ‘군’이라는 호칭을 붙이고 있었다.
“자네 특성 중에 ‘창조자’가 있던데. ‘생존’, ‘지키는 자’는 공격 스킬, 실드 스킬, ‘선택된 자’는 가이아 스킬 관련 특성이라면 ‘창조자’는 어떤 스킬과 관련된 것인가?”
“관련 스킬 없습니다.”
“음? 특성 생기면서 안 받았나?”
“네, 그냥 창조자 특성이 생겼다는 메시지만 나오고 끝이더군요.”
보통 특성 입수할 시 관련 스킬이 하나 이상 생기는데 ‘창조자’ 특성은 각성 초기에 생긴 후로 아무런 관련 스킬도 가져다주지 않아서 윤서는 자신이 그런 특성이 있다는 것도 종종 까먹었다.
“거참 특이하군. 아무튼 알겠네. 대답해 줘서 고맙네. 이제 뭐 할 건가?”
“들어가서 쉬려고요. 알렉 헌터도 쉬시죠. 아니면 러닝이나 스쿼트하시든가.”
“하하하…. 둘 다 푹 쉬게나.”
절대로 운동만은 하지 않으려는 알렉과 헤어지고 윤서는 권지한과 둘만의 캠핑카에 들어와 휴식하면서 딱 예상했던 그 소리를 들었다. “연하고 연상이고 인기남이라 아주 좋겠다?” 하는 삐딱한 소리를 들으며 윤서는 왠지 즐거웠다.
이곳은 대던전인데 이런 즐거운 마음이 들 수 있다니 새삼 놀라웠다.
몬스터가 쳐들어오면 싸우고, 처리하고 나면 휴식하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신 리벤저에게는 안 좋은 방식으로…….
***
“복통이요?”
“네, 도등수 부길드장님. 스무 명이 갑자기 동시에 배가 아프다고 하는 게 이상해서.”
“식재료는 무엇을 사용했습니까?”
“지구에서 인벤토리에 담아 온 군용 식량을 먹었습니다. 물도 마찬가지고.”
“상했을 리가 없는데…. 독초라도 먹은 건가. 일단 만나러 가 보죠.”
캠핑카 안에서 햅쌀이와 놀아 주고 있던 윤서와 권지한이 바깥의 대화를 듣고 시선을 교환했다. 하지만 자신들을 부르지는 않길래 나가지는 않았다.
몇 분 후, 누군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권지한 헌터, 서채윤 헌터. 리더 그룹 소집입니다!”
윤서는 얼른 가면을 썼고, 권지한이 문을 열었다. 삐융, 햅쌀이가 파닥파닥 날아와 권지한의 정수리 위에 앉았다.
리더들이 모인 막사에 도착하니 B급, C급 헌터들 스무 명이 창백한 얼굴로 누워 있는 게 보였다.
알렉이 둘에게 다가와 상황을 설명했다.
“2팀 4조 스무 명이네. 여섯 시간 동안 불침번을 선 후 교대하고 식사를 하던 중 복통을 호소하며 쓰러졌지. 먹은 건 지구에서 가져온 군용 식량뿐이고. 던전 내 풀을 멋대로 뜯어 먹은 것도 아니네. 혹시나 해서 박수빈 헌터가 독 치유 스킬을 사용하니 먹히더군.”
“누군가 음식에 독을 탔다는 거야?”
권지한이 한층 낮아진 목소리로 물었다.
생명의 신이 혀를 찹니다.
죽음의 신이 기뻐합니다.
윤서는 신들이 좀 닥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 하마터면 스무 명을 허무하게 잃을 뻔했어. 아직 리더들 말고는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았네.”
“식사 담당은?”
“저쪽.”
누워 있는 스무 명 중 하나가 식사 담당이었다.
윤서는 던전 진입 메시지를 흘깃했다.
현재 인원 : 301명
저 의문의 1명. 커플의 아이가 아니라 정말로 갤럭사이아가 잠입한 걸까? 하지만 며칠 동안 수백 명에게 기척을 숨겼다는 건 말도 안 된다. 그동안 몬스터를 발견하기 위해 사용한 생명 감지 스킬도 수십 개인데….
윤서는 리더들이 대화하는 동안 창백한 얼굴로 누워 있는 스무 명을 관찰했다. 죽다 살아난 이들은 지금도 상태가 안 좋은지 죽어 가는 표정들이었다.
철저한 방비로 몬스터와 지형은 문제가 아니었는데 사람이 문제가 되었다.
이 사람들이 죽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사기 저하는 말할 것도 없고…. 불신도 싹 텄을 것이며 전력 손실도 상당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산 지금도, 사기 저하와 불신과 전력 손실이 없는 건 아니었다.
갤럭사이아는 이 사람들이 죽든 살든 작전을 성공시킨 것이다.
보스 몬스터는 두 마리 전부 1페이즈 만에 죽였고, 일정이 초과되긴 했지만 그래도 순탄한 진행이다.
치밀한 준비를 하고 들어온 인류에게 대던전은, 속단은 이르지만 적어도 아직까지는 적수가 되지 않았다.
신 리벤저의 진짜 적은 결국 같은 인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