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157)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157)화(157/195)
#142
선녀들이 몬스터를 찢어 죽이는 사이 권지한의 주위에 검은 마력이 넘실거렸다. 분위기가 대번에 가라앉았다. 아니, 가라앉은 게 아니라 어떤 무형의 바위가 이 공간 전체를 짓누르는 듯이 묵직한 중압감이 느껴졌다.
모두가 침을 꿀꺽 삼켰다.
“저기, 혹시 모르니까 S급 실드 트랩 좀 꺼낼까요. <딥 필드>가 50%라고 하시니까….”
도등수가 윤서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윤서는 덤덤하게 말했다.
“불안하면 사용하세요.”
도등수가 부랴부랴 실드 트랩을 꺼내 설치했다. 박수빈이 옆에서 괜히 실드 트랩을 낭비하는 거라고 말렸기에 다섯 개만 설치하고 그쳤다.
생명의 신이 크게 웃습니다.
윤서는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이들은 서채윤의 실드를 믿지 못하는 게 아니라 권지한의 스킬을 너무 믿는 것이다.
권지한의 주위에 일렁거리는 마력을 보고 있자면 누구나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현재 권지한의 <퀘이사>는 저번보다 레벨이 올랐다.
<퀘이사> B Lv 3/5
물론 윤서는 불안하지 않았다.
검은 던전 공략을 위해서 <딥 필드>가 막을 수 있는 충격을 몇 번이나 확인했으니까…. 반쪽짜리라도 <퀘이사> 정도는 충분히 막는다.
권지한은 검을 해제하고 양손을 늘어뜨린 채 실드 밖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의 펼쳐진 양손에 파지직, 파직하면서 검은 기운이 구형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공간을 만들어 낸 수재희의 선녀들이 얼른 <딥 필드> 안으로 들어왔다. 잠깐 위축됐던 몬스터들이 달려들려고 하자 권지한이 스킬을 사용했다.
‘권지한’이 스킬 <먹이사슬>을 사용합니다.
수재희에게 필요 없다고 한 이유가 있었다.
그렇게 몬스터들의 움직임을 막은 권지한의 양손에는 차곡차곡 검은 마력이 쌓였다. 이 거리에서도 파직거리며 공기가 요동치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권지한’이 스킬 <퀘이사>를 사용합니다.
권지한이 땅을 박차고 높이 도약하더니 양손의 구체를 하나로 모으고는 거의 지평선까지 뒤덮은 몬스터들을 향해 던졌다. 검은 구체는 몬스터는 물론이고 늪지대의 독초와 진흙 등 모든 것을 집어삼키며 점점 크기를 키워나갔다.
콰아아앙!
엄청난 굉음에 귀가 먹먹할 지경이었다. 실드 밖은 검고 붉은 폭풍 때문에 아무것도 분간할 수 없었다.
생명의 신이 감탄합니다.
죽음의 신이 통쾌해합니다.
관측자가 탄성을 내뱉었습니다.
가호 신들이 감탄하는 메시지들이 떠올랐는데 그중에는 관측자도 있었다. 역시나 보고 있던 모양이다.
쩌저적- 실드에 금이 갔다.
<딥 필드> 내구도 71/100
<딥 필드>의 내구도 하락은 예상 범위였고… 실드 밖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크리스 카일’이 스킬 <빛의 폭풍>을 사용합니다.
답답했는지 크리스가 밖으로 나가서 스킬을 사용했다.
검은 대기가 서서히 걷히고 밝아진 시야에는 거대한 구덩이가 있었다. 독초, 나무, 늪, 몬스터의 사체, 핏자국. 아무것도 없이 그냥 거대한 구덩이였다.
“와… 씨. 찢었다.”
수재희가 모두를 대신해서 감탄사를 내뱉었다.
어느샌가 땅에 내려온 권지한이 실드 쪽으로 다가왔다. 권지한의 얼굴은 제 스킬의 위력을 잘 알고 있는 오만방자한 표정 그 자체였다. 293명이 죄다 권지한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권지한은 다른 이들의 반응에는 관심 없다는 듯 곧장 윤서에게 물었다.
“어때?”
“굉장하네요.”
“굉장하지. 내구도는?”
“71%.”
“…방금 내 <퀘이사> 100%로 펼쳤단 말이야. 그런데 형은 50%밖에 안 펼쳐 놓고서 겨우 그만큼 떨어졌다는 말이야?”
“그렇게 됐네요.”
“미쳤다. 그냥 형이 압승했네. 역시 내 이상형다워.”
권지한이 바람 빠진 웃음을 지었다.
<퀘이사>도 미쳤지만, 그걸 막아 낸 <딥 필드>도 미쳤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압승이라기엔 의문이 있었다.
권지한은 <퀘이사>를 몬스터 한복판으로 던졌고, <딥 필드>는 그 폭발의 여파를 막아 낸 것이니 만약 <딥 필드>를 향해서 던졌다면 어떻게 되었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정말… 미쳤군요.”
윤서는 살짝 소름이 돋은 양팔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세계 최강과 세계 최강의 대결은 그렇게 둘 다 미친 것으로 끝이 났다.
***
그 후로도 몬스터 떼가 몰려 들어왔고 헌터들은 광범위 스킬로 막아 냈다.
첫 타자가 너무 압도적으로 몰살해 버려 다들 기죽은 가운데 두 번째 타자로 나선 이는 수재희였다. 양평 템 시장에서 샀던 ‘천해’의 열매를 소진하고 ‘천해의 검’을 손에 넣은 수재희는 소환사로서도, 하나의 헌터로서도 권지한의 뒤를 이을 만했다. 특히 그는 권지한의 <퀘이사>와는 다른 의미로 막강한 스킬이 하나 있었다.
‘수재희’가 <상자 속의 고양이>를 소환합니다.
<상자 속의 고양이> 발동 시간 10:00
앞발 하나로 몬스터 열 마리를 깔아뭉갤 정도의 거대한 고양이가 나타났다. 흰 털의 고양이는 표정이 없었고, 울부짖는다거나 꼬리를 흔들지도 않았다. 이 고양이는 살아 있는 동시에 죽어 있기 때문이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상자를 열기 전까지 죽어 있는 동시에 살아 있는, 양자 역학에서 말하는 그것.
이미 죽어 있기 때문에 다치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 발동 시간 10분이 끝나 사라지기 전까지는 그야말로 무적 상태로 적을 도륙 내는 최강의 스킬인 것이다.
단 단점이 두 개 있는데, 이런 사방이 막히지 않은 공간에서만 소환할 수 있고 두 번째로는 아직은 현대 기술로 만든 쿨 타임 포션이 적용되지 않는 스킬이란 점이었다. 쿨 타임은 50시간인데, 수재희는 과감하게 이 스킬을 사용했다.
고양이는 10분간 날뛰지도 못했다. 8분여가 지났을 때 몬스터 떼는 전멸했으니까. 고양이만 날뛴 게 아니라 수재희도 신나게 날뛰어서 전투가 끝났을 때는 몬스터의 피로 피 칠갑한 상태였다.
실드 안에서 그 모습을 구경하던 많은 리벤저는 S급 헌터란 스무 살짜리도 괴물이구나, 생각했다.
그다음엔 옐레나 이바노프의 <어스 퀘이크>가 늪을 뒤집어엎었으며, 조만이의 <대설원의 눈보라>가 몬스터들을 얼렸다가 푸르카 후투루의 <잠자는 거인>이 몬스터들을 잘근잘근 밟았다. 리오 델리가 <사랑을 모르는 당신은 불쌍해요>로 몬스터들의 전의를 꺾으면(몇몇 리벤저의 전의도 함께 꺾이는 불상사가 있긴 했다), 로렌스 밀레가 <네가 사랑을 알아?>로 몬스터들을 조종해 서로 죽이게끔 만들었고, 크리스 카일은 <빛의 폭풍>으로 몬스터들을 갈기갈기 찢었다. 하나하나가 경이적인 스킬이었는데 역시 임팩트가 가장 강한 건 <퀘이사>였다.
그렇게 몰살이 반복되자 권지한과 서채윤은 점점 더 경외 담긴 시선을 받았다.
우선 서채윤의 <딥 필드>가 하나하나의 경이적인 광범위 공격 스킬들의 충격파를 전부 막아 냈다는 것.
크리스 카일 차례까지 끝났을 때 <딥 필드>의 내구도는 60%나 남은 상태였는데… 이건 달리 말하면 그들의 공격은 모두 합해서 내구도를 고작 11% 깎았다는 뜻이다. 권지한은 스킬 하나로 29%를 소모시켰는데 말이다….
또한 윤서의 치유 내성을 아는 소수의 사람들은 마력 포션을 안 마시고도 <딥 필드>를 이틀이나 유지하는 끝없는 마력과 집중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형들… 인간 맞아요?”
“인간 맞으니까 여기 있죠.”
수재희의 탄식이 가득 담긴 질문에 윤서는 식은땀을 닦으며 대답했다. 몰살을 반복한 지 이틀이 지났고 이제 윤서는 손까지 덜덜 떨려 왔다. <보스 알람>이 울릴 때까지 반복하려고 했는데 보스 몬스터들이 소문 듣고 다 도망친 건지 좀처럼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
“형, 좀 앉아.”
권지한이 윤서의 팔을 부드럽게 당겨서 푹신한 안락의자에 앉혔다. 윤서는 힘없이 털썩 앉았다.
“마력 얼마나 남았어?”
“11% 남았습니다.”
“예? 11%라고요?”
권지한이 눈살을 찌푸림과 동시에 도등수가 놀라서 펄쩍 뛰었다. 그들은 캠핑카 안에 있었는데 거의 천장에 닿을 정도였다.
“왜 말을 안 하셨어요! 얼른 해제하세요. 마력 고갈 상태에 들어가면 큰일 납니다.”
“아직 <보스 알람>이 안 울렸는데요.”
“그게 문제입니까? 공격 준비를 마치고 실드 트랩을 가동시킬 테니 얼른 해제해요.”
“더 버틸 수 있습니다.”
“채윤이 형.”
권지한이 나직하게 윤서를 불렀다.
“좋은 말 할 때 해제해.”
“…….”
윤서는 어디 한번 나쁜 말 해 보라고 뻗대고 싶었지만 권지한의 탁한 저음이나 회색 눈빛이 꽤 음산해서 그만뒀다. 윤서 자신도 마력 고갈에 돌입하면 사달 나겠다 싶기도 했다.
5분 후 S급 실드 트랩들이 가동된 상태에서 <딥 필드>를 해제했다.
실드 트랩을 뚫고 들어오는 놈들이 있긴 했지만, 마지막 몰살이 두어 시간 전이라 몬스터들이 아직 많이 모인 상태는 아니어서 리벤저들이 충분히 처치할 수 있었다.
리더들은 보스 몬스터를 찾으러 갈지, 신호를 기다릴지 회의를 시작했다.
용암 지대에서도 그렇고 늪지대에서도, 이렇게 보스 몬스터들이 꽁꽁 숨어 있는 게 뭔가 수상했다. 본래 몬스터들은 침입자들을 처치하러 오는 습성이 있으니까. 이 실드 밖에 모인 잡몹들처럼.
다행히 회의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보스 알람>이 울렸다.
늪지대의 남서쪽 끝과 동쪽 끝, 두 군데였다. 용암 지대에서와 마찬가지로 마지막 한 마리는 찾지 못했다.
리벤저는 세 팀으로 나눴다. 윤서와 수재희, 옐레나는 중앙의 베이스캠프에 남기로 하고, 동쪽에는 권지한, 조만이, 크리스 카일이. 서쪽에는 알렉과 커플, 푸르카 후투루가 가기로 했다.
“형, 지금은 마력 몇이야?”
“15%입니다.”
“어떻게, 정신은 좀 괜찮아? 막 죽고 싶지는 않고? 내가 형 죽고 싶으면 어떻게 하라고 했지?”
“햅쌀이를 만지라고 했습니다.”
“좋아. 그럼 형한테 접근하는 사람은 어떻게 하라고 했지?”
윤서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서쪽 팀은 출발했고, 동쪽 팀은 갈 준비를 마친 상태였는데 권지한이 무슨 애 혼자 두고 집 나가는 부모처럼 이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