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167)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167)화(167/195)
22. 그날의 진실
#150
스토리에 관한 건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기로 했다. 서채윤이 정신 지배 당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퍼지면 다들 불안해할 것이므로. 단 도등수와 알렉에게 신전 중반에서 잠깐 자리를 비울 거라고는 말해 놓았다.
신 리벤저는 오전 중에 야영지를 정리하고 신전 앞에 섰다. 진입하기 전 도등수가 바위 위에 올라 모두를 주목하게 하고, 대던전에 들어오기 전부터 연습했던 연설을 시작했다.
“오늘 우리가 들어갈 마지막 지형은 단 한번의 실수로 목숨을 앗아갈 함정이 도처에 깔려 있고, 사람의 몸에 알을 까는 몬스터가 등장하며, <오르트의 구름>, <퀘이사>, <상자 속의 고양이> 같은 강력한 스킬도 사용하지 못합니다. 10년 전에는 보스 몬스터 세 마리가 한꺼번에 등장했다고 하니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게 겁을 주고서는 이런 말을 했다.
“그러나 10년 전 리벤저는 우리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서도 성공했습니다. 인벤토리도 없고, 아이템도 부족하고, 포션도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 당시 열아홉 살이었던 이는 자고 일어나면 아사한 시체들이 널려 있었다고 회상했지요. 여러분이라면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차라리 편한 죽음을 택하지 않겠습니까? 그 유혹을 뿌리칠 수 있나요? 그럼에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편한 죽음을 뒤로하고 고단한 생존을 선택했고, 우리는 그들이 지나왔던 길 앞에 서 있습니다.”
“…….”
“지금까지 세 개의 지형을 공략하면서 여러분은 어떤 감정을 느꼈습니까? 결코 수월했다고는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모든 순간이 끔찍하고 힘들었지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년 전에 비하면 우리의 공략은 수월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단 한 명도 죽지 않았으며, 물자는 예상보다 넉넉하게 남았고, 우리는 승리에 대한 의지로 가득합니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이유는 10년 전에 1199명이 이곳에서 죽었고, 그 참상을 기억하고 우리에게 전해 준 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리벤저는 당시의 인류를 구했고, 현재의 우리도 구했습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이들은 아무도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그들에게 우리가 갚을 차례입니다. 모두 의기투합하여 마지막까지 한 명의 희생자 없이 공략을 해 나가도록 합시다!”
와아아-!
신 리벤저의 결의를 다지는 내용에 함성이 터져나왔다.
“흥, 석영이 우리의 대표라고 착각이라도 하는 모양이군.”
조만이는 콧방귀를 뀌었지만 그렇다고 도등수의 연설을 가로막는다거나 대형에서 이탈하지는 않았다.
식상하고 보여 주기식이라도 이런 연설이 필요할 때가 있는데 지금이 그때였다. 대형 길드의 부길드장인 그 역시 잘 알고 있었다.
다만 권지한과 윤서는 그 연설을 듣지 않았다. 이미 어떤 내용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멀리서 작은 새와 함께 도란도란 얘기를 나눴다.
“형, 내가 밤새 생각해 봤는데… <가이아의 마음> 이전 소유자가 휴스 사이로라고 했지?”
“네, 그가 마지막 소유자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관문 가기 전 죽었다면서.”
“그래서 이상하죠.”
“음….”
윤서가 권지한을 쳐다봤다.
권지한은 무언가 심각한 고민에 빠진 표정이었다.
“형, 봐 봐. <가이아의 눈>은 내가, <가이아의 대지>는 형이, <가이아의 마음>은 화심이 가지고 있어. 나머지 가이아 스킬은 이도민이 가졌던 <가이아의 꿈>, 이강진이 가졌던 <가이아의 그림자>이지.”
“맞습니다.”
“여기서 의문이 들어. 이강진은 <가이아의 그림자>로 <가이아의 눈>을 복사했다고 했잖아. 그럼 왜 <가이아의 마음>과 <가이아의 꿈>은 복사하지 않았을까?”
“…글쎄요.”
윤서는 그런 의문은 한 번도 갖지 않았다.
“만약 한 명한테서 하나만 복사할 수 있는 거면 <사건의 지평선>을 복사했으니 도민이 건 복사하지 못했겠죠. 그리고 복사 가능한 개수에 한계가 있었을지도 모르고.”
“개수에 한계는 있더라도 두 개일 것 같지는 않아.”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자신이 정신 지배 당하고 있었다는 걸 안 윤서는 이제 무슨 말을 들어도 충격받지 않을 것 같아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권지한은 윤서의 눈빛과 표정을 살핀 후 말했다.
“사실은… 복사했던 게 아닐까?”
“…….”
“사실은 휴스 사이로의 <가이아의 마음>을 복사하고, 형이 그 사실을 잊어버리게끔 한 게 아닐까.”
윤서가 눈을 깜박였다.
가장 처음 든 생각은 ‘뭐 하러?’였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도저히 그럴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윤서는 그대로 말했다.
“그럴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복사하면 복사했다고 말했지 숨길 이유가 없어요.”
“나도 이유는 모르겠는데…. 합리적으로 생각했을 때 <가이아의 그림자>라는 엄청난 스킬을 가졌으면서 다른 가이아 스킬을 복사하지 않았을 리가 없단 말이지. 어쩌면 형의 것도 복사했는지도 몰라. 복사해도 상대에게서 그 스킬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말이야…. …아.”
권지한은 말을 끝맺고 묘한 탄식을 하면서 얼굴을 찌푸렸다.
“나 지금 또 이상한 상상이 드는데.”
“뭡니까, 또.”
“가이아의 그림자…. 그림자란 말이지.”
“그게 왜요?”
“그림자라고 하면 보통 빼앗는 거지….”
“…….”
“게임, 영화, 소설 등 온갖 군데에서 사용되는 그림자 활용법은 카피가 아니라 스틸이야. ‘헌터 앤 스킬’ 보스 몬스터의 그림자 스킬도 결국엔 그림자 훔치기였어….”
“…….”
권지한이 말끝을 흐렸다.
윤서는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가이아의 그림자>.
그 스킬의 효과가 스킬 복사가 아니라 스킬을 훔치는 거라고?
순간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어떤 불길한 감각이 온몸을 관통한 것이다.
“우욱.”
윤서가 허리를 굽히자 권지한이 재빨리 부축하고, 멀리서 놀던 햅쌀이도 날아와 울었다.
“미안, 형. 그냥 내 생각이었어.”
“욱….”
“아, 씨. 미안…. 햅쌀아, 나 좀 부리로 쪼아 봐. 난 벌 받아야 해.”
햅쌀이는 권지한을 부리로 쪼는 대신 족제비로 변한 다음 발톱으로 손등을 할퀴었다. 물론 상처 하나 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