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171)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171)화(171/195)
#154
“으아아악!”
“이도민!”
“미, 미쳤어!”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설마 이렇게 망설임 없이 동료를 죽일 줄은.
용암 지대와 늪지대를 헤쳐 나온 이가 허무하게 죽어 버렸다.
이 어린애는 완전히 미쳐 버렸다. 누구보다 가장 필요한 존재가…. 가장 필요한 스킬을 가진 존재가 동료를 살해해 버릴 정도로 미쳐 버린 것이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격렬한 전투가 이어졌다.
본래 S급과 그 미만 등급들의 싸움은 전투라고 불러 주기도 민망할 정도로 격차가 크지만, 현재 이도민은 마력이 40% 이하였고 제정신도 아니기에 힐러들의 지원을 받으면 해 볼 만했다.
그러나 이도민은 그들을 죽이려고 하고, 그들은 이도민을 생포하려고 하다 보니 싸움은 점차 그들에게 불리한 양상이 되었다.
“끄으억!”
한 명이 이도민에게 가슴이 뚫린 채 울컥 피를 토했다.
간신히 목숨은 붙였나 싶었으나 그는 바로 이도민에게 머리가 잘려 죽었다.
“안 돼!”
그와 연인 관계였던 헌터가 비명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이도민이 곧바로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고, 그런 그를 이강진이 간신히 막아 냈다. 이강진의 검에 튕겨 나간 이도민이 즉시 다른 리벤저를 향해 달려들었다.
“젠장….”
이강진의 눈앞이 흐려졌다. 눈물이 막을 새도 없이 뚝뚝 뚫어졌다. 이도민을 죽일 각오로 싸운다면 어떻게든 이길 수 있을 것이다. 그에게는 최후의 한 수가 있으니까.
그러나 어떻게 그런단 말인가?
이도민을 죽이면 더는 시간을 멈추지 못한다, 라는 사실을 제쳐 두고서라도.
‘형, 저 배고픈데 고기 조금만 더 주세요.’
‘아, 채윤이 좀 놀리지 마세요. 형.’
‘이것 좀 먹을래요? 아까 저기서 채윤이랑 딴 열매예요.’
‘던전 나가면 당분간 놀기만 할 거예요. 드라마 재탕하면서 푹 쉬어야지. 형들도 나가면 ‘러브 인 한강’ 꼭 보세요. 알았죠?’
‘저는 드라마라도 보지만 우리 채윤이는 취미가 없어서 걱정이에요. 형들이랑 누나들 취미는 뭐예요? 채윤이한테 영업 좀 해 봐요.’
발랄한 목소리가 그들의 귀속으로 선명하게 침투했다.
젠장. 젠장, 젠장…!
이강진은 끊임없이 욕을 내뱉었다.
‘강진이 형. 나, 형이랑 같이 던전에 들어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형을 알게 돼서 다행이야.’
‘아. 채윤이가 너 가끔 감수성이 넘친다고 하는 이유를 알겠어.’
‘그래서 형은 내가 싫어?’
‘당연히 좋지. 이곳은 힘들어도 네놈 덕분에 버티고 있다. 자식아.’
‘리더 일이 그렇게 힘들면 다른 사람한테 넘겨. 라 누나나.’
‘처음부터 내가 시작했으니 내가 끝까지 맡아야지.’
‘형은 역시 멋있는 사람이야.’
‘네가 더 멋있어.’
‘좋아. 그 말을 원했어.’
“이도민!”
이강진이 이지를 잃어버린 이의 이름을 불렀다. 이도민이 초점이 없는 눈으로 그를 돌아봤다.
이 녀석을 어떻게 죽여?
여기서 동료들을 다 잃더라도 나는 절대 이도민을 죽일 수 없어.
나만은 이 녀석을 절대로….
“이게 무슨…?”
순간 이강진의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경악 어린 그 목소리의 주인은 서채윤이었다. 이강진이 재빨리 뒤를 돌아봤다. <가이아의 대지>로 이곳에 도착한 서채윤이 참혹한 현장을 둘러보면서 욕을 하고 있었다.
“채윤아.”
이도민이 부드럽게 서채윤의 이름을 불렀다.
“이도민? 대체…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그래. 친구로서 너를 가장 먼저 평화롭게 해 줬어야 했는데.”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너에겐 항상 미안해.”
“야.”
“꼭 같이 나가서 드라마를 보고 싶었는데….”
이도민이 이강진의 옆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이도민의 손에 지금까지 몬스터를 무수히 죽였던 검붉은 구체가 생겨있는 걸 확인한 서채윤이 멍청한 얼굴로 친구를 쳐다봤다. 방어할 자세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두 손은 늘어뜨린 채였다.
아, 아.
이강진은 입술을 뻐끔거렸다.
이건 안 된다. 이도민이 서채윤을 죽이게 두는 것만은.
이것만은 절대로 안 된다.
이강진은 지금까지 숨겼던 스킬을 꺼냈다.
스킬 <가이아의 그림자>를 사용합니다.
상대의 스킬을 빼앗겠습니까?
이강진의 그림자에서 뻗어 나온 검은 그림자가 이도민을 덮쳤다.
검붉은 구체가 순식간에 소멸하고, 이도민은 그대로 절명하여 바닥에 엎어졌다. 서채윤은 본인이 죽을 뻔한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도민에게 달려갔다.
이강진은 그 자리에 선 채 움직이지 않았다.
지금까지 <가이아의 그림자>라는 스킬을 리벤저에게 숨긴 이유가 있었다.
이것은 스킬을 빼앗는 스킬로… 스킬을 빼앗긴 사람은 죽는다.
“대체, 대체 무슨 일이야? 이게 다….”
서채윤이 이도민을 끌어안은 채 이강진을 올려다봤다. 설명을 요구하는 서채윤에게 휴스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이도민이 미쳐서 우리를 공격했다고.
저 둘이 이도민에게 당했다고.
서채윤의 시선이 잔인하게 죽은 동료 두 명에게 향했다. 그중 한 명의 연인이 잘린 머리를 안고서 오열하고 있었다. 서채윤이 입술을 깨물었다.
“채윤아. …시신을 묻자.”
“아…. 응, 그래…. 묻어 줘야지. 구덩이를 두 개 파서.”
“아니…. 도민이까지.”
그제야 서채윤은 제 품의 이도민이 숨을 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강진은 굳어 버린 서채윤에게 다가가 이도민의 앞에 꿇어앉았다.
스킬 <가이아의 그림자>를 사용합니다.
상대의 스킬을 빼앗겠습니까?
<사건의 지평선> 스킬 획득을 축하합니다.
특성 ‘시간의 조종자’를 얻었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스킬을 획득한 이강진이 홀로 구덩이를 파기 시작하자 다른 이들도 다가와 도왔다. 연인을 잃은 이까지 와서 울면서 흙을 팠으나 서채윤은 아니었다. 서채윤은 엉금엉금 다시 이도민에게 다가가 몸을 흔들었다.
“도민아…. 야, 일어나 봐.”
“…….”
“이도민. 뭐 해. 얼른 일어나…. 널 묻으려고 하잖아.”
“…….”
“도민아…. 아니잖아. 너….”
마침내 구덩이를 모두 파고 이도민에게 죽은 시신 두 구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서채윤에게 다가가자 눈물로 범벅이 된 하얀 얼굴이 보였다.
“채윤아.”
“꼭 죽였어야 했어?”
“…….”
이강진은 서채윤이 고함을 지르거나 분노하는 게 아니라 너무 담담하고 차분하게 물어와서 더욱 마음이 아팠다.
서채윤은 괴로운 얼굴로 이어서 말했다.
“안 죽여도 됐잖아. 그냥 제압하기만 했어도. 다시 괜찮아질 수 있었을….”
“이렇게 했어야만 했어.”
“…….”
“이러지 않으면 도민이가 제정신으로 돌아올 때까지 힘든 싸움을 해야 했어. 그 도중에 많은 이가 죽었을 거고. 그러면 이 공략도 실패했을 거야. 밖에는 수십억 명의 사람이 있어. 우리는 그들을 지켜야 해. 그게 정의야…. 도민이도 이것을 바랐을 거야. 도민이는 숭고한 희생을 한 거야, 채윤아.”
이강진은 멍한 서채윤에게서 이도민을 빼앗았다.
스킬을 훔쳐서 목숨을 빼앗고.
친구를 잃은 이에게서 친구의 시신을 빼앗고.
‘나는 모든 걸 빼앗기만 하는구나.’
제대로 먹지 못해서 삐쩍 마른 몸이 흙 속에 덮였다. 시체 위에 흙을 뿌리는 손들 또한 뼈의 윤곽이 드러날 정도로 말랐다. 영양이 부족하다 보니 손톱은 다 까져 있었고 군데군데 붉은 멍이 생겨 있었다.
무덤을 메우고 나서 이강진이 휴스를 불렀다. 그는 멍한 얼굴로 주저앉은 서채윤을 가리켰다.
“채윤이는 이 상황을 견디지 못할 겁니다.”
“알겠다. 이해했다. 기억을 조작하겠다. 그런데 앞으로 시간은 어떻게 할 셈이지?”
“제가 <가이아의 그림자>로 <사건의 지평선>을….”
이강진은 잠시 머뭇거린 후 말했다.
“복사했습니다.”
“스킬 복사? 그런 스킬이 있었나? 잠깐, 그것도 가이아 스킬인가? 왜 말하지 않았나?”
“죽은 사람의 스킬만 복사할 수 있어서 혹시 저를 경계할까 봐….”
이강진은 생각에 잠겼다. 서채윤은 똑똑하다.
서채윤은 이강진으로부터 뻗어 나온 그림자가 이도민을 덮치자, 검붉은 구체가 순식간에 소멸하고, 이도민이 절명하는 것을 목격했다. 이 정도 흐름이면 <가이아의 그림자>가 사실은 복사가 아니라 빼앗는 스킬이란 것도, 적용된 순간 목숨까지 앗아 간다는 것도 눈치챌 것이다. 이강진은 최선의 방법을 선택했다.
“우선 채윤이의 기억부터 지우죠. 아예 이곳에 오지 않았던 걸로 하고. 가이아 스킬에 관한 것도 리셋하는 게 좋겠군요. 아직 공유하지 않았던 걸로 합시다….”
그래야 앞뒤를 맞출 수 있다.
다행히 휴스는 거절하지 않았다.
휴스가 서채윤의 정신을 조작하는 동안 이강진은 다른 이들에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설명했다. 다들 서채윤을 속이는 것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충분한 설명 후에야 이강진은 쓰러지듯이 바위에 걸터앉았다.
그는 새카만 하늘을 올려다 봤다.
‘강진이 형. 형을 알게 돼서 다행이야.’
나도 그래. 도민아.
나는 이렇게 해야만 했어.
이게 네가 바랐던 일이잖아….
들을 상대가 없는 이강진의 혼잣말이 허공에 흩어졌다.
***
“아….”
엄청난 현기증에 윤서가 신음을 내뱉었다.
“형, 괜찮아?”
권지한이 바로 그의 어깨를 붙잡아왔다.
모든 기억이 돌아온 윤서는 눈을 감은 채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그래, 그랬던 거였어.
‘숭고한 희생? 정의로부터 눈 돌리지 않은 대가가 이것인가?’
‘이런 게 정의라면 난 더는 정의롭게 살지 않겠어.’
도민이의 죽음에 대해 누군가 말을 할 때마다 들던 정의에 대한 증오의 정체는 이것이었다.
기억은 잃었으나 이따위 정의는 버리겠다는 다짐과 죽어야 한다는 결심만은 남은 것이다.
생명의 신이 당신을 염려합니다.
죽음의 신이 자살할 거라면 환영한다고 말합니다.
생명의 신이 죽음의 신을 비난합니다.
생명의 신이 농담할 상황이 아니라며 죽음의 신을 노려봅니다.
신들의 로그는 눈을 감았을 때도 떠오른다. 윤서는 자살할 생각 따위는 없다고 속으로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