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180)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180)화(180/195)
24. 최종 관문
#161
던전이 클리어되었습니다 : 현재 지형 4/4 : 현재 인원 301명 : 소요 시간 291시간 10분
경험치 500,000,000 획득
사용하지 않은 경험치 13,873,745,000
드래곤이 있던 자리에 대던전의 출구 포탈이 나타났다. 닫히기까지 세 시간. 꽤 넉넉한 시간이었다.
모두가 안도하고 환호하는 순간 권지한과 윤서는 차분하게 다음 메시지를 기다렸다.
가이아 시스템의 숨겨진 비밀이 등장했습니다.
스킬 <관측자의 검>이 발동합니다.
<관측자의 검>이 가이아 시스템의 마지막 던전을 발견했습니다.
아마도 권지한에겐 <가이아의 눈>이 마지막 던전을 발견했다는 메시지가 떴을 것이다.
“저, 저게 뭐?”
“여, 여기 포탈이 하나 더 생겼어요!”
“검은색…. 검은색 포탈입니다!”
여기저기서 소리쳤다. 10년 전처럼 다들 당황하고 있었다.
그리고 검은 포탈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윤서 또한 당황했다.
윤서의 기억 속에서 마지막 던전은 조건 불일치로 입장 불가였고 다른 설명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 나타난 창에는 여러 정보가 적혀 있었다.….
가이아 시스템의 마지막 던전
※가이아 스킬 보유자만 들어갈 수 있는 선택형 던전입니다.
진입 후 클리어와 휴식기 중에서 선택하세요. 의견 통일 필수!
※클리어
( 조건 : 몬스터 전멸 )
( 시간제한 : 없음 )
( 실패 시 대폭발 )
※소멸
( 던전 소멸 )
( 10년 후 재생성 )
가이아 스킬 보유자만 진입 가능하다는 건 예상 범위였으나 그 외의 것들은 아니었다.
선택형 던전이라는 것도 처음 보고….
무엇보다 소멸이라는 글자가 윤서를 놀라게 했다.
그러니까 이 소멸이라는 걸 선택하면 진입한 사람들을 포함해서 던전이 소멸하고, 아무 일 없이 있다가 10년 후에 다시 나타난다는 것이다.
바로 지금처럼.
“…….”
윤서는 이제 모든 것을 깨달았다.
실패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선택지.
생존자를 전부 내보내고 혼자 남은 이강진.
‘마지막 관문 앞 서채윤’이라는 이름의 스토리와… 그레이스의 계시에서 검은 포탈로 들어간 이가 어째서 단 한 명인지 그 이유를 모두 이해했다.
‘강진이 형.’
윤서는 몰려오는 비참함에 몸을 비틀거렸다. 그러자 권지한이 얼른 그를 부축해서 바위 위에 앉혔다.
“클리어 기한이 없다니 진짜 놀랍다. 그치?”
권지한은 윤서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윤서가 유심히 본 것은 두 번째 선택지고, 권지한은 골똘히 생각한 것은 첫 번째 선택지였다.
윤서가 대답하지 않자 권지한이 미간을 좁혔다.
“형, 안 돼.”
“뭐가 안 됩니까.”
“씨발, 그딴 생각은 절대 안 돼. 이성적으로 판단해.”
“그딴 생각이요?”
“우리는 충분히 클리어할 수 있어. 10분이면 끝나. 시뮬레이션에서도 수없이 성공했잖아.”
윤서가 피식 웃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나도 우리가 밖에서 세우고 온 작전을 신뢰합니다. 이제와서 작전을 변경하는 건 상당한 부담이죠.”
윤서는 그렇게 말하며 앞쪽을 눈짓했다. 아직 검은 포탈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한 이들이 두려움에 젖은 눈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권지한은 그럼에도 눈썹을 잔뜩 찌푸린 채 윤서의 얼굴만 보다가, 윤서가 일부러 맞서 찌푸린 후에야 그만뒀다.
“알았어. 쉬고 있어. 사람들 안심시키고 올게.”
권지한이 어수선한 분위기의 신 리벤저에게 설명하기 위해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윤서는 힐끔거리는 시선들을 무시하고, 근처 바위에 걸터앉아 인벤토리에서 ‘존재하는 넋’을 꺼냈다.
삐융!
햅쌀이가 나오자마자 가슴을 크게 부풀며 우쭐댔다.
자기가 얼마나 활약했는지 본인도 알고 있었다.
“잘했어. 햅쌀아. 수고했어.”
삐유.
윤서는 햅쌀이를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여러가지를 생각했다.
10년 전 이강진이 어떤 선택을 했을지는 뻔하다. 그 상황에서 몬스터를 전멸시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니 본인을 소멸시키는 게 가장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선택이다.
인류에게는 축복이나 이강진에게는 비극이었다.
윤서는 자꾸 떠오르는 이강진과 이도민 그리고 수많은 리벤저의 생각에 괴로웠다.
왜 그들이 그토록 비참해야 했던 건지. 정의와 희생, 이 모든 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아니, 의미가 있긴 한 걸까?
세상은 이런 식이다. 언제나 누군가의 희생으로 평화가 유지된다.
우주의 섭리이므로 불공평하다고 말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런 불공평한 세상이 지속되는 게 맞는 걸까?
일방적인 희생으로 정의와 평화를 수호한 영웅.
그럼 그 영웅은 그것으로 만족할까?
삐유삐유.
햅쌀이가 윤서의 무릎 위에서 날개를 폈다가 접었다가 하며 바지런히 움직였다. 이 조그만 것이 여기도 쓰다듬어 달라, 저기도 쓰다듬어 달라 난리였다. 윤서는 씁쓸한 마음으로 햅쌀이를 쓰다듬었다.
잠시 후 권지한이 큰 소리로 외쳤다.
“검은 포탈은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어차피 저 포탈은 가이아 스킬 보유자만 진입 가능하고, 나와 채윤이 형은 만만의 대비를 마친 상태거든. 이제 여러분이 할 일은 던전 부산물을 수집하는 일입니다. 부상자는 먼저 나가고, 체력이 남은 사람들은 부산물 수집 시작하세요. 힘들게 공략했으니 여기 있는 건 최대한 갖고 나가야지. 다들 도등수 헌터의 지시에 따라서 부지런하게 움직이세요.”
권지한의 말이 끝나자 도등수가 바로 이어서 말했다.
“우리 인벤토리와 아공간은 텅텅 비었고 가지고 들어온 값비싼 무기도 전부 소진했습니다. 이 레드-블랙 던전의 모래 알갱이 하나까지 전부 인류의 자산입니다! 우리는 힘겹게 지구를 지켜냈고, 이제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이걸 전부 가져가야 합니다. 세상은 황금이 전부입니다. 부산물이 전부입니다! 이것들이 지구를 풍요롭게 만들 겁니다. 얼른 움직입시다!”
부산물 만능 주의에 찌든 헌터들이 갑자기 물욕 가득한 얼굴이 되어 분주히 움직였다.
나가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고, 신전을 죄다 뜯어 낼 기세로 부산물을 수입했다.
윤서는 이건 좀 관측자에게 보이기 부끄럽다는 실없는 생각을 했다.
생명의 신이 고생했다고 말합니다.
죽음의 신이 죽지 않아 유감이라고 말합니다.
마음 한가운데가 공허한 와중에 이제야 가호 신들의 클리어 축하 메시지를 보내왔다. 윤서는 슬슬 죽음의 신이 귀여우려고 했다.
생명의 신이 상태창을 확인하라고 말합니다.
상태창? 윤서는 의아한 마음으로 시스템 프로필을 띄웠다.
‘…….’
그는 상태창의 하단에 있는 마력량을 재차 확인했다.
삐유?
쓰다듬던 손이 멈추자 햅쌀이가 고개를 갸웃하며 돌아봤다.
윤서는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눈앞이 하얘지는 느낌에 아예 눈을 감으려다가 주위의 많은 사람을 의식하면서 다시 손을 내렸다.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가장 처음 든 생각은 ‘왜?’였다. 눈을 빠르게 깜빡이면서 지금까지의 일들을 떠올렸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