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175)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175)화(175/195)
#157
상반부가 물에 홀딱 젖은 지네는 분노한 듯이 몸 중반까지를 높이 쳐들었다. 길이 20m. 몸을 다 세운 것도 아닌데도 높은 건물을 상대하는 듯한 위압감을 줬다.
스킬 <스파크>를 사용합니다.
파지직. 양손의 단검에 전류가 흘려 들어갔다. 지네가 빠르게 공격해 들어왔으나 윤서는 그보다도 더 민첩하게 피하고, 거리를 벌리며 <스파크>가 충분히 깃들도록 했다.
콰앙!
커다란 폭음에 지네의 몸통 뒤쪽을 보자 권지한의 마지막 검인 ‘삭풍의 검’이 부서지는 광경이 보였다. 그리고 지네는 전체 40m 중 10m가 일직선으로 깔끔하게 분리되어 있었다. 지네가 츠으으! 고통에 찬 소리를 내며 발광했다.
‘미친. 이 지네 등갑이 잘리기도 하는 거였어?’
윤서는 날뛰는 지네를 피하며 경악했다. 쓸모없어진 삭풍을 내던지고 임시 검을 꺼낸 권지한은 분리된 몸통을 <갈증>으로 제압하고, <포식자>를 검날에 담아 잘게 부쉈다.
“3초!”
권지한의 외침에 윤서는 속으로 초를 셌고, 그 사이 권지한이 그의 옆을 훅 스쳐 지나갔다. 3초를 다 센 윤서가 마력을 끌어 올렸다.
스킬 <수호의 궤>를 사용합니다.
그는 <수호의 궤>를 아주 작은 범위로 펼쳤다. 단,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양으로.
<수호의 궤>가 지네를 가운데에 두고 그 주변을 감쌌다. 최종적으로는 도넛 형태가 되었다. 도넛의 가운데에는 지네가 있었다.
콰앙! 쾅!
지네가 고통스러움에 발광하느라 실드 벽에 몸통이 부딪쳤다. 윤서는 인벤토리에서 나머지 물 폭탄을 꺼냈다.
이 물 폭탄의 개수는 총 145개.
대던전에 들어가 목숨 걸고 싸울 신 리벤저를 위해, 아이템 제작 부서 사람들 또한 목숨을 걸고 만들었다. 145개째를 완성하자마자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 갔다고 했다.
콰과과광!
츠으으!
사방에서 터진 물 폭탄이 지네의 온 몸통을 흠뻑 젖게 만들었다. 윤서도 젖기는 마찬가지였다. 지네가 신전 바닥을 파기 시작했다. 도망가려는 것이다. 좋은 선택이나 늦었다.
윤서는 <스파크>가 풀로 담긴 단검 두 개를 지네에게 내던지고 실드를 빠져나왔다.
콰과과광! 마치 천둥 번개가 내리꽂히는 듯한 우르르 쾅쾅하는 소리가 났다.
엄청난 굉음에 다른 보스 몬스터와 싸우는 이들까지 순간 멈칫했을 정도였다.
<수호의 궤> 내구도가 빠르게 하락했다.
실드 내부는 검은 구름과 번쩍이는 번개로 가득 찼다. 마치 목성의 밤 같은 풍경이었다. <해치의 야성>, <명왕의 밤> 등 온갖 버프 스킬에 S급 물 폭탄, <스파크>를 풀로 담은 S급 무기 등이 만들어낸 끔찍한 광경. 거대 지네가 어떻게 되었는지 육안으로 확인할 수도 없었다.
다만….
보스 몬스터를 처치했습니다.
가이아 시스템이 신전의 첫 보스가 끝났다는 걸 알려 줬다.
10년 전 세 보스 중 가장 마지막에 끝났던 놈을 지금은 가장 일찍 끝내 버린 것이다.
생명의 신이 손뼉 치고 춤을 춥니다.
죽음의 신이 당신이 죽지 않아 다행스러워합니다.
죽음의 신이 다행이 아니라 아쉬워한다고 정정합니다.
아이템의 힘을 빌리면 단 1페이즈 만에도 처치할 수 있었던 놈이다.
딱히 기분이 가라앉지는 않았다. 이제는 그때의 리벤저들도 이 사실에 기뻐하고 있으리라는 걸 아니까.
윤서는 <관측자의 검>과 ‘존재하는 넋’을 해제한 후 재소환해서 양손에 쥐었다. 손목이 저릿했다.
“권지한….”
“형.”
윤서가 권지한의 이름을 부르려는데, 권지한의 그의 팔뚝을 붙잡았다.
“형, 지금 손….”
윤서의 양손에서는 치이익- 연기가 나고 있었다. 권지한이 다른 손으로 소매를 걷자 심한 화상이 보였다.
“젠장. 얼른 약부터 발라.”
“약이 문제가 아니라 일단 이 검을 받으세요.”
윤서가 삭풍을 잃은 권지한에게 <관측자의 검>을 내밀었다. 권지한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화상이 심해. 얼른 치료하자.”
“얼른 합류해야죠.”
“안 해, 씨발. 형이 다쳤는데 합류는 무슨 합류야. 화나게 하지 말고 얼른 손 내밀어.”
권지한이 최근 들어 욕이 많아진 것 같다.
“전 괜찮습니다.”
“이 상태로 검을 휘두를 수 있다고? 개소리하지 말고 검 해제해. 사람 빡치는 거 구경해 볼래?”
진짜 욕이 많아졌는데.
생명의 신이 ‘권지한’의 말을 듣는 게 좋겠다고 말합니다.
죽음의 신이 죽고 싶으면 치료하지 말라고 합니다.
“…….”
윤서가 두 단검을 해제하자 권지한이 인벤에서 아이템형으로 만든 약과 붕대를 꺼냈다.
“으아악, 독, 독이야!”
“당장 힐을 해 줘!”
“미친, 거기 조심해. 스치면 바로 모가지 날아간다!”
“타액에 맞지 마. 마비 독이 있다!”
콰아앙, 크아아악.
등등 둘의 뒤쪽에서는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는 와중에….
“우리 작전은 완벽했어요. 내가 <수호의 궤>에서 0.003초 정도 느리게 빠져나와서 이렇게 된 겁니다.”
“형이 0.03초 느리게 빠져나와도 괜찮을 작전을 짰어야 했던 건데.”
“…권지한 헌터. 0.003초 늦었습니다. 0.03초가 아니라.”
“아니야. 나도 봤는데 0.03초였어. 많이 빠르게 쳐 줘도 0.02초.”
“재밌군요. 권지한 헌터라면 몇 초 걸렸을 것 같습니까?”
“나는 0.00001초 정도가 아닐까. 아무튼 형 아프지 마. 치유도 안 통하는 사람이 다치니까 애타고 속상해.”
“음, 권지한 헌터는 절대로 치유 내성에 안 걸리는 게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권지한 헌터는 전신 화상을 입었을 테니까요. 다른 건 다 좋은데 민첩함에서는 많이 부족해서 제가 항상 걱정이 많습니다. 부디 조심하세요.”
두 사람은 알콩달콩하면서도 티격태격하게 대화를 나눴다. 동료의 강함을 믿고 나니 이런 상황에서 이런 대화도 가능했다.
“일단 비상 처치는 했는데 전투 끝나면 다시 봐야 해.”
“그럴 시간이 없을 겁니다. 바로 최종 보스가 나타날 거라.”
“내가 시간 끌 테니까 형은 일단 그 상처 의사 출신한테 보여 줘.”
“당신 혼자 시간을 끈다고요? 어떻게?”
“다 방법이 있어. 나는 이런 모두 다 죽게 생긴 절체절명의 순간을 기다렸단 말이지.”
“그게 무슨 개소리….”
콰아아앙!
쾅!
끄아아악!
키악!
“아, 뭔 대화를 못 하겠네. 존나 시끄럽네.”
“그러게요.”
다른 하급 헌터들은 살기 바빠서 둘의 대화를 못 들었지만 S급 헌터들은 다 들었다.
“저 새끼들 뭐 해 지금!?”
빡친 크리스 카일이 소리를 질렀다. 권지한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형은 쉬고 있어. 내가 두 명처럼 왔다 갔다 하면서 도울게.”
“그만해요.”
윤서가 단검 두 개를 소환했다. 권지한이 “진심인데….”라고 중얼거리며 <관측자의 검>을 받아들였다. 사실 윤서는 그에게 ‘존재하는 넋’을 주고 싶었으나 귀속 아이템이라 다른 이는 사용할 수 없었다. <관측자의 검>도 효율성 문제로 웬만하면 다른 이에게 넘기면 넘기지 않으나 지금은 당장 검이 없는 상황이고, 상대가 권지한이니까…. 그러고 보니 예전에도 권지한에게 이 검을 넘긴 적이 있었다. 그때는 이런 날이 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권지한이 받아들자 윤서가 바로 전갈 쪽으로 달렸다.
“…….”
권지한은 붕대를 감는 동안 미간만 살짝 찡그리고 만 윤서를 떠올리며, 답답해서 미칠 것 같은 기분으로 도마뱀을 향해 달려갔다.
***
신전의 주인이 등장합니다.
쿠구구궁….
보스 몬스터 세 마리를 모두 처치하고 잠시 숨을 고르는 그때 위압감 있는 메시지와 함께 땅 전체가 울렸다. 동시에 신전 지하 3층의 높이가 비정상적으로 늘어났다. 천장을 떠받치고 있던 기둥이 마치 가래떡 늘어나듯이 늘어나더니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을 정도까지 솟구쳤다.
“드래곤….”
머리와 꼬리가 세 개씩 달린 거대 드래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1,000m가 넘는 엄청난 크기 때문에 밑에서는 육중한 하체만 겨우 보인다. 신 리벤저는 미리 짜 놓은 대형대로 흩어졌다. 1/4만 땅 위에 남고 다른 이들은 날아올랐다. 권지한과 윤서는 드래곤의 목이 시작되는 부분에서 멈췄다.
안개로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드래곤이 모습을 드러내며 동시에 자욱해진 안개 때문에 시야가 가려졌다.
‘박강’이 스킬 <청사초롱>을 사용합니다.
‘알렉 스위치’가 스킬 <창작>을 사용합니다.
<선-플라워>가 피어났습니다.
빛의 가호가 당신에게 닿기를….
‘크리스 카일’이 스킬 <돌풍>을 사용합니다.
기다렸다는 듯, 아니, 실제로 타이밍을 기다렸던 리벤저들이 스킬을 사용해서 안개를 흩어지게 했다.
10년 전에는 안개 때문에 드래곤의 세 머리가 내뿜은 브레스를 피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피하지도 못하고 브레스에 직격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크아아아아
드래곤의 울음소리에 전신이 떨렸다.
신전의 주인이 공포를 불러옵니다.
당신에게는 영향이 없습니다.
신전의 주인이 모습을 완전히 드러내기 전까지 공격할 수 없습니다.
‘아. 완전히 등장하기 전까지는 무적 상태였구나. 그래서 우리가 쏟아부었던 스킬이 안 먹혔던 거였어.’
10년 전 드래곤이 나타나자마자 리벤저들이 스킬을 쏟아부었는데 드래곤은 어떤 대미지도 입지 않았다. 당시엔 어떤 시스템 메시지도 나타나지 않아 이유도 모른 채로 그저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는데 그 의문이 이제야 풀렸다.
드래곤의 모습이 드러날수록 여기저기서 히익, 숨 들이켜는 소리가 났다. 권지한의 <먹이사슬>과 비슷한 영향을 미쳤다. 윤서는 실드를 굳이 강화하지는 않았다. 이제 마력을 아껴야 하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이곳에서 <오르트의 구름>은 사용할 수 없다. 만약 사용하려 한다면 ‘스킬 사용이 불가능한 지역입니다.’라는 문구가 뜰 것이다. 이건 권지한의 <퀘이사>도 마찬가지. 드래곤 때문에 공간이 확장되었어도 이곳은 엄연히 신전 지하 3층, 완전히 개방적인 야외가 아니라고 가이아 시스템은 판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