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17)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17)화(17/195)
#15
박수빈은 일단 알고 있는 한에서 사실을 얘기했다.
“1년간 몬스터와 전투한 적이 없어서 공격 스킬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마력 운용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과 굉장히 강한 방어 스킬을 가진 것만은 확실합니다.”
“보고서 넘겨.”
“예.”
박수빈이 권지한의 U패드로 그가 조사한 윤서의 보고서를 넘겼다. 권지한이 허공에 홀로그램을 띄웠다. 유준철은 권지한의 예사롭지 않은 행동에 불쑥 물었다.
“왜, 지한아. 윤서 헌터가 수상해? 서채윤 같아?”
“서채윤이라는 뜻은 아니야. 이 후보 중에선 제일 수상하다는 거지. 그 녀석 가호 신을 넷이나 가졌어.”
“가호 신 숫자는 헌터 등급과는 상관없어. 왜 F급인데 다섯 신이나 붙어서 가호해 주는 헌터도 있었잖냐. 윤서의 특성은 어땠는데?”
“‘그 특성’은 없었어.”
권지한이 팔짱을 끼고서 눈썹을 까딱 올렸다.
“그리고 이상한 게 또 있어. 난 <명왕의 밤> 사용 중이었기 때문에 스킬을 사용하면 알림이 온단 말이야. 다 날 보자마자 간파 스킬을 사용했다고 떴는데, 윤서만 간파 스킬을 썼다는 알림이 없었어.”
가만히 듣던 박수빈이 슬쩍 입을 열었다.
“윤서 씨가 남에게 무관심하고 무심한 성격이긴 합니다.”
박수빈의 변명 같은 발언에 권지한이 비웃었다.
“알림이 없었다는 거지, 사용하지 않았다는 게 아니야.”
“그럼….”
권지한이 입을 다물었다. 알지 않느냐는 시선이었다. 박수빈은 감전이라도 된 듯 온몸이 찌릿했다.
저 말은 즉, 권지한에게 들키지 않고 간파 스킬을 사용했다는 뜻이었다.
S급 헌터에게 들키지 않는다는 건 동급인 경우밖에 없었다.
“지한아, 너. 그 말은 윤서가….”
“그래. S급이라고.”
권지한이 쐐기를 박았다.
현재 활동하는 S급 헌터는 단 열다섯뿐이다. 10년 전에 비하면 두 배로 늘었지만, 던전은 세 배로 늘었기에 아직 적은 수치다. 윤서가 정말 S급이든, 서채윤이든 함부로 꺼냈다가는 세상이 뒤집힐지도 모르는 얘기였다. 무시할 수도, 섣불리 발표할 수도 없는 무시무시한 내용인 것이다.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없어.’
박수빈은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손바닥에 식은땀이 나서 옷자락을 문질렀다. 초조해진 그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다. 만약 그게 진짜면 자신이 A급이라는 사실을 윤서는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동안 묘하게 경계심이 심했던 모습들이 떠올랐다. 제 언행 하나하나에 고양이처럼 털을 세우던 모습들. 하지만 윤서는 평범한 이였다. 미인이라는 것과 무심하다는 것 말고는 평범하게 동료들과 어울리고, 상사 욕도 하고, 다양한 취미를 즐기는 평범한 사람. 오만하고 고고한 S급이 그렇게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건 불가능하다.
“윤서가 간파 스킬이 없을 수도 있지. 네가 가졌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건 아니야.”
유준철이 차분히 말하자 권지한이 눈썹을 찡그렸다.
“간파 스킬 없는 S급이 어디 있어. 하다못해 F급도 간파 아이템을 챙겨 다니는 마당에.”
“그러니까 S급 확실하냐고. 프로필에 S급이라고 정확하게 적혀 있는 거, 네 눈으로 봤어?”
“…….”
“프로필은 몇 등급이었어?”
권지한이 대답하고 싶지 않다는 듯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이럴 때는 어린 티가 났다.
“프로필 창엔 B급이었어.”
유준철이 그것 봐라, 하는 식으로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나 권지한은 도리어 눈썹을 들어 올리며 당당히 말했다.
“형, 내 간파 스킬이 뭔지 알지? 그건 모든 걸 보는 스킬이야.”
“알지.”
“그런데 내 간파 스킬로도 윤서의 시스템 프로필상 글자가 몇 군데 깨졌단 말이야.”
“…그건 확실히 이상하네.”
유준철이 미간을 모았다.
“지금까지 내가 스킬을 사용했을 때 제대로 읽지 못한 프로필은 S급들 빼고는 없었어. 이것만은 확실하니까 믿거나 말거나 알아서 해.”
권지한은 이제 더는 귀찮게 설명하지 않겠다는 듯 딱 잘라 말하고는 홀로그램 속 윤서의 사진을 클로즈업했다. 하얗고 작은 미인형의 얼굴, 새카만 머리에 갈색 눈은 묘하게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분명 학생으로 보일 만큼 동안이었으나, 산전수전 다 겪고 속세를 초탈해 버린 사람처럼 무심한 표정을 하고 있어서 스물아홉 살보다 더 많아 보이기도 했다.
윤서의 사진을 잡아먹을 것처럼 보던 권지한이 씨익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비리비리해 가지고 싸움 같은 건 못 하게 생겼는데 안쪽은 다르다 이거지.”
“야, 야.”
권지한이 만면으로 웃자 불길함을 느낀 유준철이 그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
“그렇게 웃지 좀 마. 네가 웃을 때마다 위가 아프다, 이놈아. 이 사람은 확인된 공격 스킬도 없고, 우리 네 싸움 상대가 아니라 서채윤 찾고 있는 거야.”
“알아. 잔소리 좀 그만해.”
“항상 기억하라고. 네 웃는 얼굴 보면 전혀 아는 것 같지 않아서 그래.”
“겸사겸사 싸우면 좋잖아.”
“뭐가 좋아, 뭐가. 이 자식은 싸움광 신의 가호라도 받나.”
유준철의 한탄은 진심이었으나 다른 길드원들은 재미난 농담이라도 들은 듯 미소를 그렸다. 박수빈만 제외하고.
사실 석영 헌터들은 유준철, 권지한을 크게 어려워하지 않았다. 유준철은 본래 부하 직원들을 편하게 해 주는 스타일이고, 권지한은 약한 사람들한테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권지한을 처음 본 사람들은 ‘싸움광에다가 사납고 까칠하다고 소문난 저 S급 헌터가 갑자기 싸움을 걸어 오면 어쩌지?’ 하며 걱정하지만 곧 그런 걱정은 필요 없는 것임을 깨닫는다. 그는 약자는 싸움 상대로는 전혀 생각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석영의 길드원들은 건물 내에서 권지한을 마주치면 피하지도 않고, 오히려 인사말을 건네기도 했다. 반면 최근 석영에 영입된 S급 헌터 리오 델리는 멀리서 권지한 머리털 끝자락만 보여도 위통을 호소하며 도망간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지한아, 화심 프로필은 어땠어? 안 가려지고 잘 보였어?”
“별거 없다고 몇 번을 말해. 화염 스킬도 없는 데다가 C급이었어. 가호하는 신도 하나였고.”
“그거 정말 수상하네.”
유준철이 턱을 쓸었다. 화심을 전담했던 길드원이 재빨리 말했다.
“저는 분명히 화심이 화염 스킬을 사용하는 걸 제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그래, 화심은 내가 봐도 C급 분위기는 아니었어. 난 윤서보다는 화심 쪽이 더 수상하다. 권지한 네 간파 스킬이 아예 통하지 않는 걸지도 모르잖아.”
“좋을 대로 생각해. 아무튼 난 화심이랑은 싸울 마음 안 들어.”
권지한은 자기 얘기는 다 끝났다는 듯 긴 다리를 꼬고 소파 등받이에 몸을 묻었다. 그러면서도 윤서의 보고서는 앞에 띄운 채였다.
화제는 금방 화심 쪽으로 전환되었지만 권지한만은 윤서 보고서만 살피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 명, 박수빈도.
그는 윤서가 서채윤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으나, 윤서가 정말 S급일까 봐, 그래서 자신이 몰래 뒷조사했다는 걸 알고 있었을까 봐 불안했다.
관찰 대상이 서채윤 후보라는 이야기를 듣고서 기대하는 마음으로 갔다가 마주한 사람은, 다양한 취미를 가졌다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사는 게 지루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박수빈은 솔직한 마음으로… 윤서와 멀어지고 싶지 않았다. 그가 윤서에게 갖는 감정은 사람 대 사람으로서의 관심과 호감 그 이상이었다.
박수빈은 회의 참여는 뒷전인 권지한에게 물었다.
“그럼 권지한 헌터는 윤서 씨가 가장 가능성 있는 후보라고 보십니까?”
권지한은 간단한 사칙 연산을 질문받은 것처럼 가볍게 대답했다.
“응, 걔가 제일 싸울 만해.”
“…….”
우리 윤서 씨 어떡하지? 위험한 사람에게 관심을 받아 버렸는데.
아무래도 길드장에게 말해 권지한에게 싸움 상대가 아니라 서채윤을 찾는 중임을 다시 한번 주지시켜야 할 것 같았다.
***
‘으…….’
윤서는 갑작스러운 한기에 몸을 떨었다.
그는 해야 할 게 아주 많아서, 정확히는 들어줄 유언이 너무 많아서 퇴근하고 나면 더 바빴다. 운동도 해야 하고, 그림도 그려야 하고, 피아노도 쳐야 하고, 쿠키도 구워야 하며, 저녁 식사도 반드시 챙겨 먹어야 했다.
오늘 선택한 숙제는 색칠 공부였다. 어린이용 색칠 공부 책 991권째. 유언이 1,000권이었으니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설레야 마땅하나 오늘은 집중이 안 됐다.
한 장 색칠한 후 도저히 집중이 안 되어 드라마나 보자는 마음으로 TV 앞에 앉았지만, 화면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윤서는 결국 모든 걸 포기하고 소파에 길게 누웠다.
권지한의 시스템 프로필은 윤서가 본 프로필 중 가장 무시무시했다.
인류 도감 : 권지한, 22세, 남성
등급 : S급
(아이템 ‘어스름’ 사용으로 모든 공격 능력이 향상됩니다)
(스킬 <진화> 사용으로 가이아 시스템이 자동 성장합니다)
특성 : 포식자, 진화, 선택된 자.
(생명의 신의 가호를 받고 있습니다)
(파괴의 신의 가호를 받고 있습니다)
(가이아의 가호를 받고 있습니다)
(가이아가 권지한을 주시합니다)
스킬 : <방황하는 별> A Lv 2/3, <타락한 영웅의 날개> A Lv 3/3
고유 스킬: <진화> S Lv 4/5, <명왕의 밤> S Lv 4/5, <골든 타임> A Lv 2/5, <갈증> B Lv 2/5, <유토피아> B Lv 1/5, <먹이사슬> A Lv 2/5, <퀘이사> B Lv 1/5, <포식자> S Lv 4/5,
(스킬 <포식자>가 한계에 다다르지 않았으므로 스킬이 개방되지 않습니다)
(스킬 <진화>의 한계에 다다르지 않았으므로 스킬이 개방되지 않습니다)
※ 가이아 스킬 : <가이아의 눈> L
※ 그 외 정보를 볼 수 없습니다.
‘내가 본 프로필이 전부는 아닐 거야.’
<인류 도감>으로 상대의 프로필을 보면 ‘그 외 스테이터스는 던전에서만 열람 가능합니다’라는 문구가 뜬다. 그런데 권지한에게는 ‘그 외 정보를 볼 수 없습니다’라는 문구가 떴다. 무언가 방어 스킬이나 아이템을 가진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이 프로필도 속인 것일 가능성이 있다. 어떤 방어 스킬인지 몰라서 <거짓 기억>도 사용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