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177)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177)화(177/195)
#159
윤서는 문득 제 얼굴을 더듬었다.
이 가면. 이제 벗어도 되지 않나.
본래는 대던전에 들어와서 어쩔 수 없이 공개하게 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다들 너무 잘 싸워서 계속 쓰고 있었다.
생명의 신이 <골든 타임>이 5분 남았다고 말합니다.
윤서보다 생명의 신이 더 초조한 듯 굴고 있었다. 윤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알렉이 난감하다는 얼굴로 다가왔다.
“서채윤 헌터, 상의할 게 있네.”
“네, 무슨 일이에요?”
알렉이 등을 돌렸다. 뒤에서 도등수가 잔뜩 굳은 이들을 이끌고 나타났다.
그 여덟 명은 갤럭사이아 교도들이었다.
“저 새끼들이 왜-!”
“으악, 형. 제발 조용.”
바로 지랄하려는 홍의윤을 수재희가 얼른 제압했다.
사이비교도의 리더가 말했다.
“힐러가 부족하다는 얘기를 듣고 우리가 도등수 부길드장을 불렀다. 여기 힐러가 넷이나 있는데 놀게 내버려 둘 셈인가? 심지어 A급인데.”
“그 힐러가 테러리스트인데 당신들 같으면 쓰겠습니까?”
“이 던전 공략은 방해하지 않겠다.”
“그걸 믿으라고요?”
“스킬을 사용해서 확인해라. 우리는 이곳에서는… 갤럭사이아가 아니라 리벤저로서 싸우겠다.”
윤서가 <확신의 저울>을 사용하려는데 머릿속에 목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이미 여기 있는 자들을 치유했다. 네가 소행성 스킬을 사용하고 쓰러졌을 때도 막사 안에서 원거리 스킬로 다친 자들을 치유했지. 마력 구속구를 풀었다는 걸 들키기 싫어서인지 밝히지 않아서 나도 말하지 않았다.”
화심이었다.
윤서는 다소 놀라며 사이비 교도들의 표정을 훑었다. 각오를 다진 표정, 결의 가득한 얼굴들.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걸까.
‘그래서 믿어도 된다는 뜻입니까?’
“믿어도 된다.”
화심의 확답에 윤서는 얼떨떨했다. 갤럭사이아가 <가이아의 마음>을 속일 수는 없을 터고, 진심이란 말인가? 그때 화심이 덧붙였다.
“저들을 변화시킨 건 너다, 서채윤. <가이아의 마음>으로도 하기 어려운 일을 서채윤은 해내는군.”
마지막에는 혀까지 찼다.
그 말을 듣자 더 고민할 필요는 없어졌다. 윤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채윤의 동의가 떨어지자 도등수와 알렉은 빠르게 8명의 추가 인원을 배치했다.
윤서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사람에 대한 원한으로 복수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들어왔으면서… 우연히 만난 이의 몇 마디 말에 복수를 포기하고 만다.
결국 저들도 각성자였던 것이다. 범죄가 범죄가 아니던 시기에도 끝까지 악행을 저지르지 않았던 이들…….
생명의 신이 30초 남았다고 말합니다.
윤서는 권지한이 싸우는 방향으로 날아올랐다. 마음이 어쩐지 가벼웠다.
크아아아아-!
괴물이 크게 울부짖었다. 권지한의 몸을 휘감았던 금빛의 물결은 사라져 가고 있었다. 화염 머리는 거의 만신창이가 된 상태여서 딱 한 번 더 공격을 명중시키면 자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전격 머리가 권지한에게 브레스를 쏘려는 모습을 보고 윤서가 재빨리 <염력>을 사용해 권지한의 신체를 끌어당겼다.
크아아아!
콰앙!
전격 브레스가 신전의 기둥을 부쉈다. 권지한이 윤서의 곁으로 빠르게 날아왔다. 권지한의 몸에는 자잘한 생채기 말고는 큰 상처가 없어 보였다. <골든 타임>의 위력이었다.
“와, 형. 형이 방금 나 살려 줬어.”
“화염 머리부터 자르죠. 퍼펙트가 전격 머리를 상대하고, 다른 고위 헌터들은 얼음 머리를 상대하면서 우리를 엄호할 겁니다.”
말을 끝낸 윤서가 손을 들어 힐러를 불렀다. 근처에 있던 힐러가 권지한을 빠르게 치유했다.
“화염 머리는 내가 끝까지 책임질게. 형은 퍼펙트랑 같이 전격을 해치워.”
“<골든 타임>이 끝났을 텐데요.”
그러자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권지한이 씨익 미소 지었다.
“나에게는 아직 12개의 쿨 타임 포션이 남아 있어.”
“…….”
그때 막 근처를 날아가던 도등수가 말했다.
“저기, 권지한 헌터. 우리 14개 남았습니다. 다들 아껴 써서요.”
“닥쳐. 지금 분위기 파악 안 돼?”
“앗, 죄송합니다.”
죽음의 신이 왜 저 말을 반복하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생명의 신이 이해하지 못했지만 좋아합니다.
도등수를 쫓아낸 권지한이 한껏 용맹하고 멋진 표정을 지었다.
“꼭 12개여야 하는 건 아니지?”
“…….”
“화상은 잘 치료받았고?”
권지한이 윤서의 양손을 확인하는 동안 윤서도 권지한을 살폈다. 얼굴에 난 생채기는 힐러들의 스킬로 실시간으로 치유되고 있었다.
윤서는 정말로 권지한에게서 후광이 비쳐서 눈을 잠깐 감았다가 떴다.
“알겠습니다. 맡길게요.”
“응, 형. 너무 마력 쓰지 말고 적당히 싸워. 다치면 안 돼.”
“네.”
윤서는 ‘당신도.’라는 말은 굳이 붙이지 않았다.
권지한이 쿨 타임 포션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들이켰다.
‘권지한’이 스킬 <골든 타임>을 사용합니다.
둘은 마지막으로 시선을 교환한 후 그대로 찢어져서 각자의 공격 상대에게 향했다.
***
퍼펙트는 꽤 잘 피하고 있었으나, 정말 말 그대로 피하기만 하고 있었다. 박쥐로 변한 리오와 귀신에 빙의된 로렌스가 브레스를 유인하는 사이 다른 이들은 머리를 공격하는 게 작전이었는데 브레스의 범위가 넓고, 섣불리 움직이다가 다른 머리의 공격에 당할 수도 있어서 함부로 공격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브레스 사이사이에 전류를 방출하거나 낙뢰 같은 공격을 할 때가 유일한 공격 타이밍이었다.
그렇게 피하기만 하다가 성질이 뻗친 홍의윤이 공중에 멈추고는 창을 굳게 쥐었다. 전류 방출을 받아칠 작정이었는데, 마침 권지한과 찢어져서 그 모습을 본 윤서가 소리쳤다.
“받아치지 마!”
“윽-!”
홍의윤은 창을 뒤로 빼고는 공중에서 몸을 회전해 피했다. 윤서가 빠르게 날아와서 모두에게 들릴만큼 크게 소리쳤다.
“드래곤의 공격은 무엇이 됐든 전부 피하세요! 절대 받아쳐서는 안 됩니다!”
“하, 하지만 저 정도는 막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막을 수 없어!”
윤서가 단호하게 일갈했다.
사실을 말하자면 권지한과 윤서는 브레스가 아닌 공격은 어느 정도 방어가 가능했다. 지금도 권지한은 ‘천해’로 공격을 받아치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S급들, 특히 A급에 불과한 홍의윤이라면 어떻게 될지 모르므로 안전한 노선을 택했다.
홍의윤은 더는 치기를 내비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윤서가 화심에게 날아갔다.
“텔레파시로 모두에게 전달하세요. 권지한이 머리를 자르면 페이즈가 바뀌면서 드래곤의 체력이 80% 회복됩니다. 그때까지 공격보다는 방어 위주로. 다른 머리들이 권지한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견제하라고 하세요. 화염 머리를 자르고 나면 전격과 얼음 머리는 동시에 베는 게 목표입니다.”
“알겠다.”
화심이 곧장 <가이아의 마음>을 사용했다.
윤서는 전격 머리와 얼음 머리를 오가며 놈들과 공방전을 하면서 전력을 파악했다. 다들 지친 상태였다. 이제는 체력 포션, 마력 포션도 바닥나고 있었고 여기저기에 피를 철철 흘리는 이들이 보였다. 아마 땅 위에서 싸우는 이들도 마찬가지이리라.
크아아아!
“으윽.”
“허억!”
화염 머리의 커다란 울부짖음에 등급이 낮은 헌터들의 귀에서 피가 흘렀다.
윤서가 권지한 쪽을 보니 권지한은 막 화염 머리를 정수리에서부터 목까지 세로로 기다랗게 찢고 있던 참이었다.
투두둑. 툭. 그 안에 있던 것들이 쏟아지고 권지한은 날개를 펼쳐서 제게 튀는 걸 막았다.
남은 머리 두 개가 더 날뛰기 시작했다. 윤서는 권지한에게 다가갔다.
“다쳤네요. 가서 치료받고 합류하세요.”
권지한의 팔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얼굴도 피에 젖은 게 머리도 깨진 듯했다.
“금방 올게. 다치지 마, 형.”
“네.”
권지한은 멀쩡하다거나 더 싸울 수 있다 같은 멍청한 말은 하지 않고 바로 치유를 받으러 갔다.
이제 2페이즈 시작이다.
2페이즈에서는 드래곤의 공격력과 회복력이 1페이즈보다 1.5배 증가한다.
드래곤이 회복하는 동안 윤서는 전장으로 돌아와 인원수를 확인했다. 301이라는 숫자를 확인한 윤서가 지시했다.
“싸울 수 있는 사람만 남고 부상자는 모두 물러나세요. 있으면 방해만 됩니다!”
말을 끝낸 윤서가 지체 없이 가면의 끈을 풀었다.
“서, 서채윤 군?”
“서채…!”
알렉과 홍의윤이 깜짝 놀랐다. 일순 주위가 고요해졌다. 드래곤의 머리에 고드름을 떨어뜨리던 조만이가 놀라서 윤서를 쳐다봤고, 제각기 치열하게 싸우던 임시 팀 멤버들이 눈을 크게 떴다.
윤서가 지금 얼굴을 공개한 건 그저 이들을 놀라게 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신뢰와 전투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전격 머리는 나와 화심, 그리고 로렌스와 리오가 맡고 다른 사람들은 얼음 머리를 공격하세요. 알렉, 당신이 이들에게 작전을 지시하세요.”
“…윤서 군, 고작 네 명이서 괜찮겠나?”
“문제없습니다. 부상자는 꼭 이탈시키세요. 짐만 됩니다.”
“알겠네.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말게.”
알렉이 S급들을 이끌고 얼음 머리로 향했다.
윤서는 화심에게 고갯짓했다. 화심이 ‘나는 왜….’라고 중얼거리며 윤서를 따라왔다. 커플은 거의 감격으로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넷이 모이자 윤서가 작전을 지시했다.
“리오와 로렌스는 당장 캠핑카로 내려가세요.”
“네?”
“2페이즈에서 드래곤이 날뛰면 지반이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주홍색 캠핑카에 손바닥만 한 박스가 있는데 그걸 지키는 게 둘의 의무입니다.”
“잠깐만요. 잠깐, 서채윤 님….”
로렌스의 동공이 요동쳤다.
갑자기 캠핑카 안의 박스를 지키라니? 윤서의 지시는 명백하게, 전장을 이탈하라는 것이었다.
혹시… 임신을 했기 때문에 전투에서 피하라는 뜻인가.
로렌스의 얼굴이 굳었다. 윤서는 말을 이어 갔다.
“그 박스에 든 건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박스의 존재를 다른 이에게 발설할 수도 없고, 두 사람은 마침 비행 스킬도 가지고 있으니 제격이라 말하는 겁니다.”
로렌스가 입술을 열며 반박하려고 했다. 그러나 리오가 연인의 어깨를 붙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