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16)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16)화(16/195)
#14
“…….”
전부 읽히지는 않았고, 그래서 더 수상하게 보이는 프로필이었다. 누구 봐도 절대로 평범한 B급 헌터의 프로필은 아니다. 망연자실해진 윤서가 흔들리는 눈으로 권지한을 쳐다봤다.
권지한은 역시나 적잖이 놀란 듯 허공을 보고 있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스킬을 사용했다가 이런 프로필을 보면 누구라도 놀랄 것이다.
<가이아의 눈>으로도 보이지 않는 글자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정도까지 가려진 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같은 각성 등급이 아니라면 말이다.
‘시스템 에러라고 생각해 주진 않겠지….’
그나마 등급은 B급으로 나와서 다행이었다. 이하 정보가 보이지 않은 덕분에 다른 스킬도 들키지 않았고….
그럼에도 윤서는 여간 낭패스러운 게 아니었다.
“여러분도 서로에게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니까 던전 공략은 일주일 후로 계획 중입니다. 물론 원하시면 더 빨리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석영이 계약한 던전은 많으니까….”
유준철이 뭐라 뭐라 말을 이어 갔으나 윤서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가이아의 눈>이 전승되었구나.’
가이아 스킬은 아주 특별한 사람에게만 부여되는 스킬이었고, 어떠한 기준으로 갖게 되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윤서가 알던 가이아 스킬 보유자는 지금은 모두 세상에 없는데, 그중 한 명이 가졌던 스킬 이름이 <가이아의 눈>이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전승이 아닌가. 계승? 이것도 아니지…. 그냥 소유자가 다음 사람으로 넘어간 것뿐인가.’
가이아 스킬은 가이아 시스템이 관리하고 있다. 원래 소유자가 죽고 시스템에서 보관하다가 권지한에게 넘긴 모양이었다.
“말 그대로 테스트의 의미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모두 바디 캠을 착용하고 들어가게 될 겁니다. 던전 부산물로 만든 카메라라 튼튼하지요. 우리 석영의 판매 실적 1위 아이템이기도 합니다.”
‘놀란 거 맞아? 표정이 왜 저래.’
윤서는 유준철의 말은 귓등으로 흘리며 권지한을 관찰했다. 가이아 스킬을 이렇게까지 방어한 사람이 없을 테니 많이 놀랐을 텐데, 분명 놀란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놀라움과 더불어 즐거움도 가득했다. 휘어진 눈매나 올라간 입꼬리, 이채가 이는 회색 눈. 예상치 못한 상황에 놀랐고, 놀랐기에 즐거워하는 것이다. 차라리 권지한이 얼굴을 구기고 있었다면 나았을까. 흥미롭고 재미있어하니 더 불안해졌다.
‘나도 네 걸 봐야겠어. 그 특성을 지녔는지 확인도 해야 하고.’
스킬 <인류 도감>을 사용합니다.
상대의 시스템 프로필을 열람합니다.
팟, 하고 반투명한 창이 떠올랐다.
***
“일단 내 후보는 아닐 것 같아요.”
“네 후보가 이정인이었지. 어떤 사람인데?”
“서채윤 님이라기엔 성격이 너무 싸해요. 잘 웃기는 하는데 뭔가 속이 시커먼 느낌이랄까.”
“서채윤 님 성격이 본래 그럴지도 모르잖아.”
“서채윤 님은 잘 안 웃으시잖아요. 왜, 예전에 어떤 헌터가 ‘서채윤 웃는 얼굴 기다리느니 태양이 백색 왜성 되는 게 더 빠르겠다’ 이런 말 한 적도 있고.”
“지금은 변했을지도 모르지. 10년이나 흘렀으니.”
“아무튼 이정인은 절대 아니에요. 오히려 이정인도 서채윤 님 찾고 싶어 하던데. 슬쩍 떠보니까 서채윤 님 팬클럽도 가입한 적 있었다더라고요.”
“팬클럽 어디요? ‘포더서’? ‘노루같은윤’? ‘신비소년윤’?”
“노루 어쩌구 하던데. 이정인이 수빈 씨만큼의 광팬은 아니니까 눈 번뜩이지 마세요.”
“아쉽네요.”
박수빈이 짐짓 실망한 척 눈썹을 기울였다.
박수빈은 1년간 서채윤 후보를 전담 마크했던 서채윤 추적 팀 팀원들과 모여 있었다. 그들은 전담 마크하면서 생긴 일화를 나누고, 제 후보의 가능성에 대해서 떠들었다. 어떤 사람은 내 후보는 절대 서채윤이 아니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내 후보가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수빈 씨, 서채윤 광팬이 보기에 그쪽 후보는 어때요?”
“음, 윤서 헌터는….”
박수빈은 난처한 듯 미소 지었다.
“아직 알쏭달쏭하네요. 흥미로운 사람인 건 확실해요.”
“어떻게 흥미롭던가요? 외모를 말하는 거라면 확실히 미인이던데.”
“하하, 외모뿐만이 아니라 사람을 끄는 묘한 매력이 있어요. 매사 심드렁한데 은근히 취미도 다양하고, 그저 무덤덤해 보이는데 드라마 얘기를 할 때는 흥분하는 게 귀엽고요. 같은 팀원들 놀릴 때는 은근히 재미있기도 해요. 9시 딱 맞춰서 출근하는 스타일이라 처음엔 불성실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면 낙엽 길드 매출을 혼자 책임지는 성실한 성격이더라고요. 실드 트랩 C급 의뢰도 죄다 B급 이상으로 만들어 놓고는 아닌 척 시치미 떼고 있는 모습 보면 정말 귀여워요. 남한테 무관심한 듯하면서도 가끔 손뜨개질로 니트를 떠 주거나 쿠키도 구워 주고요. 1년밖에 되지 않은 저도 니트를 벌써 3장이나 선물받았어요. 대단하죠?”
칭찬이 와르르 쏟아지자 사람들이 눈을 끔뻑이더니 곧 웃음을 터뜨렸다.
“엄청 칭찬하네. 많이 친해졌나 봐.”
“아직 친해지진 못했어요. 간절히 친해지고 싶지만.”
“어떻게 후보자와 친해지고 싶을 수가 있어?”
홍의윤을 마크했던 이가 질색했다. 모두 측은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때 복도를 걸어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다들 A급 헌터들이기 때문에 기척의 주인이 누구인지 소리를 듣자마자 알았다. 곧 유준철이 권지한과 함께 벌컥 문을 열고 들어왔다.
“자자, 다들 얘기해 보자.”
그는 들어서자마자 모두를 불러 모았다. 팀원들은 유준철과 권지한에게 깍듯이 허리 숙여 인사하고는 앞쪽 의자에 앉았다. 시선에 호기심이 담겨 있었다. 박수빈 또한 호기심과 기대감 어린 눈으로 유준철을 바라봤다.
우리 윤서 씨는 유준철과 권지한에게 어떤 인상을 남겼을까.
“일단 경태, 네가 김진해 맡았지?”
“예.”
“어떤 사람이었어? 오늘 보니까 반발이 제일 심하던데.”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면이 있지만 근본은 좋은 사람입니다. A급 치유 스킬을 가진 것으로 확인됐고요. 10년 전에는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다는데 대던전 공략 3개월간의 알리바이는 찾지 못했습니다. 아시다시피 큰형이 리벤저 김서해 헌터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형제가 함께 대던전에 들어갔던 걸지도 모릅니다.”
“남궁심해랑 김서해는 둘 다 서채윤을 찾고 있다고 했지?”
“네, 서채윤 추적 중이라는 걸 공공연히 밝혀 왔는데 오히려 추적 방지를 위해 그런 척한 것일지도 모르죠. 그리고 다른 추적자들과 정보를 공유하면 추적을 피하기도 쉬웠을 테니까요.”
“정말로 공격 스킬이 없어?”
“1년 동안은 공격 스킬 사용하는 모습은 본 적 없습니다.”
“아무리 힐러라지만 그럴 수가 있나. 던전에 들어가면 김진해만 몬스터와 일대일로 맞닥뜨리는 상황을 만들어야겠어.”
“남궁심해가 보호하려 들지도 모릅니다.”
“남궁심해도 일대일 상황을 만들면 되지. 아니, 그냥 모든 후보를 일대일로 싸우게 하는 게 낫겠다.”
만약 정말 약한 이라면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되지만 유준철은 그럴 일은 없으리라고 확신하는 투였다.
“화심 전담은 누구지?”
“접니다.”
한명이 손을 들었다.
‘김진해 다음엔 화심인가.’
박수빈은 내심 실망했다. 우리 윤서 씨는 몇 번째로 이름이 거론되려나.
“화심은 존재감은 묵직한데 말이 없더라. 별 반응도 없고.”
“그래도 스킬은 확실합니다. 강력한 화염 스킬을 몇 번이나 사용했습니다. 절 구해 준 적도 있어요.”
“화심은 별거 없어.”
권지한이 툭 내뱉었다. 시선이 일제히 까만 머리의 어린 헌터에게 향했다.
“내 스킬로 확인했고, 진짜 약한 놈 맞아.”
“네 간파 스킬이 통하지 않을 만큼 강한 놈일 수도 있지 않냐.”
권지한이 코웃음을 쳤다.
“내 스킬이 통하지 않는 놈은 세상에 없어.”
권지한은 가볍게 내뱉었지만, 듣는 이들에겐 가볍지 않았다. 세상 막 사는 것처럼 보여도 권지한이 허튼 말은 하지 않는다는 걸 모두 알고 있었다.
“그래, 그럼 다음으로…. 홍의윤에 대해선 알 만큼 알고. 암향 박강 얘기해 보자.”
“박강 헌터는 대격변 때 각성한 대선배인데 10년 전 결혼하여 지금은 딸 하나 강아지 두 마리와 함께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사는 중입니다. 아, 부부의 러브 스토리가 정말 운명 같은데요. 어느 비 오는 날 C급 던전이 범람하여 몬스터들이 조용한 동네를 덮쳤을 때 위기에 처한 여인을….”
“됐어. 그런 건 안 궁금해.”
“…곁에서 지켜보니 가정에 대한 책임감과 사랑이 지극하더군요. 다른 것도 아닌 평생을 함께할 사람을 만났다면 10년 전에 갑자기 잠적한 것도 설명이 됩니다. 대인 공포증과 공황 장애도 앓고 있는데 이것도 대던전 트라우마일 수도 있습니다. 신경 안정제를 달고 살고 있죠.”
우리 윤서 씨도 신경 안정제는 달고 사는데.
박수빈은 윤서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는 게 조금 서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심되었다.
“윤서는?”
그때 권지한이 말했다.
“윤서는 누가 맡았어. 그 갈색 머리에 허여멀겋고 곱상하게 생긴 놈 말이야.”
“아.”
박수빈이 화들짝 놀라며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윤서 씨는 제가 마크했습니다.”
“윤서는 어떤 사람이야?”
박수빈은 아까 팀원들에게 얘기했던 걸 다시 말했다.
무심한 성격이다. 무덤덤하고, 누구한테건 무관심한데 또 의외로 정이 깊고, 취미도 많고, 은근히 장난기도 있다. 실드 트랩 설치할 때 항상 등급을 올려서 설치해 주는 선한 사람이다….
“누가 그런 거 물어봤어?”
“예?”
“강해?”
권지한이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회색 눈에 광채가 돌았다. 이미 확신하는 눈빛이었다.
“윤서라는 헌터, 강하지?”
“…….”
박수빈은 침을 삼켰다.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 윤서의 운명이 갈릴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