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168)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168)화(168/195)
#151
“내가 옛날부터 혼자 지낼 때가 많아서 그런가 상상력이 존나 풍부하거든. 이렇게 이상하게 엇나갈 때가 있어. 형한테 말하지 말걸. 내 말이라면 다 새겨듣는 거 아는데 방금 얘긴 흘려들어. 기억에서 잊어.”
권지한은 윤서가 진정할 때까지 등을 토닥이며 주절거렸다.
윤서는 대체 자신이 왜 이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단순히 ‘강진이 형이 날 속일 리가 없다’라는 생각 때문일까? 아니면 대체 무엇 때문에….
“잊어버려, 형. 내가 너무 섣부르게 추리했어.”
잠시 후 역겨운 느낌이 좀 가신 윤서가 쓰게 웃었다.
“이미 들었는데 뭘 잊으라는 겁니까. 나 기억력 좋은 거 몰라요? 10년 전 일도 하나 하나 다 기억한단 말입니다.”
“그랬지, 참….”
설마 하니 이 기억이 다 거짓인 건 아닐 것이다….
애써 그렇게 생각하는 그때 저쪽에서 수재희가 연설 끝났다며 손을 흔들고 외쳤다.
“일단 들어가서…. 들어가서 다시 얘기하죠.”
“그래.”
권지한은 윤서가 휘청거리지 않고 잘 걷는지 확인한 후 그를 따라갔다.
이제 마지막 지형을 공략할 시간.
잡념은 버려야 하는 걸 알면서도 둘의 머릿속은 여러 생각으로 복잡했다.
***
지금까지의 세 지형은 10년 전과 동일했는데, 마지막 지형만은 처음부터 10년 전과는 달랐다. 신전 지하 계단으로 내려가는 순간 모든 리벤저의 앞에 메시지가 떴다.
신전의 주인이 지배하는 영역에 들어왔습니다.
“신전의 주인?”
“보스 몬스터를 말하는 건가?”
공략법에 없었던 메시지에 리벤저가 웅성거렸다. 윤서는 일제히 저를 쳐다보는 시선들에 똑같이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그땐 이런 메시지가 없었습니다.”
“허어…. 예상치 못한 상황이 일어났군. 어떻게, 진입을 멈춰야 하나?”
그들은 계단 한가운데서 멈춰선 채 계속 내려갈지, 멈출지를 고민했는데 멈춰야 할 이유가 없었다. 지금은 단지 메시지 하나만 떴을 뿐이라 새로운 공략법을 세울 근거도 없었기 때문이다.
‘신전의 주인은 드래곤이겠지.’
윤서는 어쩌면 10년 전에도 떴어야 하는 메시지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보스 몬스터 세 마리 후 한 마리가 더 등장한다는 암시를 주기 위해 마련한 메시지가 시스템 업그레이드로 이제야 보이는 게 아닐까….
다행히 그 메시지를 제외하고는 모든 게 10년 전과 같았다.
신 리벤저는 함정을 피하며 계속 전진했다.
서채윤은 과거에 밟았던 함정만 알고, 모든 함정을 다 아는 게 아니어서 어쩔 수 없이 함정 장치를 밟을 때도 있었지만 크게 다치는 이는 없었다.
사이비 교도들을 신전 밖에 그들끼리만 둘 수 없어서 같이 데리고 왔는데, 다행히 그들도 방해하지 않았다.
그렇게 함정을 피하며 지하에 도착했다. 신전 지대는 지하 3층까지 있고, 3층에서 보스 몬스터 세 마리가 동시 등장하며 1층과 2층은 잡몹들이 나온다. 이 잡몹들 중에는 사람 몸에 알을 까서 뇌를 파먹고 신체를 조종하는 기생충들도 있어서 특별히 조심해야 했다.
사사사삭.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벌레들이 기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기생충들은 크기가 작은 것은 개미만 했고, 큰 것도 손가락만 했다. 크기가 작은 탓에 범위 스킬을 가진 이들은 뒤로 빠지고, 작은 범위 공격에 특화된 이들이 앞으로 나섰다.
‘박강’이 스킬 <청사초롱>을 사용합니다.
박강이 붉고 푸른 빛을 소환하자 그곳으로 기생충들이 모여들었다.
‘옐레나 이바노프’가 스킬 <라이트닝 볼트>를 사용합니다.
“흐아압!”
옐레나가 원드 없이 맨손으로 전기를 조종해 전부 지져 버렸다.
키엑!
크기는 작은 것들이 내뱉는 소리는 섬뜩할 정도로 컸다.
스킬 <스파크>를 사용합니다.
윤서 또한 넋에 전류를 휘감고 전방을 향해 크게 휘둘렀다. 파직, 파지직, 소리와 함께 새까맣게 모여들던 기생충들이 전멸했다. 그러나 그 자리를 빠르게 채우는 모습에 윤서는 과거엔 어떻게 여길 깼지? 하는 시답잖은 생각을 했다. 물론 이 순간 그런 생각을 한 이는 윤서뿐만은 아니었다.
윤서의 옆으로 붉은빛 장검을 든 남자가 스쳐 지나갔다.
‘권지한’이 스킬 <방황하는 별>을 사용합니다.
권지한의 검 끝에 붉은빛이 매달렸다. 과감하게 기생충 군집 한가운데로 뛰어든 권지한이 검을 바닥에 쾅! 내리꽂자 붉은빛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 붉은빛에 닿은 기생충들은 잠깐 혼란스러워하더니 바위에 몸통을 처박거나, 불꽃에 뛰어들거나 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었다.
죽음의 신이 ‘권지한’의 스킬을 칭찬합니다.
죽음의 신이 환호합니다.
권지한의 스킬은 <유토피아> 말고는 대개 이렇게 잔인했다.
‘남궁심해’가 스킬 <심연의 아우성>을 사용합니다.
콰아앙
벌레들을 헤치고 신전 벽에 붙은 남궁심해가 벽에 손을 대고 스킬을 사용하자 돌무더기가 사라지고 짙은 남색의 구형 공간이 생겼다.
끼히히히.
끼이이.
끼히히.
괴이한 웃음소리와 함께 그 공간에서 촉수가 뻗어 나와…. 아니, 하얗고 가느다랗고 아주 긴 손들이 뻗어 나와 벌레들을 한 움큼씩 쥐고는 공간 속으로 가지고 들어갔다. 아마 그 공간이 심연인 듯했다.
‘이정인’이 스킬 <꼭두각시 인형>을 사용합니다.
몬스터가 ‘이정인’의 명령을 따릅니다.
제한 시간 00:04:59
이정인은 능력 증대 아이템을 장착했는지 저번보다 효력 시간이 길었다.
다들 침착하게 싸우고 있어서 윤서는 안심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으악! 내 옷에 붙었어.”
“씨발, 내 피부에 파고들었어. 떨어져!”
‘김진해’가 스킬 <소생하는 봄>을 사용합니다.
그렇게 윤서의 걱정을 불러일으키던 이들은 김진해의 재빠른 치유 스킬로 다시 윤서를 안심시켰다.
‘임시 팀 멤버들이 괜히 뽑힌 게 아니었네.’
윤서는 동료들로부터 눈을 돌렸다. 그가 지켜볼 필요가 없었다.
윤서가 알렉에게 외쳤다.
“알렉, 불빛이 더 필요합니다!”
“알겠네.”
‘알렉 스위치가’ 스킬 <창작>을 사용합니다.
알렉이 <형광등>을 만들어서 높이 올려보냈다. 순식간에 환해진 신전에서 잠깐 눈을 찌푸렸다 뜬 윤서가 질린 얼굴을 했다. 벌레들이 너무 많아서 좌우에 정렬된 무너져가는 기둥과 벽, 바위와 천장까지 전부 새까맸다.
“으악, 징그러워.”
“씨발, 그냥 이거 불 끄면 안 돼요?”
“별 개소리하지 말고 싸워. 멍청아!”
“저 포션 좀요!”
“네가 꺼내서 처먹어라!”
헌터들이 이 와중에도 농담을 했다.
‘진짜 내가 지켜야 할 사람들이 아니구나.’
긴박한 상황에도 오가는 농담에 윤서는 그런 생각을 했다.
정말 10년 전과는 다르다.
그때 이런 농담이 오간 적이 있었던가? 전투가 끝나면야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기는 했지만… 전투 중에는 꿈도 꾸지 못했다.
이곳에서 많은 이가 죽었는데….
이제는 굶어 죽을 일도 없고…. 기생충에 당해 조종당하는 동료의 시체를 불태울 일도 없다….
그 어느 지형보다 이곳에서 더욱 감회가 새로웠다.
***
지하 1층에서의 첫 전투가 마무리되었다. 던전 맵을 확인하니 1층의 53%를 채웠고 내일 하루 더 반복하면 경계선이 사라져 2층으로 내려갈 수 있을 듯했다.
기생충이 몸속으로 들어간 이들이 몇 명 나오긴 했으나 힐러들의 빠른 처치로 장기를 파먹는 데에 그쳤다.
10년 전 신전 지하는 추운 곳이었는데 지금은 난로를 사방에 틀어 놔 훈훈한 공기가 감돌았다. 윤서는 무리의 바깥쪽에 자리 잡고 앉았다. 뜨끈한 난로 위에서 고양이로 변한 햅쌀이가 늘어져 있었다.
정신 지배나 <가이아의 그림자> 같은 걸 생각하면 머리가 복잡한데, 윤서는 지금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부상자는 총 31명이지만 충분히 휴식하면 나을 것이고.
사망자는 없다.
식량은 풍족하며 난로는 덥기까지 하다.
예전이라면 ‘그때에도 이랬다면’이라는 생각에 억울하고 원통하기만 했지 이렇게 미소 짓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윤서는 달랐다. 윤서는 웃으며 말했다.
“생각보다 수월하네요. 괜히 걱정했습니다.”
“뭐? 수월? 수월이라고 했어? 지금 이게-.”
팔목에 기생충이 들어가 박수빈에게서 치료받고 있던 홍의윤이 카악 소리를 질렀다. 박수빈이 홍의윤의 팔을 찰싹 때리며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홍의윤이 더 뭔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수재희가 얼른 홍의윤의 입을 가렸다.
“그, 그렇죠. 형. 수월했죠. 다행이에요.”
수재희가 어색하게 웃었다.
사실 그들은 전혀 수월하지 않았다…. 거의 죽기 직전까지 갔던 상황이 몇 번이나 있었고, 이러다 죽겠다 싶을 때 겨우 전투가 끝났다. 지하 2층과 3층은 더 힘들 걸 생각하면 막막했다. 대던전은 정말 상상 이상으로 힘든 곳이었다. 그러나 10년 전 그 열악한 상황에서 살아남은 이에겐 지금이 수월하게 느껴질 것이다.
“형, 밥 먹자.”
도등수에게서 식사를 받아 온 권지한이 윤서의 옆에 앉았다.
“아, 이거 김치 딱 알맞게 익었네요.”
“조금 시지 않아?”
“그런가. 제가 배가 고픈가 봐요.”
윤서는 김치볶음밥을 큼직하게 퍼먹으면서 ‘러브 인 한강’의 김치찌개를 먹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삐융.
햅쌀이한테도 조금 떠 주니 먹다가 퉤 뱉었다.
생명의 신이 먹고 싶다고 말합니다.
죽음의 신이 음식의 맛을 궁금해합니다.
가호 신은 음식을 먹을 수도 있는 걸까.
김치볶음밥 먹는 생명의 신과 죽음의 신을 상상했다. 의외로 죽음의 신은 잘 먹고, 생명의 신 잘 먹을 것 같지는 않다. 신맛이 난다고 뱉어 내지 않을까.
수재희와 홍의윤, 박수빈도 음식을 받아 와서 자리에 퍼질러 앉아 김치볶음밥을 먹기 시작했다. 사방에 밥과 김치 냄새가 풍겼다.
윤서는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바로 이 장소, 이곳.
이곳에서 정말 많은 사람이 굶어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