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156)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156)화(156/195)
#141
사냥꾼이 충분히 멀어진 후에 수재희가 물었다.
“형들, 혹시 크리스 카일이 갤럭사이아는 아닐까요?”
권지한이 고개를 저었다.
“저렇게 욕심 많은 도둑은 갤럭사이아가 될 수 없지. 저번에 양평 템시장에서 감히 햅쌀이를 훔치려던 야쿱루마우가 내 <포식자>에 당해서 S급 스킬을 잃고, 지금은 저자의 조직이 세계 최대의 사냥꾼 조직이 되었어. 세상의 멸망을 원할 리가 없어.”
“아, 그렇네요. 그럼 여긴 왜 들어온 걸까요?”
“보물 상자다.”
일행이 뒤를 돌아봤다. 대답한 사람은 조만이였다. 조만이는 팔짱 낀 채 한껏 예민한 표정으로 권지한을 노려보고 있었다.
“S급 레드-블랙 던전의 보물 상자라면 얼마나 대단하겠나. 그 작고 귀여운 새 같은 게 또 나올지도 모르지. 석영은 보물 상자가 도둑놈의 손에 들어가기 전에 보물 상자의 위치를 우리에게 공유했으면 하는군.”
일전에 있었던 일을 어느 정도 들었던 수재희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그러니까 그런 기술 없다고 몇 번을 얘기해요? 혹시 아저씨야말로 보물 상자 때문에 들어온 거 아니고?”
“무, 무슨 말이냐. 나, 나는 보물 상자 따위는 관심 없어.”
조만이가 힐끔힐끔 흰 가면을 쓴 서채윤을 훔쳐봤다.
“나와 우리 레인보우 길드원들은 모두 인류를 위해서 목숨 걸고 들어온 것이다. 보물 상자? 그런 건 일부러 찾아본 적도 없군.”
그 뻔뻔한 대답에 전원이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서채윤 헌터에게 할 말이 있다.”
“말씀하세요.”
윤서가 대답하자 조만이가 대뜸 권지한을 노려봤다.
“권지한은 연인이 있다.”
“…어!?”
권지한이 화들짝 놀랐다. 수재희와 홍의윤도 눈을 깜박이며 윤서를 쳐다봤다.
“무슨 개소리야. 나 여친도 남친도 없어. 진짜야.”
권지한이 윤서를 향해 필사적으로 해명했다. 조만이가 콧방귀를 뀌었다.
“흥, 연인까진 아니더라도 저 귀여운 작은 새가 잘 따를 정도로 친밀한 관계인 사람이 있다는 걸 안다. 권지한. 너는 지금까지 잘난 얼굴 믿고 감히 서채윤 헌터 옆에서 천사 강림이니, 이상형이니 뭐니 하면서 알랑거리고 있는데, 이분도 진실을 알아야지. 아무튼 중요한 건 나는 보물 상자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그저 인류애적인 마음으로 대던전에 들어온 사람이고, 권지한은 가까운 관계인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알겠나, 서채윤?”
“아… 알겠습니다.”
엄청난 박력에 윤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만이는 만족한 듯 홱, 돌아서서 길드원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권지한이 뒤늦게 흥분했다.
“저 새끼가 함부로 솔로를 커플로 만들고 있어. 내가 이상형이어서 나한테 막 다가오려고 하던 사람이 오해라도 하면 어떡하라고. 나 솔로인데. 형, 알지? 나 솔로야. 심지어 모태 솔로야. 한 번도 누구 사귄 적 없는 거 형도 잘 알잖아. 저딴 개소리에 속지 마. 오해하면 안 돼.”
권지한이 그렇게 필사적으로 해명하기에 윤서는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홍의윤도 그냥 ‘음, 권지한도 모태 솔로였군.’ 하고 말았고, 그들은 곧 다른 얘기로 넘어갔지만 수재희만은 아니었다.
‘둘이 사귀면서 왜 레인보우 아저씨가 떠났는데도 아닌 척하는 거지? 아, 다른 사람들이 들을까 봐 그렇구나. 역시 어른의 세계는 무섭다….’
대던전에서도 혼자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수재희였다.
***
곧 석영 측 서포터들도 식사 준비를 마쳤다고 일행을 부르러 왔다.
식사하는 동안 몬스터들이 더 몰려들었다. <딥 필드>에 막힌 그것들은 울부짖으며 인간들을 에워쌌다. 시간이 지날수록 수가 많아졌다. 그것들은 실드에 몸통 박치기를 하고, 브레스를 쏘고, 커다란 바위를 던지는 등 어떻게든 들어오려고 했으나 <딥 필드>의 내구도를 1%도 깎지 못했다.
늪지대의 작전은 모아 놓고 죽이기였다.
보스 몬스터를 발견할 때까지 몬스터들은 계속, 계속, 계속 몰려들 것이고, 끊임없는 전투를 해야 하니 차라리 모아 놓고 광범위 스킬로 몰살시키는 것. 그를 위해 윤서의 스킬 중 가장 쿨타임이 긴 <딥 필드>를 펼친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실드 안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오전 일찍 실드 밖을 점검하니 몬스터가 징그러울 만큼 몰려들어 있었다.
아직 <보스 알람>은 신호가 없었고, 우선 한 번은 몰살을 진행해야 할 것 같아 광범위 공격 스킬을 가진 헌터들을 한자리에 불렀다. 각양각색의 고위 헌터들이었다.
삐융.
“아유, 귀여워라. 우리 햅쌀이 통통해요.”
삐융삐융.
“으응, 피 많이 먹었어요. 배불러요. 아유, 귀여워.”
동물을 좋아하는 수재희는 안 그래도 오만한 햅쌀이를 더 오만하게 만들었고, 홍의윤은 그 옆에서 ‘이게 어떻게 아이템이지.’ 하고 있었다.
그 옆에선 알렉이 닭살 커플과 대화했다.
“아이 이름은 뭐로 지었나?”
“일단 사랑스러운 아기 딸기로 지었어요.”
“태명이 사랑스러운 아기 딸기라고….”
“딸기라고 부르면 돼요. 우리 달링 작명 센스예요.”
“허니도 같이 지었잖아.”
“달링….”
“허니….”
옆에 있던 사냥꾼 크리스 카일이 거리를 좀 더 벌리고 섰다. 조만이는 레인보우 길드원들에게 무언가를 지시 중이었는데 보나 마나 보물 상자 관련일 터였다.
옐레나 이바노프와 푸르카 후투루는 본래 친분이 있었는지 꽤 친근한 태도로 얘기 중이었다.
윤서가 그쪽을 보자 푸르카 후투루가 바로 시선을 마주쳐 왔다. 그가 먼저 고개를 끄덕하며 인사하고 윤서도 고개를 까딱했다.
푸르카 후투루는 10년 전 윤서와 딱 한 번 마주친 적 있었다. 미국에 S급 범람이 발생해서 각국의 S급들이 도와주러 갔을 때였다. 그때는 윤서만 가면을 썼는데 이번엔 푸르카 후투루도 눈 아래를 반가면으로 가리고 있었다.
윤서가 10년간 유언을 처리하면서 지내는 사이에도 푸르카는 끊임없이 치열하게 싸웠고… 수년 전 전투 중 안면 부상을 당했으나 타이밍을 놓쳐 치유받지 못해 상처가 남았다고 들었다.
과거에 윤서와 함께 활동했던 이들은 지금은 대부분 부상을 당해서 제대로 전투할 수 없는 상태였다. 대부분 조직의 간부로 빠지거나, 현역으로 활동하는 이들은 레이드는 하지 않고 범람만 처리하는데 푸르카 후투루는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가 아프리카의 영웅이라 불리는 것이다.
‘…….’
윤서는 가면 속에서 입술을 깨물었다.
부끄러워서 그를 보고 있을 수가 없다. 이 가면과 저 가면은 너무나 다르니까….
“형, 뭐 하는 거야?”
“네?”
윤서가 권지한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권지한이 꽤 차가운 미소를 걸치고 있었다.
“저 사람을 왜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는데?”
“저 사람의 스킬 오랜만에 본다고 생각하니 반가워서요.”
잠자는 거인이었나…. 하여튼 그런 이름의 강력한 스킬을 가졌다. 보는 것만으로도 통쾌해지는 스킬이었다.
“그렇게 당당히 대답한다 이거지.”
“안 당당할 게 뭡니까.”
“이렇게 날 흥분시키면 감당할 수 있겠어?”
“못 감당할 건 뭐고.”
권지한이 팔짱을 풀더니 윤서에게 다가왔다. 윤서는 장갑차에 기대서 있었는데 권지한이 윤서의 머리 옆으로 팔을 뻗고는 장갑차 창문을 짚었다. 긴 그늘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는데 거리가 지나치게 가까워서 윤서는 미간을 좁혔다.
“으아아! 여기에선 안 돼요!”
갑자기 수재희가 둘 사이에 난입하고는 양팔을 바둥바둥댔다.
“어른이면 참아야죠! 여기 이렇게 보는 시선이 많은데 벽쿵이라니 미쳤어요?”
“벽쿵?”
“사람들 다 여기 보잖아요! 얼른 둘 다 조용히 해요!”
“수재희 헌터가 제일 시끄럽습니다.”
“이러다 둘 사이 들키면 어쩌려고! 내가 정말 형들 때문에 못 살아!”
수재희가 너무 고함을 질러대서 윤서가 눈매를 찌푸렸다.
대체 우리 둘 사이가 뭔데? 아니 그보다 이 녀석 목소리 때문에 여기에 집중하지 않던 신 리벤저까지 모두가 들었을 것 같은데….
흥분한 수재희 때문에 권지한이 물러서고 윤서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햅쌀이를 어깨에 앉혔다.
그때 부상자를 돌보고 있던 도등수와 박수빈이 리더 그룹 쪽으로 다가왔다.
“다들 모여 주십시오.”
도등수가 말하자 리더들이 그 자리에 서서 멀뚱멀뚱 도등수를 쳐다봤다.
“다들 모여 주세요.”
박수빈이 말하자 리더들이 순한 양들처럼 힐러 대장의 말을 따랐다.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있어요. 모아 놓고 몰살할 거라는 작전을 알아도 몬스터들 수가 너무 많아서… 실드가 깨지면 어떡하냐고 하네요.”
윤서가 바깥 몬스터들을 둘러봤다.
“실드가 깨질 일은 없지만 불안해하는 마음도 이해합니다. 얼른 몰살을 시작하죠.”
“처음은 누가 하시겠습니까?”
홍의윤과 옐레나가 손을 번쩍 들었는데 둘은 곧 시무룩하게 팔을 내려야 했다.
“처음은 내가 간다.”
권지한이 앞으로 나섰기 때문이었다.
윤서가 눈을 깜박이면서 권지한을 응시했다. 이미 권지한의 잿빛 눈에는 검은 마력이 감돌고 있었다.
“채윤이 형, 이 실드 얼마만큼이야?”
“…50%만 펼쳤습니다. 뭘 하려는 겁니까.”
“아니, 나 지금 열받았거든.”
권지한이 두 팔을 걷어붙이고 뒤돌아섰다. <딥 필드> 경계로 성큼성큼 향하는 뒷모습엔 망설임이 없었다.
“형, 제가 엄호할게요.”
“필요 없어.”
단박에 거절당한 수재희가 입을 내밀었다. 윤서가 말했다.
“얌전히 수재희 헌터의 엄호를 받으시죠.”
“잘 부탁해.”
<딥 필드> 밖 몬스터들을 공격하려면 밖으로 나가야 하므로 엄호가 필수였다. 엄호는 굳이 나가지 않아도 안쪽에서 공격 스킬을 펼칠 수 있는 소환사 수재희와 원거리 스킬 보유자들이 맡았다.
‘수재희’가 스킬 <구운몽>을 사용합니다.
수재희가 소환된 선녀들을 실드 밖으로 내보내서 권지한이 나갈 공간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