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160)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160)화(160/195)
#145
“이건….”
화심이 놀라서 두리번거렸다.
“몬스터들 죽이세요.”
윤서가 무심한 어투로 지시하고는 뚜벅뚜벅 걸어서 실드를 빠져나왔다. 화심도 얼른 따라오려고 했으나 투명한 벽에 막혀 나오지 못했다. 화심을 비롯한 리벤저들이 눈을 크게 떴다.
“이, 이건 <세이프존>….”
<세이프존>은 다른 보통 실드와는 달리 내부와 외부의 통행이 자유롭지 않았다. 오직 실드 사용자인 윤서만이 유유히 <세이프존>을 나왔다. 리벤저만이 아니라 몬스터들도 함께 갇혔기 때문에 리벤저들은 혼란 속에서도 일단 몬스터들과 전투해야 했다.
크아악!
<세이프존> 바깥에 남겨진 몬스터들이 윤서에게 달려들었다. 이것들은 윤서에게 있어서는 파리 새끼나 다름없었다. 윤서는 ‘존재하는 넋’으로 몬스터들을 도륙 내며 보스 몬스터에게 다가갔다. 보스 몬스터가 끄어어, 괴이한 소리를 내면서 점액질 덩어리를 뱉어 냈지만 윤서는 피하지 않았다.
윤서의 주위에 푸른 마력이 일렁거렸다.
한눈에 봐도 예사 움직임이 아니었다. 마치 대폭풍의 전조 현상처럼…. 점액질 덩어리는 일렁거리는 마력에 모조리 분해되었다.
스킬 <오르트의 구름>을 사용합니다.
<오르트의 구름> 사용자를 가이아 시스템이 보호합니다.
쿠구구구궁.
멀리서부터 거대한 무언가가 다가오는 소리가 낮은 천둥처럼 하늘을 울렸다.
마력이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마력이 10%가 되었습니다.
마력 고갈 상태에 돌입합니다.
마력이 7%가 되었습니다.
마력이 3%가 되었습니다.
마력이 0.4%가 되었습니다.
이제 곧 정신을 잃으니 대비하세요.
생명의 신이 당신에게 축복을 내립니다.
신의 가호로 마력이 회복됩니다.
죽음의 신이 당신에게 축복을 내립니다.
신의 가호로 마력이 회복됩니다.
관측자가 당신에게 축복을 내립니다.
신의 가호로 마력이 회복됩니다.
쿠궁, 쿠구궁!
윤서는 눈앞이 흐릿해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하늘에서 수천 개의 바위가 추락했다. 소행성과 유성들이었다. <메테오>와 비슷하지만 <메테오>와는 소행성의 수도, 위력도 차원이 다르다. <메테오>가 메가톤급의 소행성을 수십 개 떨어뜨린다면 이 스킬은 기가 톤급의 소행성을 수천 개 소환해 대지로 떨어뜨린다. 이 바위들은 크기도 크기지만, 각각 치명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어떤 것은 유황 덩어리, 어떤 것은 불덩어리, 어떤 것은 염산을 품고 있고, 어떤 것은 냉기를 뿜어내고….
끄어어-
물리적 공격이 통하지 않는 액체 덩어리라도 <오르트의 구름> 같은 압도적인 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보스 몬스터의 몸체에 바위가 박히고, 관통하고, 안에서 터져 나갔다. 보스 몬스터의 몸이 허물어지면서 점액질이 분수처럼 터졌다. 눈앞이 가물가물한 와중에 시스템 메시지가 여러 개 떴다. 언뜻 보스 몬스터를 처치했다는 메시지도 뜬 것도 같다.
마력 640/9999
관측자 덕분일까. 생각보다 남은 마력이 많았다. <오르트의 구름>의 소행성이 시전자는 피해 가므로 윤서는 안전했으나 <세이프존> 안의 사람들은 그러지 못했다.
<세이프존> 내구도 5/100
<오르트의 구름> 위력에 <세이프존>이 깨져 가고 있었고, 윤서는 당장 쓰러질 것 같은 와중에도 <염력>으로 <세이프존> 위에 떨어지는 유성들을 멀리로 날려 보냈다. 눈앞이 흐릿하고, 가슴이 답답했다.
뭐? 네 보호나 받고자 지원한 게 아니라고?
정의로운 약자는… 그냥 강자가 보호해 준다고 하면 닥치고 보호받으면 돼.
‘우리를 보호하지 마!’
‘실드 스킬을 사용하지 말고 공격해!’
정말 지긋지긋하다. 지들이 뭔데 보호하지 말라고 하는 거야.
권지한은 이 답답함을 알아 주겠지. 나중에 권지한한테 다 이를 것이다.
쿠궁, 콰앙, 콰광!
폭발하고, 터지고, 부서지고, 무너지고.
지축이 뒤흔들렸다. 늪을 더는 늪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엉망진창이 된 대지에서 혼자 <세이프존>을 보호하던 윤서는 쏟아지던 유성우가 잦아드는 걸 확인했다. 남은 마력은 3%였다.
‘아, 이제 아무도 안 죽겠지?’
윤서는 문득 저 뒤쪽에서 절벽이 무너지는 걸 발견했다. 산사태였다.
<오르트의 구름>으로 쏟아지는 소행성은 윤서에게 생채기 하나 만들지 못하지만, 절벽은 아니었다. 절벽에서 굴러떨어진 바위는 윤서의 머리를 으깰 것이고, 뿌리가 뽑힌 나무는 몸뚱이를 관통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윤서는 터벅터벅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력 고갈은 사람의 생의 의지를 꺾고, 비탄과 슬픔, 분노, 괴로움과 고통 말고는 모든 감정을 앗아간다. 미래에 대한 기대, 조금 더 살아가고 싶은 마음… 그런 희망찬 것들이 순식간에 사라지자 윤서는 그저 죽음만을 원하게 되었다.
콰과광!
무너지는 절벽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바위에서 떨어져나온 파편들이 윤서의 몸을 때렸다.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였다.
‘나는 형이 살았으면 좋겠어.’
‘오래오래 행복하게. 어떤 괴로움 없이, 삶의 즐거움을 실컷 누리면서….’
아무것도 남지 않았던 머릿속에 권지한의 목소리가 스치자 윤서의 걸음이 멈췄다. 마력 고갈의 지배하에서 흐렸던 머리가 순간적으로 갰다.
쏟아지는 바윗덩이들을 아슬아슬하게 앞에 둔 채 윤서가 눈을 깜빡였다.
날 보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사람이 있는데, 내가 죽으면 안 될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정말 잠깐이었다. 곧바로 다시 마력 고갈의 어두운 감정들이 몰려왔고, 죽고 싶다는 감정이 다른 생각과 감정들을 모조리 먹어치웠다.
그러나 암흑이 모든 감정을 지배하기 전, 그 찰나의 시간을 놓치지 않은 자가 있었다.
“안 돼. 멈춰라.”
‘어?’
윤서가 고개를 갸웃했다. 머릿속에서 낮은 음성이 들렸다.
“걸음을 멈추고 <세이프존>을 해제해라.”
이 목소리는 뭐지?
“서채윤.”
윤서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고… 절벽에서 떨어져 나온 돌무더기가 그의 머리카락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떨어졌다.
“차라리 기절시키는 게 낫겠군.”
낮은 목소리가 그렇게 말하며 혀를 찼다.
그리고 윤서의 정신이 마치 누군가 가위로 자른 듯이 뚝 끊겼다.
<세이프존>이 해제되고, 위태롭게 서 있던 윤서의 몸이 서서히 허물어졌다. 바닥과 부딪치기 직전 누군가 그를 끌어안았다.
남자는 윤서를 한 팔로 끌어안은 채 낙하하는 돌덩이들을 검으로 막아 냈다.
“형!”
곧 수재희의 <장산범>이 나타나 분노한 듯이 파편을 부쉈다.
“화심 형, 형 데리고 멀리 피하세요, 얼른!”
수재희의 외침에 윤서를 안고 있던 화심이 땅을 박차고 그 자리를 피했다. <장산범>이 그들에게 떨어지려는 바윗덩이들을 막았다.
안전지대까지 온 화심은 윤서를 난감하다는 얼굴로 내려다봤다.
“서채윤.”
흰 가면을 쓴 윤서는 미동도 없었다. 기절했기 때문에 깨어날 때까지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하아.”
화심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눈앞에는 반투명한 창이 빛나고 있었다.
스킬 <가이아의 마음>이 발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