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174)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174)화(174/195)
#156
그럼에도 기적을 바라며 잠들었다가 눈을 떠 보니.
비극적인 현실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을 때 그 기분은 어땠을지 윤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현재 인원 : 301명
인간으로 살길 포기했어도 던전 시스템에서 굳이 한 명이 더 표시된 건… 눈치채 달라는 뜻이 아닐까.
이도민의 자아가 아직 남아 있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윤서는 왠지 저 301이라는 숫자가 이도민의 비명인 것 같아서 참담하고 괴로웠다.
생명의 신이 당신에게 약을 먹으라고 말합니다.
윤서가 손을 떨기 시작하자 생명의 신이 염려해 왔다. 정말 상냥한 신이다.
“형, 너무 힘들어하지 마.”
권지한이 윤서의 손등을 제 손으로 덮었다.
“솔직히 나라도 존나 힘들 거라서 뭐라고…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형이 너무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다 끝난 일이고, 일이 그렇게 된 것에 형이 자책할 필요도 없어. 형이 이강진에게 <가이아의 꿈>에 대해 말했다면, 이라고 자책할 것 같아서 하는 말이야.”
윤서가 움찔 놀라며 권지한을 쳐다봤다. 눈시울도, 코끝도 빨개진 권지한이 말했다.
“강진이 형한테 말했어도 변함이 없다는 게 내 결론이야. 그랬으면 강진이 형이 도민이 형을 한 번 더 죽였을 거야.”
“…언제 봤다고 형, 형입니까? 방금 전까지 이름 막 불러 놓고선.”
“음, 생각해 보니까 그냥 이름만 막 부르기가 좀 그래서….”
권지한은 머쓱하게 말하더니 다시금 심각한 얼굴로 윤서를 쳐다봤다.
“이게 중요한 게 아니야. 내 말 이해했지? 형은 아무런 잘못도 안 했어. 절대로 자책하지 마. 형은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지금까지 그 일로 너무 힘들어 했어. 그러니까 이상한 생각 하지 말란 말이야.”
서툰 위로였지만 진심이 담겨 있으니 상대의 상처를 어루만지기에 충분했다. 윤서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알겠어요. 자책 안 할게요.”
“형…….”
그러자 권지한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더니 감동받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윤서는 감동받아야 하는 사람이 바뀌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으나 귀여웠으므로 그냥 두었다.
삐유!
우울해하는 주인 때문에 덩달아 우울해하던 햅쌀이가 날개를 파닥거리며 지저귀었다. 생명의 신과 죽음의 신이 권지한의 위로 방식을 칭찬했다.
“일단 지금은 조금이라도 자는 게 좋겠습니다. 세 시간은 잘 수 있군요.”
윤서가 손을 빼자 권지한이 먹이를 빼앗긴 강아지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도 당장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알기에 고집부리지 않았다.
이도민에 관한 건 추론뿐이고, 아직 풀리지 않은 스토리도 있다.
당장 눈앞의 과제는 신전 보스 세 마리와 드래곤을 죽이고, 검은 포탈을 클리어하는 일이다.
둘은 그것을 잊지 않았다.
***
많은 이가 권지한과 윤서, 화심이 어젯밤 무엇을 했는지 궁금해했다. 윤서는 그들에게 301명의 1명은 로렌스와 리오의 아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전했다. 사람들은 당연히 불안해 했으나 그 1명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라고 무작정 안심시킬 수는 없었다. 모든 것은 권지한과 윤서의 추측일 뿐이고… 만약 그 추측이 맞다고 해도 이도민의 존재를 안심해도 되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므로.
시간이 되어 신 리벤저 300명이 신전의 지하 3층, 보스 세 마리와의 격전지로 향했다. 윤서와 권지한, S급 헌터들이 앞에 서고, B급 이하 헌터들이 중간, 갤럭사이아 포로 8명과 힐러, 서포터들은 후방에 섰다.
어둡고 캄캄한 지하 허공으로 알렉이 조명 아이템을 던졌다. 갑작스러운 밝은 빛에 여기저기 매달려 있던 잡몹들이 도망가거나 혹은 덤벼들었다. 신 리벤저는 도망치는 것들은 잡지 않고, 덤비는 것들은 처치하며 나아갔다.
보스 몬스터 세 마리는 거대 전갈과 지네, 도마뱀 형태로 한꺼번에 등장한다. 공략은 미리 세워 둔 상태였다. 서채윤과 윤서가 거대 지네를 맡고, 전갈은 퍼펙트, 도마뱀은 조만이, 크리스 카일, 푸르카 후투루가 상대한다. A급, B급 헌터들은 적절히 배치했다. 단, 퍼펙트 팀원 중 화심은 도마뱀 쪽을 지원하기로 했다. 갤럭사이아 8인만큼 전력이 비기 때문이었다.
“이봐, 서채윤. 거대 지네를 정말 둘이서만 맡아도 되겠나?”
윤서가 머릿속으로 전투를 그리는데 조만이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네. 문제없습니다.”
“…치유 내성이라는 게 있다면서. 문제가 많아 보이는데.”
윤서가 쓰러졌을 때 화심이 가면을 벗기지 않아서 얼굴은 들키지 않았으나 치유 내성에 대해선 모두가 알게 되었다. 조만이는 어젯밤 알렉에게 자기가 지네 쪽에 가담하겠다는 말까지 했다고 했다.
“서채윤. 내 생각도 그와 같다. 혹시 자존심 문제라면 내려 두는 게 좋겠군. 내가 지네에 가담할까?”
지금까지 묵묵하게 공략을 수행하던 푸르카 후투루도 그를 거들었다.
윤서가 가면 너머로 푸르카와 조만이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이미 작전을 세웠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끼어들면 방해만 됩니다. 제 걱정은 할 필요 없고 두 사람이나 우리가 합류할 때까지 기다리세요.”
아주 오만한 말이었다. 조만이와 푸르카는 뭔가 더 얘기하고 싶어 했으나 입술을 떼지 않았다.
사실 지하 2층에서 윤서는 타박상만 입었으나 푸르카와 조만이는 기생충이 신체에 들어가 살점을 잘라 내기까지 했다. 차이점은 두 사람은 치유를 받아서 다 나았고, 윤서는 자가 치유력으로만 낫고 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이 조용해지자 윤서는 다시 전투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10년 전, 거대 지네를 상대할 때는 처음으로 3페이즈까지 갔다. 그러나 이번에는 1페이즈 내에서 해결할 것이다. 혼자서는 무리여도 권지한, 그리고 지구에서 가지고 온 아이템과 함께라면 할 수 있었다.
***
츠으으으.
거대한 지네가 천장을 기었다. 왼손으로는 <관측자의 검>, 오른손으로는 ‘존재하는 넋’을 쥔 윤서가 천장을 향해 도약했다.
쾅!
지네의 몸통에 단검이 튕겨 나갔다. 이 보스 놈의 두꺼운 등에는 검이 박히지 않는다. 지네 등껍질은 본래 단단한 편이 아닌데, 이 몬스터의 등껍질은 그야말로 ‘등갑’이었다. 정말 강한 힘으로 내리치거나 스킬과 함께 공격해야 한다.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던 윤서는 넋으로 지네의 다리 마디를 노렸다. 그 마디 또한 단단하므로 <스파크>를 동반했다. 마디에 힘주어 단검을 꽂자 파지직 타들어 가는 소리가 났고 지네가 쉬이익, 쇳소리를 내며 크게 꿈틀거렸다. 윤서는 마디에 매달린 채 <관측자의 검>을 휘둘러 다리를 잘라 냈다. 다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스킬 <염력>을 사용합니다.
저 잘린 다리는 마치 제 의지를 가진 것처럼 움직여 동료들을 공격한다는 걸 윤서는 10년 전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잠깐 방심한 탓에 몇 명이 잘린 다리에 당해서 죽었던가. 윤서는 <염력>으로 다리를 조각조각 분해하고, 지네의 등 위에 매달렸다.
‘권지한’이 스킬 <방황하는 별>을 사용합니다.
지네가 하도 거대해 윤서는 지네의 머리 쪽에서, 권지한은 지네의 꼬리 쪽에서 매달려 싸우고 있었다. 윤서는 빠르게 권지한 쪽을 확인했다. 붉은빛이 맺힌 검 끝이 윤서가 한 것처럼 마디를 향했다. 붉은빛이 마디에 스며들자 그 마디는 다른 다리와 싸우기 시작했다.
‘진짜 신기한 스킬이야.’
권지한을 걱정하는 건 쓸데없는 짓이다.
“끄아악, 이 괴물 새끼가!”
“전갈 꼬리를 조심해!”
“도마뱀이 불을 뿜는다!”
고요하게 싸움이 진행되는 이쪽과 달리 거대 전갈, 도마뱀 몬스터 쪽은 시끄러웠다.
생명의 신이 당신의 싸움에만 신경 쓰라고 말합니다.
신경을 어떻게 안 쓰겠는가. 한 명이라도 죽으면 안 되는데. 내가 지켜야 하는데.
…예전 같았으면 이런 생각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었다.
우리는 철저하게 준비해 왔고, 저들은 충분히 강하다.
작전대로 차분하게 이쪽을 처리한 후 합류하면 될 일이다. 윤서는 전갈, 권지한은 도마뱀 쪽을 도와주자고 이미 얘기도 해 놨다.
스읏. 츠으읏!
거대 지네가 윤서의 키보다도 더 긴 더듬이를 뻗어 왔다. 이것도 검으로는 잘리지 않는다. 윤서는 넋의 검날이 앞을 향하도록 고쳐 쥐었다. 더듬이가 닿을 듯 뻗어 왔을 때 한 걸음 뒤로 이동했다. 지네가 성질을 내며 다시 더듬이를 뻗어 왔고 윤서는 또 한 걸음 뒤로 이동했다. 그 짓을 몇 차례 반복하며 <스파크>로 계속 전기 자극을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츠으으!
지네 머리가 윤서를 쫓았다. 순간 반들거리는 검은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눈의 크기가 바위만 했다. 윤서는 그 눈에 단검을 꽂아 볼까 하다가 그만두고 등갑을 밟으며 더듬이를 피했다. 츠읏! 지네가 침을 뱉었다. 피할 수 있었지만 자신이 피하면 바닥에 떨어져 누군가 맞을지도 모르므로 피하지 않았다.
<보호하는 베일> 내구도 33/100
“형, 조심!”
권지한의 외침과 동시에 지네가 몸을 비틀기 시작했다. 윤서는 <염력>을 사용해 지네 몸체에 말려드는 걸 빠르게 피했다. 벌레를 징그러워하지는 않으나 수많은 다리가 바글바글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구역질이 치밀었다. 지네가 츠읏 소리를 내며 닿을 듯 말 듯 한 윤서를 자기 몸에 감으려고 했다. 윤서는 멀찍이 피할 수 있었지만 이번에도 역시 피하지 않았다.
<보호하는 베일> 내구도 20/100
지네의 더듬이와 다리에 독이 있어서 스치기만 해도 내구도가 닳았다.
위험천만한 순간이 반복되고 마침내 배가 보였을 때,
아이템 ‘석영 물 폭탄1’을 사용합니다.
아이템 ‘석영 물 폭탄2’를 사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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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템 ‘석영 물 폭탄9’를 사용합니다.
죽음의 신이 새로운 아이템에 흥미를 갖습니다.
이건 석영 아이템 제작부 사람들이 밤을 새워 가며 만든 물 폭탄이었다.
아홉 개를 한 번에 꺼내서 지네에게 던졌다.
콰앙, 콰과광!
신전 천장 일부가 무너지고 지네는 츠츠읏!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거대 지네 몬스터의 약점이 바로 물이었다. 과거에 3페이즈까지 가서야… 많은 희생 후에 알아낸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