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184)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184)화(184/195)
#165
윤서는 <염력>을 해제했다. 그가 굳이 사용하지 않아도 권지한은 출구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포탈의 힘 때문에 권지한이 쓰러졌다. 그래도 권지한은 포기하지 않고 양손으로 땅을 붙잡았다. 흙과 풀, 돌부리 등 가리지 않았다. 어찌나 강한 힘으로 붙잡았는지 손톱이 부러지고 피가 새어 나왔다.
“안 돼, 이건 아니야. 씨발, 이건 아니란 말이야!”
권지한의 얼굴은 절박함과 절실함, 분노와 공포, 두려움, 슬픔 온갖 감정이 드러나 있었다.
윤서는 출구로 ‘존재하는 넋’을 던졌다. 햅쌀이가 권지한의 머리 옆을 스치고 사라졌다.
“햅쌀이 잘 돌봐주세요. 당신의 스킬로 귀속 해제하면 될 겁니다.”
“서채윤! 윤서 형. 제발 이러지 마. 난 형이 없으면, 형이 희생한 세계에서는 못 살아. 나는 살 수 없어. 이딴 건 정의가 아니야.”
“그건 나와 마찬가지네요.”
“제발, 제발 그런 짓 하지 마. 내 손을 잡아 줘. 응? 같이 던전을 공략하자. 아니, 그냥 내가 희생할게. 내가 소멸할래. 어차피 난 여기 나가서도 못 살아. 죽을 거야! 협박이라고 생각해도 좋아. 난 어차피 죽어. 형은 날 못 지킨 거야!”
“당신은 그러지 못할 겁니다. 내가 유언을 남길 거라서요.”
“아, 형. 안 돼…!”
권지한은 이제 어깨 위만 빼고 전부 포탈로 넘어간 상태였다. 잘생긴 얼굴이 눈물범벅이 되어있었다. 가호 신들이 뭐라 뭐라 시끄럽게 떠들어 댔으나 윤서의 눈에는 권지한의 얼굴만 들어왔다.
처음 만났을 때는 건방지다고 생각했고… 두 번째도 건방지다고 생각했고…. 세 번째도….
…….
멋있는 녀석이다. 용감하고. 용맹하고. 때로는 귀엽고. 심지가 단단해서 잘 흔들리지 않는다. 약자의 비참함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고, 강자의 책임감에 대해 잘 알고 있고… 강자가 된 후에도 약자의 처지에 대해 잊지 않았다.
이런 사람을 알게 되어서…….
세상에 이런 사람이 남아 있다는 걸 알고 떠나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그가 없었다면 윤서는 마지막 순간까지 세상에 대한 환멸을 가득 품은 채 눈을 감았을 것이고, 그건 정말 비극적인 일이었을 테니까.
“우리 햅쌀이 잘 돌봐주고… 남은 유언들 당신이 대신 들어주세요. 스쿼트랑 러닝…. 쿠키 굽기, 낚시, 등산…. 밥도 스무 번씩 꼭꼭 씹어 먹고요. 항상 채소도 충분히 먹고, 그리고….”
권지한은 이제 거의 포탈에 잠식되었다. 그가 울며불며 절박하게 고함을 내질렀지만 윤서는 상관하지 않았다.
“그 후에 죽고 싶으면 죽어도 되니까…. 나는 죽고 싶은 사람 못 죽게 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거든.”
윤서는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어떻게든 미소를 만들어 보였다. 권지한의 눈에 핏발이 잔뜩 서 있었다. 마지막 감정이 배신감과 분노인 것 같아 윤서는 마음이 쓰렸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안녕.”
윤서의 인사가 끝나고… 권지한이 출구 포탈 안으로 완전히 빨려 들어갔다.
“…….”
윤서는 그제야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살고 싶다.
권지한과 햅쌀이와 그리고 다정한 동료들과.
그러나 그들을 위해서 윤서는 이 선택을 해야만 했다.
10년 후에는 누구도 희생하는 일이 없기를. 10년 만에 이렇게 수월하게 대던전을 깰 정도이니 또다시 10년이 지나면 수월하게 검은 던전도 클리어할 수 있을 것이다.
윤서는 검은 포탈로 천천히 걸어갔다.
관측자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생명의 신과 죽음의 신은 조용했다.
자꾸 권지한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렇게 눈물범벅에 배신감과 분노가 뒤덮인 얼굴이 마지막이라니. 너무 가혹하다. 나한테도 그 녀석에게도.
다리가 떨렸다. 눈물이 계속 흘러나와서 닦는 것도 포기했다.
‘나랑 싸우자. 싸워서 날 이기면 네 소원을 들어주지.’
‘여기서 혼자 뭐 해?’
‘지켜야지, 어떡해. 이게 정의인데.’
‘너 엉덩이 되게 탱탱하다.’
“…….”
‘엄청 탄력 있고. 군살도 없고 되게 탄탄하던데.’
권지한과의 첫 만남부터 회상하다가 쓸데없는 대사가 떠올라 윤서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게 너무 강렬해서 다른 말들은 떠오르지도 않았다.
안녕… 권지한. 햅쌀이 잘 부탁해. 이왕이면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아.
정말 미안해….
미안하다는 말 말고는 도무지 다른 말은 할 수 없었다.
내게 유언을 남긴 리벤저들의 마음이 이러했을까.
상당 부분 비슷하겠지만, 분명 다를 것이다.
왜냐하면 나에게 권지한은 이미 동료와 전우 그 이상이 되었으니까.
윤서는 의미없는 생각을 하며 검은 포탈에 몸을 던졌다.
***
“안 돼, 안 돼! 형!”
권지한이 사지를 허우적대며 발악했다. 그는 평정심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발버둥쳤다.
젠장, 빌어먹을. 어떡하지? 이제 어떡해야 하지? 형한테 가야 해. 무슨 수단을 쓰더라도 윤서에게 가야 해. 안 돼. 제발. 가이아. 가호 신들! 씨발, 뭘 보고만 있는 거야. 날 형한테 돌려보내라고. 돌아가야 한다고!
권지한이 이성을 잃고 소리쳤다.
좀 · · 진 정 해
권지한은 눈을 번쩍 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빛 한 줄기 없는 어둠 속에서 허우적거림을 멈췄다. 그는 출구 포탈을 나가는 느낌이 어떤지 잘 알았다. 신체가 흩어졌다가 재구성되는 느낌.
그러나 지금은 그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곳은 출구 포탈 안이다.
권지한은 바로 알아챘다.
어떻게 된 일인지 몰라도 지금 자신은 대던전과 지구의 중간에 걸려 있었다.
그리고 방금 분명 말 거는 듯한 메시지를 봤는데, 가호 신인가? 생명의 신? 가이아? 누구든 상관없다.
권지한은 다시 외쳤다.
날 돌려보내 줘!
형한테 돌아가야 해!
진 입 포 탈 재 구 성 시 간
0 0 : 0 0 : 3 5
마치 좀 진득하니 기다리라고 하는 듯한 메시지가 눈앞에 떴다.
35초. 34초. 33초.
시간이 흘러갔다.
…….
권지한은 심호흡하며 침착해지려고 노력했다. 메시지는 아무 말이 없었다.
노력이 무색하게도 초조하기만 했다. 돌아가면 이미 윤서가 선택한 후일까 봐 너무 불안했다. 유언을 들어주라고? 그딴 가당찮은 말을 하고 있다. 동료들의 유언을 들어주기 위해 죽고 싶어도 죽지 않는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이 당신 말고 또 있을까. 나는 바로 죽을 것이다.
형의 희생으로 유지되는 세상이라면 보호하고 싶지 않아.
입술에서 핏물이 새어 나왔다.
진 입 포 탈 재 구 성 시 간
0 0 : 0 0 : 1 2
진 입 포 탈 재 구 성 시 간
0 0 : 0 0 : 1 1
진 입 포 탈 재 구 성 시 간
0 0 : 0 0 : 1 0
한참 지난 것 같은데 아직도 10초나 남았다.
숫자만 보면서 둥둥 떠 있는데 엉망진창이 된 손가락 끝에 무언가 걸리는 게 느껴졌다.
‘존재하는 넋’이었다. 푸른 보석이 환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래, 너도 화났겠군.
권지한이 손잡이를 힘주어 쥐었다.
그때였다.
안 녕 햅 쌀 이 · · ·
권지한이 고개를 번쩍 들어 올렸다.
그는 그 순간 바로 알아챘다.
당신은.
가이아 시스템도, 가호 신 같은 것도 아니었어.
이 사람은.
심장이 쿵, 쿵 뛰었다.
메시지가 말해 왔다.
윤 서 의 특 성 을 생 각 해 봐
내 친 구 잘 부 탁 해
권지한이 입술을 열었다. 무언가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한 글자도 내뱉기 전에 시간이 다했고… 권지한은 몸이 흩어졌다가 재구성되는 감각을 느꼈다.
그리고….
눈을 뜨자 그는 대던전에 돌아와 있었다.
새카만 색의 포탈 앞에.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제발 늦지 않았기를. 권지한은 검은 포탈로 몸을 내던졌다.
***
던전에 진입했습니다 : 인원 1명 : 선택형 던전
축하합니다. 당신은 가이아 시스템의 최종 관문에 들어선 두 번째의 인류입니다!
축하는 무슨.
윤서는 욕을 집어삼켰다.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사방이 어두웠으나 이곳이 숲인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이곳엔 어떤 몬스터가 나올까. 드래곤 같은 게 수천 마리?
어디선가 끄으으어어어어 하는 괴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지긋지긋하게 들어온 몬스터의 괴성과는 달랐다.
끄으으어어어어어어어어어-.
윤서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듣자마자 온몸에 소름이 돋는 이 끔찍한 소리는… 몬스터 같은 게 아니다. 그 존재들이다.
어긋난 존재들.
어둠의 영역에서 온 것들이 울부짖고 있었다.
강진이 형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윤서는 그런 생각을 했다가 곧 고개를 저었다.
무섭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죽음을 각오했으니까.
그렇게 생각했다가 다시 고개를 저었다.
그럼에도 무서웠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나도 두려우니까.
“…….”
윤서는 몇 발짝 걷지 않고 멈춰 섰다.
들어오면 바로 선택해야 할 줄 알았는데 아무런 시스템 창이 뜨지 않고 있다.
윤서가 시스템 창을 노려봤다.
가이아 시스템이 입력 중입니다 · · ·
입력 중?
윤서가 말했다.
“난 벌써 선택했어.”
가이아 시스템 알림!
· · ·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사람이 기다릴 줄 알아야죠.
뭐?
생명의 신이 날씨가 참 좋다고 말합니다.
죽음의 신이 식사는 했냐고 묻습니다.
이것들이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시스템이 메시지를 입력 중입니다 · · ·
차 한 잔의 여유를 가지세요
윤서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남은 기껏 죽음을 각오하고 왔건만 신이란 것들은 여유나 부리고 있다.
가만히 앉아 있으려니 당연하게 권지한이 떠올랐다.
…잘 치료받고 있겠지. 손톱이 다 빠졌던데. 날 많이는 원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햅쌀이 화가 많이 났을 텐데. 권지한이 귀속 해제 스킬이 있어서 다행이야.
박수빈, 수재희, 홍의윤, 화심, 라 비지나…. 다정한 낙엽 사람들. 내년에 만나기로 한 옛 친구. 결국 <계약서>가 해제될 태재식. 많은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만약 그들에게 마지막 말을 남길 수 있다고 하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권지한과 햅쌀이를 잘 보살펴 주세요.’
그들에게 잔인하다 해도 어쩔 수 없다.
윤서의 머리와 가슴에 가득 찬 건 그 둘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