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153)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153)화(153/195)
#139
“권지한 헌터 생각은 어떻습니까?”
“어떤 생각? 이 더럽고 역겨운 세상은 멸망해야 마땅할까, 하는 거?”
“그게 아니라… 잔당이 남았을까요?”
“여긴 더 없어. 조마조마하게 밖에서 기다리고 있겠지.”
“어떻게 그렇게 확신합니까?”
“형이 날 확신하게 해 줬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권지한이 윤서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아무래도 갤럭사이아의 불신을 심는다는 계획이 가장 잘 먹힌 사람은 형 같네. 우리 형이 기본적으로 사람을 못 믿어서 그런가.”
“…….”
“너무 불안해하지 마. 여기 있는 사람들은 정의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겠다고 지원한 이들이잖아. 잔당이 있다고 무서워할 사람들도 아니고, 이런 이간질에 쉽게 당하지도 않을 거야. 우리 형만 마음 굳게 먹으면 되겠다.”
윤서는 제 안의 불안이 잠재워진 걸 느꼈다. 한편으로는 우습기도 했다.
권지한은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더 건강한 사람이었다.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신념이 제대로 잡혀 있어서 이딴 일에는 혼란스러워하지 않는다.
사이비 교도들이 이야기한 억울한 죽음들을 듣고 권지한도 어머니와 반려견들을 떠올렸을 텐데… 내색하지 않는 강함이 존경스러웠다.
사실 윤서가 얘기한 깡패에게 맞는 가난한 어린아이는 권지한이었다. 권지한도 그걸 알 텐데 굳이 그 얘기를 꺼내지는 않았다.
“그리고 형이 지금 일부러 화제 전환한 거 다 알아. 내 얘기 계속하자.”
“무슨 얘기요?”
“자기 목숨을 가볍게 여기지 말자는 얘기.”
윤서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 미친 새끼들을 편들어 주려는 건 아니지만 그들이 자살하려고 했던 건 자기 목숨을 가볍게 여겨서는 아닐 겁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게 목숨을 가볍게 여긴다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형은 왜 죽으려고 하는 거야?”
“…….”
방금 한숨을 쉰 윤서가 또 한숨을 내쉬었는데 방금과는 다르게 깊은 한숨이었다.
‘형이 유언 때문에 살고 있다는 걸 내가 알아챘을 때도.’
대던전에 들어오기 전 권지한은 분명 그렇게 말했다. 자신이 모든 유언을 들어주고 나면 죽으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고는 별말이 없기에 놔뒀는데 여기서 튀어나올 줄은 몰랐다.
“이해가 안 돼서 그래. 형이 죽으려고 하는 이유를 모르겠어. 죄책감 때문에?”
“죄책감… 비슷합니다.”
“자, 봐 봐. 형. 생각해 봐.”
권지한은 허공에 손짓까지 해 가면서 설명했다.
“죽고 싶은 이유가 죽은 동료들에 대한 죄책감이라면 오히려 살아야 하지 않아? 왜냐하면 죽은 동료들이 형이 죽길 바라서 기상천외한 유언들을 남긴 거니까. 서채윤이 살아가길 바라서… 너무나 형이 살길 바라서.”
권지한은 한번 숨을 들이켠 후 이어서 말했다.
“그래서 숨이 넘어가는 그 위급한 순간에도 마지막 힘을 쥐어짜 유언을 남긴 거잖아. 어떻게 말해야 우리 막내한테 더 살 마음이 들게 할까. 어느 정도의 스쿼트 횟수면 우리 막내가 건강하게 살 수 있을까. 얼마나 산을 올라가게 하면 우리 막내의 마음이 후련해지려나…. 그러니까 만약 동료들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라면 형은 자살하면 안 되지. 그렇지, 햅쌀아?”
삐융!
햅쌀이가 우렁차게 대답했다.
윤서가 뭐라 말을 하지 못하고 있자 권지한이 이어서 말했다.
“형이 죽고 싶어 하는 이유가 만약 삶에 대한 염증, 이제 사는 게 신물이 나서. 이런 걸 수도 있어.”
“맞습니다. 사는 게 신물이 나요.”
윤서가 냉큼 대답했다. 권지한도 기다렸다는 듯 바로 물었다.
“그래서 영원한 안식과 평화를 찾고 싶은 거야?”
“안식? 그 반대죠. 행복해지지 않기 위해 죽으려는 건데.”
“…….”
이번엔 권지한이 입을 다물었다. 그는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얼굴이었다.
“…그 말은 살아가는 게 더 행복해지는 길이라는 걸 형도 알고 있다는 뜻이잖아.”
권지한의 얼굴을 괴롭게 일그러뜨렸다.
안식과 평화는 죽어서는 얻지 못하고 살아 있어야 얻을 수 있다, 뭐 이런 말로 설득하려고 했던 모양이다.
윤서는 권지한이 설마 울려나 싶어서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권지한은 울지 않고 대신 숨만 깊게 내쉬었다 들이마셨다가 하다가 말했다.
“나는 형이… 살았으면 좋겠어. 오래오래 행복하게. 어떤 괴로움 없이, 삶의 즐거움을 실컷 누리면서…. 그러려면 형이 죽고 싶어 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알아야 하는데 그걸 모르겠어.”
“…….”
윤서도 근본적인 이유 같은 걸 찾은 적은 없었다.
죽고 싶으니까 죽고 싶은 거지…. 살기 싫으니까 살기 싫은 거고.
미래도 기대되지 않고…. 라는 항목은 머릿속에서 지웠다. 지금은 정말 솔직히 말해서 미래가 아주 조금은 기대되기 때문에.
사는 게 재미있지도 않고…. 라는 항목도 머릿속에서 지웠다. 솔직히 지금도 ‘헌터 앤 스킬’을 하고 싶었다.
‘내가 죽으려고 하는 근본적인 이유.’
윤서는 생각했다.
권지한의 말대로 죽은 동료들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라면 살아가는 게 맞다. 그들이 원하는 건 서채윤의 삶이니까.
그렇다고 안식과 평화를 원하냐고 묻는다면 절대 아니다. 서채윤은 안식과 평화를 얻을 자격이 없다.
그래, 그래서 죽으려는 것이다.
“살아갈 자격이….”
“…….”
“저는 살아갈 자격이 없습니다.”
“왜?”
권지한이 곧장 물었다. 윤서의 갈색 눈에 혼란스러운 빛이 감돌았다.
“모르겠습니다. 그냥… 어느 순간부터 나는 죽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
“대던전에서부터 나는 살아갈 자격이 없으니 유언만 들어주고 나면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형이 왜 살아갈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 걸까.”
권지한이 다소 탁한 음성으로 말했다. 윤서에게 묻는 건 아니라 혼잣말에 가까웠다.
권지한은 혼자서 무언가를 생각했고, 윤서도 스스로의 생각에 빠져들었다. 뭔가 딱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죽으려는 이유를 생각해봤을 때, ‘대던전에서 겪은 끔찍한 일들 때문’이라고만은 말할 수 없는 묘한 껄끄러움.
삐유.
햅쌀이가 놀아 달라고 울기에 윤서는 그럴 기분은 아니지만 일단 손가락으로 놀아 주려고 했는데, 권지한의 손이 먼저 움직였다. 햅쌀이가 파닥파닥 날갯짓하면서 권지한과 놀았다.
“우리 애기는 분위기 파악도 못 해요.”
권지한이 아까보단 가벼워진 목소리로 말해서 윤서는 내심 안심했다.
“형, 혹시 유언 중에 애인 만들지 말라는 유언도 있었어?”
“갑자기요?”
“내가 너무 불안해서 그래. 대답해 줘.”
권지한의 잘생긴 얼굴을 바라보면서 윤서가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그딴 유언은 없었습니다.”
“그래, 형은 좀 위태로운 면이 있으니까 멘탈 강한 연하남을 만나야 할 것 같아.”
“무슨 헛소리예요?”
“형의 이상형에 들어맞는 존나 강한 능력자이면서 형이 의지할 수 있을 정도로 멘탈 강하면서 믿음직스러운 연하남.”
“…….”
“와, 진짜 찾기 어렵다. 그런 사람이 세상에 존재할까? 형, 만약 그런 사람이 눈앞에 나타나면 절대 놓치지 마. 아마 이 우주에 단 한 명뿐일 테니까. 어쩌면 이미 나타나서 형 주위를 맴돌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근처에서 찾아보고. 아무튼 그런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일 거야.”
권지한은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능청맞은 소리를 주절거렸다.
윤서의 얼굴색이 점점 붉게 달아올랐다.
그때 갑자기 권지한이 지금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형, 근데 있잖아. 남자도 된다는 건 언제 어떻게 알았어?”
“…….”
“…….”
“…….”
“그래, 뭐. 형은 오랜 시간을 살았으니 많은 일이 있었겠지.”
윤서는 그렇게 나이 많진 않다며 반박하려다가 권지한의 표정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시큰둥함과 빡침의 경계에 있는 얼굴이었다. 이 와중에도 삐죽 내민 입술이 귀여웠다.
이런 분위기가 이어지면 난감하겠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오래 가진 못했다.
“아. <보스 알람> 떴어.”
“가죠.”
<가이아의 눈>으로 켜 두고 있던 <보스 알람> 창에 보스를 발견했다는 메시지가 뜬 것이다. 권지한와 윤서가 캠핑카를 나가자 저쪽에서도 알렉과 도등수가 뛰쳐나오고 있었다.
이제 보스 몬스터를 잡을 시간이다.
예정대로 권지한과 윤서가 보스가 있는 곳으로 향하고, 다른 이들은 늪지대 경계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윤서는 보스가 있는 곳으로 날아가면서 권지한을 힐끔 쳐다봤다. 권지한이 바로 눈치채고는 윤서를 쳐다봤다.
“왜? 보스는 걱정하지 마. 내가 좀 형이 의지할 수 있을 정도로 존나 강한 능력자라서 말이야. 연하이기도 하고.”
아까의 농담을 이어 가는 권지한을 보고서 윤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실 윤서는 권지한과 죽으려는 이유를 얘기하면서 머릿속을 스치는 장면 하나가 있었다.
‘이도민.’
기억 속에는 없는 모습.
죽어 가는 이도민이 윤서를 분노에 찬 눈으로 바라보고 있고, 증오에 찬 저주를 퍼붓고 있었다.
그를 보면서 자신은 생각했다.
‘나는 대던전을 나가면 죽어야 해.’
‘나는 살아갈 자격이 없으니까.’
대던전에서 이런 일은 없었다. 이도민이 죽을 때 나는 옆에 있지도 않았으니까.
대체 뭐였을까, 그 풍경은.
왜 나는 도민이를 위해서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마음이 불안하게 술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