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183)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183)화(183/195)
#164
그렇게 무기를 만들어 냈으나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우선 첫 번째 문제. 이 아이템화된 반물질 폭탄의 등급이 너무 높다는 점.
어느 정도 예상했던 문제라 권지한은 모든 경험치를 인벤토리 넓히는 데에 털어 넣고 있었고, 마침내 단 한 개의 반물질 폭탄을 넣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 결정적인 문제가 남아 있었으니, 바로 폭탄을 투하하는 사람의 안전이 보장이 안 된다는 점이었다.
권지한은 이 안전 문제가 해결되면 어떤 던전이든 당장 들어가서 던전 경계를 부숴 버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대던전 계시가 내려오고… 검은 던전의 존재를 알게 되었으며… 서채윤을 찾아냈다.
윤서는 대던전에서의 일을 얘기하면서 드래곤의 7000만 톤 브레스를 막아 냈다고 아무렇지 않게 밝혔다. 마력 고갈에 만신창이가 된 상태에서도 그 정도의 실드를 펼치니 테라 톤급의 폭탄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연구자들은 판단했다.
윤서는 자초지종을 듣고 그들의 연구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반물질 폭탄은 완성작이 단 한 개뿐이라서 실전 테스트를 하지 못했고, 대신 수소 폭탄을 이용했다. 두 사람이 함께 던전에 들어가서 테스트한 결과 윤서가 <딥 필드>를 100% 펼쳤을 때, 1테라 톤급의 수소 폭탄을 막아 내고도 내구도가 99% 남는다는 결과가 나왔다.
만약 검은 던전의 진입 조건이 예상과는 다르게 ‘가이아 스킬 보유자’가 아니라면 실드 스킬 보유자들을 전부 데리고 들어가면 된다. ‘가이아 스킬 보유자’라는 진입 조건이 있다고 하더라도 권지한이 <딥 필드> 안에서 <골든 타임>까지 사용하고, 윤서도 <딥 필드>를 펼친 후의 마력으로 다른 실드를 사용하면 이론상으로 둘의 생존에는 문제가 없었다.
<딥 필드>를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50시간, 폭탄 투여 후의 후폭풍은 그보다 더 길겠지만, 그때는 이미 검은 던전이 클리어된 후라 출구가 나타났을 터이므로 빠져나오면 되는 것이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돌렸을 때 최소 90%~최대 99% 확률로 성공한다는 결과가 도출되었고, 이건 그냥 성공한다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럼에도 윤서는 불안했다. 과연 일이 이쪽 뜻대로만 굴러갈까. 그 반물질 폭탄은 주먹만한 작은 크기던데 실전에서 정말로 잘 터져줄까? 그때까지 내가 <딥 필드>를 100% 펼칠만한 마력이 남아 있을까? 정말 모든 일이 작전대로 잘만 진행될까….
그리고 현재.
마력 8700/9999
<딥 필드>를 100%로 펼치려면 9000의 마력이 필요하다.
윤서의 마력 회복 속도가 다른 S급들보다 빠르다고는 하지만 남은 시간에 300을 채우는 건 불가능했다.
<딥 필드>를 펼치기 위한 최소한의 마력은 7000이나 이 경우는 50%밖에 펼치지 못한다. 8700의 마력으로는 대략 93%. <딥 필드> 93%의 시뮬레이션을 돌렸을 때 둘의 생존율은 절반에도 미치지 않았다. 100%의 내구도가 아니면 무의미한 것이다.
윤서는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가를 생각했다…….
드래곤 안에서 너무 오래 버틴 건지도 모르겠다. 그때 한순간 이성을 잃었다. 갤럭사이아 리더에게 사용한 <보호하는 베일>이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인벤토리를 한번이라도 더 사용한 것이? 그 사소한 행동들이 이런 결과를 부른 걸까?
그렇게 생각하다가 이건… ‘잘못된 일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검은 던전에는 두 개의 선택지가 있으니까.
‘소멸’이라는 선택지가 없었다면 마력이 충분했다고 하더라도 권지한과 둘이서 들어가 90%~99% 확률의 생존에 걸어야 했겠지만, 이제 강제적으로 선택하게 된 남은 길에서는 생존 가능성이 100%가 된 것이다. 단 한 명의 생존일지라도….
처음엔 허무하고 허탈했다.
복수에도 성공했고, 진실도 알게 되었다. 대던전을 나가서 하고 싶은 것들도 많이 생겼다. 초코크랙쿠키 말고도 굽고 싶은 게 한가득이었고, 권지한과 둘이서 오르고 싶은 산도 많았다. 어린 나이에 각성해서 하늘 한번 느긋하게 올려다보지도 못하고 살아온 녀석에게 이것저것 많은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었다.
함께 하고 싶었다.
다채로운 삶이란 걸 함께 즐기며 살아가고 싶었다.
이제야 그런 기분이 들었는데… 이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마지막에 이런 상황이 생긴다는 건 정말 허탈했다.
평생 울분을 억누르며 살다가 단 한번 이성을 잃었더니 이런 결과가 돌아온다는 게 원망스러웠다.
그럼에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건 결코 나쁜 일이 아니었다.
이것이 윤서의 결론이었다.
‘권지한’이 스킬 <가이아의 눈>을 사용합니다.
‘권지한’이 당신의 시스템 프로필을 보고 있습니다.
권지한이 윤서의 마력 총량을 확인했다. 그는 잠깐 입술을 깨물었다가 얼른 말했다.
“괜찮아, 형. 그 정도면 충분해. 가호 신들도 우리를 도와준다고 했어. 그 정도면 포기할 필요 없어.”
권지한이 불안한 얼굴로 윤서를 설득했다. 윤서는 손을 뻗었다.
“햅쌀아, 이리 와.”
삐유.
“햅쌀이가 왜 필요해? 뭘 어쩌려고? 싫어. 내가 데리고 있을 거야.”
권지한이 작은 새를 깃털 하나 안 보일 정도로 감쌌지만, 윤서는 햅쌀이를 해제한 후 단검으로 꺼냈다. 윤서가 단검을 단단히 쥐자 권지한이 움찔했다.
단검을 쥔 윤서는 허리에 양손을 얹고 몸을 풀었다.
윤서는 여유로웠으나 권지한은 아니었다.
“형, 아니라고 말 해.”
“언젠가는 그쪽과 싸우게 될 거라고 생각하긴 했습니다.”
“이러지 말자. 제발. 난 형이랑 싸우기 싫어.”
“내가 혼자 들어가려면 그쪽이 막을 테고. 나는 그쪽이 들어가려고 하면 막을 테니까. 힘으로 서로를 설득하죠.”
“아, 제발.”
권지한이 입술을 깨물며 ‘천해’를 꺼냈다. 대번에 분위기가 팽팽해졌다.
권지한의 얼굴에는 최종 보스와 전투할 때보다 더 긴장감이 감돌았다.
생명의 신이 가족끼리 싸우지 말라고 말합니다.
생명의 신이 서로 설득하라고 말합니다.
죽음의 신이 당황합니다.
죽음의 신이 어쩔 줄 몰라 합니다.
권지한은 공격 의사가 없다는 듯 양손을 내리고 빠르게 말했다.
“형,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선택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 봐. 내구도 93%로도 우리 생존율이 절반이 넘어. 가호 신들도 도와주겠다고 했어! 우리는 무조건 클리어할 거야. 지금 소멸시켜 봤자 10년 후에 또 나타나는데, 이런 식으로 10년마다 한 명씩 희생시킬 수는 없잖아.”
“10년 후 인류는 지금보다 훨씬 강해져 있겠죠. 내가 겪었듯이.”
“형은 정의롭지 않다면서. 희생 같은 거 싫어하는 거 아니었어?”
“당신은 약자를 지키고… 나는 영웅을 지키는 겁니다.”
“형이 영웅이야! 왜 형 스스로는 보호하지 않는 건데. 씨발, 형이 희생해서 평화를 찾으면 다 무슨 소용이야? 그딴 정의 필요 없어!”
권지한이 평정심을 잃고 소리쳤다.
그건 큰 실수였다. 빈틈을 본 윤서가 곧바로 돌진해 왔다. 권지한은 몸을 돌려 피한 후 바로 검은 포탈로 달리려고 했다. 그러나 몸이 무언가에 사로잡힌 듯 움직여지지 않았다. <염력>이라는 걸 단번에 깨달은 권지한이 <포식자>를 사용해 스킬 효과를 소멸시켰다. 곧바로 눈앞에 검날이 다가왔다.
챙! 채앵! 권지한의 검과 윤서의 검이 부딪쳤다가 떨어지고 다시 부딪쳤다. 공방전을 벌이는 동안 윤서는 끊임없이 <염력>을 사용해 왔다. 권지한의 사지를 제어했다가 안 될 것 같으면 주변 사물을 끌어들여서 공격했다.
권지한의 몸이 주춤주춤 뒤로 밀려났다.
이건 당연한 일이었다. 권지한이 체격과 완력이 월등하다고는 해도 윤서는 노련한 헌터였고, 무엇보다 윤서는 권지한의 팔다리 하나쯤은 베어 낼 기세로 싸우고 있었다.
그러나 권지한은 그러지 못한다.
자신은 치유가 가능하지만 윤서는 아니니까.
윤서의 팔다리 하나쯤은 잘라 버릴 각오로 싸워야만 한다. 윤서가 죽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그럼에도 권지한은 그런 각오가 서지 않았다.
그 서채윤을 어떻게든 상처 없이 제압하려고만 하고 있으니 권지한이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퍼억! 윤서가 조종한 바위가 날아와서 권지한이 급하게 팔을 들어 막았다. 살갗이 찢어지고 피가 흘렀다. 윤서는 눈도 깜빡하지 않고 다시 달려들었고, 권지한이 완력만으로 윤서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 과정에서 윤서의 얼굴에 ‘천해’의 검날이 스치고 오른쪽 뺨에 핏줄기가 흘렀다.
“……!”
권지한이 멈칫하는 순간.
윤서가 마력을 끌어 올렸다.
스킬 <세이프존>을 사용합니다.
푸른 실드가 동그란 돔을 만들며 권지한을 가뒀다.
“젠장!”
권지한은 검으로 실드를 부수려는 헛된 시도를 해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곧바로 스킬을 사용했다.
‘권지한’이 스킬 <갈증>을 사용합니다.
검 끝에서 맺힌 붉은 빛이 실드에 명중하고 파지직 균열이 갔다. 그가 실드를 부수기 전 윤서가 마지막 방법을 사용했다.
스킬 <가이아의 대지>를 사용합니다.
권지한과 10m 거리에 있던 출구 포탈이 순식간에 권지한의 등 뒤로 다가왔다. 권지한이 출구 포탈의 바로 앞에 서게 됐다고 표현해도 맞았다.
<가이아의 대지>의 능력은 여러 개가 있는데 윤서가 주로 사용했던 건 ‘감지’와 ‘이동’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사용한 건 ‘축지’. 땅을 줄여서 먼 거리를 가깝게 하는 것.
짧은 거리밖에 되지 않으면서 쓸데없이 마력 소모가 심해 실전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데, <딥 필드> 만든다고 마력이 남아 사용할 수 있었다.
스킬 <염력>을 사용합니다.
“형, 안 돼. 서채윤! 제발!”
권지한은 <포식자>, <타락한 영웅의 날개> 등 온갖 스킬을 펼치면서 어떻게든 <염력>에 저항했다. 그러나 그 스킬들은 윤서의 마력에 억눌려 제대로 펼쳐지지 않았다. 그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실력 차이였다.
권지한의 발뒤꿈치는 이미 출구 포탈에 닿아 있었다.
포탈의 힘이 권지한에게 적용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