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155)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155)화(155/195)
#140
마지막 보스 몬스터가 절명한 후 반투명한 장벽으로 막혀 있던 두 번째 지형이 열렸다.
던전에 진입했습니다 : 현재 지형 2/4 : 현재 인원 301명 : 폭발까지 1750시간
늪지대에 들어오자마자 <보스 알람>을 열 개 만들어서 날려 보내고 몰려오는 몬스터 떼를 해치우며 나아갔다.
수풀에 맺힌 이슬까지 모든 게 독인 늪지대에서는 전투계 헌터뿐만 아니라 힐러들 또한 할 것이 많았다. 서채윤의 실드는 외부의 독은 막을 수 있으나 실드 내부에서 지형 자체가 생성해 내는 독은 막지 못하기 때문에 이건 그들이 책임져야 했다.
박수빈과 김진해 등 힐러들이 독 안개를 정화하고, 독초를 정화하고, 독에 당한 헌터들을 치유하며 쉴 틈 없이 스킬을 사용했다.
“하아…. 힘드네요. 10년 전에는 마력 포션도 없었는데 다들 어떻게 견딘 건지.”
박수빈이 마력 포션 다섯 병을 연달아 들이켜면서 말했다.
옆에서 서포터 헌터들을 지키고 있던 도등수는 늪지대를 설명하던 윤서의 담담한 목소리를 떠올렸다.
그때는 어떻게 이렇게 자세하게 기억할까, 감탄스러웠는데. 그 속이 얼마나 썩어 문드러졌을지를 생각하면 감탄만 하고 끝냈던 당시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이제 두 번째 지형에 불과하지만 지금까지 계속 느꼈다. 이곳은 S급 레드 던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곳이다. 만약 서채윤의 정보가 없었다면 들어왔을 때 진입 메시지에 뜬 ‘현재 지형 1/4’를 본 순간부터 절망했겠지. 첫 번째 보스 몬스터를 해치운 후 두 번째 지형이 열리지 않아서 한참을 헤맸을 것이고, 한 지형에서 보스 몬스터가 세 마리가 나온다는 걸 알았을 때의 절망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전투가 결코 수월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세워 둔 공략대로 착실히 진행해 나가고 있다. 이건 전부 10년 전 끔찍한 참상을 겪은 이들이 있었던 덕분이었다.
“다들 대단한 영웅들이었지요.”
도등수는 진심을 담아 말하며 방벽을 단단히 했다.
당연하게도 둘의 짧은 대화는 선봉에서 전투 중인 윤서의 귀에도 들렸다.
‘그러게. 어떻게 견딘 걸까.’
사실 견뎌 냈다고 할 수 있는 건지도 의문이다. 결국 다 죽었으니까.
크아악!
윤서는 제게 덤비는 몬스터를 <스파크>로 내부 장기를 전부 태웠다. 그 사체를 밟고 뛰어올라 뒤에 있던 놈의 머리에 ‘넋’을 쑤셔 박았다. 핏방울은 실드로 막고서 양옆에서 달려드는 놈들은 <염력>으로 서로 부딪치게 한 뒤 짓뭉개버렸다. 바로 이어서 위쪽의 날개 달린 놈을 추락시킨 뒤 날개 끝에 달린 독 가시들을 떼어 내 몬스터들에게 날렸다.
크아아악!
몬스터의 비명을 들으며 윤서는 인원수를 확인했다.
아직은 아무도 죽지 않았음을 확인한 윤서는 그에게 달려드는 몬스터를 향해 검날을 세웠다.
***
“이봐! 정신 차려. 포션 먹어!”
“부상자는 안으로 옮겨라!”
“사체를 태워야 한다. 화염 스킬 헌터들은 집합하라!”
늪지대에서의 첫 전투는 여섯 시간 만에 끝났다. 부상자들을 추스리고 화염 스킬을 가진 자들이 몬스터 사체를 전부 불태웠다. 늪지대의 몬스터들은 사체에서도 독을 뿜어 대기 때문이었다.
어느 정도 상황을 수습한 후 부상자 보고를 받았다. 치명상이 3명, 경미한 부상 52명.
‘죽은 사람은 없네.’
다행히 이번엔 사망자가 생기지 않았지만 이 상태로라면 두 번째 전투에서는 반드시 사망자가 나온다. 늪지대의 몬스터들은 용암 지대보다 수가 두 배 이상으로 많고, 거의 쉴 틈 없이 떼로 몰려들기 때문이다. 힐러들의 치유로 경미한 부상을 입은 헌터들은 다음 전투 때면 복귀 가능하겠지만 치명상 3명은 더 회복해야 한다. 중환자 중 A급 헌터도 한 명 있고….
윤서는 덩그러니 선 채 생각에 잠겼다가 하늘 위에서 주변 지형을 살피던 권지한이 서서히 땅으로 내려오는 걸 보고는 그곳으로 향했다.
“…….”
권지한이 시선을 느꼈는지 윤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권지한은 갑자기 가슴에 손을 갖다 댔다.
“허억.”
“뭡니까?”
다치진 않았을 텐데 왜 이러나 해서 윤서가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권지한은 가슴을 움켜쥔 채 말했다.
“천사 강림이 이런 모습일까….”
“또 무슨 헛소리예요.”
“아니, 몬스터의 피가 튄 옷을 입고서 단검을 거꾸로 쥔 채 석양을 등지고 저벅저벅 걸어오는 모습이 말이야…. 분위기 미쳤다, 형.”
“웃기고 있네. 분위기 미쳤다고 말하려면 붉게 타오르는 하늘을 배경으로 검은 날개를 펼친 채 아득한 잿빛 시선으로 먼 곳을 둘러보는 남자 정도는 되어야죠.”
둘 주위에 있던 헌터들이 한 걸음씩 떨어졌다.
생명의 신이 흐뭇해합니다.
죽음의 신이 짜증 냅니다.
두 사람은 상대에게 상처가 있는지 순식간에 훑고는 장갑차 쪽으로 향했다. 리더 그룹이 이미 모여 있었다. 권지한이 인벤토리에서 물티슈를 꺼내 몇 장 뽑은 다음 윤서에게 건넸다.
“어차피 씻을 건데요.”
“일단 닦아. 아니면 내가 닦아 줘?”
윤서는 팔이나 얼굴에 튄 핏방울을 닦아 냈다. 도등수가 권지한에게 물었다.
“권지한 헌터, 몬스터들 동향은 어떻습니까.”
“10분 후쯤 맞닥뜨릴 것 같아. 비행형도 여럿 있고, 덩치 큰 놈들도 있고.”
“서채윤 헌터 말대로네요. 정말 쉴 틈을 안 주네.”
도등수가 질린 얼굴을 했다. 몬스터를 죽이고 또 죽여도 새로 합류하는 놈들 때문에 전투가 길어진다는 말이 맞았다.
“서채윤 헌터, 일단 작전대로 실드 부탁합니다.”
“네.”
윤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이 새파란 빛깔을 띠고, 신비로운 푸른 마력이 그의 몸에서부터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윤서가 지금 사용할 스킬은 그가 가진 실드 중 가장 강한 것이었다. 단 한 번도 외부 충격으로 깨진 적 없는 실드.
스킬 <딥 필드>를 사용합니다.
푸른 빛이 야영지를 돔 형태로 감쌌다. 여기저기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푸른 마력을 보유한 이들은 많았지만 서채윤의 것은 유독 아름답고 신비로웠다. 근방에 있는 몬스터들의 울부짖음에 불안해하던 신 리벤저는 감탄하는 동시에 안도했다.
“언제 봐도 대단한 풍경이야.”
권지한이 사방을 둘러보며 가볍게 휘파람을 불었다.
<딥 필드>는 강도가 높은 만큼 마력 소모도 심하고, 쿨 타임도 윤서가 가진 스킬 중 가장 길었다. 그러나 늪만 없앨 뿐 독은 계속 생성되는 <테라포밍>보다는 아예 독 생성을 차단시키는 <딥 필드>가 적절했다. 앞으로의 공략을 위해서도 <테라포밍>보다는 <딥 필드>가 여러모로 나았다.
“이제 몬스터들이 몰려오길 기다리죠. 모이려면 시간이 걸릴 테니 좀 쉬세요. 저는 들어가서 누워 있어야겠습니다.”
“나도 들어가 있겠네.”
도등수와 알렉 등 몇몇이 안으로 들어갔다.
윤서와 권지한은 씻은 후 옷을 갈아입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딥 필드> 경계 근처에서 배회하자 수다를 떨고 있던 수재희와 홍의윤도 합류했다. 박수빈은 부상자들을 돌보느라 함께 자리하지 못했다.
“아까 우리 해돌이가 늪에 빠졌어요. 엄청 깊더라고요. 그냥 끝없이 잠기길래 얼른 소환 해제했어요.”
윤서가 고개를 갸웃했다.
“늪에 빠졌으면 독에도 당했을 텐데요.”
“아, 텀 두고 소환하면 말끔해져서 괜찮아요.”
“미친. 그거 반칙 아니냐? 아무리 치명상을 입어도 소환 해제 후 다시 소환하면 괜찮아진다는 거야?”
“응, 재소환까지 간격을 둬야 하지만.”
“얼마나?”
“한 사나흘?”
홍의윤이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긴 것 같기도 하고 짧은 것 같기도 하네.”
“그냥 가벼운 상처는 바로 재소환해도 사라지는데 이번엔 독에 심하게 당하기도 했고 해돌이도 많이 놀라서 시간 두고 소환하려고.”
“선녀들은 괜찮냐?”
“선녀 중에 독 정화 스킬을 가진 선녀가 있어서 괜찮아. 내가 말 안 해도 알아서 돌아다니면서 독 정화해 주던데.”
“…소환사 진짜 치트키 아냐, 씨발.”
독 피하느라 고생한 홍의윤이 부러움이 담긴 욕설을 내뱉었다.
윤서는 수재희의 소환수 자랑을 듣고 있으니 문득 햅쌀이가 보고 싶어졌다.
“피 냄새도 사라졌으니 불러도 될 것 같은데.”
윤서의 손이 단검 손잡이를 만지작거리자 권지한이 웃으며 말했다. 윤서는 생각이 읽혔다는 게 왠지 부끄러웠지만 일단 햅쌀이를 꺼내 주기로 했다. ‘넋’을 꺼내 형태를 변하게 하자 작은 새가 삐융 울면서 나타났다.
삐융삐융.
“실드 안쪽으로만 돌아다녀.”
삐융!
햅쌀이가 주변을 구경하기 위해 파닥파닥 날아갔다. 일행은 걸음을 멈추고 햅쌀이를 구경했다.
바쁜 헌터들 주위를 돌아다니던 작은 새가 독이 제거된 풀잎 위에 앉았다. 윤서가 귀로는 수재희와 홍의윤의 수다를 듣고, 눈으로는 풀잎을 뜯는 햅쌀이를 보며 서 있는데, 한 남자가 햅쌀이와 가까운 곳으로 걸어오는 게 보였다. 키가 크고 날렵한 체구에 비해 얼굴은 투박한 남자, 크리스 카일이었다.
S급 헌터이자 사냥꾼 조직의 보스인 그는 ‘미국의 대도둑’이라는 별칭도 가지고 있다. 대던전 지원을 두고 말이 많았으나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강한 전력이라 사상 검증까지 마친 후 함께 들어오게 되었다. 대던전의 자연을 만끽 중인 ‘넋’을 탐욕스러운 시선으로 보던 사냥꾼이 고개를 들었다.
“…….”
“…….”
사냥꾼과 서채윤이 잠시 대치했다. 윤서는 흰 가면을 쓰고 있어서 표정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사냥꾼은 누가 봐도 서채윤을 노려보고 있었다. 홍의윤과 수재희가 동시에 긴장했는데 권지한은 그에는 상관하지 않고 <딥 필드> 경계를 손으로 휘젓더니 뜬금없이 물었다.
“형, 이 스킬 얼마나 막는다고 했지. 7000만 톤?”
“11년 전에는 S급 레드 던전 폭발도 막았으니까 그 이상일 겁니다.”
“진짜 존나 멋있네. 역시 내 이상형이야.”
둘이 짧게 대화하는 동안 사냥꾼은 전의를 상실했는지 터벅터벅 햅쌀이로부터 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