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163)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163)화(163/195)
#147
“확인했어?”
“일단 내려가죠.”
권지한이 윤서를 단단히 안은 채 땅에 착지했다. 밑에서 기다리던 도등수가 물었다.
“보셨습니까?”
“허허벌판이던데요. 설마 대던전 지형이 10년 전과 달라진 거면.”
“아니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권지한 헌터가 다 부숴 버리기 전까지는 높게 솟은 산맥과 동굴이 있었으니까요. 윤서 씨가 얘기한 대로 어마어마한 규모라 한순간 아득해질 정도였습니다.”
“…….”
이 말은 즉….
윤서간 권지한에게 확인하듯이 물었다.
“지금 지형 하나를 벌판으로 만들었다는 뜻이에요?”
“응, 나 혼자.”
“혼자?”
“혼자.”
권지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랑하고 싶다면서도 조금도 자랑스러운 표정이 아니었다.
윤서는 권지한의 말은 전부 믿는다고 한 게 무색할 정도로 믿기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요? 그 높고 험한 산맥을 이렇게 깔끔하게 없애버렸다고요? 어떻게… 어떻게 이렇게 허허벌판으로…. <퀘이사>를 연속해서 사용했다고 해도 며칠 만에 허허벌판으로 만들 수 있는 면적이 아닌데….”
“솔직히 나도 기억 안 나. 내가 기억하는 건….”
권지한이 설명을 시작했다.
“늪지대에서 열심히 보스 몬스터 해치우고 바로 중앙 지역으로 합류해 보니 상황은 끝나 있고, 형이 여기저기 상처 난 상태로 쓰러져 있었어. 힐러들이 미친 듯이 치유 스킬을 퍼붓고 포션을 먹이는데 통할 리가 없지. 팔도 부러졌던 건 알아? 부목 대고 붕대 감고 존나 원시적인 방법으로 치료했어. 소꿉장난하는 줄 알았잖아.”
“…….”
“전신 골절상인데 형은 아프지도 않은지 새액새액 잘만 처자더라. 어이없고 짜증 나고 미치겠는 와중에 형이 어떻게 다쳤는지 설명을 들었어. 치료도 잘 안 되는 몸으로 무너지는 절벽에 터벅터벅 걸어갔다며? 그래. 마력 고갈이란 게 원래 그런 거지. 형 덕분에 중앙 지역 리벤저들은 생채기 말고는 별 다치지도 않았더라고. 잘했어. 서채윤 진짜 멋있네. 그런데 다들 형이 치유 내성이라는 걸 알아 버렸거든. 그래서 별로 형한테 고마워하진 않아. 치유 내성 있는 사람이 우릴 구해 주다가 다치면 씨발 나도 고맙긴커녕 열만 받지. 싸우려고 들어왔지 어마어마한 핸디캡이 있는 사람한테 보호받으려고 들어온 게 아니란 말이야.”
“…….”
“아무튼 잠든 형 보면서 너무 성질 뻗치고 화가 나서 미쳐 버릴 것 같은 거야. 막 이명까지 들리고 머릿속이 새빨개졌는데 그때 갑자기 시스템 메시지가 뜨더라고.”
권지한은 그 메시지를 짧게 설명했다.
특성 ‘광전사’가 생겼습니다.
분노의 신이 당신의 가호 신이 되었습니다.
분노의 신이 당신에게 인사합니다.
특성 ‘포식자’와 ‘광전사’가 서로 감응합니다.
스킬 <진화>가 발동합니다.
기존 스킬을 레벨 업 하거나 새로운 스킬을 입수할 수 있습니다.
선택해 주세요.
기존 스킬 레벨 업
새로운 스킬 입수
“나는 당연히 새로운 스킬 입수를 선택했고, 타이밍 맞춰서 마지막 보스 몬스터 죽고 세 번째 지형이 열렸어.”
“잠깐만요. 잠깐…. 광전사…. 광전사요? 분노의 신?”
“그게 중요해?”
그럼 그게 중요하지 뭐가 중요한데? 분노의 신보다는 그래도 죽음의 신이 낫지 않나? 죽음의 신은 뭐 했길래 순번을 빼앗겼대?
“그건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분노로 인해 미쳐 버릴 것 같던 내가 세 번째 지형이 열리자마자 혼자 바로 뛰어 들어갔다는 거지. 말 그대로 눈이 돌아갔단 말이야. 개난리를 치고 싶은데 이렇게 약한 사람들 모여 있는 곳에서 칠 수는 없잖아? 그래서 혼자 세 번째 지형 가서 지랄 발광을 하다가 정신 차려 보니까 허허벌판에 혼자 서 있더라고, 내가. 한참 후에 사람들이 와서 너 혼자 이렇게 만들었다고 덜덜 떨면서 말하던데. 그 와중에 보스 몬스터들도 죽였대. 다시 말하지만 나는 기억 안 나.”
“…….”
“설명 끝. 할 말은?”
윤서는 입을 다물었다. 당연히 새로운 스킬에 대해서 묻고 싶었다. 솔직히 당장 <인류 도감> 사용하고 싶은 걸 간신히 참고 있다.
그리고 그가 늘어놓은 소리들에 반론도 펼치고 싶었다.
전신 골절이 뭐? 어차피 S급 회복력으로는 며칠이면 뼈가 붙는다. 지금도 거의 다 나았다.
싸우려고 들어왔지 보호받으려고 들어온 게 아니라는 얘기를 할 때는, 그럼 죽음을 각오한 사람은 죽어도 되는 거냐고 쏘아붙이고 싶었다.
그리고 혼자서 세 번째 지형을 허허벌판으로 만들어 버린 건… 정말 경이적이고… 윤서가 너무나도 바랐던 일이었으나, 분노 때문에 기억이 휘발되어 버리는 건 좋지 않다. 이성을 잃고 싸우는 건 아군에게도 본인에게도 위험하다. 그 점을 잔소리하고 싶었지만 권지한도 다 알고 있을 얘기였다.
윤서는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수고했습니다. 고생했어요.”
“그거 말고.”
“참 잘했습니다.”
“다른 거.”
“멋있었겠네요.”
“으음, 살짝 부족한데.”
“그만하죠.”
“그래. 형 성격에 애썼어.”
권지한이 어깨를 으쓱했다. 칭찬 타임이 끝나고 윤서가 도등수를 바라봤다.
“새 스킬이 얼마나 위력이 큰지는 몰라도 이틀간 발광했을 정도면 쿨 타임 해소 포션을 꽤 많이 소진했겠군요.”
눈치 보던 도등수가 대답했다.
“권지한 헌터가 워낙… 눈 돌아가 있어서 쿨 타임 해소 포션을 조금 많이 소진하긴 했습니다. 그래도 이전 지형들에서 아낀 덕에 아직 21개가 남았으니 괜찮습니다. 마지막 지형 올 때까지 108개 소진이면 양호한 편이죠.”
쿨타임 해소 포션은 목표 수량을 초과해서 총 129개를 가지고 들어왔다. 남은 개수는 21개. 개수만 보면 빠듯하지만 마력 포션은 200개 이상 있고, 쿨 타임 해소 스킬을 가진 힐러들도 있어서 조바심 낼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덕분에 고난이 예상됐던 미로 지형을 이틀 만에 벗어났으니 싸게 먹힌 편이었다.
“다만 권지한 헌터의 새 스킬은 조금 아깝긴 합니다. 이젠 사용할 수가 없어서….”
“예?”
일회용 스킬 같은 거였나? 윤서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권지한이 설명했다.
“이거 쿨 타임이 누적되더라고. 처음엔 1분이었는데 지금은 1년이네. 쿨 타임 포션 먹으면 하루씩 줄더라.”
“대던전에서는 더는 못 쓴다는 얘기군요.”
권지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별로 아까워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사실 이 또한 미로 지형을 이틀 만에 벗어났다는 점을 생각하면 싸게 먹힌….
‘그래도 아까운데?’
윤서는 새 스킬을 실물로 볼 수 없다는 게 아쉬웠다.
“권지한 헌터, 프로필 봐도 됩니까?”
“형이라면 언제든. 나한테 묻지 않아도 되니까 보고 싶으면 언제든 봐.”
스킬 <인류 도감>을 사용합니다.
상대의 시스템 프로필을 열람합니다.
인류 도감 : 권지한, 22세, 남성
등급 : S급
(아이템 ‘어스름’ 사용으로 모든 공격 능력이 향상됩니다)
(스킬 <진화> 사용으로 가이아 시스템이 자동 성장합니다)
특성 : 포식자, 진화, 광전사, 선택된 자
(생명의 신의 가호를 받고 있습니다)
(파괴의 신의 가호를 받고 있습니다)
(분노의 신의 가호를 받고 있습니다)
(가이아의 가호를 받고 있습니다)
(가이아가 권지한을 주시합니다)
스킬 : <방황하는 별> S Lv 1/3, <타락한 영웅의 날개> S Lv 1/3
고유 스킬: <진화> S Lv 4/5, <명왕의 밤> S Lv 5/5, <골든 타임> A Lv 3/5, <갈증> B Lv 3/5, <유토피아> B Lv 2/5, <먹이사슬> A Lv 3/5, <퀘이사> B Lv 4/5, <포식자> S Lv 4/5, <혼돈의 은총> S lv 1/5,
(스킬 <포식자>가 한계에 다다르지 않았으므로 스킬이 개방되지 않습니다)
(스킬 <진화>의 한계에 다다르지 않았으므로 스킬이 개방되지 않습니다)
※ 가이아 스킬 : <가이아의 눈> L
그 외 정보를 볼 수 없습니다.
“죽음의 신이 당신한테 흥미를 보였는데 왜 가호 신이 되지 않은 걸까요.”
“글쎄. 모르지.”
죽음의 신이 ‘권지한’은 제 취향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역시 분노의 신한테 밀린 건 아닐까 싶지만 넘어가기로 했다.
“<혼돈의 은총>….”
“응. 그걸로 숲을 불태우고 <퀘이사>로 바윗덩이까지 날려 버린 것 같아. 기억은 안 나지만 내가 날뛸 때 새빨간 불길이 여기저기서 치솟았대. <퀘이사>보다 마력 소모가 덜해서 거길 쑥대밭으로 만들긴 충분했지.”
“<퀘이사>와 비교하면 위력은 어떻습니까?”
“한 방 위력은 약한데 연사가 가능하고, 화염 스킬이다 보니까 지속적인 대미지를 줘서 그건 괜찮더라고.”
“약하다니요…. 저희가 권지한 헌터를 따라갔으면 떼죽음당했을지도 모릅니다.”
도등수가 치를 떨듯이 얘기했다.
눈이 돌아간 권지한을 보고 위험을 감지한 리벤저는 후방에서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는데, 현명한 판단이었다.
“권지한 헌터, 축하합니다. 더 강해졌네요.”
윤서가 다시 한번 말하자 권지한이 입술을 뾰로통하게 내밀었다.
“더 강해지면 뭐 해. 형이 안 다쳐, 그럼? 마력 고갈도 없어지고 기절도 안 해? 치유 내성이 풀려? 아니잖아.”
윤서가 눈을 가늘게 떴다.
“아직도 화가 안 풀렸습니까.”
“그럼 그게 쉽게 풀리겠습니까. 그리고 형이 아니라 나한테 화가 난 거야.”
“일단 제가 마력 고갈에 돌입한 건 고의가 아니었습니다.”
“고의가 아니긴. 그냥 잡몹 죽이면서 우리 기다리면 되는 거였고. 여차하면 도망쳐도 됐고. 그러려고 비행 아이템도 존나 쌓아 뒀는데, 그걸 하나도 안 쓰고 보스를 직접 해치우려고 했는데 고의가 아니야? 절약 정신이 엄청나게 투철하네. 그 정신으로 자기 마력이나 아끼지 그랬어?”
“제가 마력 아꼈으면 지금쯤 수십 명은 죽었을 겁니다.”
“형 죽을 뻔했고 형이 죽었으면 대던전은 실패하고 수십억 명이 죽었을 거야.”
“과장하지 마세요. 그 덕분에 당신도 새 스킬 얻었잖아요.”
“그 덕분에? 지금 덕분이라고 말한 거야? 만약 나는 죽어 가고 있는데 그 상태에서 형이 새 스킬 얻으면 그것도 내 희생 덕분이라고 말하겠네? 아주 그냥 축포를 터뜨리겠어?”
“그 뜻이 아니잖아요.”
“그 뜻이 아니긴 뭘, 똑같은 말이지.”
그 빈정거림에 윤서는 화가 났지만 지금은 참아야 할 때라는 걸 알아서 대꾸하지 않았다.
아까 캠핑카에서는 대화하면서 좀 진정된 것 같았는데, 다시 그 상황을 떠올리니 화가 치솟는 모양이었다.
하긴 얼마나 화가 났으면 ‘광전사’라는 특성까지 생겼을까….
그래도 광전사는 역시 어감이 좋지 않다. 윤서는 권지한에게 ‘먼치킨’이라는 특성이 생겨도 좋지 않을까 싶었다. 왜냐하면 이렇게… 기절한 사이 상황이 나아져 있는 일은 처음 겪는 일이었으니까.
그동안 얼마나 바랐던가.
내가 눈을 뜨고 일어나면 이 고난이 끝난 뒤이기를.
제발 모든 게 해결된 후이기를.
그러나 상황은 언제나 그 반대였고 먼치킨은 존재하지 않았다.
바랐던 일이 그대로 이뤄진 건 정말 처음이었다. 권지한은 지금 화를 내고 있는데 윤서는 자꾸 미소가 나오려고 해서 일부러 입을 꾹 다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