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185)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185)화(185/195)
#166
가만히 둘만 떠올리고 있으려니 더 힘들어진 윤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경 안정제 약병을 꺼내 보자 알약이 반쯤 차 있었다. 이게 마지막이구나, 하면서 세 개를 물도 없이 삼키고는 허공을 향해 말했다.
“이제 선택할게요.”
생명의 신이 근처 구경 좀 하라고 말합니다.
죽음의 신이 느긋하게 산책을 즐기라고 합니다.
가
가?
윤서가 미간을 좁히고 보고 있으니 두 번째 글자가 나타났다.
가이
그렇게 30초 후.
가이아 시스템 알림!
놀랍게도 딱 아홉 자 올라왔다.
윤서는 갑자기 입력이 어마어마하게 느려진 가이아의 메시지를 가만히 기다렸다.
이
이곳
.
.
.
이곳은 선 택형 던전입니다.
공략과 소몀ㄹ · · ·
오타 수정하겠습니다.
안 해도 되는데. 알아들었는데.
가
첫 글자부터 다시 시작하냐고.
생명의 신이 당신의 독촉 때문에 가이아가 실수했다고 말합니다.
죽음의 신이 사람은 항상 여유가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생명의 신이 앉아 있으라고 말합니다.
죽음의 신이 한숨 자라고 말합니다.
“…….”
윤서는 묘한 느낌에 눈을 가늘게 뜨고 로그를 읽었다.
가이아나 가호 신들이나… 시간을 끄는 것 같다.
무언가를 기다리면서 시간을 끄는 것 같은데. 설마 어긋난 존재가 다가오길 기다리는 건가? 선택하기 전 어긋난 존재한테 죽임을 당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순간 소름이 돋았다.
신들이 지구의 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윤서가 다시 가이아 시스템을 재촉하려는 그때였다.
“……!”
윤서는 강한 힘에 어깨가 붙들려 휘청거렸다. 뒤에서 뻗어 나온 단단한 팔이 그를 돌려세웠다.
“형.”
서늘하고 거친 음성이 들려왔다. 윤서가 급히 돌아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권지한?”
권지한이 눈앞에 있었다.
지구에 있어야 할 권지한이 아직 사라지지 않은 검은 포탈을 타고 들어와서 흉흉한 눈으로 저를 노려보고 있었다.
“다시는.”
“…….”
“다시는 그런 짓 하지 마.”
솜털이 찌릿찌릿할 정도로 강렬한 분노가 느껴졌다. 윤서가 입술을 덜덜 떨었다.
“왜… 왜 여기에.”
그때였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던전이 닫히고, 시스템 메시지가 올라왔다.
가이아 시스템 알림!
이곳은 선택형 던전입니다.
공략과 소멸 중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공략
소멸
윤서가 황망함에 넋을 잃은 사이 권지한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우리는 던전 공략을 선택한다!”
선택 완료 : 공략을 선택했습니다.
시간 제한 없음
반드시 살아남으세요!
순식간에 선택이 되어 버렸다.
윤서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생각했다.
그러나 저를 아프도록 꼭 붙잡고 있는 권지한을 보면 이건 현실이 맞았다. 멍하니 올려다보는 윤서를 단단히 붙잡은 권지한이 음산하게 말했다.
“대답해.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어떻게…. 분명 나갔는데….”
“대답해.”
“…….”
“대답하라잖아!”
분노와 배신감, 상처 등 모든 감정이 폭발하듯이 그의 몸에서 마력의 파동이 일어났다. 숲 저편이 흔들리고 끄으으으어어어어 하는 소리가 잠시 멎었다.
적막 속에서 권지한이 으르렁거리듯이 낮은 어조로 분노를 토해 냈다.
“감히 날 두고 죽으려고 해? 감히 내게 유언을 남기고 자살을 해? 그게 어떤 기분인지 형도 잘 알면서! 어떻게 나한테…!”
그 원망에 윤서도 서서히 정신을 차렸다.
“…너 미쳤어?”
“뭐?”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와! 대체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합리적으로 행동하라더니 정작 너는 전혀 그러질 못하잖아! 여길 들어오면 어떡해!”
“지금 형이 나한테 화를 내?”
“그럼, 젠장. 내가, 내가 왜. 내가 어떤 마음으로 이곳에 왔는데. 왜 네가 여기 들어오냐고!”
윤서의 고함이 적막을 가로질렀다.
권지한의 분노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으나 윤서의 얼굴에 드러난 감정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윤서의 갈색 눈에서 눈물이 뚝, 뚝 흐르고 있었다.
“나는, 나는 아까 가이아 스킬까지 사용해서 <딥 필드>를 못 써!”
“…….”
“널 보호할 수가 없단 말이야…!”
“…….”
“여길 들어오면 어떡해. 왜 네가 여기를….”
윤서의 몸에서 힘이 풀렸다. 권지한이 붙잡고 있지 않았다면 그는 그대로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형.”
권지한은 아직도 화가 났으나… 지금은 화를 낼 때가 아니란 걸 알았다. 권지한은 윤서를 끌어안았다. 윤서는 아무런 저항 없이 인형처럼 안겨 왔다.
이렇게 온몸으로 안고 있으니… 새삼 S급 헌터답지 않게 작은 몸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작은 구원자’라는 칭호가 붙은 거겠지만.
권지한은 떨고 있는 윤서를 끌어안고서 등을 토닥였다.
윤서는 권지한의 어깨에 이마를 묻고서 올라오는 울음을 눌러 참았다.
어긋난 존재들의 괴이한 울부짖음은 어디선가 들려왔지만 두 사람은 세상에 서로만 있는 것처럼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감정을 수습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그들을 공격하는 존재는 없었다. 가호 신들도, 가이아 시스템도 조용한 지금. 두 사람의 세상엔 오직 둘만이 존재했다.
***
윤서의 절망이 옅어지고, 권지한의 분노도 조금 가라앉은 후….
생명의 신이 헛기침합니다.
죽음의 신이 노려보고 있습니다.
가호 신들의 메시지 때문에 길고 긴 포옹이 끝났다
두 사람은 근방의 그루터기에 앉아서 현실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먼저 윤서는 권지한이 내내 손에 쥐고 있던 단검을 받아 들었다. 푸른 보석이 번쩍번쩍하고 있었다. 차마 동물 형태로 변하게 할 수가 없었다. 대체 얼마나 쪼아 대겠는가….
“괜찮아, 형. 우리는 안 죽고 이 던전을 클리어할 거야.”
윤서의 심란한 표정을 보며 권지한이 말했다. 윤서는 미간을 확 찌푸렸다.
“대체 무슨 자신감입니까.”
“왜냐하면 나에게는 아직 5개의 쿨 타임 포션이 남아 있….”
“진짜 미쳤어?”
“미쳤냐니 말이 심하네. 내가 형의 이상형이라는 어필을 꾸준히 할 뿐인데.”
“충분히 통했으니까 그만하세요.”
“오…. 통했군. 그럼 형도 나 좋아해?”
“당신 내 이상형 맞고, 좋아합니다. 전 지금 마력이 30% 남았습니다. 그나마 <수호의 궤>만 가능한데 반물질 폭탄 터뜨리고 몬스터 전멸하기 전까지 우리가 어떻게 살아남습니까?”
윤서가 심란하고 걱정스러워 죽겠다는 듯 말했다. 그때 권지한이 윤서의 뺨을 손으로 감쌌다. 그러고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윤서에게 기습적으로… 입술을 갖다 댔다.
아주 살짝 입술이 닿았다가 떨어졌다.
생명의 신이 정색합니다.
죽음의 신이 환호합니다.
생명의 신이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니라고 말합니다.
죽음의 신이 이 소식을 널리 알립니다.
관측자가 웃고 있습니다.
“지, 지금 무슨….”
윤서는 눈을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만큼 동그랗게 뜬 채 권지한을 쳐다봤다.
권지한은 다시 본래의 자세로 돌아와 말했다.
“형의 특성을 생각하랬어.”
“…뭐야?”
“형의 특성을 생각하라는 힌트를 받았다고.”
윤서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요동치는 눈동자에는 개운한 웃음을 짓고 있는 권지한의 모습이 담겼다.
현 사안의 우선순위를 생각하는가 싶던 윤서가, 머릿속에서 아직 결론이 나오지도 않았는데 불쑥 내뱉었다.
“지금 저한테 뽀뽀했어요?”
“응. 우리 서로 좋아한다는 것도 확인했으니까 이제 연애하자. 연애할 때가 됐어.”
“…….”
“왜, 문제라도?”
“이거 사망 플래그인데.”
“그래서 거절한다는 거야?”
“거절은 아니고 일단 이건 클리어하고 나서 다시 생각해 보죠. 그것보다 제 특성이 뭐가 어쨌다고요? 누가 힌트를 줬다는 겁니까.”
“나도 이거 깨고 나서 말해 줄게.”
생명의 신이 이 연애를 반대합니다.
생명의 신이 이러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생명의 신이 우리는 피만 이어지지 않았을 뿐 가족이라고 말합니다.
죽음의 신이 청첩장을 돌립니다.
윤서는 너무 얼떨떨해서 시스템 메시지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죽음의 신이 청첩장을 돌리는지…는 지금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일단 이 던전을 나가야 한다.
그래야 이 자식이랑 진짜로 연애를 하든 말든 하지 않겠는가?
“제 특성이라면.”
윤서의 특성은 네 개였다.
생존, 창조자, 지키는 자, 선택된 자.
“창조자 특성을 말하는 거겠군요.”
“무조건 그거지. 형, 지금 이 순간 가장 원하는 게 있어?”
“당연히 던전 클리어입니다.”
“그게 아닐 거야.”
“…….”
“형이 정말로 바라는 건 던전 클리어가 아니야. 정말로 바라는 게 있어. 그게 무엇인지 생각해 봐. 그럼 분명히 특성이 발동될 거야.”
권지한의 잿빛 눈이 윤서를 다정하게 바라봤다.
아직 해결 방안이 나오지도 않았는데도 여유롭고 침착한 모습에 윤서도 차분히 고민에 잠길 수 있었다.
정말로 바라는 것. 윤서는 순간 ‘연애’ 같은 흐물흐물하고 달콤한 단어를 떠올렸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는 표정을 굳히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생명의 신이 주변을 경계하라고 말합니다.
굳이 생명의 신이 알려 주지 않아도 알고 있다.
이제 슬슬 평화가 끝난 건지. 괴이한 울음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형은 고민하고 있어. 내가 형을 지킬 테니까.”
권지한이 ‘천해’를 쥐고서 윤서의 앞에 섰다.
윤서는 그 등을 보면서, 말도 안 되는 말이지만, 작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은가?
그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한 행성을 지키기에는 너무 작지 않은가.
“…….”
맞은편 숲에서 어떤 그림자가 새어 나왔다.
끄으으어어어어어….
그 그림자는 깊고, 어두웠고, 괴이했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형태였다.
권지한은 어긋난 존재를 앞에 두고 조금도 흔들림 없는 자세를 유지했다.
그 등을 보며 윤서는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게 무엇인지 생각했다. 여러 개가 떠올랐다.
몬스터를 물리칠 강력한 공격 스킬.
반물질 폭탄을 막을만한 단단한 실드.
치유 내성을 해결해 줄 아이템.
몬스터 전멸.
던전 클리어와 지구의 평화.
‘…그런 게 아니야.’
윤서의 주위에 푸른 마력이 넘실거렸다.
윤서의 소망은 그런 게 아니었다.
그가 10년 전부터 정말로 바라 온 것은.
‘내 눈앞에서는 그 어떤 착한 사람도 억울하게 희생하지 못해.’
언제나 이것 하나였다.
착한 사람이 죽지 않는 것.
착하고 정의로운 사람이 억울하게 죽지 않는 것.
영웅의… 생존.
그때였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시스템 메시지가 쏟아졌다.
특성 ‘창조자’가 발동합니다.
특성 ‘창조자’, ‘생존’, ‘지키는 자’, ‘선택된 자’가 서로 감응합니다.
당신의 특성에 가이아 시스템이 응답합니다.
스킬 <작은 구원>을 획득합니다.
윤서의 눈이 푸르게 빛났다. 새로운 스킬의 설명이 저절로 의식 속에 흘러들어왔다.
<작은 구원> L
지금 이 순간 사용자가 가장 원하는 구원을 내려 주는 스킬.
윤서는 망설이지 않았다.
스킬 <작은 구원>을 사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