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165)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165)화(165/195)
#149
‘권지한’이 스킬 <명왕의 밤>을 사용합니다.
당신에게는 효력이 없습니다.
“권지한, <명왕의 밤>은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오늘 모든 것을 밝힐 것이고, 너희의 질문에도 전부 답해 주기로 했다. 이미 들킨 일에 미련을 가질 필요는 없지.”
“아, 그래.”
권지한이 스킬을 해제했다.
화심은 스쿼트 하는 둘을 내버려 두고 테이블 앞에 앉았다.
“눈치챘겠지만, 나는 가이아 스킬 보유자다.”
“<가이아의 마음> 말이지. 그동안 왜 숨겼어?”
“귀찮은 일은 질색이라서.”
“이미 헌터로 활동하는 인간이 할 말은 아닌데.”
“거하게 날뛰고 싶지는 않았다. 조용하게 낮은 등급의 던전을 다니면서 아무도 지켜 주지 않는 하급 헌터들을 지켜 주고 싶었지.”
“…흐음, 과연.”
다리를 굽힌 자세의 권지한의 눈에 금빛 기운이 돌았다. <가이아의 눈>을 사용한 것이다. 잠시 후 권지한이 말했다.
“내가 처음 시스템 프로필을 봤을 때는 <가이아의 마음>으로 정신을 지배했던 건가?”
“아니다. 나를 C급으로 느끼게끔 하는 간단한 암시였지.”
“시스템 프로필을 속인 게 아니라 우리의 정신을 속였다는 뜻이군요.”
윤서가 151번째의 스쿼트를 하면서 말했다.
그 또한 <인류 도감>을 사용해 화심의 시스템 프로필을 읽고 있었다.
인류 도감 : 화심, 28세, 남성
등급 : S급
특성 : 은신, 낮은 것의 수호자, 선택된 자.
(태양의 신의 가호를 받고 있습니다)
(숲의 신의 가호를 받고 있습니다)
(잎사귀의 신의 가호를 받고 있습니다)
(흙의 신의 가호를 받고 있습니다)
(가이아의 가호를 받고 있습니다)
스킬 : <광합성> S, <녹색 갈증> A. <기생> A, <염화의 눈> A
고유 스킬 : <자연발화> S, <영원한 부활> S
※ 가이아 스킬 : <가이아의 마음> L
∗ 그 외 스테이터스를 확인하겠습니까?
체력 7901/8101
마력 2912/6000
가이아를 포함해 다섯 신에게서 가호를 받고 있는 선택된 자.
화심은 평범한 C급이 아니라 정말로 특별한 능력자였다.
“오들오들 떨면서 유언장을 썼던 건 연기였습니까?”
“아니다. 내 공격 스킬은 물이나 얼음 몬스터한테는 통하지도 않고, 마력 총량도 낮은 편이지. 항상 죽음을 각오하고 싸운 건 사실이다.”
“우리한테는 언제 밝힐 생각이었죠?”
“할 수 있다면 끝까지 숨기고 싶었지만… 대던전에 들어오기로 한 순간부터 내려놓긴 했다.”
“대던전에는 왜 자원했습니까?”
“<가이아의 마음>을 해제하기 위해서.”
해제하기 위해서라고? 윤서는 고개를 갸웃했다. 슬슬 허벅지도 저리고, 이제 진지한 얘기를 할 때라서 스쿼트는 그만두고 테이블 앞에 앉았다. 그러자 권지한도 기다렸다는 듯 옆으로 왔다.
삐융삐융.
햅쌀이는 여전히 스쿼트 중이었다.
“<가이아의 마음>은 언제 어떻게 얻었습니까? <가이아의 마음>으로 살펴봤을 때 아직 갤럭사이아의 잔당이 남아 있는지도 알려 주세요. 그리고 우린 도등수 부길드장을 비롯한 리더 그룹에 이 사실을 공유하고 싶은데 그래도 됩니까?”
“좋을대로 해라.”
화심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선, 갤럭사이아는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 동료가 갤럭사이아는 아닐지 의심하는 이들은 있지만. 그리고 기존의 사이비 교도들도 … 조심하지 않아도 될 것 같더군.”
“무슨 말입니까?”
“<텔레파시>로 읽었을 때 그들에게 심경의 변화가 있는 것 같았다. <가이아의 마음>으로는 간단한 독심술도 할 수 있거든.”
“…….”
“도등수 부길드장에게 공유해도 좋다. 이미 옐레나 이바노프와 수재희는 날 의심하고 있고. 또… 내가 <가이아의 마음>을 얻은 건 2년 전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각성하면서 얻었지.”
“2년 전, 언제.”
“가을쯤이었지.”
“10월?”
“그렇다.”
“내가 <가이아의 눈>을 얻었을 때와 비슷하네. 최대한 자세히 말해 봐.”
권지한과 화심이 가이아 스킬을 얻은 시기가 비슷하다는 얘기에 윤서도 정신을 차리고 집중했다.
“2년 전까지 나는 비각성자 군인이었고, 하급 헌터들과 함께 낮은 등급의 던전들을 처리하는 임무를 하고 있었다. 우리 부대와 함께 던전을 공략하는 이들은 모두 늙어서 각성한 이들이다. 가장 어린 자가 60세였어. 너희도 알고 있겠지만 노인 각성자는 어느 공격대에서나 기피 대상이야. 빠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되는 이들. 뭐 하나를 알려 주려고 해도 한 번으로는 안 되고 수십 번을 반복해야 겨우 습득할까 말까 한 사람들. 대체 어떤 길드에서 미쳤다고 그들을 영입하겠나? 그렇다고 헌터는 부족하고 던전은 많은 이 시국에 헌터들에게 교육을 맡길 수도 없는 일이지. 마침 세상엔 헌터들이 기피하는 F급 던전들도 널렸거든. 끝까지 공략을 맡겠다는 각성자가 없어서 곤란한 던전들 말이다. 정부에서는 노인 각성자들과 나 같은 군인들을 소집해서 공격대를 꾸리고 마감이 임박한 처치 곤란 던전들을 맡겼다.”
10년 전 대던전에도 각성자 수가 부족해서 용감한 비각성자들이 다수 들어갔었다.
각성자법이 생긴 이후에는 비각성자의 출입을 금지했으나 군인에 한해서는 허용하고 있다. F급 던전 중에는 군부대가 출동해서 현대 무기로 클리어하는 곳들이 많았다.
“당시 들어갔던 곳은 F급 옐로우 던전이었는데 지형이 생각보다 좋지 않았어. 깊이 수백 미터의 싱크 홀이 여기저기 예측 불가능하게 생겨나는 곳이었다. 공교롭게도 비행 스킬이나 비행 아이템을 가진 이가 없어서 빠지면 그대로 즉사할 수도 있었지. 세울 수 있는 공략은 속공이 전부였고, 우리 부대는 노인들을 후방에 두고 몬스터들과 싸웠다. 사실 노인들을 교육하며 전투해야 했지만 그럴 여유까지는 없었어.”
“…….”
“중반쯤 됐을까. 한 차례 전투를 끝내고 쉬고 있을 때 우리 아래의 땅이 허물어 가기 시작했지. 대부분 바르게 피했으나 한 명이 흙덩이와 함께 아래로 추락했다. 그 노인의 나이는 82세. 장애를 가진 자녀를 셋이나 혼자 돌보던 가장이었다. 각성자들 말로는 던전 진입 메시지의 인원수는 줄지 않았다더군. 그 노각성자가 기적처럼 생존해 있다는 뜻이야. F급이라도 각성자는 각성자였던지. 여기서 우리의 의견이 갈렸지. 어차피 힐러가 없는 상황에서 그 노인을 구해 봤자 죽을 것이다. 그래도 지금 현재 살아 있다면 구하는 게 맞다. 시신이라도 지구로 가져가야 하지 않은가. 그 시신을 회수하겠다고 우리가 시간 제한 초과로 전부 죽을 수 있다. 내려가다가 노인이 끝내 죽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화심의 이야기에 몰입한 권지한이 재촉했다.
“단 한 명만 남기고 모두 싱크 홀을 떠났다. 그곳에 남은 단 한 명은 로프로 몸을 묶고 330m의 싱크홀을 내려갔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어. 비각성자였기에 던전 진입 메시지의 인원수도 볼 수 없는 상황에서…. 다시 올라갈까. 이미 죽은 게 아닐까. 헛고생이 아닌가. 그냥 올라갈까? 동료들을 따라갈까? 내가 무슨 짓을 하는 걸까? 그런 생각만 잔뜩 하면서 몸을 움직이다 보니 어느새 바닥에 내려와 있더군. 그리고… 내려간 곳에서는 노인이 커다란 바위에 하반신이 깔린 채 피흘리며 고통받고 있었다. 그 바위 크기가… 이만했는데.”
화심이 캠핑카 전체를 가리켰다.
“나는 비각성자라서 들어 옮길 수가 없었어. 길드 메시지 같은 것도 보낼 수 없는 상황에서 노인의 손을 잡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지. 앞서간 이들에게 노인이 살아 있다고, 바위만 치우면 살 수 있다고 어떻게든 전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각성자에게는 이 바위쯤은 별거 아닐 테니 말이야.”
“…….”
“그때 노인이 말했다. 나를 두고 가라고. 이러다가 출구가 생기고 시간 내에 가지 못하면 함께 사라진다고. 자신은 여든둘이니 살 만큼 살았다고 했지. 나는 선택지가 많지 않았지만 노인을 버리는 선택만큼은 하고 싶지 않았어.”
“하나밖에 없는 선택지는 선택이라고 표현하지 않죠.”
윤서가 담담하게 말했다. 화심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든 바위를 움직이려고 헛짓거리를 할 때… 하얀빛이 눈앞에서 터져 나오더니 눈앞에 반투명한 창이 나타나더군.”
“…….”
“각성했음을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여러 개의 메시지가 뜨고… ‘선하고 정의로운 그대여’라고 말하던데. 그동안 여러 매체로 접한 각성 메시지와는 다른 내용에 특수한 스킬을 얻었다는 걸 직감했지.”
“…….”
“<가이아의 마음>은 그렇게 얻었다. 대답이 되었나.”
충분히 되었다.
윤서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가이아 시스템은 진짜 선량한 사람들한테 환장했구나.’
착한 사람만 각성하는 것도 그렇고….
각성했다가 인성이 비뚤어지는 사람도 있기에 ‘선택된 자’는 절대 그럴 일 없는 사람들로 모으는 것 같다.
‘나는 예외지만.’
<가이아의 마음>의 본래 소유자도 우직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한국말을 꽤 잘하는 외국인이었고 이름은 휴스와 휴지의 사이였는데 그냥 휴스라고 불렀다. 그는 서채윤에게 유언을 남기지 못하고 죽었다. 단번에 몸의 반이 잘린 채 즉사했다고 이강진으로부터 그저 전해 듣기만 했다.
“…….”
윤서가 약병을 꺼내자 권지한이 곧장 물병을 꺼내서 건넸고, 윤서는 자연스럽게 받아 마셨다.
약을 삼킨 후 윤서가 물었다.
“<가이아의 마음> 스킬 해제라는 건 무슨 뜻입니까?”
“이 스킬은 사람의 정신을 지배하고 조종하는 것까지 가능하다. 가이아 시스템은 이것을 상대에게 ‘스토리’를 부여한다고 말하더군.”
“스토리?”
“그래. 이 스토리는 총 세 개까지 부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서채…. 권지한, 너에게 ‘나는 <가이아의 눈>을 가지고 있지 않는 비각성자다.’라고 정신 지배를 하면 너는 그렇게 믿게 되고, 이렇게 스킬이 성공하면 내 슬롯 세 개 중 하나에 이 스토리가 저장된다. 스토리 이름은 내가 임의로 작성하지. ‘권지한 스토리’라고 이름 지으면 ‘권지한 스토리’가 되고, ‘가이아의 눈 스토리’라고 저장하면 ‘가이아의 눈 스토리’가 된다.”
“기분 나쁘네. 당장 걸어 봐. 내가 바로 방어한다.”
“…예를 들면 그렇다는 거다.”
윤서는 권지한이라면 <가이아의 마음> 정신 지배 정도는 진짜로 방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자신은 어떨까.
대던전에서 얻은 아이템 ‘루시퍼의 미소’로 저항 능력이 향상되어 S++급의 방어력을 가지고 있지만 <가이아의 마음>에 대항할 수 있다는 확신은 없다.
정말 무시무시한 능력이었다.
“그런데 지금으로서는 암시 말고는 걸 수 없다. 등급을 C급처럼 느끼게 한다든가, 존재감을 흐리게 한다든가 하는 것들이 고작이고 그마저도 잘 먹히지 않아.”
“알 것 같군요. 정신 지배 슬롯이 다 찼기 때문이라는 말이죠?”
“전부는 아니고. 세 개 중 두 개가 차 있었다. 내가 스킬을 얻을 때부터 이미 이 상태였지.”
화심이 윤서를 응시했다.
그 붉은 눈에 윤서는 불길하고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