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layed My Death Because Of a Will RAW novel - chapter (189)
유언 때문에 죽는 건 잠깐 미뤘습니다 (189)화(189/195)
#169
가슴 벅찬 사실에 도리어 힘이 빠졌다. 윤서가 휘청거리자 권지한이 얼른 부축했다. 윤서는 허리를 감싼 단단한 손길에 몸을 기대고는 허공을 향해 말했다.
“제 친구… 잘 부탁합니다.”
윤서의 말에 권지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왜냐하면 권지한은 아까 전 아주 똑같은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정말이지 두 사람은 친구가 맞았다.
친구를 잘 부탁한다는 청에 관측자는 ‘ · · · ’이라는 글자로 대답을 대신했다.
더 궁금한 것은?
“그럼 가호 신들과는 만날 수 있어?”
권지한이 여전히 윤서를 끌어안은 채 물었다.
그 아이들은 바쁘다.
너희 말고도
수많은 어린 별들이 · · ·
만날 수 없다는 말 같았는데, 풍경이 바뀌었다.
윤서와 권지한 앞에는 하나의 행성이 있었다. 지구보다 커다랗고, 위성이 세 개 있는 곳.
“형, 저기 봐.”
윤서가 권지한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그곳엔 돔형 공간이 있었다. 두 사람은 좀 더 가까이로 날아갔다. 반투명하고 동그란 공간이 여러 개, 아니…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어떤 공간은 용암 위에, 어떤 공간은 바다 위에, 어떤 공간은 빙하 위에 만들어져 있었으며 크기는 제각각 달랐고, 그 안에서는 많은 생명체가 몬스터와 싸우고 있었다.
지구인도 보였고, 귀가 뾰족한 종족도 있었고, 인간과 거의 흡사한데 이마에 뿔이 달린 이들도 있었다. 정말 자그마한 종족, 아주 커다란 종족. 몬스터처럼 생겨서는 몬스터들과 처절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종족들….
프록시마 b는 어린 별들의 튜토리얼을 위해 만들어진 장소였다.
인류의 무기는 인상적이었지.
거의 저 경계를 깰 뻔했다.
“그래. 앞으로 인상적인 경험을 자주 하게 될 거야.”
권지한의 말에 관측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저렇게 많은 이들이 싸우고 있으니 윤서도 생명의 신, 죽음의 신과 만나는 건 포기했다.
어차피 앞으로도 계속 만나게 될 것이다. 이걸 만난다고 표현해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윤서는 문득 관측자가 가호했고, 지금은 신이 되었다는 그 둘이 생명의 신과 죽음의 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묻지는 않았다.
저들을 조금 더 가까이서
보게 해 주지.
관측자는 무슨 생각인지 쓸데없는 아량을 베풀었다. 권지한과 윤서는 돔 경계 바로 밖에서 내부를 구경할 수 있었다.
검은 뿔이 달린 커다란 몬스터들과 꼭 인간처럼 생긴 이들이 싸우고 있었다. 목소리는 들렸으나 처음 듣는 언어였다. 아무래도 인간과 비슷하게 생긴 이 종족들이 열세로 보였다.
“도와주고 싶은데.”
권지한이 중얼거렸다.
불가하다.
“아니, 씨. 도와주는 게 안 되면 왜 보여 주는 거야? 사람 찝찝하게 만드네.”
윤서도 동감했다.
전투는 다행히 인간과 비슷한 종족들의 승리로 끝났다. 만약 누구 하나라도 죽었으면 윤서는 내내 기분이 착잡했을 것이다. 하필 또 인간과 비슷한 생김새라서 더욱….
관측자가 다시 그들을 우주 공간으로 데리고 왔다.
다른 질문이 있는가.
권지한과 윤서가 시선을 마주쳤다. 윤서의 뜻을 읽은 권지한이 가볍게 말했다.
“없어. 이제 지구로 보내 줘.”
알겠다.
너희를 지켜보면서
인상적이었던 것이
하나 더 있었지.
관측자의 말이 끝나고 권지한과 윤서의 앞에 생뚱맞은 것이 나타났다.
캠핑카였다.
이것을 타고 가거라.
최종 관문 통과 축하 기념
우주여행
관측자가 사라졌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 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나 윤서와 권지한은 그가 사라졌음을 직감했다.
“관측자는 생각보다 개그 욕심이 있는 사람일까.”
권지한이 캠핑카를 보고서 말했다.
“글쎄요. 일단 들어가죠.”
“응.”
두 사람은 캠핑카에 올라탔다.
***
외관은 두 사람의 캠핑카와 같았으나 내부는 아니었다. 내부는 텅 비어 있었고 커다란 창문 앞에 창문 방향으로 놓인 긴 소파 하나가 있었다. 두 사람이 소파에 나란히 앉자 캠핑카가 출발했다. 바퀴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구르기 시작했다.
커다란 창문 밖으로 프록시마 b가 멀어지고 여러 행성과 밝은 항성을 지나자 곧 아름다운 은하수가 펼쳐졌다. 윤서는 가만히 앉아서 아름답고 신비로운 풍경을 바라봤다.
“지구까지 얼마나 걸릴까요?”
“글쎄. 일단 형은 지금 지구까지 얼마나 걸리는지를 생각할 때가 아니야.”
“네?”
윤서가 권지한을 쳐다보자 권지한은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우리 얘기 마무리해야지.”
“무슨 얘기요.”
“모르는 척하네. 그래. 다시 말해 주면 되지, 뭐.”
권지한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윤서를 진지하게 바라봤다.
“다시는 희생하려거나 혼자 죽으려는 짓은 하지 마. 그건 날 살려 주는 게 아니야. 이런 말은 하고 싶지 않지만 그게 내게 얼마나 비참한 생존일지 형도 잘…. 아니, 미안해. 이런 말 해서 미안. 그런데 만약 우리가 정반대의 입장이었으면 형은 그렇게 살아남고 얼마나 살아갈 수 있었을 것 같아? 내가 형을 혼자 지구로 돌려보내고 혼자 소멸했으면 형은 어땠을 것 같은데?”
“…….”
“지금은 다 잘 끝나긴 했지만 형은 정말로 죽을 뻔했고. 우리는 다시는 만나지 못할 뻔했어. 그런 생각을 하면 지금도 심장이 내려앉아. 너무 무섭고 끔찍해서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아.”
권지한이 가슴을 손바닥으로 덮었다. 윤서는 권지한의 심장이 실제로도 쿵쿵 거세게 뛰고 있는 걸 들었다.
윤서는 그때의 선택은 반드시 해야만 했던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권지한의 떨리는 눈과 경련하는 뺨, 순식간에 창백해진 얼굴을 보면서 그런 말을 할 정도로 양심이 없지는 않았다.
“알겠습니다. 다시는 안 그럴게요.”
“지구로 돌아가면 계약서 쓰자.”
“당신도 써야 합니다.”
“당연하지. 난 이제 자폭 폭탄을 온몸으로 감싸는 사람이 아니게 된 지 오래 지냈다고.”
좋아할 일인가?
윤서는 잠깐 헷갈렸지만, 권지한이 억울한 희생을 할 일이 없다니 이건 좋아할 일이 맞았다.
윤서가 미소 짓자 권지한은 반대로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웃어? 웃어? 하아.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 형. 사랑이 이런 거구나. 화 한번 제대로 못 내게 되다니.”
윤서의 웃음이 진해졌다. 권지한이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아, 했다.
“햅쌀이 좀 꺼내 봐.”
“햅쌀이 화가 많이 났을 거라서.”
“그래서 꺼내라는 건데?”
“…….”
“나는 도저히 화를 못 내겠으니 햅쌀이한테 혼나는 형 보면서 대리만족이라도 해야겠어.”
햅쌀이가 더 삐지기 전에 꺼내야 하긴 하므로 윤서가 허리를 똑바로 세우곤 단검을 꺼냈다. 작은 새로 변한 햅쌀이는 잠깐 상황을 파악을 하려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곧 윤서를 발견했다.
윤서는 다가올 응징을 각오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뿌리로 쪼아대거나 발톱으로 머리칼을 뜯겠지? 삐유삐유삣삣 울면서 말이다.
“…….”
그런데 의외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의아해진 윤서가 눈을 살짝 떴다.
햅쌀이가 까만 조약돌 같은 눈으로 윤서를 물끄러미 올려다보고 있었다.
“…햅쌀아?”
햅쌀이는 대답도 하지 않고 포르르 날아올라 권지한의 팔뚝 위에 앉았다.
그러고는 팔 안쪽에 부리를 콕 박았다.
작고 동그란 뒷모습을 보면서 윤서는 몹시 당황했다.
“해, 햅….”
“형, 큰일났다. 우리 햅쌀이 완전 제대로 삐졌다.”
“가, 가만히 좀 있어 봐요. 해, 햅쌜아. 여기 좀 봐 봐.”
윤서가 손가락을 내밀어 햅쌀이의 날개를 살살 쓸었다. 햅쌀이는 반응이 없었다. 상처받은 동그란 뒷모습에 윤서는 가슴이 미어졌다.
머리칼을 죄다 뜯을 기세로 응징해오는 게 아니라 이렇게 상처받아서 등을 돌려버리다니. 이런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햅쌀이 입장에서는 두 번이나 주인으로부터 버려진 것이다. 대던전에서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다고 해도, 이번에는 윤서가 의도적으로 버렸다. 이렇게 상처받는 게 당연했다.
“미안해, 햅쌀아. 이제는 안 그럴게. 다시는 널… 남에게 준다거나.”
“내가 남이야?”
“…남이 아니라도 아무튼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안 넘길 거야. 햅쌀아. 나 좀 봐. 응?”
“아, 햅쌀이 운다.”
“네?”
“옷 축축해졌어.”
“햅쌀아…….”
윤서가 쩔쩔매며 달랬다. 햅쌀이가 권지한의 팔뚝에 폭삭 얼굴을 묻고 있어서 권지한은 윤서가 좀 더 햅쌀이에게 사과하기 편하도록 팔뚝을 살짝 들어 올렸다.
삥.
그런 작은 움직임조차도 싫은지 햅쌀이가 울어서 어정쩡한 자세로 멈춰야 했지만.
윤서는 미안하다는 말과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거란 말을 반복하며 햅쌀이가 특히 좋아하는 날갯죽지 부분을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만졌다.
아름다운 은하수 구경이고 뭐고…….
두 인간이 조그만 반려아이템한테만 매달린 지 몇 분이 흘렀다.
마침내 윤서의 지극정성과 애원이 통했는지….
삐유우….
햅쌀이가 여전히 권지한의 팔 안쪽에 부리를 박은 채 가느다랗게 소리를 냈다. 꽁지도 살짝 위아래로 흔들기도 했다. 윤서는 이때다 싶어서 더욱 더 절절한 목소리로 달랬다. 우리 예쁜 햅쌀아.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햅쌀아…. 나를 좀 봐 줘.
햅쌀이가 살짝 머리만 돌려서 윤서를 바라봤다. 투명한 눈물이 퐁퐁퐁 솟아나고 있었고, 작은 새가 부리를 파묻고 있었던 권지한의 옷에는 눈물 자국 두 개가 찍혀 있었다.
“햅쌀아…….”
삐유…….
“다시는 안 그럴게. 정말이야. 미안해…. 한번만 용서해줘.”
삐.
“내가 잘못했어. 미안. 나한테 와. 안아줄게.”
삐이. 삐이.
“그래, 많이 화났지. 나도 알아.”
삐유우우. 삐유우. 삐융. 삐이이. 삥. 삥삥.
햅쌀이가 서러운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윤서가 손바닥을 펼치자 햅쌀이가 그 위로 올라왔다. 거의 느껴지지도 않는 가벼운 무게에 윤서는 더욱 가슴이 미어졌다.
윤서는 햅쌀이를 부드럽게 감싸 쥐고 천천히 제 앞으로 가져왔다. 그러고는 손가락으로 서러운 눈물을 닦아주고, 동그란 가슴털도 쓸어줬다. 그리고 머리를 부빗하려는 그때였다.
삐윳!
“앗.”
햅쌀이가 마치 지금을 노린 것처럼 파다닥 날아올라 윤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