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152)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152)화(152/195)
#138
“그리고 당신들이 멸망을 바라는 이유는 짐작해 보자면, 인재(人災)로 가족을 잃었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거나, 어떤 불공평하고 억울한 일을 겪었거나. 하여튼 그런 이유인 것 같은데….”
“리벤저의 유가족이란 추측은 안 하는가?”
윤서가 마른 웃음을 지었다.
김서해의 가족들에 대해 알지 못했다면 그런 추측을 했을 것이나 지금은 아니었다.
“그들의 복수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몬스터입니다.”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니지만, 리벤저의 유가족은 그렇습니다. 정의로움이라는 전염병이 핏줄에 흐르고 있거든.”
“…….”
“당신들은 가지지 못한 병이지.”
“…닥쳐라!”
리더 옆에 있던 창백하게 질린 사람이 소리쳤다.
“우리라고 처음부터 이랬는 줄 아는가? 우리도 한때는 정의를 추구했다! 누구보다 선량했고, 이타적인 사람들이었다고 자부할 수 있어!”
“압니다. 그랬기에 각성했을 테니까.”
삐융.
햅쌀이가 인간들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서 윤서를 뱅글뱅글 돌았다. 권지한이 햅쌀이를 감싸 쥐어 품에 안았다.
권지한은 윤서의 눈빛과 호흡, 목소리 등을 확인하며 가만히 듣기만 했다.
“그럼 말해 보세요. 당신들은 어떤 억울한 일이 있어서 세상의 멸망을 기원하는 사이비 교도가 된 겁니까?”
싸늘한 적막이 흐르다가 리더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아내와 딸을 잃었다.”
음울한 음성이었다.
“던전에 들어갔다 나와 보니 집에서 둘 다 칼에 찔려 죽어 있더군. 한여름이었고, 죽은 지 오래되어 부패가 심했지. 범인은 비각성자 강도였다. 현금과 카드를 훔쳐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더군. 그자는 감옥에 들어갔고, 10년형을 받았다. 앞으로 5년 후면 나오는군. 내 아내와 딸은 5년 후에도 돌아오지 않는데 그 쓰레기는 감옥을 나온단 말이다.”
리더의 옆에 있던 이가 고개를 들었다.
“나는 집안에 빚이 있어서 C급으로 각성한 후 목숨 걸고 A급 이상의 던전에 다녔지. 내 동생들은 비각성자였지만 직장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두 군데나 더 뛰었어. 그렇게 모두가 열심히 살며 돈을 마련했다. 빚을 전부 갚고 함께 외식하러 가던 그때 충돌 사고가 일어났고, 깨어나 보니 나 빼고 모두 죽었더군. 범인은 음주 운전자였으며 이제 3년 뒤에 나온다.”
“내 약혼자는 비각성자였어. 왜 각성하지 못했나 의아할 정도로 착하고 순수한 사람이었지. 내가 던전에 갈 때마다 항상 울면서 배웅하고는 했어. 어느 날 나는 혼수상태에 빠진 채 던전을 나왔고. 병원에서 수개월을 보냈을 때 그에게 사기꾼들이 접근했어. 혼수상태의 각성자를 깨우는 스킬이 있다는 거지. 약혼자는 전 재산을 쏟아부었어. 하지만 돈을 받은 사기꾼은 나타나지 않았고 약혼자는 자신의 실수를 비관하며 목을 매고 자살했다. 나는 그가 죽고 이틀 후 깨어났어. 사기꾼은 결국 잡지 못했다. 어딘가에서 사기로 얻은 돈으로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겠지.”
그렇게 여덟 명이 사이비 교도가 된 사연을 털어놓고 서채윤을 바라봤다.
어떤가. 이래도 세상이 멸망하지 않을 이유가 있는가.
이 구역질 나는 세상이 존속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그런 표정이었다.
또다시 몬스터들이 몰려왔는지 바깥에서 몬스터들의 괴성과 전투 소리가 들렸지만 막사 안은 조용했다.
윤서는 정의라는 것에 환멸을 느낀 순간들을 떠올렸다.
신들은 윤서의 대답이 궁금한지 조용했고…. 권지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윤서가 입을 열었다.
“당신들 기준에서는 세상은 멸망해야 하겠군요. 끔찍하고 역겹고 추잡스러운 곳입니다.”
“그래, 이제야 이해를 하는군.”
“그런데 세상은 원래 그랬습니다. 당신이 아내와 딸과 행복하게 살고 있을 때도, 당신이 동생들과 오순도순 살고 있을 때도, 당신이 약혼자와 사랑을 나눌 때도. 어딘가에서는 아내와 딸을 강도에게 잃고, 교통사고로 가족을 잃고, 억울하게 사랑하는 이를 잃는 사람들은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윤서는 권지한의 시선을 느끼면서 말했다.
“…당신들이 사랑하는 이들과 맛있는 식사를 하고 부른 배를 쓸며 집으로 돌아올 때 어딘가에서는 깡패들에게 두들겨 맞고 절뚝절뚝 집으로 돌아가는 가난한 어린아이도 있었을 겁니다. 그 어린아이도 세상의 멸망을 간절하게 바랐겠죠. 차이점은 아이는 세상을 멸망시킬 힘이 없고, 지금 당신들은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
“당신들은 그런 억울한 죽음들을 피부로 인식하지도 못하고 행복을 즐기며 살았으면서, 이제 각성하고 힘이 생기고 나니까 내가 억울하단 이유로 다른 이들의 행복을 빼앗으려고 하는군요. 만약 당신이 사랑하는 이들과 행복하던 그때 그 어린아이에게 힘이 생겼고, 자신에게는 세상의 멸망을 바랄 이유가 충분하다는 이유로 지구를 멸망시킨다면 기분이 어떨 것 같습니까? 지금처럼, 그래. 구역질 나는 이 세상은 멸망해도 돼. 이렇게 생각했을 것 같아요?”
“…그래서. 너도 결국 복수하지 말라는 진부한 얘기를 하는 건가?”
“복수 좋습니다. 나도 여기 복수하려고 들어왔고. 그러나 복수 대상에 왜 선량한 사람들도 포함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지구가 멸망하면 범죄자만 죽는 게 아니라 오늘 빚을 다 갚고 새 출발 하려던 선량한 가족도 죽습니다. 당신들이 하려는 짓은 결국, 도저히 풀리지 않는 울분과 증오를 상대적으로 풀기 쉬운 약자들한테 돌리는 것밖에 지나지 않아요.”
“…….”
“나는 당신 말대로 가족을 잃고, 친구를 잃고, 1201명의 동료를 잃었습니다. 내가 세상을 멸망시키고 싶은 생각이 없었을 것 같습니까? 이 환멸나고 구역질 나는 세상을 멸망시키는 데에 내 스킬로 며칠이면 될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을 해 본 적 없었을 것 같아요? 당신들은 모든 행복이 끝난 이제야 내게 세상의 멸망에 가담하라고 말하지만, 내가 바로 당신들의 행복을 끝내는 사람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그래서 지금 당신들 앞에 서 있는 겁니다.”
권지한
형 앉아 있어
윤서는 간신히 무시했다.
“당신들도 처음엔 선함을 추구했기에 각성했겠죠. 그래서 배신감도 컸을 거고, 억울하기도 할 거고. 이해하는 바나 다른 이들의 행복까지 빼앗으려고 하는 건, 나는 이렇게 슬픈데 남들은 행복한 게 싫다는 소인배적인 발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모두가 당신들 같았으면 세상은 이미 멸망했겠지. 그런데 세상은 멸망하지 않았고, 밖에서는 지금도 많은 이가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군요. 이 소리를 들으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세상의 멸망이 옳은 일인지.”
“…….”
사이비 교도들은 침묵했다. 다들 고개를 푹 숙이고 제 가슴만 쳐다보고 있었기에 표정도 알 수 없었다. 들키지 않은 교도가 있냐고 물어봐도 대답해 주지 않을 것 같고, 기분도 좋지 않아서 윤서는 일어났다.
‘나는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는데.’
자격 없는 이가 설교 비슷한 말을 하고 나니 너무나 부끄러웠다. 윤서는 고개 숙인 이들을 바라봤다.
이제 이들과 대화할 일은 없을 것이다.
얼굴을 볼 때마다 선량한 자들의 억울한 죽음이 떠오를 테니까
안 그래도 윤서는 그런 죽음을 너무 많이 알고 있었다.
윤서가 막사를 나오자 권지한도 따라 나왔다.
그리고 캠핑카에 도착할 때까지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서채윤이 떠나고 난 뒤 막사 안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트레드어 님….”
한참 후 한 명이 리더를 불렀다. 일곱 명의 눈길이 리더를 향했다. 리더는 눈을 감은 채 말이 없었다.
‘모두가 당신들 같았으면 세상은 이미 멸망했겠지. 그런데 세상은 멸망하지 않았고, 밖에서는 지금도 많은 이가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군요.’
과거의 영웅이 남긴 말들이 그들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
캠핑카로 돌아와 윤서가 먼저 씻고 나왔다.
“형, 나 씻는 거 구경해도 돼.”
“헛소리하지 마세요.”
죽음의 신이 구경하기를 원합니다.
윤서는 가호 신의 소망을 무시하고 테이블 앞에 앉아 색칠 공부 책을 폈다. 앞으로 열 장만 다 칠하고 나면 드디어 이 유언도 끝난다.
삐융.
햅쌀이가 색연필 끝을 따라다니면서 색칠 공부를 방해했다. 햅쌀이는 계속된 전투로 아주 그냥 깃털 때깔이 반짝반짝해졌다. 귀여운 햅쌀이가 아니라 화려한 햅쌀이가 되었다.
햅쌀이의 방해가 아니더라도 윤서는 지금 색칠 공부할 정신이 아니었다.
안 그래도 <확신의 저울>을 연속해서 사용하느라 피곤했는데, 정신적으로도 지쳤다. 선량한 이들의 억울한 죽음들이 계속 눈앞에 아른거렸다.
윤서는 약자들이 행복하게 사는 건 바라지 않았다. 단지 선량한 자들은 반드시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재력과 권력 모든 걸 손에 쥐고 태어난 강자라도, 그 사람이 선량하다면 행복해질 자격이 있다.
선량한 이들이 억울하게 죽는 건 너무 싫다. 지긋지긋하다.
이 화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윤서는 심호흡하면서 전투 생각을 했다.
<테라포밍>의 남은 시간은 한 시간 남짓. 조만이가 또 바로 <빙하기>를 펼칠 것이다. <보스 알람> 또한 지형 끝에 다다르기까지 한 시간 남짓 남았다. 마지막 보스는 시간 단축을 위해 윤서와 권지한이 직접 해치울 예정이다. 이 때문에 윤서는 중앙 지역에 머무르면서 <확신의 저울>과 <테라포밍> 말고는 스킬 사용을 최대한 자제했고, 마력은 36% 남아 있었다.
머릿속으로 보스와의 전투 시뮬레이션을 돌리던 중 권지한이 다 씻고 나왔다. 늘 그렇듯 가운을 입은 건지 만 건지 모를 정도로 앞가슴을 풀어 헤친 채 나온 권지한이 윤서의 앞에 앉았다.
“난 그렇게 자기 목숨을 가볍게 여기는 건 별로야.”
“갑자기 무슨 말입니까?”
“아니, 씻으면서 생각해 봤는데 사이비 새끼들 너무 짜증 나더라고. 들키자마자 자살하려고 했잖아. 왜 그렇게 자기 목숨을 쉽게 버리지?”
“권지한 헌터.”
윤서는 색연필을 내려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