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176)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176)화(176/195)
#158
“흐억, 저, 저, 악마들이.”
수재희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저 악마들이 강제 소환 해제됐어요. 겁을 먹었다고…. 소환수가 겁을 먹다니 이런 경우는 처음이에요. 내가 지금 겁을 먹어서 영향을 받는 건가…?”
“씨발….”
홍의윤이 수재희에게 얼른 날아갔다.
“빨리 다른 녀석들 소환해.”
“으, 응. 형.”
<해치>와 <장산범>은 날지 못하기 때문에 <구운몽>의 선녀들을 소환했다. 선녀들은 모습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거대한 적을 보고 당황했으나 결코 도망치지 않았다.
신전의 주인이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이때 권지한이 수재희에게 날아갔다.
“수재희. 네 검 줘.”
“어?”
수재희는 너무 당황해서 반말을 해 버리고 말았다.
“네? 형, 검을 달라니요?”
“너는 내려가서 <해치>와 <장산범>을 소환하고 힐러들 사이에 있어.”
“지금 저보고 숨어 있으라는 거예요?”
“여기서 많이 다칠 것 같다.”
“…….”
수재희가 침을 꿀꺽 삼켰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권지한이 하는 말은 그 무게가 상당했다.
“선녀들과 함께 힐러들을 엄호하는 게 네 역할이야. 힐러가 한 명 다치면 전투계 헌터는 세 명 죽는 거라고 생각하면서 반드시 지켜야 해. 그리고 그 ‘천해’는 나 줘. 나 검 다 부러졌고, 이건 채윤이 형 검이라서 돌려줘야지. 전투 끝나면 다시 줄게.”
“아, 네. 형이 계속 써도 되는데 이거 귀속 아이템이라서 어떻게 주죠?”
‘권지한’이 스킬 <포식자>를 사용합니다.
‘수재희’의 아이템 ‘천해의 검’의 귀속 상태가 해제됩니다.
권지한이 손을 내밀었다. 수재희는 입을 쩍 벌리며 그에게 검을 건넸다.
“와….”
드래곤의 공포를 이겨 내게 하는 <포식자>였다.
권지한은 수재희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내려가게 하고서는 윤서에게 날아왔다.
“형, 여기.”
윤서가 <관측자의 검>을 돌려받으며 권지한의 전신을 살폈다. 검붉은 기운이 넘실거리는 장검은 권지한에게 무척 잘 어울렸다.
“<포식자>가 귀속 해제도 가능했어요?”
“응. 내가 시간 끌 테니까 형은 치료받아. 사람들 재정비도 시키고. 30분 후에 봐.”
“네?”
“형.”
권지한이 돌연 윤서를 그윽한 눈으로 쳐다보면서 또박또박 말했다.
“나에게는 아직 12개의 쿨 타임 포션이 남아 있어.”
12개의 뭐?
윤서가 황당해서 눈을 깜박이는데 권지한이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권지한’이 스킬 <골든 타임>을 사용합니다.
권지한의 몸을 금색 마력이 휘감았다. 그는 ‘천해’를 들고, 검은 날개를 활짝 펼친 채 드래곤에게 돌진했다.
“저 미친 새끼가.”
윤서가 하고 싶은 말을 홍의윤이 대신했다.
아직 드래곤이 무적 상태라 모두 자기 위치에서 대기 중이었는데 권지한이 예정에 없던 행동을 한 것이다. 권지한이 먼저 움직인 직후 가이아 시스템이 신전 주인의 완전히 나타났다는 걸 알려왔다.
크아아아!
드래곤의 입장에서는 개미만 한 것이 검을 휘두르며 혼자 날아오니 어이가 없었는지 머리 세 개가 권지한을 향해 포효했다. 권지한은 아랑곳 않고 <갈증>, <포식자>, <먹이사슬> 스킬을 동시에 사용했다. 화염 브레스를 쏘는 머리가 입을 쩍 벌렸다. 브레스를 모으고 발산하는 데에 도합 1초. 그 1초를 벌어 주기 위해 다른 머리들이 권지한을 공격했다.
권지한은 집채만 한 머리를 밟고 뛰어넘어서 목까지 미끄러져 내려가다가 1초가 되기 전, 화염 머리 위에 착지한 후 단숨에 검을 쑤셔 박았다. 세 머리가 일제히 괴성을 내지르며 권지한을 떨어뜨리려 했다. 그러나 엄청난 괴력으로 검을 붙잡은 권지한은 그대로 일직선으로 내리그었다.
이 일련의 과정이 단 3초 만에 일어났다.
윤서만이 눈으로 따라잡았고 다른 이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분간조차 못했다. 그저 금빛이 번쩍, 번쩍 움직이더니 다음 순간 화염 머리의 눈동자 하나가 저 위에서 낙하하기 시작했다.
“다들 피해!”
“도망쳐!”
리벤저들이 화염 머리의 눈동자를 피했다.
관측자가 ‘권지한’의 판단력과 움직임에 감탄합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이게 무슨….”
여전히 위쪽에서는 크아아, 울부짖은 소리와 콰앙, 채앵, 챙 하는 소리가 났으나 사람들의 눈은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했다.
“하….”
윤서는 허탈한 숨을 내뱉었다.
“알렉, 우리는 내려가죠.”
“…그래, 그게 좋겠군.”
알렉과 박수빈이 빠르게 판단해서 후퇴를 지시했다. 일제히 땅으로 내려오자 땅에 있던 이들이 의문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홍의윤이 불만을 토로했다.
“지금 권지한이 드래곤을 압도하고 있는 것 같은데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니야?”
알렉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걸 어떻게 돕겠나. 자네는 권지한의 움직임을 따라가긴 했나?”
“…….”
“<골든 타임> 상태인 권지한에게 우리는 짐만 될 뿐이네. 서포터와 힐러들만 근처로 가서 바로바로 치유해 주는 게 좋겠군.”
알렉의 지시에 박수빈을 포함해서 아직 스킬을 사용할 여력이 남은 몇몇 서포터들이 바로 올라갔다.
사실 윤서의 생각은 달랐다. 헌터들이 합세하면 머리를 한 개 더 베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마 윤서처럼 생각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권지한은 그것을 위해 <골든 타임>을 사용한 것이 아니다.
‘나는 단 한 명이라도 죽으면 그건 복수 실패라고 생각합니다.’
‘나도 마찬가지야, 형. 나도 그렇게 생각해.’
권지한은 드래곤을 해치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 한 명도 죽게 하지 않기 위해서 <골든 타임>을 사용한 것이다. 지금 헌터들은 지쳤고, 이대로 재정비 없이 공격하면 분명 사상자가 나올 테니까.
무엇이 더 효율적이냐고 묻는다면 의견은 갈릴 것이다. 지금의 리벤저 중에도 분명 이것이 비효율적이라고 여기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반론을 말하지 않았다. 이것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효율적일지언정 이것이 옳다고….
권지한 덕분에 얻게 된 재정비 타임, 일행은 드래곤의 움직임을 피할 수 있을 만한 충분히 먼 곳에 모였다.
커플은 서로를 끌어안은 채 보이지도 않는 위를 올려다 봤고, 옐레나와 푸르카는 위를 주시하는 대신 몸에 젖은 공포감을 푸는 데에 집중했다. 조만이와 크리스 카일은 공포감을 떨쳐 내기가 쉽지 않은지 창백한 얼굴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서채윤 헌터, 상처 볼게요.”
김진해가 의사 출신 힐러를 데리고 다가왔다. 윤서는 바위에 걸터앉아 화상을 치료받았다. 자체 회복력이 빠르고 권지한이 처치를 잘해 놔 심각한 상태는 아니었다.
치료를 마친 후 도등수와 알렉에게 상황을 들어 보니 권지한의 선택이 옳았음을 더더욱 깨달았다. 죽지만 않았을 뿐이지 다들 너덜너덜한 상태였고, 싸울 여력이 되는 이들을 합하니 백 명이 조금 넘었다. 특히 힐러들이 많이 다쳤다. 공격 지점마다 힐러를 한 명씩 배치할 생각이었는데 그러지 못하게 되었다. 이건 이젠 정말로 누군가는 죽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힐러를 한 명이라도 더 데리고 들어올걸.’
윤서는 유준철의 말대로 차라리 500명은 데리고 들어왔어야 했나 생각했다. 하지만 그랬으면 누군가는 지금 이미 죽었을 것 같았다.
도등수와 알렉이 전투 가능한 인원을 재배치하는 동안 부상자인 윤서는 휴식하며 생각했다.
‘권지한이 머리 하나를 자를 수 있을까?’
윤서가 까마득한 하늘 위를 올려다봤다. 금빛 빛이 일렁이고 굉음만 들려오는 곳.
제발.
제발 잘라, 권지한.
머리 세 개를 동시에 자르는 게 1페이즈 만에 끝날 수 있어서 제일 좋지만, 그건 감히 바랄 수 없는 일이고.
하나라도 자르면 그 뒤 싸움은 수월해진다. 한 명도 죽지 않을 수 있다.
이 드래곤은 몸을 휘두르는 동작으로 생긴 충격파만으로도 풀 내구도의 <보호하는 베일>을 순식간에 부숴 버리며, 만약 직격당하면 시체가 조각나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바스러진다. 세 머리가 브레스를 동시에 내뿜어 하나로 합치는 경우가 있는데, 그 브레스는 <딥 필드>도 금 가게 할 정도였다.
지금 윤서는 <딥 필드>를 100% 펼칠 수 있을 정도로 마력이 충분했으나, 검은 포탈에서 수행할 작전 때문에 사용하지 못했다. 지금으로서는 <수호의 궤>가 최선이지만 이건 브레스를 두 번 이상은 방어하지 못한다.
‘권지한, 제발 머리를 잘라 줘.’
윤서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동시에.
‘못 잘라도 좋으니까 죽으면 안 돼.’
이성으로는 권지한이 어떻게든 머리 하나를 자르는 게 좋다는 걸 알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혼자 싸우지 말라고 끌어 내리고 싶었다.
한번도 겪어 보지 못한 시각에서 바라보고 나니 그들이 떠올랐다.
10년 전 윤서는 거의 혼자서 드래곤과 싸웠다. 그때 바라보기만 했던 이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채윤아, 못 죽여도 되니까 죽지만 마.’
그렇게 외칠 수가 없었던 사람들.
윤서는 약병을 꺼냈다. 그러나 손바닥 안에서만 굴리다가 다시 집어 넣었다. 지금은 약이 필요해서 떠는 게 아니었다.
시간을 보니 <골든 타임>이 끝나기 10분 남은 상태였다.
그때 화심이 곁에 다가오더니 나직하게 말했다.
“서채윤. 아직 마지막 매개체 알림은 오지 않았다.”
“…….”
윤서는 가면을 쓰고 있었지만, 화심은 윤서의 표정을 읽은 듯했다.
“잊고 있었군.”
“일단 눈앞에 닥친 문제부터 해결해야 하니까요.”
“서채윤, 너는.”
“…….”
“너는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세상을 구하고 싶나?”
윤서가 화심을 응시했다.
화심은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풀 수 없는 퍼즐을 눈앞에 둔 사람처럼 묘하기도 했다.
화심이 말한 ‘그런 일’이라는 건 당연히 이강진과 이도민의 일을 말하는 것이다.
윤서는 그 일이 왜 세상을 구하고 싶지 않게 되는 일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윤서가 화심과 똑같이, 풀 수 없는 퍼즐은 눈앞에 둔 사람처럼 묘한 표정만 지으며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화심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일단 닥친 문제부터 해결해야지.”
화심이 떠났다. 윤서는 화심의 뒷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 윤서에게 이번엔 수재희와 홍의윤이 다가왔다. 홍의윤은 절뚝이고 있었다.
“화심 형이 진짜로 힘숨찐이었다니 아직도 믿을 수가 없네요.”
“그런데 S급이어도 공격력은 나보다 약해.”
“그래도 가이아 스킬을 가지고 있잖아. 진짜 부럽다.”
“그러고 보니 수재희 너 씨발, 본래 화심 쟤한테 돈 걸었다면서?”
“아, 아닌데? 나 홍이 형한테 걸었어.”
“거짓말하지 마. 처음엔 나 재수 없다고 깠다는 거 들었다.”
“누, 누가 그런 망발을….”
“서채윤 광팬 커플이.”
“그 누나랑 형은 대체 왜 그런 거짓말을 하고 그러냐.”
윤서는 홍의윤의 다리를 잠깐 바라봤다. 치유를 받았음에도 절뚝인다는 건 어쩌면 아예 잘렸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시답잖은 대화도 긴장을 풀기 위한 것이리라.
“아, 홍이 형. 저쪽에 예전 형 팀 메이트들이 다 모였네.”
수재희의 말에 윤서가 고개를 들었다. 임시 팀 멤버들이 화심 주위에 모여 있었다. 남궁심해, 김진해, 이정인, 박강. 가이아 스킬에 대해 물어보는 듯했다. 그리고 서채윤 이름도 몇 번 언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