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188)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188)화(188/195)
#168
두 사람은 티켓을 들고 백색 포탈을 건넜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윤서가 전에 봤던 아무것도 없는 새카만 공간이 아니었다.
하얗고 붉고 노랗고 파란 별들이 수없이 펼쳐진 광활한 우주 그 한가운데.
두 사람은 그곳에서 여러 환영을 보았다.
태초에 있었던 어떤 작은 먼지의 폭발. 새로운 별의 탄생과 노쇠한 별의 죽음. 그리고 노쇠한 별의 죽음으로부터 다시 태어나는 수많은 어린 별들….
환영은 둘에게 어린 별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 줬다. 이 별에는 항성은 물론 행성도 포함되어 있었다. 새로 태어난 별은 성장하다가 끝내 문명을 이루지 못한 채 멈추기도 하고, 문명과 문명끼리 끝없는 전쟁을 하다가 멸망하기도 하며, 여러 위기를 극복하고 마침내 찬란한 문명을 꽃피우기도 한다.
그러나 찬란한 문명이 꽃핀 푸른 별의 앞길에는 행복만이 기다리고 있지는 않다. 어떤 별이 빛을 발하기 시작하면 반드시 어둠이 찾아왔다. 모든 별은 우주 바깥쪽에 각자만의 어둠의 영역을 가지고 있고, 이 어둠은 처음에는 흩어져 있다가 별의 빛이 찬란할수록 서로 응집되어 모여들고 일그러진 존재들을 생산한다. 어둠의 존재들은 별의 빛을 먹어 치우는데 그 식탐이 너무나도 강해서 하루아침 만에 별을 멸망시켜버리기도 한다.
수많은 어린 별들이 그들에게 다가오는 어둠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가 어둠에 먹힌 채 멸망했다. 어둠이 한번 퍼지면 막을 수 없어서 그 별이 속한 항성계는 물론 은하마저 삽시간에 어둠에 잠식되어 버렸다. 그러고도 어둠은 끝없이 퍼져 나가기만 했다. 온 우주를 전부 먹어 치우려는 것처럼….
권지한과 윤서가 그 끔찍한 광경을 바라보던 중 어떤 목소리가 말했다.
‘미리 알고 대비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관측자?”
그 목소리가 윤서 자신의 목소리였으므로 윤서는 그가 누구인지 바로 알아챘다. 사방엔 여전히 환영만이 가득했고, 관측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사라지는 별들을 안타까워한 어떤 신이 있었다.
최초의 먼지를 창조한 신
모든 신의 어버이
가이아
“가이아가 이 시스템을 만들었다는 건 알고 있어. 다른 설명을 해 줘.”
권지한은 대범하게도, 모습도 보이지 않는 뭔가 엄청난 존재에게 이딴 말을 했다.
우리는 가이아를 돕기 위해 태어난 우주의 관리자
성장 중인 어린 별을 어긋남으로부터 지키고 있다.
너희가 보았듯
별들이 아무리 찬란한 문명을 이룩했어도 어둠 앞에서는 무력하므로
“그럼 지구가 성장 중인 어린 별이라는 건가?”
지금까지는 그러했고
이제는 아니다.
환영의 모습이 바뀌었다.
신들이 어둠의 위협에 빠진 별들을 돕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시스템을 만들어서 그 별의 지적 존재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능력을 부여하고, 어긋난 존재들과의 전투에 적응할 수 있도록 몬스터를 만들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건 불가능하다’라는 우주의 기본 법칙에 따라 몬스터와의 전투에서 승리하면 더 좋은 아이템과 능력을 손에 넣을 수 있게 했다.
한마디로 게임에 적응하기 쉽도록 튜토리얼을 만들어 준 것이다.
어떤 어린 별은 튜토리얼조차 극복하지 못했지만, 어떤 어린 별을 성공적으로 튜토리얼을 클리어했다. 그 어린 별들에 이제는 지구가 포함되었다.
“결국 이 최종 관문이란 건 결국 우리를 테스트하는 것이었군. 지구가 어둠에 맞설 힘이 존재하는지.”
튜토리얼이자 테스트였다.
가만히 생각하던 윤서가 물었다.
“만약 실패했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였습니까?”
· · · · ·
순식간에 공간이 바뀌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별들은 없어지고 그 어떤 빛도 없는 새까만 어둠이 찾아왔다. 윤서는 바로 옆에 있던 권지한은 물론이고 제 몸조차 보이지 않았다. 윤서는 뭐라고 말을 했으나 제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소리를 전달해 줄 원자조차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거대한 허무의 공간을 보여 준 관측자가 다시 둘을 다채로운 우주 공간으로 불러들였다.
윤서와 똑같은 경험을 하고 왔을 권지한이 약간 창백해진 낯으로 윤서의 손목을 꽉 붙잡았다.
모든 별은 어긋남의 영역을 갖고
별이 각자의 어긋남을 관리하지 못하면
다른 별의 영역까지 잠식한다.
우리는 이런 별의 존재를 유지하게 둘 수는 없으므로
최종 관문에 실패하면
별의 자격을 박탈한다.
별의 자격 박탈, 그것은 곧 소멸을 의미했다.
“우주 곳곳에 있는 빈공간이 그렇게 만들어진 거였군.”
권지한이 탁한 음성으로 읊조렸다. 여전히 윤서를 꼭 붙잡은 채였다.
한번 어둠이 퍼지면 항성계, 은하, 은하군, 은하단… 그 너머의 우주까지 빠르게 잠식되니 그 판단이 옳은 걸지도 모른다. 그러나 윤서는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 별들에 살던 이들도 절박한 전쟁을 했을 텐데. 어느 위험한 던전에 1204명이 들어가서 단 4명만 살아나오는 경험을 그들 또한 겪었을지도 모른다. 아등바등 몬스터와 싸우면서 어떻게든 살려고 발버둥 쳤으나 결국 패배하고 소멸당하는 결말을 맞이한 이름도 모르는 수많은 별….
지금도 얼마나 많은 별이 치열한 전쟁을 하고 있을까.
“튜토리얼 시간이 너무 짧습니다. 지구로 치면 대격변 이후 2년 만에 최종 관문이 처음으로 나타났는데 이걸 어떻게 성공합니까?”
지구의 성장이
예상보다 빨랐던 것
보통은
충분한 기간을 둔다.
“튜토리얼 기간이 다른 별에 비해 짧아서 최종 관문은 선택형 던전으로 꾸린 건가?”
권지한이 타당한 질문을 했다.
· · · 지구만의 특별한 혜택은 아니었다.
우리는 모든 어린 별에게
언제나 별의 박탈을 벗어날 기회를 준다.
최종 관문을 통과하면
어긋남을 관리하는 별이 되고
희생을 선택하는 이가 존재한다면
한 번의 기회를 더 부여한다.
이는 아주 오래 전 · · ·
어느 별의 생명체가 제안한 것.
그런 용기는 쉬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우리 또한
경의를 표하며 제안을 수락했다 · · ·
어느 생명체의 제안…….
윤서는 희생이라는 선택지를 제안한 그 자의 마음을 이해했다.
절박했을 것이다.
이 검은 던전은 도저히 깰 수 있을 것 같지가 않고. 나의 모성에서는 수많은 이가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자비로워 보이지만 더없이 잔혹한 가이아 시스템을 설득할만한 것으로 희생을 얘기하는 그 마음은 얼마나….
얼마나 절실하고 간절했을까…….
“대단한 사람이네. 그 정도면 경의를 표할 만하지.”
권지한의 중얼거림에 윤서도 공감했다.
윤서는 마음속으로 이름 모를 그 존재에게 경의를 표한 후 신에게 물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튜토리얼을 통과했으니 몬스터도 강해질 텐데, 도우미 시스템은 없어지는 건가요?”
걱정하지 말아라.
너희는 이제 막 최종 관문을 통과했을 뿐
독립하기에는 아직 이른 별
관측자가 또 다른 풍경을 펼쳐 보였다. 각양각색의 검은 그림자들은 검은 던전에서 봤던 어긋난 존재들이었다. 관측자는 설명을 시작했다. 이 어긋난 존재들을 가이아 시스템이 몬스터로 만들어서 던전에 내보내는데, 그동안 지구가 싸워 온 몬스터들은 튜토리얼용으로 아주 약한 수준이었다.
이제 레벨 1의 세계에 정식으로 진입한 지구는 본래의 힘을 갖춘 어긋난 존재들과 싸우게 될 것이다. 또한, 튜토리얼이라서 막혀 있던 각성자의 능력 한계치도 더욱 성장할 것이다. 더 많은 가호 신들이 생기고, 더 많은 각성자가 태어나고… 지구는 우주와도 교류하게 될 것이다. 지구처럼 튜토리얼을 끝내 레벨 1에 진입한 다른 행성의 생명체들과도 교류하면서 지구의 세상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넓어질 것이다.
그렇게 싸우고, 성장하고, 평화를 쟁취하며 치열한 삶을 살다가….
언젠가는 너희가 이 일을 맡게 되리라
이 일이 무엇인지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수십억 년 동안
이 일을 해 왔다.
영웅의 탄생을 지켜보고
영웅의 죽음을 지켜보고
내가 가호하는 것의 죽음을 수만 번 겪었으나
내가 가호하는 이와 대화한 경험은
고작 다섯 번에 불과하지.
그중에 둘은 신이 되었고
다른 둘은 죽음을 맞이했으며
마지막 한 명은 내 눈앞에 있구나.
“…….”
관측자는 우주의 끝을 지키는 자
이 일은 무료할 수 있으니
너희는 다른 신이 되는 것이 좋겠다.
신이 돼서 다른 이들의 죽음을 지켜보며 오래오래 사는 것보다는 그냥 일찍 죽는 게 낫다. 윤서가 막 그렇게 말하려는 순간이었다.
“그럼 형은 영웅의 신이 좋겠네.”
권지한이 농담인 듯 진담인 듯 얘기하고는 눈을 접으며 웃었다. 윤서도 미소 지었다.
“당신은 약한 자의 신이 좋겠군요.”
“난 이제 약한 자의 신은 못 될 거야. 더 중요한 가치가 있는 존재가 생겨 버려서. 대신 영웅의 신의 신이 되고 싶은데.”
“신의 신이요?”
윤서가 웃었다. 그러나 속으로는 권지한이라면 진짜로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지구로 보내 주겠다.
더 궁금한 것이 있는가?
“가이아와 만날 수 있습니까?”
가이아는
어느 곳에나 계신다.
너희는
언제나 그분과 만나고 있다.
“가이아란… 가이아 시스템 그 자체를 말하는 겁니까?”
가이아 시스템은
가이아로부터 뻗어 나온 수많은 가지 중
어린 가지 하나가
열심히 관리하고 있지.
윤서는 미간을 좁혔다. 그래서 가이아란 대체 뭐란 말인데?
가이아로부터 수많은 가지가 뻗어 나왔다면, 그러니까… 권지한이 장난처럼 말했던 ‘신의 신’ 같은 존재라면 어렴풋이 이해가 되었다.
그때 관측자가 연이어 이야기했다.
최근에
새로운 어린 관리자가 추가되었다.
던전과 하나가 된 그 아이를
가이아 시스템으로도 분리하지 못하게 되어 · · ·
관리자로서 교육을 받는다더군.
“…….”
윤서가 눈을 크게 떴다.
던전과 하나가 되었다는 그 아이가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가슴 벅찬 사실에 도리어 힘이 빠졌다. 윤서가 휘청거리자 권지한이 얼른 부축했다. 윤서는 허리를 감싼 단단한 손길에 몸을 기대고는 허공을 향해 말했다.
“제 친구… 잘 부탁합니다.”
윤서의 말에 권지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왜냐하면 권지한은 아까 전 아주 똑같은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정말이지 두 사람은 친구가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