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172)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172)화(172/195)
#155
10년이 흐른 지금은 이강진이 어떤 마음으로 그런 말을 내뱉었는지 이해한다.
이도민은 죽었어야 했고… 이강진은 이도민을 죽였어야 했다.
누구보다 그를 잘 따른 동생이었다. 방금 제 손으로 이도민을 죽인 상황에서 무덤을 만들고 차후의 계획을 세우는 심정은 얼마나 괴로웠을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다만….
이강진도 몰랐던 것이 하나 있었다.
‘이도민. 뭐 해. 얼른 일어나…. 널 묻으려고 하잖아.’
‘도민아…. 아니잖아. 너….’
당시 윤서가 이도민의 시신을 흔들면서 일어나라고 한 이유는 그저 충격과 패닉에 빠져서가 아니었다.
<가이아의 꿈>.
이도민이 가진 가이아 스킬을 두 사람은 여러 방면으로 연구했다. 몬스터에게도 사용하고, 본인에게도 사용해 보고, 아이템에도 사용해 봤다.
그러나 아무리 사용해도 발동하지도 않아 포기했었는데.
가이아 시스템의 숨겨진 비밀이 등장했습니다.
스킬 <관측자의 검>이 발동합니다.
<관측자의 검>이 꿈에 잠긴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이도민’ – <가이아의 꿈> 발동 중
꿈에서 깨어나기까지 : 2400시간
윤서의 앞에 그런 메시지가 떴던 것이다.
<관측자의 검>이 처음 발동했던 건 검은 포탈을 발견했을 때가 아니었고 바로 이때였다.
그때 윤서는 <가이아의 꿈>의 능력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사용자를 살아 있으나 죽어 있는 상태에 빠지게 하는 것. 너무나 완벽하게 죽은 것 같아 던전 진입 메시지의 인원수마저 속일 정도지만 사실은 꿈을 꾸며 가사 상태로 살아 있었던 것이다.
또 한 번의 목숨이나 마찬가지였다.
윤서는 그때 이도민을 적극적으로 깨우지도 못했고, <관측자의 검>으로 본 사실에 대해 말하지도 않았다. 이강진에게 이 사실을 밝히면 이번에야말로 도민이를 죽일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말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윤서가 망설이는 사이 이강진과 휴스는 윤서의 기억을 조작해 버렸다.
그 결과 이도민은… 리벤저가 미로 지대를 벗어나 신전 지대를 클리어하고 마지막 드래곤까지 처치했을 때도…. 검은 포탈이 닫히고 출구로 모두가 나갈 때도.
그 흙구덩이 속에서 꿈을 꾸며 자게 되었다.
그렇게 내버려 둔 채 대던전이 닫혔다.
윤서는 그게 자신 탓으로 느껴졌다. 아마 윤서의 무의식도 그렇게 생각했던 건지, 친구를 죽게 했으니 더는 살 자격이 없다고 죽어야 하는 이유를 만들었던 것 같다.
‘저는 살아갈 자격이 없습니다.’
죽으려는 이유를 생각해봤을 때, ‘대던전에서 겪은 끔찍한 일들 때문’이라고만은 말할 수 없었던 묘한 껄끄러움의 정체가 이것이었던 것이다.
친구를 대던전에 갇힌 채 내버려 두었다는 죄책감.
“형.”
삐유.
권지한과 햅쌀이가 번갈아서 윤서를 불렀다. 윤서는 눈을 떴다. 권지한의 얼굴이 바로 눈앞에 있었는데 얼마나 걱정이 가득 담겨 있는지 윤서는 제가 죽기라도 한 줄 알았다. 그 정수리 위의 햅쌀이는 조그만 머리를 갸웃갸웃하면서 제 주인을 살피고 있었다.
삐융. 삐이. 삐융삐융.
“약은 안 먹어도 되겠어? 약을 많이 먹는 것도 안 좋지만 먹어야 할 때 안 먹으면 더 안 좋아.”
삐이삐이. 삐유우.
“혹시 꺼낼 힘이 없어? 앞주머니에 있지? 내가 꺼내 줄까? 다른 건 안 건드리고 딱 그것만 꺼낼게.”
둘이서 번갈아 짹짹거리자 화심이 질린 얼굴로 조금 떨어졌다. 윤서가 화심에게 물었다.
“혹시 당신에게도 ‘기억’이 보였습니까?”
“…그래. 나도 스킬 사용자에게 기억이 보이는 줄은 몰랐다. 그리고 이전 사용자의 심리 흐름까지 흘러 들어올 줄도.”
화심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러고 보니 윤서는 휴스 사이로가 아니라 이강진의 입장에서 기억을 봤다. 이 말은 즉 이강진이 휴스 사이로의 <가이아의 마음>을 빼앗았다는 뜻이다. 아마도 죽은 휴스의 스킬을 빼앗아 와서 다시 손댄 것이리라.
“형, 약 먹어. 최대한 약에 의존하지 않는 게 좋지만, 제때 먹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대.”
기억을 못 본 권지한은 분명 궁금할 텐데도 모든 질문은 뒤로하고 일단 윤서 걱정부터 하고 있었다.
윤서는 물과 함께 약을 삼켰다. 그는 이 진실을 숨길 생각이 없었다.
그럴 이유가 없었으니까.
대던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든 이가 알아야만 했다.
그것이 그들의 희생을 기리는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